김효원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교실마다 마음이 아프거나 예민한 아이들을 찾기 어렵지 않다. 어느 순간 예민한 아이가 확 늘어난 것 같지만 원래 아이들은 예민함을 타고난다. 이런 예민함은 정도의 차이거나, 예민함이 자극되는 상황이 다를 뿐이다. 오랫동안 예민한 아이들과 육아에 지친 부모들을 상담해온 김효원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이들이 지닌 어려움이 어디서 오는지,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 고민했다. 의사이기 전에 예민한 딸을 키워온 엄마로서도 궁금한 부분이었다. 최근 펴낸 책 ‘모든 아이는 예민하다’에서는 그 고민과 공부한 내용을 다룬다. 김효원 교수는 “여러 가지 선택지를 놓고 책 제목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딸이 이걸로 골랐다. 가장 공감이 된다고 하더라”며 “사실 ‘아이’를 ‘사람’으로 바꿔 ‘모든 사람은 예민하다’고 해도 말이 된다. 요즘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예민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예민함은 나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특별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완벽하려다 공황장애 오는 요즘 아이들
김효원 교수는 진료실 안은 물론 시간을 쪼개 진료실 밖에서도 마음이 불안한 아이와 부모들을 만나고 있다.
매우 예민한 아이들은 감각, 인지, 감정, 가족과 사회적 관계에서 다른 아이들과 구별됩니다. 먼저 냄새, 소리,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나 목소리 톤의 변화를 민감하게 알아차립니다. 또 인지적으로 유연하지만 공포 및 불안에 대한 생각을 통제하기 어렵거나 완벽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요. 감정적으로도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더욱 강렬하게 느끼고 표현하며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아요. 사회적 상황에서는 갈등을 피하며 자기 잘못을 반추하는 데 많은 시간을 씁니다. 즉, 사회적 상황에서 과도하게 자극받을 가능성이 높고 때로 생각이 멈추기도 하는 거죠. 물론 회복탄력성이 크고 사회적으로 잘 적응하는 아이도 많습니다.
이런 예민한 아이들이 예전보다 늘었나요.
예민함이 질병은 아니기 때문에 공식적인 통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진료실에서 느끼기에는 정말 많이 늘었어요. 불안장애 가운데서 선택적 함구증이 제일 심각한데, 말을 잘할 수 있으면서도 불편한 상황에서는 말을 하지 않는 병이에요. 제가 처음 소아정신과 의사가 되었을 때는 1~2년에 1명 정도 병원에 왔거든요. 그런데 2023년에만 선택적 함구증 환자가 새로 12명 정도 왔어요. 불안하고 예민한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껴 그런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모든 아이는 예민하다’는 제목의 책을 쓰게 됐어요.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의 예민함이 자신의 무엇인가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지 자책하게 됩니다.
기질은 감정 반응, 기분 변화, 행동 반응에 있어서 개인의 특징적인 양상을 뜻합니다. 이런 기질을 설명하는 모든 이론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감각적으로 예민하고 섬세한 감정을 타고났고 불안이 높은 성향을 가진 아이들이 있다고 얘기합니다. 다만 예민한 기질은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지만, 어릴 때의 양육법은 이런 아이들에게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고 조절하는 법을 알려줘 행동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또 부모가 과잉보호하면 특히 분리불안이 악화할 수 있습니다. 손을 안 씻으면 병에 걸린다거나 학교에서 징징대면 애들이 싫어할 거라는 식으로,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너무 강조하면 아이는 더 예민해질 수 있어요.
양육 환경이 원래의 기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단 거네요.
그렇죠. 아동학대 같은 트라우마를 경험한 아이들은 주변에 대해 과잉 각성과 불안을 느끼고 위험 신호를 빠르게 파악합니다. 부모로부터 학대당하는 아이들은 세상과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형성하지 못해서, 이후 거의 모든 대인관계에 불안을 느끼고 사람들에게 다가서지 못하게 됩니다. 어려서 학교폭력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비슷한 상황에 놓이면 불안과 예민함이 자극됩니다. 트라우마로 인한 불확실성과 공포가 생존을 위한 뇌의 경보 시스템인 편도체를 과잉 활성화하기 때문입니다.
예민한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양육자도 지칩니다. 부모와 아이 모두 예민한 성향이면 더 힘들 것 같아요.
예민한 부모가 육아를 할 때는 어려운 일들이 많아요. 우선 아이 있는 집은 시끄럽고 엉망이 되기 일쑤잖아요. 예민한 부모들은 이런 환경에서 오는 자극에 쉽게 영향을 받습니다. 또 자신이 노력해서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가능한 한 모든 상황을 예측할 수 있게 바꾸려고 합니다. 당연히 잘 안 되죠. 육아는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강렬한 감정을 유발하는 일이에요. 아이들은 논리적으로 설명해도 지시 따르기가 바로 안 되고, 떼를 부리기도 합니다. 특히 공공장소에서라면 부모는 당황하고 주위에 폐를 끼칠까 봐 걱정하게 되죠. 마지막으로, 예민한 부모 중에는 완벽주의자가 많아요. 자신에 대한 완벽주의도 우울, 불안, 좌절감 등을 가져올 수 있지만, 아이에게 과한 기대를 하면 서로 힘들어져요. 그런데 예민한 부모에게도 분명한 장점이 있어요.
어떤 장점인가요.
아이의 행동에 숨겨진 감정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고, 세심하게 관찰해서 아이의 생각과 숨은 의도를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가능성이 큽니다. 예민한 아이를 키울 때도, 자신이 예민한 아이였던 적이 있기 때문에 그런 성향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는 걸 이해해주기도 쉽고요. 예민한 부모가 아이를 키울 때는 자신의 예민함과 아이의 예민함이 부딪치지 않도록 자신의 예민함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게 중요해요. 불안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며 증폭되는 경향이 있거든요.
불안함을 해소할 수 있는 아이만의 방법 찾기
진료를 하며 가장 많이 보아온 케이스는 무엇인가요.제일 많은 사례는 손톱을 뜯는 아이예요. 우울증, ADHD 등 다른 이유로 온 아이들도 손톱을 뜯는단 이야기를 많이 해요. 이 경우 매번 지적하지 말고 주말에 아이 손톱을 깎아주며 그때만 손톱에 대해 얘기하세요. 그리고 손으로 불안을 낮출 수 있는 말랑말랑한 스트레스볼, 피짓 큐브 등을 찾아주세요. 손톱을 뜯는 아이 외에도 분리불안이 있는 아이, 최근에는 공황장애가 있는 아이와 완벽주의 성향을 지닌 아이가 많이 옵니다. 특히 성적이 굉장히 좋았는데 시험 보는 게 두려워지고,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실력만큼 성적을 얻지 못한 아이들을 보면 정말 안타까워요. 완벽주의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이런 성향이 성공의 원동력이 아니라 자기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해요. 부모는 결과보단 과정을 격려하는 말과 피드백을 해줘야 합니다.
만약 아이의 행동을 제어해야 할 때는 어떻게 훈육하는 게 좋을까요.
우선 부모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단호한 목소리로 짧고 간결하게 지금 잘못한 행동을 지적해야 합니다. 특히 불안, 긴장, 분노감 때문에 문제 행동을 보이는 경우에는 그런 감정이 좀 줄어들 때까지 아이의 마음을 우선 보듬어주세요. 그리고 모호하고 부정적인 감정들을 아이가 좀 더 세분화된 말로 표현해 감정을 언어화하도록 해줍니다. 또 감정을 행동으로 터트려서 폭언하거나 공격적인 행동을 해선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해요. 제가 늘 ‘단호하게’는 ‘끝까지 일관되게’라는 뜻이라고 말씀드리는데요. 단호한 훈육이 제일 중요합니다.
훈육의 빈도는 어느 정도가 좋은가요.
어린아이일수록 난리를 많이 치겠죠. 그런데 난리를 쳤을 때 혼을 내서 지금 한 행동이 문제라는 걸 명확히 알려줘야 하는 경우가 있고, 그냥 무시하는 편이 더 효과적일 때가 있어요. 난리를 친다는 건 자기가 원하는 걸 해달라는 의미거든요. 그러므로 모든 행동에 대해 혼내기보단 어떤 행동은 혼을 내고 사소한 부분은 넘어가는, 강약을 명확하게 해서 아이가 스스로 그 기준을 알 수 있게 하는 것도 도움이 될 거예요. 아이들은 해도 되는 행동과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의 경계가 분명하고,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칭찬받거나 혼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어요. 부모와 자신 사이의 경계가 뚜렷할 때 편안함을 느낍니다.
예민함 때문에 치료를 받아야 할 때는 언제인가요.
우리가 운동을 잘하지 못하거나 음감이 부족한 아이에게 치료나 교정이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예민함은 타고난 성격이에요. 다만 예민함 때문에 일상 및 사회생활에 어려움이 있다면 이러한 성향을 누그러뜨리려 노력해야죠. 이 성향은 청소년기에 심해지기도 합니다. 또래 관계가 복잡해지고 학업 관련 스트레스가 커지며 부모로부터의 정서적 독립과 관련된 갈등이 증가하는 시기거든요. 혹시 불안이 심해지거나 강박, 공황과 같은 좀 더 구체적인 불안장애의 증상이 생기거나 우울과 행동 문제가 동반된다면 인지행동치료, 놀이치료, 정신치료, 약물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예민한 아이가 청소년이 됐을 때 더 큰 문제를 맞는 경우가 많은가요.
많은 것 같아요. 예민한 아이들이 학교와 세상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면서 우울, 불안, 강박증, 공황장애 같은 증상이 많이 생깁니다. 또 최근에는 또래 관계나 미디어에서 영향을 받아 힘든 일이 있을 때 자해를 하는 청소년들이 흔한데요. 예민한 아이들은 어려움을 더 크게 느끼다 보니까 이런 문제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다만 청소년기가 지나면 좋아지는 경우가 많으니까 아이가 어려운 시기를 잘 넘길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수능이 몇 달 남지 않았습니다. 예민하지 않던 아이도 예민해질 시기인데요. 이런 특수한 경우에 예민해지는 현상도 받아주는 게 나을까요.
수능이 다가오면 고3 대부분이 힘들고 예민해집니다. 예민한 아이들은 이런 어려움을 더 크게 느끼겠죠. 저는 부모님들이 ‘받아준다’고 생각하지 말고,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돌보고 예민함을 다독이는 능력이 자랄 때까지 함께 견뎌준다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결국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의 예민함을 견디며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은 아이이고, 가장 힘든 사람도 아이거든요.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는 아이만의 방법에서 다소 폭력성이 느껴진다면요.
사람들은 공격성이 나쁘다고 생각하는데요. 사람은 모두 어느 정도의 공격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공격성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어요. 공격성이 강할수록 자신의 목표를 향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발전해가는 모습을 보여 경쟁에서 살아남는 데 유리합니다. 공격성을 스포츠나 예술 활동 등으로 승화하는 사람도 많아요.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아이가 던지거나 찢어도 되는 것을 찾아주면 어떨까요. 그 외에 복식호흡이나 버터플라이 허그같이 신체 자극에 집중하면서 이완하는 방법도 있어요. 또 음악을 듣거나 웃기는 짧은 영상을 보거나 피짓 큐브 같은 장난감도 도움이 됩니다. “괜찮아” “다 잘될 거야” 등 불안을 낮추는 말을 스스로에게 하는 것 역시 좋아요. 제가 만나본 청소년 중에서는 컬러링이나 종이접기, 뜨개질처럼 손으로 하는 활동이 도움이 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완벽한 육아는 판타지일 뿐
환자가 그려준 김효원 교수.
예민한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내 뜻대로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죠.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에 예민한 아이로 살면서 고되고 지친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힘들고요. 2년 전에 펴낸 책 ‘엄마의 마음이 자라는 시간’에서 ”아이 키우기는 내려놓는 일의 연속“이라는 말을 썼어요. 아이가 공부를 잘할 줄 알았는데 못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고, 공부는 못해도 착할 줄 알았는데 착하지 않다는 것을, 착하지는 않아도 건강할 줄 알았는데 건강하지도 않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해요. 예민한 아이일수록 더 내려놓아야 해요.
아이를 여럿 키우다 보면 아무래도 예민한 아이에게 맞춰주는 경우가 많잖아요. 교수님은 그럴 때 어떻게 하셨나요.
맞아요. 대개는 덜 예민한 가족들이 예민한 아이에게 맞춰주죠. 그런데 이렇게 예민한 아이를 배려하면서 자라는 덜 예민한 아이가 손해만 보는 것은 아니에요. 이 아이는 특별히 뭘 하지 않아도 예민한 아이와 비교되면서 그냥 존재 자체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과 사랑을 받게 되거든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능력도 생기고요. 물론 그래도 예민하지 않은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따로 둘만의 즐거운 데이트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합니다.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세요.
그간 아동·청소년 정신 건강 증진을 위해 노력한 덕분에 지난해 어린이날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어요. 앞으로의 계획도 말씀해주세요.
서울아산병원으로 저를 찾아오는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돌봐줄 보호자가 있고, 필요한 치료가 있다고 하면 그에 따르는 부모를 가진 경우죠. 세상에는 자신에게 마음을 써주는 사람이 없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하거나 학대를 당하는 아이들도 많고요. 의사는 세상을 바꾸는 데 크게 기여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살기에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는 힘을 보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다 보니 국무총리 표창도 받았는데, 앞으로도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꾸준히 해나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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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홍태식
사진제공 김효원 서울아산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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