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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저도 단축근무 없었으면 육아 못했을 거예요”육아 예찬자 정지우 작가

문영훈 기자

2024. 06. 11

“자식을 낳아봐야 어른이 된다”는 말을 들으면, 어쩌면 ‘꼰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정지우 작가의 ‘그럼에도 육아’를 읽고 나면 그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글 쓰는 아빠 정지우의 육아 예찬

글 쓰는 아빠 정지우의 육아 예찬

합계출산율 0.72 시대. 아이러니하게도 육아에 대한 담론은 차고 넘친다. 두드러지는 건 육아에 대한 어려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한 아이를 그럴듯한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일은 쉬울 리 없다. 또 하나는 육아에 대한 방법론이다. 이 힘든 일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식을 말하는 콘텐츠가 범람한다. 지난해 5월, 결이 다른 신문사 칼럼 하나가 맘 카페를 중심으로 화제에 올랐다.

“신이 있다면, 신은 우리에게 잠시 온 영혼을 고갈시키듯이 사랑하라고 아이가 있는 한 시절을 주는 것 같다. 한 번 사는 인생, 그렇게 사랑할 시절을 가지라고, 삶의 가장 깊은 정수를 한 모금 마시고 돌아오라고 말이다.”

육아의 숭고함을 말하는 2200자 분량의 글에 단군 이래 출산율 최저 시대의 부모들은 “신문사 댓글은 처음 달아봅니다” “글 읽으면서 울었습니다” 등의 댓글을 달며 반응했다. 이 글의 제목은 ‘그럼에도 육아’. ‘노 키즈 존의 사회’에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육아는 해볼 만한 일이라는 내용이다.

이 글을 쓴 정지우(37)는 2012년 ‘청춘 인문학’으로 데뷔해 ‘분노사회’(2014),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2020) 등 사회 비평서를 발표해온 13년 차 작가이자 변호사다. 차가운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던 그는 2018년 아이가 태어나며 많은 변화를 겪었다. 책 ‘그럼에도 육아’는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하는가가 아니라 이렇게 아이를 키웠다는 이야기다. 동시에 아이를 기르며 난생처음 아버지가 된 저자가 성장하는 이야기다.

모래의 감촉, 초코우유와 놀이터

‘그럼에도 육아’의 주인공인 정 작가의 아들 ‘띵똥’(태명)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정 작가는 당시 로스쿨 1학년생이었다. 아이가 태어난 때는 1학기 기말고사 기간. 그는 병원과 산후조리원에서 시험공부를 했다. 정 작가는 “아이의 탄생은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라고 기억한다.



학생 신분으로 육아가 힘들지 않았나요.
로스쿨에 다닐 때는 아내가 휴직하기도 했고 부모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어요. 오히려 졸업 후 서울에서 더 힘들었어요. 아내도 복직했고 저도 일을 시작했으니까 한 명이 어린이집 등원을 시키면 다른 한 명이 받는 식으로 공중곡예를 하다시피 아이를 키웠죠. 아이가 서너 살 때는 면역력을 기르는 시기라 감기에 많이 걸려요. 어린이집에 가면 다른 아이들도 비슷하니까 서로 옮기도 해서 사실상 1년 내내 감기에 걸려 있었어요. 그런데 열이 39~40℃까지 오르는 아이를 해열제를 먹이면서도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니까 너무 힘들었죠. 저는 회사에서 반차의 화신이 됐고요. 그 아이가 내년에는 초등학교에 가요. 이제는 친구와도 잘 놀고 아프지 않아서 많이 수월해졌죠.

그럼에도 ‘그럼에도 육아’는 육아에 대한 예찬으로 가득합니다.
저는 삶을 긍정하거나 삶이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에 글을 써요. 육아도 마찬가지죠. 당연히 힘들지만 감동적인 순간이 많거든요. 아이 때문에 하루에도 수십 번 웃게 되는데, 모든 부모는 그 순간을 느끼지만 힘드니까 자꾸 잊어버리게 되죠. 육아 예찬론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로스쿨 학생과 육아를 해야 하는 부모를 병행해야 했던 힘든 시절에 아름다운 조각을 캐서 저장해둔다고 생각하며 글을 썼어요.

그가 기억하는 작고 사소한 순간은 이런 것이다.
“로스쿨에 다닐 때 집에 오기 전까진 공부만 했어요. 그러다가 저녁에 아이와 슈퍼마켓에 가서 아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초코우유를 하나 사서 물리고 손을 잡고 놀이터에 가는 시간 같은 거요. 당시엔 돈도 시간도 없었지만 소중한 순간을 저장해두고 싶었어요. 그래서 책을 보면 육아하면서 저렇게 행복한 사람이 있나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그런 마음을 쓰고 싶었던 거죠.”

아이 탄생 이후 겪은 다양한 변화가 책에 담겨 있습니다.
아이가 생기기 전엔 모든 걸 번복할 수 있었거든요. 연애를 해도 헤어질 수 있고, 결혼을 해도 이혼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원하는 직업도 계속 달라졌어요. 로스쿨에 가기 전에도 평론을 배우려고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하기도 하고, 언론사 시험 준비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탄생은 절대 번복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게 삶의 태도를 완전히 바꿨습니다.

어떻게 달라졌나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엔 삶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 상태가 행복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선택에 책임을 지고 그 속에서 최대한의 가치를 찾고 그 경험을 누리는 거라고 생각해요. 도망칠 수 없는 상황에서 삶을 긍정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삶에서 많은 디테일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디테일이요.
천진난만해지는 경험, 그게 너무 좋았어요. 예전엔 바다에 가면 전망을 보고 사진 찍는 게 다였거든요. 아이와 함께 가면 무조건 바다로 돌진입니다. 물에 쫄딱 젖는 거죠. 그렇게 아이와 모래사장에서 2~3시간 땅을 파다 보면 현실이 잊혀요. 휴대폰 알람, 해야 할 일, SNS 이런 게 다 사라지고 모래를 만지며 느끼는 감촉이 남아요. 부슬부슬한 모래를 좀 더 파다 보면 물이 묻은 질척거리는 모래를 생각하게 되는 거죠. 요즘엔 아이와 술래잡기를 하는데 이제는 아이가 커서 숨이 찰 때까지 뛰어야 하거든요. 어른이 되면 사실 그럴 일이 별로 없잖아요. 다시 한번 사는 느낌, 그게 너무 좋죠.

아이가 질문을 많이 한다고요.
아이의 얘기를 듣다 보면 어른들이 모순적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느껴요. 아이들은 논리를 이해하는 단계에서 앞뒤 말이 맞아야 하거든요. 그런데 어른들의 삶은 앞뒤가 안 맞아요. “동물은 소중해”라고 말하며 매일 고기를 먹고, ”지구가 아프니까 쓰레기를 버리면 안 돼“라고 말하며 매일 지구를 파괴하죠. 사실 그 모순을 받아들여야 어른이 되는 건데 아이는 계속 의구심을 품죠.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치 아이가 없는 삶이 불행한 것 같습니다.
주변에 여동생을 비롯해 딩크 부부가 많아요. 제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을 보면서 아이 키우는 게 행복해 보인다고 아이를 낳아야 할지 물어봐요. 저는 왜 지금까지 안 낳았냐고 물어보죠. 그럼 아직도 저녁에 부부가 함께 영화를 보고 주말에 여행 가는 게 행복하다고 답해요. 그럼 저는 굳이 낳지 말라고 해요. 지금도 행복한데 무슨 천상의 행복을 누리겠냐는 거죠. 사람이 그렇게 탐욕을 부리면 안 된다고요(웃음). 만약 그게 아니라면 아이 갖는 걸 고려해볼 수도 있겠죠.

정 작가는 ”아이가 주는 행복이 행복의 전체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다만 저는 아내와 ‘아이를 안 낳았으면 어쩔 뻔했냐’는 이야기는 자주 해요. 누구나 사랑받는 경험은 즐거운 일이잖아요. 반대로 어떤 존재에게 전적인 사랑을 줄 수 있는 경험은 정말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작가이자 문화비평가이기도 합니다. 출산율 저하를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제일 압도적인 건 주거 문제라고 생각해요. 혼자나 둘이 살 공간만 필요하다면 괜찮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서울에서 직주근접성이 나쁘지 않으면서 치안도 괜찮은 곳에 아이를 키울 만한 주거 공간이 필요하다면 한 달에 500만 원을 저축해도 가능할까 싶거든요. 저 같은 경우도 부모님이 지원을 많이 해줄 수 있는 집이 아니다 보니, 서울에 정착해서 아이 낳고 키우려고 생각하면 암담한 수준입니다.

주거 문제만 해결되면 될까요.
저는 육아할 때 로스쿨을 졸업한 뒤 법무부에서 일하기도 했고, 아내도 고등학교 교사라 육아 휴직이나 단축 근무를 쓸 수 있었어요. 부모님 도움도 받지 못할 때였고, 시터를 고용할 만큼 여유롭지도 못할 때라 공공기관의 제도가 아니라면 아이를 키우지 못했을 거예요. 정부에서 의지가 있다면 이런 제도를 중소기업에서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해야 해요. 아이가 있는 근로자가 기업 입장에서 꼭 필요한 존재가 될 만큼 법인세 혜택을 주는 등 유의미한 정책적 유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끄러운 경험을 일단 쓰자

2012년 데뷔한 이래 정 작가는 아이가 태어난 2018년을 빼놓고는 매년 책을 출간해왔다. 사회 비평, 육아, 결혼 생활, 청년문제 등 주제도 다채롭다. 누구나 자신의 글을 써서 발표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정 작가처럼 꾸준히 글을 쓰는 일은 쉽지 않다. 그는 ”오늘도 인터뷰 장소로 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글을 쓰다가 내릴 역을 지나쳤다“며 웃었다.

어릴 적 꿈이 작가였나요.
열다섯 살 때부터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J. R. R. 톨킨이나 어슐러 르 귄 같은 판타지 대작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수십 편의 단편소설을 쓰고 장편도 쓰면서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을 보냈죠. 그래서 대학도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고요. 그러다가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내게 된 책이 ’청춘 인문학‘이에요. 소설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돌려 해야 하지만 인문학은 직설적으로 해도 돼서 좋더라고요.

매일 글을 쓰는데, 소진되는 느낌은 없나요.
전혀 반대예요. 지하수를 퍼 올리는 것처럼, 한번 물을 끌어올리면 계속 퍼 올리게 되죠. 오히려 글을 안 쓰면 말라버릴 것 같아요. 글을 쓰면서 계속 생각이 생성되는 느낌이죠.

주로 언제, 어디서 글을 쓰나요.
쓸 내용이 생각나면 어디서나 쓰고요. 그래서 가방에 항상 키보드를 들고 다녀요. 매일매일 정말 아무거나 써요. 오히려 글쓰기를 의무라고 생각하면 잘 안 써지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욕구가 있잖아요.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떨듯,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글을 쓰는 거죠.
대개는 그 욕구를 말로 해결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갑자기 직장 동료에게 왕따당한 경험을 말할 수 없잖아요. 그런데 사실 왕따 안 당해본 사람은 없거든요. 30대쯤 되면 살아오면서 거친 조직이 100개가 넘을 거예요. 학급이나 동아리, 아르바이트와 인턴 등 온갖 소속을 거치는데 모두가 그곳에서 ’인싸‘일 수는 없거든요. 누구나 한 번쯤은 소외감과 박탈감을 느껴보고 따돌림이나 뒷담화를 경험하죠. 글쓰기의 세계에서는 소외된 경험이 정말 환영받는 주제예요. 평소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다 할 수 있는 곳이 글인 거죠. 사실 저도 친구들끼리 만나서 육아의 기쁨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질타받겠죠. 하지만 그걸 글로 쓰면 다들 좋아하는 거죠. 글은 삶을 종합적이고 진솔하게 살 수 있는 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가벼운 마음으로 써보기 시작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정지우 #그럼에도육아 #여성동아

사진 박해윤 기자 
사진제공 정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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