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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유쾌한 뇌과학자 장동선 “나이 들수록 시간 빨리 가는 이유”

윤혜진 객원기자

2024. 06. 07

정신 차려보니 여름,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 딱히 기억에 남는 일 없이 시간이 사라진 것 같다면 남은 1년의 절반을 좀 더 잘 살기 위해 ‘최적의 뇌’를 만들어보자. 

뇌과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인 장동선 박사는 자신을 소개할 때 늘 “모든 뇌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말을 앞세운다. 실제로도 자신의 행복을 위해 번듯한 직장인 현대자동차와 한양대학교 교수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현재 채널A ‘인간적으로’에 패널로 출연하며 자신의 유튜브 채널과 각종 강연 등을 통해 딱딱한 뇌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주고 있다.



유튜브 채널에서 그가 다룬 뇌 관련 궁금증을 살펴보면 ‘당신이 미루는 이유’ ‘나는 왜 엉망진창인 어른이 된 걸까’ 등 과연 이런 게 뇌과학과 관련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귀가 솔깃한 주제들이 많다. 장동선 박사는 “나 스스로가 좌충우돌, 허당 캐릭터이기 때문에 내가 관심 있는 부분을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왜 그럴까?’로 시작한 궁금증으로 독일 막스플랑크뇌공학연구소에서 인간 지각, 인지 및 행동 박사학위까지 받은 엉뚱한 뇌과학자에게 인간적으로 너무나 궁금했지만 소소해서 눈치 보였던 질문들을 마음껏 했다.

“인간은 원래 멀티태스킹 못해요”

현재 지식 셀럽들이 다양한 궁금증을 해소시켜주는 채널A 인문학 토크쇼 ‘인간적으로’에 출연 중이다.

현재 지식 셀럽들이 다양한 궁금증을 해소시켜주는 채널A 인문학 토크쇼 ‘인간적으로’에 출연 중이다.

왜 시간이 ‘순삭’된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요.
우리 뇌가 모든 시간을 다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24시간 동안 일어나는 모든 일을 뇌가 다 기억한다면 평생 사는 데 용량이 한참 모자라겠죠. 뇌는 우리가 자는 동안에 어떠한 기억들을 버릴 것인가 선택하고 꼭 필요한 기억만 남겨놔요. 그런데 우리가 아는 게 많고 중요한 것들을 이미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을수록 뇌가 새 기억을 쌓아나갈 부분이 점점 적어집니다. 그러다 보니 얼마나 많은 새 정보를 경험했는가에 따라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길이가 달라지는 거죠. 5개월이 순식간에 지나갔다고 하는 건, 다시 말해 새로운 걸 배우거나 새 기억을 충분히 남기지 못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점점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가요.
어렸을 때는 1년이 정말 길게 느껴져요.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경험하는 많은 것이 다 새로우니까요. 그 기억들은 계속해서 쌓여가고, 새롭게 학습해 기억해야 할 것들이 많았어요. 그러면 당연히 1년이 길게 느껴지는데, 자라면서 웬만한 건 다 보고 듣고 맛보고 아는 게 많아졌다면 뇌가 굳이 그 기억들을 남겨놓을 필요가 없죠. 또 1년 동안 회사, 집, 학교, 집만 왔다 갔다 하면서 매일 똑같이 단조로운 생활을 이어왔다면 뇌의 입장에서는 남겨야 할 기억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압축된 시간으로 기억되는 겁니다.



“정신없어서 깜박했다”는 말을 달고 사는 것도 기억의 편집과 관련 있나요.
관련이 높죠. 보통 많은 업무를 하고 있을 때 “정신이 없다”고 하죠. 다양한 종류의 일을 동시에 하고 있을 때 더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내 업무를 하면서 신입 사원을 뽑고, 타 부서 직원과 새 프로젝트도 하고, 그러면서 가족 행사와 육아 그리고 각종 세금 등 처리해야 할 일이 많다고 가정하면요. ‘스위칭 코스트(switching cost)’, 즉 어떤 일을 하다가 다른 걸로 넘어갈 때 놓치게 되는 부분이나 집중하지 못하는 부분이 생기는 거예요. 인간은 기본적으로 멀티태스킹을 잘하지 못합니다. 현대인의 경우 어쩔 수 없이 멀티태스킹을 많이 하기 때문에 과거와 비교하면 스위칭 코스트가 조금 줄긴 했는데, 기본적으로는 동시에 일 처리하는 데 약해요.

박사님도 깜박할 때가 있나요.
오늘 아침만 해도 냉장고에서 녹즙 가루를 찾는데 아무리 봐도 없는 거예요. 둘러보니 이미 제가 싱크대 옆에 꺼내놨더라고요. 그런데 기억이 없어요. 아침에 병원 다녀오고 아이들 챙기고 인터뷰 준비하고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이미 꺼내놓고도 꺼낸 기억이 뇌에 남아 있지 않았던 거죠. 문제는 이런 소소한 걸 망각하는 건 괜찮은데, 중요한 기억들을 놓칠 수 있잖아요. 한 번에 하나씩만 집중해야 중요한 것들을 놓치지 않아요.

예전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나이 들면서 더 깜박깜박한다는 분들도 많잖아요.
기본적인 노화의 과정에서 뇌세포가 점점 줄어드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만 35세, 40세 이후로 뇌는 계속해서 쪼그라듭니다. 신경세포의 숫자도 줄어들고 뇌의 부피도 줄어드는 게 맞는데, 그 자체를 문제라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뇌세포의 숫자가 줄어드는 게 문제가 아니라, 신경세포와 신경세포의 연결이 훨씬 중요하거든요. 물론 최신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새 신경세포가 생겨나기도 한다는 희망적 소식이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태어나는 순간부터 뇌세포는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신경세포끼리의 연결이 더 활발히 일어나도록 하는 방법이 있나요.
무언가 학습하고 최신 내용으로 기억할 때 만들어지는 새로운 연결들이 있어요. 그 연결들은 평생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늘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익히는 태도를 가진다면 나의 기억력과 학습 능력을 계속 향상할 수 있겠죠. 자꾸 깜박깜박하는 게 80세 이후에는 경증 치매로 가거나, 일부의 경우는 실제로 치매 때문에 기억력이 감퇴하기도 해요. 이러한 경우들조차도 치매 증상이 일어나는 속도를 늦추는 방법이 있어요. 우리가 어떤 음식을 먹고 잠을 얼마나 자고 얼마만큼 운동을 하는지, 인생에 어떤 목표를 두고 사는지 등에 따라 뇌가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도 있고, 더 급격하게 노화되기도 합니다. 만약 일주일이나 한 달 사이에 기억력이 급격하게 안 좋아졌다면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해요.

갑자기 기억력이 안 좋아지는 원인은 무엇인가요.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는 상태에서도 뇌의 기억력과 학습 능력이 저하될 수 있어요. 현대인들은 스트레스가 워낙 만성적인 상태라서 자신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멍하니 창밖을 보다가 3시간이 지났다거나 중요한 대출 서류가 있는데 챙기지 못했다거나 아이와 약속한 게 있는데 계속 잊고 어긴다거나 하는 건 일상에 문제가 생긴 거죠. 우리 마음과 뇌가 보내는 일종의 위험 신호예요. 일상에서 피해가 일어나기 시작한다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거나,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힘든지 체크해볼 필요가 있어요.

지금보다 더 행복하려면 주변 사람 챙겨야

뇌과학은 때때로 철학 및 심리학과 겹치기도 하고 나아가 미래 기술과도 맞닿아 있다. 특히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와 함께 사람들이 뇌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 그런데 잘못된 정보가 사실처럼 퍼져 있기도 해 문제다. 장동선 박사에 따르면, 알려진 내용 중 ‘인간은 자기 뇌의 10%만 활용한다’와 ‘남자와 여자의 뇌는 다르다’는 것은 틀린 정보다. 장동선 박사는 “우리 몸의 기관 가운데 가장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곳이 뇌다. 굉장히 많은 에너지 소모가 일어나는데 만약 10%밖에 사용하지 않는다면 진화의 과정을 통해 뇌가 남아 있지 않은 존재가 됐을 것”이라며 답답해했다. 또 “남녀 그룹의 차보다는 개인차가 훨씬 크다. 남녀의 타고난 지능 차이는 없다”고 강조했다.

요즘은 특히 도파민 중독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도파민 중독은 과학적으로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다. 마약, 도박, 약물 등의 중독은 도파민 분비가 되는 신경 회로를 변화시킨다. 도파민 수용체의 숫자가 줄어들거나 제대로 된 도파민 분비가 일어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장동선 박사는 “인위적으로 더 많은 자극을 찾고 억지로 도파민이 분비되도록 만드는 현상이 생겨날 때를 흔히 우리가 도파민 중독이라 부르는데, 이는 달리 말하면 과잉 자극 중독”이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는 게 뇌 건강에 좋다면, 자극을 찾는 행위가 나쁜 건가 싶기도 합니다. 자극을 찾는 과정에서 더 재미있는 삶이 될 수 있잖아요.
도파민 자체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아요. 서로 다른 종류의 도파민 회로들이 뇌 안에 존재하고 우리가 어떤 회로를 더 많이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결과가 생겨나는 겁니다. 눈앞의 달콤한 음식, 관심을 끄는 쇼츠 영상, 당장 기분이 좋아지는 술 등 짧고 강렬한 쾌락은 점점 자주, 더 자극적인 걸 경험해야 만족하게 만듭니다. 반면 새로운 곳을 여행해 얻는 기쁨이나 다루지 못하던 악기를 공부해 얻는 기쁨 등의 긍정적인 자극에도 도파민이 분비됩니다. 이 같은 학습, 기쁨으로 일어나는 보상 회로는 많이 써도 도파민 수용체 변화라든지 과잉 자극 중독으로 가지 않아요. 결국 무언가를 할 때 얻는 기쁨을 보상으로부터 얻으려 하지 말고 과정으로부터 얻으려고 하는 태도가 중요한 겁니다.

흔히 좌뇌가 긍정적인 감정을, 우뇌가 부정적인 감정을 담당한다고 알려져 있잖아요. 그렇다면 행복하기 위해 좌뇌가 발달하는 편이 좋은가요.
지금 정정해야 할 부분이 있어요. 뇌과학과 관련해 미신처럼 믿고 있는 잘못된 사실이 몇 가지 존재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좌뇌와 우뇌에 관련된 부분이에요. 좌뇌형 인간이 이성적이고, 우뇌형 인간이 창의성이 뛰어나다는 건 낭설입니다. 전공자가 아닌 예술이나 교육 비즈니스 쪽 사람들이 뇌과학 책을 열심히 읽고 자기 나름대로 전달하려던 게 잘못된 내용을 전한 거라 볼 수 있어요.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할 때 좌뇌와 우뇌로 나뉘는 것도 아닙니다. 감정에는 뇌 전체가 관여하고, 그중에서도 편도체라고 하는 변연계 안에 있는 시스템이 중요해요. 더 확대해서 얘기하면 감정은 뇌 안에서만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복잡합니다.

감정이 뇌 외에 신체와도 관련이 있다는 의미인가요.
감정은 몸 안의 면역계, 내분비계와도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몸의 상태가 어떤지를 뇌가 모니터링하고 ‘내가 지금 이런 감정을 느끼는구나’ 판단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우리가 배부르면 기분이 좋잖아요. 배고픔과 배부름을 좌우하는 그렐린이라든지 랩틴, 뉴로펩티드 등 많은 종류의 호르몬이 뇌가 아닌 우리 몸에서 분비돼요. 마찬가지로 사랑에 빠지려면 성호르몬이 분비돼야 하는데, 성호르몬 역시 몸에서 나와요. 뇌와 호르몬계가 만나 서로를 모니터링하고 그 결과로 우리가 감정이란 걸 느끼게 되는 거예요.

“자율성유능감연결감 충족되야 행복”

뇌과학자로서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끼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요.
저는 행복을 연구했던 여러 심리학자 중 데시와 라이언이 수립한 자기결정이론을 굉장히 흥미롭게 봤고 좋아해요. 이 이론에서는 행복하기 위해서는 자율성, 유능감, 연결감 이 3가지 욕구가 충족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는 아이들이 게임 중독이 되는 이유도 이 욕구를 충족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해요. 실제 삶에서는 부모님, 선생님이 시키는 것만 하고 자율성이 없죠. 또 시험을 못 보면 혼나고 유능감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애들이 학원에 가야 해서 친구와 놀 시간이 거의 없잖아요. 그럼 연결감도 못 느끼게 되고요. 그런데 게임을 하면 다 충족이 됩니다. 자기가 선택해서 게임을 하고, 레벨 업을 하면서 유능감을 느끼고 친구들과 게임 안에서 소통하니까 연결감도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아이가 게임을 계속하고 싶다고 조르면 저도 같이 해요. 보통 아이들이 어른보다 게임을 잘하니까 행복해해요(웃음).

전문성을 살려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는 좋은 아빠일 것 같아요.
지금 첫째가 사춘기에 접어드는 초등학교 5학년, 둘째가 일곱 살인데요. 늘 바빠서 아이에게 함께 있다는 느낌을 잘 주진 못해요. 그래도 최대한 좋은 연결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가족과 있을 때 행복해요. 아마 다들 그럴 겁니다. 사춘기에 들어가는 아들과 싸우면 하루 종일 속상하죠. 부부 관계에 있어서도 상대방이 내 마음을 전혀 몰라주는 것 같으면 불행합니다.

심리 상담을 받는 느낌이에요. 어렵거나 딱딱하지 않고, 평소 도움이 되는 ‘생활 밀착형’ 뇌과학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있나요.
어려서부터 ‘나는 왜 그럴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많이 던졌어요. 어떻게 보면 삶 속에서 상처받을 상황도 많고, 스스로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는 상황도 많은데요. 나의 뇌에 대해 알면 알수록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생기거나 내가 상황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생겨요. 이러한 지식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눠야겠다는 생각에 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올해 세운 계획은 어느 정도 이뤘나요.
이제 시작한 정도 같아요(웃음). 제가 올해 2가지 계획을 세웠는데요. 첫 번째는 기존의 안 좋은 습관들, 나의 과거를 태워버리고 환골탈태하는 거예요. 다른 교수님들 보기 부끄럽지만, 임용된 지 1년 만에 그만둔 것도 그 때문이에요.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저 옷을 꼭 입어야 되겠구나’ 생각해서 입어봤는데 안 맞는 옷들이었어요. 어떤 길을 걷게 될지 모르지만 혼자 걸어보려고요. 또 두 번째는 10대부터 30대까지 무섭게 증가하고 있는 자살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일이에요. 많은 사람이 동참해준다면 지금과 같은 비극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2014년 독일 과학교육부 주관 과학 강연 대회 ‘사이언스 슬램’에서 우승했을 만큼 달변가인 장동선 박사는 오랜 관심사인 자살 문제에 대해서도 짚었다. 그는 “코로나19 시기에 자살한 사람 수가 코로나가 사망 원인인 사람보다 1만 명 정도 더 많다”며 “사회적으로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고 하는데, 자살 문제를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많이 죽어가는 세상에 아이를 낳고 싶겠느냐”는 이유에서다. 장 박사는 자살 문제와 관련해 함께 행동할 ‘전문가 어벤저스’를 모아 웹사이트 ‘mindSOS’를 개설했다. 자신을 비롯해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 백종우 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나종호 미국 예일대학교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조교수, 류혜원 미국 에모리대학교 공중보건 과정 졸업생 등이 주축이며 5월 중순 기준 2148명이 함께하고 있다.

장 박사는 “항상 스스로 ‘나 괜찮은가?’ 물어보고, 옆 사람에게도 ‘괜찮냐?’고 물어봐주면 좋겠다”며 “만약 대답이 ‘괜찮다’라면 같은 시간을 더 길게 쓰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을 더 많이 만들며 새로운 경험을 해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장동선 #뇌과학 #인간적으로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사진출처 ‘인간적으로’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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