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필헌 숭덕여고 교사는 자신의 이타심은 “살면서 가다듬어진 것” 이라고 말했다.
쌀쌀한 연말을 따듯하게 만들어줄 의인을 찾아 나선 ‘여성동아’는 248회에 걸쳐 헌혈을 한 안필헌(58) 숭덕여고 교사를 만났다. 그는 생명과학 교사로 31년간 같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왔다. 그는 헌혈의 장점과 의미를 수업과 연계하는 방식으로 헌혈을 홍보하며, 학생들의 헌혈 동참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여전히 한 달에 두 번씩 시간을 내 헌혈의 집을 찾는다. 안 교사는 “70세까지 헌혈이 가능하다는데 이제 12년 남았네요”라며 앞으로도 혈액을 기부할 의지를 내비쳤다. 그의 이타심은 어디서 비롯하는 것일까.
학생들에게 솔선수범 보이려다 2주마다 헌혈
헌혈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대학 시절 우연히 교문 앞에 서 있는 헌혈 버스를 보고 태어나서 헌혈을 처음 했어요. 당시에는 띄엄띄엄 했지 열심히 하지는 않았어요.
그러면 언제부터 헌혈을 주기적으로 하게 된 건가요.
교직을 시작하니 1년에 두 번씩 헌혈 버스가 학교로 오더라고요. 학생들에게 헌혈을 권하면서 선생님이 안 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게 버스가 올 때마다 하다 보니 적십자에서 30번 헌혈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은장’을 주더라고요. 제가 은장을 받자 가족들이 굉장히 좋아하고 축하해줬어요. 그때 50번 하고 100번 하면 또 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그렇게 상을 받고 싶다는 욕심에(웃음) 헌혈을 주기적으로 하게 됐습니다.
학생들에게도 헌혈을 권한다고 들었는데요.
제가 2년마다 교내 교사 모임에서 해외 봉사를 갑니다. 2009년 동티모르에서 현지 교사와 학생들을 상대로 연수를 진행했어요. 수료생들에게 헌혈하고 받은 기념품(생필품)을 기부했는데 굉장히 반응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2011년 라오스에 가기 전 생필품을 기부하고 싶은 마음에 헌혈을 열심히 했습니다. 목표는 라오스에서 만날 연수생 50명에게 기념품을 나눠주는 것이었는데, 혼자서는 턱없이 부족하더군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좋은 취지에 동참해달라고 했습니다.
학생들 반응은 어떻던가요.
선뜻 나서줬습니다. 제가 당시 고등학교 2학년 담임이었는데, 3학년에 올라가서도 잊지 않고 헌혈하고 제게 기념품을 건네는 학생들이 있었어요. 영화표나 다른 기념품을 받을 수도 있는데…. 학생들에게 너무 고마웠죠.
지난해에도 학생들과 함께 헌혈하러 갔다고요.
지난 3년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헌혈 버스가 학교로 오지 못했어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우리가 직접 찾아가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죠. 1학기 종업식 날, 반에 있는 22명 중 건강 상태로 헌혈을 못 하는 학생들을 빼고 총 13명이 동참했습니다.
학생들에게 헌혈을 권유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배움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 않습니까. 요즘 기술의 발전으로 단순한 지식은 좋은 선생님들께 손쉽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현장 교사의 역할은 무엇일까 생각하다 학생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하고 서로 영향력을 주고받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부족하지만 학생들을 좋은 길로 인도하는 게 교사의 사명이라 여기며 일해왔습니다.
안 교사 권유로 시작해 95번 헌혈한 제자
안필헌 숭덕여고 교사가 담임반 학생들과 헌혈의 집을 찾은 모습.
얼마 전에 헌혈하러 갔는데 대기자 명단에 익숙한 이름이 있더라고요. 알고 보니 제 권유로 고등학교 2학년 때 첫 헌혈을 한 제자였어요. 26세가 된 제자가 절 보더니 “선생님 저는 95번 해서 곧 명예장 받아요”라고 말하더라고요(웃음). 이 학생 말고도 건강 문제로 4번 만에 헌혈에 성공해 기념품을 제게 건넨 제자가 기억에 남네요.
헌혈을 한 달에 두 번씩 하는데 몸에 이상은 없나요.
건강합니다. 헌혈하러 갈 때마다 적십자에서 각종 건강 수치를 알려주는데요. 숫자를 자주 접하다 보니 이게 신경 쓰여서 건강관리를 더 열심히 하게 된 것 같아요.
헌혈을 위해 건강관리를 따로 하는지도 궁금한데요.
전에 점심으로 중국요리를 먹고 저녁에 헌혈하러 갔는데 평소보다 피가 혼탁해 충격을 받은 적이 있어요. 간호사가 기름기 있는 음식을 먹어서 그렇다고 하더군요. 저는 채식을 해서 고기를 안 먹는데도 피 상태가 좋지 않아 보여 충격을 받았죠. 그 이후로 식단에 각별히 신경 쓰고 있습니다. 단백질 보충을 위해 콩과 두부도 챙겨 먹고요.
채식은 헌혈을 위해 시작한 건가요.
아니요. 2007년에 제인 구달 책을 읽고 채식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제가 원래 육류를 선호하지도 않고 식탐이 많지 않아서요. 그래서 남들보다 쉽게 결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을 보면 욕심도 없고 남을 위하는 마음이 남다른 것 같은데요. 타고난 성격인가요.
그럴 리가요(웃음). 살면서 다듬어진 겁니다. 전 학창 시절에는 욕심 많고 이기적인 사람이었어요. 대학에 들어가 신앙을 가지면서 속박에서 벗어났습니다. 제가 가진 지식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 교사란 직업을 택하게 됐죠. 또 나눌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피도 나눌 수 있다는 생각에 헌혈을 하게 됐습니다.
코로나19 유행 기간 동안 헌혈이 크게 줄어 혈액이 많이 부족했는데요. 선생님은 감염 걱정은 없으셨나요.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제가 생명과학을 가르치다 보니 헌혈의 집에서 감염될 가능성이 낮다는 사실을 더 쉽게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적십자 직원분들이 방역 수칙을 잘 지킬 거라 믿어 크게 걱정하지 않았어요.
마지막으로, 헌혈을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조언한다면요.
제가 헌혈을 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행복은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은 혈액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이 굉장히 심합니다. 그동안은 학생들이 헌혈을 많이 했는데, 학생들은 점차 줄어들고 고령사회가 되면서 필요한 혈액은 늘고 있거든요. 젊은 분들이 1년에 한 번씩 이벤트같이 헌혈을 해도 상당 부분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주삿바늘을 보면 저도 매번 눈을 질끈 감는데, 이를 두려워 마시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헌혈에 동참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안필헌교사 #헌혈 #의인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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