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으로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들, 학교와 교사를 신뢰하는 학부모, 우정이 넘치는 교실은 정말 실현 불가능한 꿈일까. 출구를 찾지 못하는 미로처럼 혼란스러운 교육 현실에 대해 변화를 약속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의 지난 한 학기 이야기.
‘새벽 2시 30분에 취침해 아침 7시에 일어나기. 오전 8시에 등교해서 오후 3시 하교. 영어학원에서 3시간 더 공부하고 저녁식사. 밤 10시까지 수학학원. 집에 돌아와 새벽 2시 30분까지 학원 숙제에, 한자, 중국어 공부.’
얼마 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소속의 어린이 연구원들이 친구들을 대상으로 직접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공부 때문에 행복하지 않은 우리’라는 보고서를 냈다. ‘공부 때문에 00까지 해봤다’라는 질문에 아이들은 ‘하루 3시간만 자기’ ‘학원에서 하루 종일 공부하기’ ‘지하철에서 공부하기’ ‘카페인 음료 마시기’ 같은 대답을 써냈다. 무한 경쟁으로 치닫는 각박한 사회가 아이들마저 전쟁터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무거운 마음으로 조희연(59) 서울시 교육감과 마주 앉았다.
조희연 교육감은 전북 정읍 출신으로 중앙고를 거쳐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성공회대 교수 시절인 1994년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참여연대 설립을 주도했으며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의장을 역임했다.
넘버원보다 온리원을 키우는 교육
조희연 교육감의 양복 상의에는 여전히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세월호 교육감’이라고 부른다. 세월호 참사로 2백50명 가까운 아이들을 잃으면서 우리 교육 현실에 대한 성찰이 이뤄졌고, ‘공부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부모들이 아이라는 존재 자체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조 교육감은 입시 지옥이 된 교육의 황폐함에 절망하고 새로운 나침반을 찾아 나선 부모들이 자신에게 투표했다고 믿는다. 진보학자이자 실천적 지식인의 대표주자인 그가 제도권 내에서 만들어낼 변화에 주목하는 이들도 많았다. 지난해 6·4 선거 당시 그가 내세운 모토는 ‘질문이 있는 교실, 우정이 있는 학교, 삶을 가꾸는 교육’이다. 이를 위해 평등 교육, 교육 공공성 강화, 학생 자치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6개월이 지난 지금, 그의 개혁은 어디쯤 와 있을까.
최근 학부모들과 만난 자리에서 ‘넘버원(Number One) 교육’에서 ‘온리원(Only One) 교육’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과거엔 한 사람이 잘되면 주변의 모든 사람이 그 덕에 먹고사는 게 가능했고, 그래서 교육도 넘버원을 키우는 데 집중했죠. 그러다 보니 최고가 되기 위해 자지도 않고 쉬지도 않는, 그야말로 아동 학대 지경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1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세우고, 놀고 쉬고 잠자는 걸 억압하는 이런 시스템은 바뀌어야 합니다. 내가 1등이 되기 위해 친구를 루저로 만들어야 하는 적대적 경쟁 관계는 내면성의 파괴로 이어져 상대에 대한 가학적 행동이나 자신을 파괴하는 자살 행위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물론 청소년 자살이 증가하는 이유를 이것만으로 돌릴 수는 없겠지만 중요한 원인인 것은 분명하죠. 그리고 1등은 과연 행복할까요. 공부를 못하는 아이에겐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잘하는지 물어보지만 1등에겐 아무도 그런 걸 묻지 않아요. 문과면 법대나 경영대, 이과면 의대에 가는 게 당연하니까요. 이런 시스템에서 벗어나 아이들 한명 한명이 스스로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는 건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닌데, 나날이 경쟁이 더 심각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삶이 점점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죠. 남편과 아내, 아이와의 관계 그 자체가 목적이고 행복의 원천인데, 사회가 엉망이 되면서 그 관계를 도구로 삼는 겁니다. 세상살이가 어렵지 않으면 그래도 여유가 있을 텐데, 험한 세상에 아이를 내보낼 생각을 하니 부모들의 마음이 조급해지는 거죠.
취임 후 실제로 학부모들을 만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어떻게 보면 지금의 학부모들은 참혹한 제도 안에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습니다. 내 아이가 넘버원 혹은 상위권이 되기를 바라며 아이들을 닦달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동시에 현재의 교육 제도가 얼마나 좋지 않은지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꽉 차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다들 딜레마에 빠져 있는 거죠. 사실 사교육이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재산을 물려주는 것보다 대학 졸업장을 갖게 하는 게 합리적인 투자일 수 있죠. 투자의 방향이 바뀔 수 있도록 큰 틀을 바꾸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란 생각이 듭니다.
자사고 학부모들의 상실감 이해하지만…
조희연 교육감의 당선에는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인식과 함께 역설적으로 두 아들을 외고(명덕외고, 대일외고)-명문대(연세대, 서울대)에 진학시킨 프리미엄도 크게 작용했다. 더군다나 둘째 아들이 인터넷에 올린 지지 호소 글은 고승덕 후보와 딸 간의 공방과 비교되면서, ‘아들을 반듯하게 잘 키운 아버지’라는 인상을 갖게 했다. 그런 그가 취임 초부터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지정 취소를 강하게 밀어붙이자 논란이 됐다. 공약에 있었던 내용이지만, 조희연 교육감 자신과 자녀들은 수월성 교육의 혜택을 받았으면서 이제 와서 이를 부정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비난도 있다.
현재 서울에는 25개의 자사고가 있다. 교육청은 5년마다 자사고의 운영 성과를 종합 평가해 재지정하도록 돼 있는데, 조희연 교육감은 올해 평가 대상인 14개 학교 중 6개 교의 지정을 취소하고 2016학년도부터 학생 선발권을 포기하는 등의 개선 계획을 제출한 2개 교는 2년간 지정 취소를 유예했다. 이에 교육부는 서울시 교육청의 자사고 지정 취소 처분을 직권 취소했고, 다시 서울시 교육청은 교육부를 상대로 ‘자사고 행정처분 직권취소처분 취소 청구의 소’를 제출, 자사고 문제는 결국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게 됐다.
취임 초부터 자사고 문제를 너무 강하게 밀어붙이는 게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비판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다만 저는 평등 교육이라는 큰 틀 안에서 수월성 교육이 공존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현재의 시스템은 특목고-자사고-일반고로 완전히 서열화돼 있는 상황입니다. 평등 교육이 아니라 재산과 성적에 따른 사실상의 분리 교육이라고 볼 수 있죠. 자사고 문제를 계기로 이런 시스템 전반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면 좋겠어요.
자사고에 다니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충격이 큰데요.
학부모님들의 상실감이 크다는 점은 인정하고, 저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사고 문제는 진보 진영에서도 몇 번 후퇴했던 일이고, 이번 지정 취소도 원래 계획보다 1년 늦춰 2016학년도부터 시행되는 것입니다.
지정 취소된 자사고의 입학 경쟁률이 지난해보다 높았는데 그건 어떻게 보십니까.
지난해까지는 상위 50%의 학생이 지원할 수 있었는데 올해는 100%로 확대됐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되고, 이걸 자사고 정책의 실패라고 볼 순 없습니다. 저도 공부하는 학교, 안전한 학교를 찾아 자녀를 자사고에 보내려는 부모들의 애틋한 마음을 이해합니다. 부모들이 자사고에 기대하는 것들이 일반고에서 실현될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은 해결책이 아닐까요. 일반고의 큰 어려움 중 하나가 우수한 학생들을 자사고에 빼앗긴다는 거예요. 서울시 22만여 명의 고등학생 중 자사고 학생이 2만6천 명 정도 됩니다. 그 12%에 속한 학생과 학부모들은 안도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그만큼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자사고의 시각에서만 보지 말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교육을 보면 좋겠습니다.
교육감은 자녀를 특목고에 보냈으면서 자사고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건 이율배반적이란 비판도 있습니다.
아이를 외고에 보낸 교육감이 자사고에 반대하느냐라는 말씀인데, 기꺼이 비판을 감수해야죠. 저는 아이들을 자유방임으로 키웠습니다만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큰아이는 고등학교 때 1년 넘게 독서실에서 살다시피 하며 공부를 하더군요. 부모 입장에서 말썽 안 부리고 열심히 공부해준 아이에게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동시에 그 좋은 시기를 어두컴컴한 독서실에서 보내야 하는 참혹한 교육 제도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서울대를 나왔지만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학벌 체제도 바뀌어야 하고, 서울대의 특권도 없애거나 최소한 완화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녀를 특목고에 보내도 특목고 개혁을 이야기할 수 있고, 서울대를 나와도 서울대 개혁이 필요하다면 이야기해야죠. 그런 점에서 개인 조희연과 공인 조희연을 구별해주셨으면 합니다.
둘째 아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면서 무엇보다 아들에게 존경받는 아버지라는 점이 부러웠습니다. 비결이 무엇인가요?
저 역시 평범한 부모예요. 그런 점에선 고승덕 후보에게 미안하기도 한데, 사람 사는 게 얼마나 다르겠어요. 아이들이 양성적인 인간이 되기를 바라면서 대화도 많이 시도하고 했습니다만, 말처럼 쉽진 않더군요. 그래도 둘째의 경우에는 아이와 주제를 정해 토론하면서 아이의 생각을 이끌어내고 글로 정리하게 하는 걸 10여 회 했는데, 그게 글쓰기에 약간의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웃과 사회를 생각하는 이타적인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들과 봉사도 다니고 했습니다만 아직은 그런 면이 발현되지 않고 있는 것 같아요(웃음). 그래도 둘째의 글을 보면 아이 머릿속에 그런 작은 노력의 흔적이 남아 있구나 싶은 생각에 흐뭇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아들이 올린 글을 보면 부인께서는 출마를 반대하셨던 것 같은데.
지금도 엄청나게 불만이 많습니다. 집을 사면서 진 빚을 지난 10년 동안 거의 갚았는데, 선거운동을 하면서 다시 그만큼 빚이 생겼어요. 아내가 가정적인 스타일이라 남편과 시장 보고 여행 가는 것 같은 소소한 일을 좋아하는데, 그런 걸 못 하니까 미안한 점도 있죠.
실천적 지식인이 제도권에서 만들어낼 변화
주경복 건국대 교수는 한국 교육의 현실을 시지푸스 신화에 비유한 적이 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면 다른 문제와 얽힌 고리 때문에 발목 잡혀서 결국 실패하기를 반복하는데, 이것이 마치 바위를 힘겹게 밀어 올려도 끝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야 마는 시지푸스 이야기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조희연 교육감 역시 개혁을 둘러싼 상황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가 행정가적 교육감, 초·중·고등학교의 틀 안에만 머무르는 교육감을 넘어서서 사회와 교육의 근본적인 관계를 고찰하고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사회의 미래상까지 함께 고민하는 이유다.
아이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우도록 하는 교육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죠. 부모들이 대학, 직장까지 찾아다니며 매니저 역할을 하고 다수의 아이들이 결정 장애를 갖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교육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그것만 있으면 국영수 좀 못해도 삶을 헤쳐나갈 수 있어요. 그래서 공약으로 내세웠던 것이 학생 자치입니다. 자신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게 하자는 겁니다. 예를 들어 9시 등교에 관해 반별로 토론을 거쳐, 투표를 하고, 이를 결정에 일정 부분 반영하도록 하는 겁니다.
아이들 대다수가 9시 등교에 찬성하지 않을까요? 중요한 결정을 아이들에게 맡길 경우 잘못된 판단을 할 가능성도 있을 텐데요.
아이들뿐 아니라 교사·학부모 등 다른 교육 주체의 의견도 충분히 반영돼야겠죠. 그리고 아이들을 직접 만나보니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더군요. 또 학생 자치는 그 자체가 교육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여성이 투표권을 갖게 된 것은 불과 1백여 년밖에 안 됐지만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학생 자치도 처음에는 혼란을 겪더라도 곧 자리를 잡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교육청이 관할하고 있는 초·중·고등학교 교육이 아무리 바뀐다고 해도 대학 입시가 바뀌지 않는 이상 큰 실효를 거두기 어려울 텐데요.
그렇습니다. 혁신학교의 경우에도 초등학교는 잘 (운영)되는데, 고등학교는 뒤에 입시가 버티고 있으니까 어렵습니다. 입시 관문을 통과한다 해도 또 취업이 문제예요. 지금 우리 사회는 명문대와 비명문대를 나와서 받는 보상의 차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가 너무 큰 것이 문제예요. 수능 점수 10점의 차이, 학력과 스펙이 한 사람의 평생을 관통하는 레테르가 되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현재 강북에 살고 있는데,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하루라도 빨리 강남으로 이사 가라는 조언을 많이 듣습니다. 주변에 비슷한 고민을 하는 학부모들이 많은데, 교육감께서는 어떤 답을 주실지 궁금합니다.
아이를 위해 맹모삼천지교라도 하고 싶은 부모님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제 주변에도 ‘아이를 자사고에 보내도 될까’라고 묻는 분들이 계신데, ‘나는 반대하지만 보내고 싶으면 보내라’고 이야기합니다. 다만 자사고는 이번에 개혁을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다시 논란이 될 거라고 봅니다. 저희가 여러 가지를 바꾸려고 하고 있지만 이런 것들이 단기간에 실현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강남으로 이사하는 문제는 가정의 상황이나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결정하시라는 말씀밖에 못 드리겠네요.
인터뷰를 마치며 조희연 교육감은 “개혁을 시도하고는 있지만 교육감 선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교육부나 중앙정부 선에서도 현재의 교육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와 비전을 가진 분들이 많이 나타나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현재 그는 지난해 선거운동 당시 고승덕 후보의 미국 영주권 보유 의혹을 제기한 것이 문제가 돼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상태다. 조 교육감 측이 법원에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면서 서울시 교육의 미래는 다시 시민들의 손에 넘겨졌다.
글·김명희 기자|사진·홍중식 기자
‘새벽 2시 30분에 취침해 아침 7시에 일어나기. 오전 8시에 등교해서 오후 3시 하교. 영어학원에서 3시간 더 공부하고 저녁식사. 밤 10시까지 수학학원. 집에 돌아와 새벽 2시 30분까지 학원 숙제에, 한자, 중국어 공부.’
얼마 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소속의 어린이 연구원들이 친구들을 대상으로 직접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공부 때문에 행복하지 않은 우리’라는 보고서를 냈다. ‘공부 때문에 00까지 해봤다’라는 질문에 아이들은 ‘하루 3시간만 자기’ ‘학원에서 하루 종일 공부하기’ ‘지하철에서 공부하기’ ‘카페인 음료 마시기’ 같은 대답을 써냈다. 무한 경쟁으로 치닫는 각박한 사회가 아이들마저 전쟁터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무거운 마음으로 조희연(59) 서울시 교육감과 마주 앉았다.
조희연 교육감은 전북 정읍 출신으로 중앙고를 거쳐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성공회대 교수 시절인 1994년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참여연대 설립을 주도했으며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의장을 역임했다.
넘버원보다 온리원을 키우는 교육
조희연 교육감의 양복 상의에는 여전히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세월호 교육감’이라고 부른다. 세월호 참사로 2백50명 가까운 아이들을 잃으면서 우리 교육 현실에 대한 성찰이 이뤄졌고, ‘공부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부모들이 아이라는 존재 자체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조 교육감은 입시 지옥이 된 교육의 황폐함에 절망하고 새로운 나침반을 찾아 나선 부모들이 자신에게 투표했다고 믿는다. 진보학자이자 실천적 지식인의 대표주자인 그가 제도권 내에서 만들어낼 변화에 주목하는 이들도 많았다. 지난해 6·4 선거 당시 그가 내세운 모토는 ‘질문이 있는 교실, 우정이 있는 학교, 삶을 가꾸는 교육’이다. 이를 위해 평등 교육, 교육 공공성 강화, 학생 자치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6개월이 지난 지금, 그의 개혁은 어디쯤 와 있을까.
최근 학부모들과 만난 자리에서 ‘넘버원(Number One) 교육’에서 ‘온리원(Only One) 교육’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과거엔 한 사람이 잘되면 주변의 모든 사람이 그 덕에 먹고사는 게 가능했고, 그래서 교육도 넘버원을 키우는 데 집중했죠. 그러다 보니 최고가 되기 위해 자지도 않고 쉬지도 않는, 그야말로 아동 학대 지경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1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세우고, 놀고 쉬고 잠자는 걸 억압하는 이런 시스템은 바뀌어야 합니다. 내가 1등이 되기 위해 친구를 루저로 만들어야 하는 적대적 경쟁 관계는 내면성의 파괴로 이어져 상대에 대한 가학적 행동이나 자신을 파괴하는 자살 행위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물론 청소년 자살이 증가하는 이유를 이것만으로 돌릴 수는 없겠지만 중요한 원인인 것은 분명하죠. 그리고 1등은 과연 행복할까요. 공부를 못하는 아이에겐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잘하는지 물어보지만 1등에겐 아무도 그런 걸 묻지 않아요. 문과면 법대나 경영대, 이과면 의대에 가는 게 당연하니까요. 이런 시스템에서 벗어나 아이들 한명 한명이 스스로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는 건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닌데, 나날이 경쟁이 더 심각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삶이 점점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죠. 남편과 아내, 아이와의 관계 그 자체가 목적이고 행복의 원천인데, 사회가 엉망이 되면서 그 관계를 도구로 삼는 겁니다. 세상살이가 어렵지 않으면 그래도 여유가 있을 텐데, 험한 세상에 아이를 내보낼 생각을 하니 부모들의 마음이 조급해지는 거죠.
취임 후 실제로 학부모들을 만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어떻게 보면 지금의 학부모들은 참혹한 제도 안에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습니다. 내 아이가 넘버원 혹은 상위권이 되기를 바라며 아이들을 닦달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동시에 현재의 교육 제도가 얼마나 좋지 않은지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꽉 차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다들 딜레마에 빠져 있는 거죠. 사실 사교육이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재산을 물려주는 것보다 대학 졸업장을 갖게 하는 게 합리적인 투자일 수 있죠. 투자의 방향이 바뀔 수 있도록 큰 틀을 바꾸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란 생각이 듭니다.
한 어린이가 그려준 초상화 옆에 선 조희연 교육감. 그는 아이들 한명 한명이 스스로의 재능을 꽃 피우는 교육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말한다.<br>
자사고 학부모들의 상실감 이해하지만…
조희연 교육감의 당선에는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인식과 함께 역설적으로 두 아들을 외고(명덕외고, 대일외고)-명문대(연세대, 서울대)에 진학시킨 프리미엄도 크게 작용했다. 더군다나 둘째 아들이 인터넷에 올린 지지 호소 글은 고승덕 후보와 딸 간의 공방과 비교되면서, ‘아들을 반듯하게 잘 키운 아버지’라는 인상을 갖게 했다. 그런 그가 취임 초부터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지정 취소를 강하게 밀어붙이자 논란이 됐다. 공약에 있었던 내용이지만, 조희연 교육감 자신과 자녀들은 수월성 교육의 혜택을 받았으면서 이제 와서 이를 부정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비난도 있다.
현재 서울에는 25개의 자사고가 있다. 교육청은 5년마다 자사고의 운영 성과를 종합 평가해 재지정하도록 돼 있는데, 조희연 교육감은 올해 평가 대상인 14개 학교 중 6개 교의 지정을 취소하고 2016학년도부터 학생 선발권을 포기하는 등의 개선 계획을 제출한 2개 교는 2년간 지정 취소를 유예했다. 이에 교육부는 서울시 교육청의 자사고 지정 취소 처분을 직권 취소했고, 다시 서울시 교육청은 교육부를 상대로 ‘자사고 행정처분 직권취소처분 취소 청구의 소’를 제출, 자사고 문제는 결국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게 됐다.
취임 초부터 자사고 문제를 너무 강하게 밀어붙이는 게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비판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다만 저는 평등 교육이라는 큰 틀 안에서 수월성 교육이 공존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현재의 시스템은 특목고-자사고-일반고로 완전히 서열화돼 있는 상황입니다. 평등 교육이 아니라 재산과 성적에 따른 사실상의 분리 교육이라고 볼 수 있죠. 자사고 문제를 계기로 이런 시스템 전반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면 좋겠어요.
자사고에 다니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충격이 큰데요.
학부모님들의 상실감이 크다는 점은 인정하고, 저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사고 문제는 진보 진영에서도 몇 번 후퇴했던 일이고, 이번 지정 취소도 원래 계획보다 1년 늦춰 2016학년도부터 시행되는 것입니다.
지정 취소된 자사고의 입학 경쟁률이 지난해보다 높았는데 그건 어떻게 보십니까.
지난해까지는 상위 50%의 학생이 지원할 수 있었는데 올해는 100%로 확대됐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되고, 이걸 자사고 정책의 실패라고 볼 순 없습니다. 저도 공부하는 학교, 안전한 학교를 찾아 자녀를 자사고에 보내려는 부모들의 애틋한 마음을 이해합니다. 부모들이 자사고에 기대하는 것들이 일반고에서 실현될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은 해결책이 아닐까요. 일반고의 큰 어려움 중 하나가 우수한 학생들을 자사고에 빼앗긴다는 거예요. 서울시 22만여 명의 고등학생 중 자사고 학생이 2만6천 명 정도 됩니다. 그 12%에 속한 학생과 학부모들은 안도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그만큼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자사고의 시각에서만 보지 말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교육을 보면 좋겠습니다.
교육감은 자녀를 특목고에 보냈으면서 자사고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건 이율배반적이란 비판도 있습니다.
아이를 외고에 보낸 교육감이 자사고에 반대하느냐라는 말씀인데, 기꺼이 비판을 감수해야죠. 저는 아이들을 자유방임으로 키웠습니다만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큰아이는 고등학교 때 1년 넘게 독서실에서 살다시피 하며 공부를 하더군요. 부모 입장에서 말썽 안 부리고 열심히 공부해준 아이에게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동시에 그 좋은 시기를 어두컴컴한 독서실에서 보내야 하는 참혹한 교육 제도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서울대를 나왔지만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학벌 체제도 바뀌어야 하고, 서울대의 특권도 없애거나 최소한 완화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녀를 특목고에 보내도 특목고 개혁을 이야기할 수 있고, 서울대를 나와도 서울대 개혁이 필요하다면 이야기해야죠. 그런 점에서 개인 조희연과 공인 조희연을 구별해주셨으면 합니다.
둘째 아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면서 무엇보다 아들에게 존경받는 아버지라는 점이 부러웠습니다. 비결이 무엇인가요?
저 역시 평범한 부모예요. 그런 점에선 고승덕 후보에게 미안하기도 한데, 사람 사는 게 얼마나 다르겠어요. 아이들이 양성적인 인간이 되기를 바라면서 대화도 많이 시도하고 했습니다만, 말처럼 쉽진 않더군요. 그래도 둘째의 경우에는 아이와 주제를 정해 토론하면서 아이의 생각을 이끌어내고 글로 정리하게 하는 걸 10여 회 했는데, 그게 글쓰기에 약간의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웃과 사회를 생각하는 이타적인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들과 봉사도 다니고 했습니다만 아직은 그런 면이 발현되지 않고 있는 것 같아요(웃음). 그래도 둘째의 글을 보면 아이 머릿속에 그런 작은 노력의 흔적이 남아 있구나 싶은 생각에 흐뭇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아들이 올린 글을 보면 부인께서는 출마를 반대하셨던 것 같은데.
지금도 엄청나게 불만이 많습니다. 집을 사면서 진 빚을 지난 10년 동안 거의 갚았는데, 선거운동을 하면서 다시 그만큼 빚이 생겼어요. 아내가 가정적인 스타일이라 남편과 시장 보고 여행 가는 것 같은 소소한 일을 좋아하는데, 그런 걸 못 하니까 미안한 점도 있죠.
실천적 지식인이 제도권에서 만들어낼 변화
주경복 건국대 교수는 한국 교육의 현실을 시지푸스 신화에 비유한 적이 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면 다른 문제와 얽힌 고리 때문에 발목 잡혀서 결국 실패하기를 반복하는데, 이것이 마치 바위를 힘겹게 밀어 올려도 끝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야 마는 시지푸스 이야기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조희연 교육감 역시 개혁을 둘러싼 상황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가 행정가적 교육감, 초·중·고등학교의 틀 안에만 머무르는 교육감을 넘어서서 사회와 교육의 근본적인 관계를 고찰하고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사회의 미래상까지 함께 고민하는 이유다.
아이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우도록 하는 교육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죠. 부모들이 대학, 직장까지 찾아다니며 매니저 역할을 하고 다수의 아이들이 결정 장애를 갖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교육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그것만 있으면 국영수 좀 못해도 삶을 헤쳐나갈 수 있어요. 그래서 공약으로 내세웠던 것이 학생 자치입니다. 자신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게 하자는 겁니다. 예를 들어 9시 등교에 관해 반별로 토론을 거쳐, 투표를 하고, 이를 결정에 일정 부분 반영하도록 하는 겁니다.
아이들 대다수가 9시 등교에 찬성하지 않을까요? 중요한 결정을 아이들에게 맡길 경우 잘못된 판단을 할 가능성도 있을 텐데요.
아이들뿐 아니라 교사·학부모 등 다른 교육 주체의 의견도 충분히 반영돼야겠죠. 그리고 아이들을 직접 만나보니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더군요. 또 학생 자치는 그 자체가 교육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여성이 투표권을 갖게 된 것은 불과 1백여 년밖에 안 됐지만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학생 자치도 처음에는 혼란을 겪더라도 곧 자리를 잡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교육청이 관할하고 있는 초·중·고등학교 교육이 아무리 바뀐다고 해도 대학 입시가 바뀌지 않는 이상 큰 실효를 거두기 어려울 텐데요.
그렇습니다. 혁신학교의 경우에도 초등학교는 잘 (운영)되는데, 고등학교는 뒤에 입시가 버티고 있으니까 어렵습니다. 입시 관문을 통과한다 해도 또 취업이 문제예요. 지금 우리 사회는 명문대와 비명문대를 나와서 받는 보상의 차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가 너무 큰 것이 문제예요. 수능 점수 10점의 차이, 학력과 스펙이 한 사람의 평생을 관통하는 레테르가 되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현재 강북에 살고 있는데,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하루라도 빨리 강남으로 이사 가라는 조언을 많이 듣습니다. 주변에 비슷한 고민을 하는 학부모들이 많은데, 교육감께서는 어떤 답을 주실지 궁금합니다.
아이를 위해 맹모삼천지교라도 하고 싶은 부모님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제 주변에도 ‘아이를 자사고에 보내도 될까’라고 묻는 분들이 계신데, ‘나는 반대하지만 보내고 싶으면 보내라’고 이야기합니다. 다만 자사고는 이번에 개혁을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다시 논란이 될 거라고 봅니다. 저희가 여러 가지를 바꾸려고 하고 있지만 이런 것들이 단기간에 실현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강남으로 이사하는 문제는 가정의 상황이나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결정하시라는 말씀밖에 못 드리겠네요.
인터뷰를 마치며 조희연 교육감은 “개혁을 시도하고는 있지만 교육감 선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교육부나 중앙정부 선에서도 현재의 교육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와 비전을 가진 분들이 많이 나타나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현재 그는 지난해 선거운동 당시 고승덕 후보의 미국 영주권 보유 의혹을 제기한 것이 문제가 돼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상태다. 조 교육감 측이 법원에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면서 서울시 교육의 미래는 다시 시민들의 손에 넘겨졌다.
글·김명희 기자|사진·홍중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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