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오유경(45)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2012년 KBS 아나운서실에서 월드사업부로 자리를 옮겨 ‘KWAVE’라는 한류 매거진의 편집인으로 맹활약하더니, 본지와 인터뷰가 잡혀 있던 4월 8일에는 ‘KBSAVE(이하 AVE) 사장’이라는 새 직함을 달았다. 한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식당에서 만난 그는 “아침에 발령이 나 아직 명함이 없다”면서 “AVE는 우리나라의 한류 스폿 하면 떠오르는, 한류를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사내 기업으로 5월 1일 설립될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그가 이전에 만들던 한류 잡지 ‘KWAVE’는 지난 3년간의 인큐베이팅을 거쳐 비교적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아 파트너사에서 독립적으로 운영하게 됐다. ‘KWAVE’ 창간과 역사를 함께해온 그는 “지금보다 좀 더 경쟁력 있는 매체로 키우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데, 회사에서 전향적인 판단으로 AVE 운영을 맡겨 ‘KWAVE’ 편집에서 손을 뗐다. 잡지의 매력에 흠뻑 빠졌던 지난 3년은 페이지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스토리가 담기는지를 내게 일깨워준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KWAVE’ 성공 발판 삼아 새로운 도전
‘KWAVE’는 케이팝, 드라마, 스타, 패션, 뷰티 등 다양한 한류 관련 콘텐츠와 함께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소개하는 종합 잡지로, 세계 1백37개국의 한류 팬들이 보고 있다. 처음에는 한국어로 발간되다 최근에는 영어와 중국어로도 발행되고 있으며, 현재 라이선스 판이 나오는 브라질과 괌, 사이판, 홍콩에 이어 필리핀, 페루, 중국 등지에서도 현지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 모든 성과의 중심에는 오유경이 있었다.
2012년 1월 중순부터 업무를 보조해줄 조력자 한 명을 데리고 창간 준비에 돌입한 그는 그해 5월 제작을 맡을 파트너사를 구하고 나서 불과 2개월 만에 창간식을 개최했다. 속전속결로 추진했음에도 창간식에는 당초 예상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다양한 분야의 한류 관련 기관장 5백여 명이 참석했다.
“원래는 한 3백 명 정도가 참석하리라 예상했는데, 우리나라에서 한류에 발을 걸친 사람들은 거의 다 왔을 정도로 많은 관심을 모아 ‘가장 성대한 창간식’이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예요. 아침에 행사장으로 가는데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엉엉 울었어요. 지난 6개월 동안 온 열정을 다해 창간 준비를 하며 고생한 보람과 성취감이 담긴 감격의 눈물이었죠. 구석구석 제 손이 안 간 곳이 없고, 다른 사람의 눈에는 사서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지라도 또 이후 잘되지 않더라도 ‘그날의 감격을 평생 기억하자’고 마음먹었죠. 너무나도 감사해서요.”
‘생로병사의 비밀’ ‘시사투나잇’ 등 시사 교양 프로그램을 진행하다가 한류 잡지 편집인으로 변신을 꾀했던 특별한 이유가 뭔가요.
‘KWAVE’와 처음 인연을 맺은 3년 전, 아나운서 18년 차였어요. 중견 아나운서이니만큼 그간의 경험과 역량을 발휘해 방송을 진행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주어지지 않더라고요.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니 그런 이미지가 만들어졌지만, 무대에 수동적인 역할로 남아 있기에는 제 안의 불꽃이 좀 뜨거웠어요. 제 경력에 맞는 목걸이를 만들기 위해선 ‘지금 누리는 것을 놓아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것을 잡을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들 무렵 마침 한류 TF팀이 사내에 생겼죠. 그 팀에서 아나운서 한 명이 필요하다는 공지를 보고 지원했어요.
원래 한류에 관심이 많았나요.
이전에는 한류의 구경꾼으로 살다가 한번 배워보자는 생각으로 TF팀에 들어갔는데, 첫 회의에서 한류 매거진을 하나 만들자는 얘기가 나왔어요. 집에 가서 조사한 한류 매거진의 추세를 다음 날 회의에서 브리핑했더니 저더러 맡아서 진행하라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한류 정보 기관지 수준으로 만들려고 했던 건데, 이왕 할 거면 바로 쓰레기통에 직행할 정도로는 만들고 싶지 않아서 사업 파트너를 구해 잡지 제작에 뛰어들었죠.
창간 준비는 물론이거니와 제작 과정에도 많은 도움을 줬다고 들었는데, 매달 잡지를 만들면서 힘들거나 아쉬운 점은 없었나요.
매달 스타를 섭외하느라 진땀 좀 뺐죠. 지금은 한류 잡지 중 경쟁력 있는 매체라는 인식이 생겼지만 창간 초반에는 섭외하려고 일일이 찾아다녀도 선뜻 응하는 스타가 거의 없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잡지를 만들면서 친구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게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죠. 그 전에는 사교 모임을 많이 가졌는데 매일 시급한 일이 생겨서 사적인 일을 자제했거든요. 초보에 가까운 파트너와 함께 일을 하다 보니 매달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었어요. 매거진이 얼마나 고생해서 탄생되는 매체인지 절감했죠.
역동적 에너지 품는 한류 플랫폼 만들기
‘KWAVE’의 독립 제작이 결정됨과 동시에 편집인의 자리에서 물러났던 그는 이제 ‘AVE 사장’이라는 더 큰 날개를 달고 한층 혁신적인 방식으로 한류 발전에 기여할 참이다. AVE는 ‘Add Value Entertainment’의 머리글자로 ‘가치를 높이는 엔터테인먼트’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느 날과 다를 것 없는 아침, 틀어놓은 수도꼭지 물처럼 빠르게 소비되고 있는 텔레비전 콘텐츠를 보고 있자니 문득 ‘저 콘텐츠들을 정수기처럼 담아놓고 활용하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콘텐츠의 가치가 드나들 수 있는 공간, 즉 명확한 플랫폼이 필요하다 느꼈고 그 필요성이 AVE의 시작이었죠. 로마의 첫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극적인 승부가 아닌 치밀하게 계획한 사다리를 밟고 그 자리에 오른 뒤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 · 천천히 빠르게)”라고 외쳤어요. 황제는 금화를 발행할 때 앞과 뒷면에 ‘천천히 빠르게’를 상징하는 나비와 게를 새기고 그 이념으로 로마를 번성시켰죠. AVE는 1년여에 걸쳐 치밀하게 완성된 사다리를 인정받아 이번에 설립되는 겁니다. KBS의 사업 영역을 방송에 국한하지 않고, 한류의 흐름을 브랜딩해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글로벌 마켓에서 경쟁력을 갖도록 하는 게 목표예요. 이게 잘되면 독립 법인으로 나올 수도 있죠.”
현재 구상 중인 플랫폼의 형태가 ‘카페’라고 들었어요.
단순히 차를 마시는 카페는 아니에요. 우리 상품도 팔고 한류의 다양한 문화를 체험해볼 수 있는 한류 플랫폼을 구축하려는 겁니다. 제가 하려는 한류는 ‘한류 3.0’ 개념이에요. 지금 외국인이 선호하는 한국의 화장품과 패션, 현대 도시 문화가 어우러진 공간을 만들어서 해외에서도 한류 문화를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하도록 할 거예요. 그곳에서 한류 문화나 연예인 행사도 열 계획이에요.
한류 플랫폼이 될 카페의 공식 명칭은 ‘류(RUE)’. 흐름을 뜻하는 한자 류(流)에서 따왔다. 카페 류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잘 알려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10월 말 문을 열 계획이다. 오유경은 “건축은 외국인이 했지만 실제 우리를 맛보게 하려면 한류 콘텐츠가 들어가는 게 맞다. DDP가 큰 달걀 모양이니 카페 류가 난황처럼 핵심에 들어가 한류의 새벽을 알리는 장닭이 되겠다고 관계자를 설득했다”며 “DDP라는 껍질에 한류의 핵심 콘텐츠를 넣어 시너지를 내고자 한다”는 당찬 포부를 드러냈다.
“DDP가 지금은 건물만 보고 가거나 전시를 구경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데, 앞으로는 외국인들의 놀이터가 되게 만들어야죠. 관광할 때 빼놓지 않고 찾는 코스, 정적인 공간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공간으로요. 한류는 다이내믹 코리아고, 한국인의 에너지예요. 그렇기 때문에 정적인 느낌으로는 성공할 수 없어요. 그래서 한류에 흠뻑 빠질 수 있는 공간, 함께 어우러져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하는 겁니다. 오늘 발령이 나서 현재 공정률은 제로(0%)지만 이미 설계도는 그려놨으니까 그대로만 하면 될 거라 믿어요.”
노자 인문학 강의 들으며 스트레스 해소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됩니까.
자는 시간은 일정치 않아요. 뭔가에 빠지면 잠을 못 자고 계속 생각하는 습성이 있어서 한류 잡지를 만들 때는 새벽녘에야 잠들곤 했어요. 지금은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서 예전처럼 잠을 못 자는 일은 없어요.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비법이 궁금하네요.
책을 보거나 강의를 들으며 머리를 비워요. 가장 효과가 좋은 건 흥미로운 강의를 듣는 거죠. 최근 저를 컨트롤하기에 안성맞춤인 강의를 만났어요. ‘생각하는 힘 노자인문학’의 저자이신 최진석 교수의 강의죠. 그분의 강의를 꾸준히 들은 덕분에 마음을 다잡았어요. 유튜브에 가면 그분 강의를 다 볼 수 있어요.
인상 깊은 내용이 있나요.
사내 기업 심사를 받는 동안 조직에서 힘들었어요. 된 것도 아니고 안 될 것도 아닌 경계에 있었는데, 최진석 교수가 경계에 대한 강의를 하신 적이 있어요. ‘사람은 경계에 있으면 자신을 이쪽으로든 저쪽으로든 빨리 확정짓고 싶어하는데, 경계는 확정짓는 게 아니라 견뎌야 하는 거다. 만약 리더이고 뭔가를 해나가는 인생의 주인으로서 발전하고자 한다면 항상 경계에 있어야 한다. 경계에 있지 않고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 크기로 자기가 규정된다. 경계에 있다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철학이나 이데올로기, 관습 같은 틀에서 보지 마라.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봐야 하는 대로 보지 말고 보여지는 대로 봐라. 틀을 깨고 편견이 없어야 사실대로 볼 수 있다’는 그 말이 가슴 깊이 와 닿았어요.
건강관리는 어떻게 합니까.
집 뒷산에서 산책을 하거나, 평소 신경을 써서 걸어요. 이를테면 케겔 운동을 하듯 항문을 조이고, 배꼽을 등에 붙이며 위로 끌어올리는 느낌으로 걸으면 히프 업이 되거든요. 또 허벅지 안쪽으로 힘이 들어가 그쪽으로 걸어지는 느낌이 들죠. 그런 자세가 시나브로 무슨 변화가 있을까 싶지만 체형 보정 효과가 있더라고요. 다른 운동을 할 겨를은 없어요.
다이어트도 하나요.
식사는 잘하는 편이에요. 대신 군것질을 안 하고 소금과 설탕을 덜 먹고, 기름진 것을 안 먹는 소극적인 방법으로 체중 조절을 하고 있어요. 몸에 독소가 덜 쌓이고 잘 배출되도록 하는 데만 신경 쓰는 거죠.
아이 교육은 적절할 때 굵게 챙겨
집에서는 오유경도 보통 엄마다. 외동딸 진이는 현재 NLCS Jeju(노스런던컬리지에잇스쿨 제주) 중학교 2학년 과정에 재학 중이다. ‘중2병’을 경험해봤는지 물었더니 그가 배시시 웃으며 “다행히 살짝 오다 말았다”며 흐뭇해했다.
“지금은 사랑스러운 딸이 됐어요.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고, 떨어져 지내면서 가족의 소중함도 느끼고 있더군요. 국제학교에 다니니까 과외 스트레스가 없는 게 아이들에게는 가장 큰 장점일 거예요.”
엄마로서는 어떤 모습인가요
한없이 부족하죠. 근데 제 스타일이 굵게 챙기는 편이에요. 매일 잘게 헌신하는 엄마는 못 되고, 시기별로 꼭 해야 할 것들은 했어요. 아이가 7세가 됐을 때 1년간 휴직을 한 것도 그맘때는 아이와의 힐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였죠. 저는 메릴랜드대의 초빙연구원으로 가고, 때마침 남편도 교환교수로 갈 타이밍이어서 미국에서 온 가족이 함께 지냈어요. 그때 아이와 못다 한 이야기도 나누고 미국식 패밀리도 경험했죠.
그의 남편은 서울대 생명공학부 천종식(48) 교수다. 천 교수는 6년 전부터 바이오테크놀로지 회사인 ‘천랩’을 창업해 후학 양성과 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그보다 일찍 비즈니스에 눈뜬 남편이 한류 사업에 뛰어든 그에게 도움을 주고 있지 않을까.
“정신적 조언을 많이 해줘요. 처음에는 제가 한류를 무조건 잘될 거라고 종교 같은 마음으로 믿었는데, 남편이 옆에서 냉정함을 찾게 해주고 한류 사업에 관한 아이디어도 많이 줬어요. 중도에 포기하고 싶을 때도 용기를 북돋워주고, 좋은 강의를 카톡이나 페이스북으로 보내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저도 남편이 힘들어할 때는 기운을 북돋워주고요. 서로 불쌍한 건 둘만 아니까 ‘우리, 왜 이러고 있지?’ 하면서 위로하고 격려도 하고 그래요. 웬만하면 안 건드리려고 하고, 그냥 지지하고. 그야말로 인생의 동반자죠.”
일을 그만두고 싶어할 때 남편이 뭐라고 하던가요.
방송 18년 차일 때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남편이 그만두라고 하더라고요. 할 수 있을 때 새로운 거 준비해서 시작해보라고요. 남편이 그렇게 얘기해주니까 힘이 되더라고요. 방송 일을 그만두면 할 줄 아는 게 있느냐고 그랬다면 더 좌절했을 거예요. 남편은 제가 하는 일을 한 번도 막은 적이 없어요.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보라고 해요. 제가 가슴속에 뜨거운 불덩이 하나를 안고 사는 사람이란 걸 남편도 알고 있으니까요.
다시 방송 진행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까.
새로운 여건이라면 생각해볼 수는 있겠죠. 하지만 3년 전의 저와 지금의 저는 많이 다를 거예요. 새로운 도전을 거듭하며 삶을 대하는 태도가 크게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지금보다 그릇이 작았어요. 비판을 위한 비판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보고 싶은 대로 본 측면도 있고요. 그때도 나름대로 넓은 아량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더 성장하고 이해의 폭이 넓어진 느낌이에요. 저 스스로 기특하다 싶을 정도로 감정의 물결이 많이 일지 않아요. 다른 사람의 처지를 먼저, 많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사업에 올인해야 하니까 당장은 엄두를 낼 수 없지만, 만일 다시 방송 일을 하게 된다면 예전보다는 더 나은 사람으로 분위기를 이끌 수 있을 것 같아요.
한류 저변 확대에 앞장서온 ‘한류 전도사’로서 앞으로의 바람이나 포부가 있나요.
제가 만들어갈 한류 플랫폼이 한류의 지속 성장을 위한 실질적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작더라도 그런 역할을 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카페 류의 오픈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올해 안에 굿 뉴스를 전해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 디자인 · 김수미
■ 장소협찬 · 시화담 인사동점(02-738-8855)
그가 이전에 만들던 한류 잡지 ‘KWAVE’는 지난 3년간의 인큐베이팅을 거쳐 비교적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아 파트너사에서 독립적으로 운영하게 됐다. ‘KWAVE’ 창간과 역사를 함께해온 그는 “지금보다 좀 더 경쟁력 있는 매체로 키우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데, 회사에서 전향적인 판단으로 AVE 운영을 맡겨 ‘KWAVE’ 편집에서 손을 뗐다. 잡지의 매력에 흠뻑 빠졌던 지난 3년은 페이지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스토리가 담기는지를 내게 일깨워준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KWAVE’ 성공 발판 삼아 새로운 도전
‘KWAVE’는 케이팝, 드라마, 스타, 패션, 뷰티 등 다양한 한류 관련 콘텐츠와 함께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소개하는 종합 잡지로, 세계 1백37개국의 한류 팬들이 보고 있다. 처음에는 한국어로 발간되다 최근에는 영어와 중국어로도 발행되고 있으며, 현재 라이선스 판이 나오는 브라질과 괌, 사이판, 홍콩에 이어 필리핀, 페루, 중국 등지에서도 현지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 모든 성과의 중심에는 오유경이 있었다.
2012년 1월 중순부터 업무를 보조해줄 조력자 한 명을 데리고 창간 준비에 돌입한 그는 그해 5월 제작을 맡을 파트너사를 구하고 나서 불과 2개월 만에 창간식을 개최했다. 속전속결로 추진했음에도 창간식에는 당초 예상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다양한 분야의 한류 관련 기관장 5백여 명이 참석했다.
“원래는 한 3백 명 정도가 참석하리라 예상했는데, 우리나라에서 한류에 발을 걸친 사람들은 거의 다 왔을 정도로 많은 관심을 모아 ‘가장 성대한 창간식’이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예요. 아침에 행사장으로 가는데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엉엉 울었어요. 지난 6개월 동안 온 열정을 다해 창간 준비를 하며 고생한 보람과 성취감이 담긴 감격의 눈물이었죠. 구석구석 제 손이 안 간 곳이 없고, 다른 사람의 눈에는 사서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지라도 또 이후 잘되지 않더라도 ‘그날의 감격을 평생 기억하자’고 마음먹었죠. 너무나도 감사해서요.”
‘생로병사의 비밀’ ‘시사투나잇’ 등 시사 교양 프로그램을 진행하다가 한류 잡지 편집인으로 변신을 꾀했던 특별한 이유가 뭔가요.
‘KWAVE’와 처음 인연을 맺은 3년 전, 아나운서 18년 차였어요. 중견 아나운서이니만큼 그간의 경험과 역량을 발휘해 방송을 진행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주어지지 않더라고요.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니 그런 이미지가 만들어졌지만, 무대에 수동적인 역할로 남아 있기에는 제 안의 불꽃이 좀 뜨거웠어요. 제 경력에 맞는 목걸이를 만들기 위해선 ‘지금 누리는 것을 놓아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것을 잡을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들 무렵 마침 한류 TF팀이 사내에 생겼죠. 그 팀에서 아나운서 한 명이 필요하다는 공지를 보고 지원했어요.
원래 한류에 관심이 많았나요.
이전에는 한류의 구경꾼으로 살다가 한번 배워보자는 생각으로 TF팀에 들어갔는데, 첫 회의에서 한류 매거진을 하나 만들자는 얘기가 나왔어요. 집에 가서 조사한 한류 매거진의 추세를 다음 날 회의에서 브리핑했더니 저더러 맡아서 진행하라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한류 정보 기관지 수준으로 만들려고 했던 건데, 이왕 할 거면 바로 쓰레기통에 직행할 정도로는 만들고 싶지 않아서 사업 파트너를 구해 잡지 제작에 뛰어들었죠.
창간 준비는 물론이거니와 제작 과정에도 많은 도움을 줬다고 들었는데, 매달 잡지를 만들면서 힘들거나 아쉬운 점은 없었나요.
매달 스타를 섭외하느라 진땀 좀 뺐죠. 지금은 한류 잡지 중 경쟁력 있는 매체라는 인식이 생겼지만 창간 초반에는 섭외하려고 일일이 찾아다녀도 선뜻 응하는 스타가 거의 없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잡지를 만들면서 친구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게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죠. 그 전에는 사교 모임을 많이 가졌는데 매일 시급한 일이 생겨서 사적인 일을 자제했거든요. 초보에 가까운 파트너와 함께 일을 하다 보니 매달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었어요. 매거진이 얼마나 고생해서 탄생되는 매체인지 절감했죠.
역동적 에너지 품는 한류 플랫폼 만들기
‘KWAVE’의 독립 제작이 결정됨과 동시에 편집인의 자리에서 물러났던 그는 이제 ‘AVE 사장’이라는 더 큰 날개를 달고 한층 혁신적인 방식으로 한류 발전에 기여할 참이다. AVE는 ‘Add Value Entertainment’의 머리글자로 ‘가치를 높이는 엔터테인먼트’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느 날과 다를 것 없는 아침, 틀어놓은 수도꼭지 물처럼 빠르게 소비되고 있는 텔레비전 콘텐츠를 보고 있자니 문득 ‘저 콘텐츠들을 정수기처럼 담아놓고 활용하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콘텐츠의 가치가 드나들 수 있는 공간, 즉 명확한 플랫폼이 필요하다 느꼈고 그 필요성이 AVE의 시작이었죠. 로마의 첫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극적인 승부가 아닌 치밀하게 계획한 사다리를 밟고 그 자리에 오른 뒤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 · 천천히 빠르게)”라고 외쳤어요. 황제는 금화를 발행할 때 앞과 뒷면에 ‘천천히 빠르게’를 상징하는 나비와 게를 새기고 그 이념으로 로마를 번성시켰죠. AVE는 1년여에 걸쳐 치밀하게 완성된 사다리를 인정받아 이번에 설립되는 겁니다. KBS의 사업 영역을 방송에 국한하지 않고, 한류의 흐름을 브랜딩해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글로벌 마켓에서 경쟁력을 갖도록 하는 게 목표예요. 이게 잘되면 독립 법인으로 나올 수도 있죠.”
현재 구상 중인 플랫폼의 형태가 ‘카페’라고 들었어요.
단순히 차를 마시는 카페는 아니에요. 우리 상품도 팔고 한류의 다양한 문화를 체험해볼 수 있는 한류 플랫폼을 구축하려는 겁니다. 제가 하려는 한류는 ‘한류 3.0’ 개념이에요. 지금 외국인이 선호하는 한국의 화장품과 패션, 현대 도시 문화가 어우러진 공간을 만들어서 해외에서도 한류 문화를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하도록 할 거예요. 그곳에서 한류 문화나 연예인 행사도 열 계획이에요.
한류 플랫폼이 될 카페의 공식 명칭은 ‘류(RUE)’. 흐름을 뜻하는 한자 류(流)에서 따왔다. 카페 류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잘 알려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10월 말 문을 열 계획이다. 오유경은 “건축은 외국인이 했지만 실제 우리를 맛보게 하려면 한류 콘텐츠가 들어가는 게 맞다. DDP가 큰 달걀 모양이니 카페 류가 난황처럼 핵심에 들어가 한류의 새벽을 알리는 장닭이 되겠다고 관계자를 설득했다”며 “DDP라는 껍질에 한류의 핵심 콘텐츠를 넣어 시너지를 내고자 한다”는 당찬 포부를 드러냈다.
“DDP가 지금은 건물만 보고 가거나 전시를 구경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데, 앞으로는 외국인들의 놀이터가 되게 만들어야죠. 관광할 때 빼놓지 않고 찾는 코스, 정적인 공간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공간으로요. 한류는 다이내믹 코리아고, 한국인의 에너지예요. 그렇기 때문에 정적인 느낌으로는 성공할 수 없어요. 그래서 한류에 흠뻑 빠질 수 있는 공간, 함께 어우러져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하는 겁니다. 오늘 발령이 나서 현재 공정률은 제로(0%)지만 이미 설계도는 그려놨으니까 그대로만 하면 될 거라 믿어요.”
노자 인문학 강의 들으며 스트레스 해소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됩니까.
자는 시간은 일정치 않아요. 뭔가에 빠지면 잠을 못 자고 계속 생각하는 습성이 있어서 한류 잡지를 만들 때는 새벽녘에야 잠들곤 했어요. 지금은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서 예전처럼 잠을 못 자는 일은 없어요.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비법이 궁금하네요.
책을 보거나 강의를 들으며 머리를 비워요. 가장 효과가 좋은 건 흥미로운 강의를 듣는 거죠. 최근 저를 컨트롤하기에 안성맞춤인 강의를 만났어요. ‘생각하는 힘 노자인문학’의 저자이신 최진석 교수의 강의죠. 그분의 강의를 꾸준히 들은 덕분에 마음을 다잡았어요. 유튜브에 가면 그분 강의를 다 볼 수 있어요.
인상 깊은 내용이 있나요.
사내 기업 심사를 받는 동안 조직에서 힘들었어요. 된 것도 아니고 안 될 것도 아닌 경계에 있었는데, 최진석 교수가 경계에 대한 강의를 하신 적이 있어요. ‘사람은 경계에 있으면 자신을 이쪽으로든 저쪽으로든 빨리 확정짓고 싶어하는데, 경계는 확정짓는 게 아니라 견뎌야 하는 거다. 만약 리더이고 뭔가를 해나가는 인생의 주인으로서 발전하고자 한다면 항상 경계에 있어야 한다. 경계에 있지 않고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 크기로 자기가 규정된다. 경계에 있다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철학이나 이데올로기, 관습 같은 틀에서 보지 마라.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봐야 하는 대로 보지 말고 보여지는 대로 봐라. 틀을 깨고 편견이 없어야 사실대로 볼 수 있다’는 그 말이 가슴 깊이 와 닿았어요.
건강관리는 어떻게 합니까.
집 뒷산에서 산책을 하거나, 평소 신경을 써서 걸어요. 이를테면 케겔 운동을 하듯 항문을 조이고, 배꼽을 등에 붙이며 위로 끌어올리는 느낌으로 걸으면 히프 업이 되거든요. 또 허벅지 안쪽으로 힘이 들어가 그쪽으로 걸어지는 느낌이 들죠. 그런 자세가 시나브로 무슨 변화가 있을까 싶지만 체형 보정 효과가 있더라고요. 다른 운동을 할 겨를은 없어요.
다이어트도 하나요.
식사는 잘하는 편이에요. 대신 군것질을 안 하고 소금과 설탕을 덜 먹고, 기름진 것을 안 먹는 소극적인 방법으로 체중 조절을 하고 있어요. 몸에 독소가 덜 쌓이고 잘 배출되도록 하는 데만 신경 쓰는 거죠.
아이 교육은 적절할 때 굵게 챙겨
집에서는 오유경도 보통 엄마다. 외동딸 진이는 현재 NLCS Jeju(노스런던컬리지에잇스쿨 제주) 중학교 2학년 과정에 재학 중이다. ‘중2병’을 경험해봤는지 물었더니 그가 배시시 웃으며 “다행히 살짝 오다 말았다”며 흐뭇해했다.
“지금은 사랑스러운 딸이 됐어요.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고, 떨어져 지내면서 가족의 소중함도 느끼고 있더군요. 국제학교에 다니니까 과외 스트레스가 없는 게 아이들에게는 가장 큰 장점일 거예요.”
엄마로서는 어떤 모습인가요
한없이 부족하죠. 근데 제 스타일이 굵게 챙기는 편이에요. 매일 잘게 헌신하는 엄마는 못 되고, 시기별로 꼭 해야 할 것들은 했어요. 아이가 7세가 됐을 때 1년간 휴직을 한 것도 그맘때는 아이와의 힐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였죠. 저는 메릴랜드대의 초빙연구원으로 가고, 때마침 남편도 교환교수로 갈 타이밍이어서 미국에서 온 가족이 함께 지냈어요. 그때 아이와 못다 한 이야기도 나누고 미국식 패밀리도 경험했죠.
그의 남편은 서울대 생명공학부 천종식(48) 교수다. 천 교수는 6년 전부터 바이오테크놀로지 회사인 ‘천랩’을 창업해 후학 양성과 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그보다 일찍 비즈니스에 눈뜬 남편이 한류 사업에 뛰어든 그에게 도움을 주고 있지 않을까.
“정신적 조언을 많이 해줘요. 처음에는 제가 한류를 무조건 잘될 거라고 종교 같은 마음으로 믿었는데, 남편이 옆에서 냉정함을 찾게 해주고 한류 사업에 관한 아이디어도 많이 줬어요. 중도에 포기하고 싶을 때도 용기를 북돋워주고, 좋은 강의를 카톡이나 페이스북으로 보내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저도 남편이 힘들어할 때는 기운을 북돋워주고요. 서로 불쌍한 건 둘만 아니까 ‘우리, 왜 이러고 있지?’ 하면서 위로하고 격려도 하고 그래요. 웬만하면 안 건드리려고 하고, 그냥 지지하고. 그야말로 인생의 동반자죠.”
일을 그만두고 싶어할 때 남편이 뭐라고 하던가요.
방송 18년 차일 때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남편이 그만두라고 하더라고요. 할 수 있을 때 새로운 거 준비해서 시작해보라고요. 남편이 그렇게 얘기해주니까 힘이 되더라고요. 방송 일을 그만두면 할 줄 아는 게 있느냐고 그랬다면 더 좌절했을 거예요. 남편은 제가 하는 일을 한 번도 막은 적이 없어요.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보라고 해요. 제가 가슴속에 뜨거운 불덩이 하나를 안고 사는 사람이란 걸 남편도 알고 있으니까요.
다시 방송 진행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까.
새로운 여건이라면 생각해볼 수는 있겠죠. 하지만 3년 전의 저와 지금의 저는 많이 다를 거예요. 새로운 도전을 거듭하며 삶을 대하는 태도가 크게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지금보다 그릇이 작았어요. 비판을 위한 비판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보고 싶은 대로 본 측면도 있고요. 그때도 나름대로 넓은 아량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더 성장하고 이해의 폭이 넓어진 느낌이에요. 저 스스로 기특하다 싶을 정도로 감정의 물결이 많이 일지 않아요. 다른 사람의 처지를 먼저, 많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사업에 올인해야 하니까 당장은 엄두를 낼 수 없지만, 만일 다시 방송 일을 하게 된다면 예전보다는 더 나은 사람으로 분위기를 이끌 수 있을 것 같아요.
한류 저변 확대에 앞장서온 ‘한류 전도사’로서 앞으로의 바람이나 포부가 있나요.
제가 만들어갈 한류 플랫폼이 한류의 지속 성장을 위한 실질적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작더라도 그런 역할을 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카페 류의 오픈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올해 안에 굿 뉴스를 전해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 디자인 · 김수미
■ 장소협찬 · 시화담 인사동점(02-738-8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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