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위치한 미성초등학교 2층 보건실. 1교시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또 다른 수업이 시작됐다. 강연의 주제는 ‘삶을 바꾸고 존재를 깨우며 영혼을 살리는 코칭’, 강연자는 서울 용산초등학교 이유남(54) 교감이다. 자그마한 교실을 가득 채운 50여 명의 학부모들은 2시간 내내 눈을 반짝이며 이 교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특히 이 교감이 자신의 자녀 교육 실패담을 빗대어 설명할 때면 같은 부모의 마음으로 많은 이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교감은 ‘자녀 교육 실패자’다. 바꿔 말하면 그렇기에 그는 누구보다 진솔하고 가슴을 울리는 강사로 학부모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그렇다면 ‘코칭’이란 무엇일까. 이는 일정한 목표를 성취할 수 있도록 자신감과 의욕을 고취시키며 개개인이 가진 잠재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을 말한다. 티칭(Teaching)이 일방적 정보를 주며 가르치는 것이라면 코칭(Coaching)은 사람이 가진 능력을 끌어내주는 것, 즉 문제보다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 효과적인 대화 기법과 그 과정을 통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시켜주는 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 이슈가 되고 있는 ‘감정코칭’은 아이의 감정에 초점을 맞춰 대화를 통해 생활지도, 문제해결능력, 사회적응력, 나아가 자기주도학습능력을 향상시키는 교육법을 말한다.
이유남 교감과의 인터뷰는 강연이 끝난 뒤 그가 몸담고 있는 용산초등학교 교무실에서 진행됐다. 사진 촬영을 위해 운동장으로 나오던 이 교감은 하교 시간에 맞춰 아이를 기다리고 있던 학부모에게 “00가 학교생활 잘 하고 있던데요?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적응을 아주 잘하고 있어요” 하며 친근하게 말했다. 담임 선생님도 아닌 교감 선생님이 어떻게 학생들 이름을 다 알까 싶었는데, 그는 전교생의 이름을 거의 다 외우는 것으로 유명하다. 수시로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부드럽고 잔잔한 목소리’로 도란도란 얘기도 나눈다. 물론 불과 7년 전만 해도 그 자신조차 전혀 상상하지 못한 일이다.
“저는 아이들을 죽이는 교육의 장본인이었어요. 내 집 아이도, 남의 집 아이도요. 보통 부모교육 강사들이 두 종류가 있어요. ‘나처럼 하면 자녀교육 성공할 수 있다’ 하는 ‘팔로 미’형이 있고, ‘나처럼 키우면 큰일 난다’ 하는 경각심형 강사가 있는데 저는 후자예요. 자식이 아들(27), 딸(25) 이렇게 둘 있는데, 저는 그동안 아이들을 ‘나의 자랑거리’로 키웠어요. 특히 아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각종 대회에 나가 상을 휩쓸었고, 학생회장도 도맡아 했어요. 모두가 저를 부러워했죠. 우리 반 아이들도 제가 담임만 맡으면 성적이 오르고, 숙제도 잘하고, 지각도 하지 않았어요. 부모님들이 좋아하셨죠,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저의 억압적인 가르침과, 심한 질책들이 있었어요. 저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늘 ‘SKSK’였어요. ‘시키면 시키는 대로’(웃음).‘ 다행히 아이들은 엄마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을 하며 잘 따라줬어요. 그래서 저는 단 한 번도 제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아이들을 더 벼랑 끝으로 몰고 갔습니다.”
내신 1등급 유지하던 아들 자퇴 후 폐인돼
그는 오후 5시만 되면 칼퇴근을 했다. 두 아이를 잘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집 안에 들어서는 동시에 아이들에게 “알림장 가져와!”를 외쳤다. 숙제를 다 해놓지 않은 날에는 불호령이 떨어졌고, 시험을 치른 날에는 잘 보든 못 보든 잔소리를 피할 수 없었다. 특히 초등학생인 딸은 ‘받아쓰기’ 시험을 잘 못 본다는 이유로 늘 오빠와 비교당하며 온갖 수모를 당했다. 당시 그는 아이들이 견뎌낼 수 있는 한계치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고 한다.
“고3 아들이 3월 모의고사를 봤는데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어요. 그런데 5월 어느 날 아들이 할 말이 있다고 하더니 ‘내일부터 학교 못 가겠어요. 그만 둘래요’ 하더군요. 미쳤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더니 아들은 눈물을 뚝뚝 흘리더니 자기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갔고 그날부터 전쟁이 시작됐죠. 학교를 다니긴 했지만 평생 안 하던 지각을 하고, 머리가 아프다고 조퇴를 하고, 학원은 가지도 않고, 그야말로 집에서 빈둥대고, 반항이라곤 몰랐던 아이 입에서 ‘아, 씨’가 쉴 새 없이 나오고. 그러다 결국 8월 말 자퇴서에 도장을 찍었어요.”
청천벽력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당시 강남 유명 여고 2학년에 재학중이던 딸마저 자퇴를 선언한 것. 당시 딸은 그에게 “잘나가는 오빠도 학교를 그만두는데 덜 나가는 내가 왜 학교에 다니냐”며 등교를 거부했고 결국 한 달 만에 자퇴했다. 그 날부터 두 아이는 집 밖을 나가지 않고 1년 반 동안 게임 중독, 대인 기피증을 보이며 폐인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당시 남편의 사업도 부도가 나 지하 월세방을 전전하는 등 경제적 어려움도 동시에 찾아왔다.
“지옥이 따로 없었어요. 어떤 말로도 그때의 고통을 다 표현할 수 없죠. 어느 날은 진정제를 먹고 아들에게 ‘도대체 왜 이러고 있냐’고 물었더니 저를 조롱하듯 말하더군요. ‘그렇게 똑똑하신 분이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이유요? 딴 거 없어요. 바로 당신’이라고요. 너무 기가 막히고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옆에 있던 빗자루로 아이를 때리려고 하자 아이는 살기어린 눈으로 순식간에 제 손목을 확 휘어잡고 벽으로 몰아붙이더군요. 이러다 아이가 제 목을 조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겨우 도망치듯 밖으로 뛰쳐나왔어요. 얼마나 서럽고 원통하던지. 내가 그동안 어떻게 아이들을 키웠는데 결국 받은 보상이 이건가 싶어서 더 이상 살 의미가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죠.”
엄마에게 복수하고자 자살 생각했던 딸
우울증 증세가 심했던 딸은 그가 하는 말은 듣지도 않고, 그가 차려주는 밥도 제대로 먹지 않으며 그를 투명인간 취급했다고 한다. 딸은 집에만 틀어박혀 있으면서 살이 점점 찌기 시작해 급기야 몸무게가 80kg을 육박했다. 어느 날 이유남 교감은 딸의 방에서 들려오는 통곡 소리와 거실에 온갖 살림살이가 어질러져 있는 광경을 목격하고 또 한 번 충격에 휩싸였다. 문을 걸어 잠그고 아무리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아 창틈으로 들여다 본 딸의 방 안에서는 더욱 참담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책을 집어 던지고, 옷을 갈기갈기 찢으며 광분하는 딸의 모습이 보인 것.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고 그도 분노하며 아이를 혼낼 생각을 하다가 한 가지 섬광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이러다 아이가 자살하면 어쩌지?’ 결국 그는 아이를 혼낼 생각을 접고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지나간 세월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때야 비로소 깨달았어요. 제가 그동안 단 한 번도 아이들을 제대로 칭찬해준 적이 없다는 사실을요. 아이들이 아무리 잘해도 제 성에는 차지 않았던 거예요. 전교 1등 성적표를 가지고 오면 ‘국어는 올랐는데 왜 수학은 떨어졌어? 이 성적으로는 강남에 가면 중간도 못 가’ 하는 등 아이 마음에 비수를 꽂았던 거죠. 딸아이에게도 마찬가지였어요. ‘엄마, 나도 오빠처럼 100점 맞았어요’ 하며 신나서 달려올 때 저는 ‘이번 시험이 좀 쉬웠냐? 너희 반 다 100점이지? 100점 몇 명이야?’ 하고 아이 기를 꺾는 말만 골라 했어요. 그러면 아이들이 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잘 자랄 줄 알았어요. 한 번도 따뜻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말한 적이 없었죠. 30분 이상 대화해본 적도 없었고, 아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게 뭔지 관심도 없었어요. 그동안 아이들에게 얼마나 잔인했는지, 얼마나 부족한 엄마였는지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됐죠.”
그날부터 그는 좋은 부모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공부하기 시작했고 전국을 다니며 유명 기관과 유명 강사들을 쫓아다니며 부모교육 코칭, 리더십, 상담 등의 강의를 들었다. 결국 그는 몇 년에 걸쳐 감정 코칭, 교육 코칭, 가족 코칭 등 8개에 달하는 코칭 관련 자격증을 포함해 각종 강사 자격증 20여 개를 취득해 학부모와 교사들을 가르치는 강사로 다시 태어났다. 강의 내용은 코칭을 비롯해 진로교육, 학생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코칭교수법, 창의적교수법, 마인드 맵,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토의토론, 자기주도학습능력 향상 지도, 학급경영, 리더십 등 분야도 다양하다.
“처음 코칭을 접한 뒤 왜 진작 아이들에게 이렇게 대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들어서, 강사로서 코칭 강의에 더 빠져들게 됐어요. 코칭에서 가장 중요한 3요소는 선택, 지지, 성공감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아이에게 선택의 기회를 부여하고 그 선택을 인정하고 지지해주라는 거예요. 아이들의 선택하는 말과 행동에는 모두 이유가 있거든요.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집중하는 것이 부모의 몫이에요. 아이가 선택한 것을 지지해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동기 부여가 되지 않고 성공감을 가질 수 없으니, 자존감이 떨어지고 학습 능력도 발휘하지 못해요. 사실 저희 아들도 중학교 2학년 때 드럼, 중학교 3학년 때 힙합 댄스를 배우고 싶다고 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이유가 뭔지 묻지도 않고 단칼에 안 된다고 했죠. 그런데 아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몇 년 뒤 군대를 갔다 온 뒤, 눈물을 흘리며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엄마 저는 제 인생에서 한 번도 성공감을 느껴본 적이 없어요. 뭔가를 시작하려고 하면 두려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하고요.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는데 그 이유를 저는 너무 잘 알고 있었어요. 한 번도 아이 스스로 뭔가를 선택하게 놔두지 않았던 거죠. 각종 대회에 나가 상을 휩쓴 것도, 학생회장으로 당선된 것도 다 제 작품이었어요.”
그 뒤 아들은 ‘예전에 드럼 배우고 싶다고 한 거 기억나세요? 하고 물었다고 한다. 그제야 그는 어린 시절 왜 아이가 드럼을 치고 싶어했는지를 깨달았다. 부모에 대한 분노를 드럼 채를 휘두르며 발산하고 싶었던 것. 나중에 그는 코칭, 상담 등의 공부를 하고 나서야 아들이 고3 때 학교를 그만둘 무렵 심각한 공황장애를 겪었음을 알게 됐다.
“아들이 드럼 얘기를 다시 꺼내고 드럼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며칠 만에 드럼 채를 돌리며 콧노래를 흥얼대더니 비로소 얼굴에 화색이 돌더라고요. 그리고 그 뒤 아이는 자신의 길을 조금씩 찾아가기 시작했어요. 저 역시 코칭 공부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를 배웠고, 아들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서서히 저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어요. 결국 아이는 검정고시 패스 후 수능을 봤고, 당초 목표했던 대학은 아니지만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찾았고 지금은 글을 쓰는 문예창작을 전공하며 소설가를 꿈꾸고 있어요.”
엄마가 변하자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변하기 시작했다. 딸은 아들보다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결국 진심으로 다가서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조금씩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해나갔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다고 하던 딸이 드디어 파티시에가 되고 싶다며 제과 제빵을 배우기 시작했고 자격증도 취득했다. 그 일로 자신감이 생긴 딸은 다이어트도 시작했다. 언젠가 딸에게 강헌구 교수의 책 ‘가슴 뛰는 삶’을 넌지시 건넨 적이 있는데, ‘꿈을 이루기 위해 종이에 목표를 쓰고 눈에 보이는 곳에 붙이라’는 책 속 지침대로 집 안 곳곳에 ‘48kg S라인’이라는 목표를 붙이더니 3개월 만에 정말로 25kg 이상을 감량했다. 현재 딸은 누가 봐도 날씬하고 예쁜, 어엿한 아가씨가 됐다.
딸이 진로를 잡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렸다. 제과제빵학과에 합격했지만 두 달 만에 그만두고 다시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그도 몇 달 가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이유남 교감은 ‘죽는 것보다는 낫다’는 마음으로 아이와 스스로를 위로했다고 한다. 그러던 이 교감은 딸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아이의 속내를 듣게 됐다.
“아이가 바닷가 모래밭에 ‘남친 생겨라’라는 소원을 적더군요. 왜 남자친구가 있으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학교 그만두고 집에만 있을 때 자살 사이트를 찾아다니며 어떻게 죽는 게 가장 좋을까 고민을 한 적이 있다면서, 문득 남자친구도 한번 못 사귀어보고 죽는 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엄마가 달라지고 자기도 죽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면서 남자친구를 꼭 사귀어보고 싶더라는 거죠. 그리고 또 한 가지 소원으로, 미국에 가서 심리학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자기처럼 힘든 청소년기를 보낸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다면서요. 그러면서 이런 말을 하더군요. ‘엄마, 나는 용기 있게 학교를 그만두고 나왔지만 내 친구들 중에는 정신과 약 먹으면서 학교 다니는 애들도 있었어. 우리 학교에서 1년에 꼭 한두 명씩 자살했는데, 왜 죽는 줄 알아? 복수하고 싶어서야. 자기를 힘들게 한 사람들을 가장 마음 아프게 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 그 말에 어찌나 가슴이 아프던지, 아이에게 ‘너의 행복한 유년기, 청소년기를 빼앗은 엄마를 용서해줘’ 하며 눈물로 사죄했어요. 그러자 아이는 ‘엄마는 늦게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이야. 아직도 못 깨달은 이 땅의 수많은 부모님과 선생님들을 위해서 열심히 강의해줘요’ 하더군요. 제가 이렇게 전국을 다니며 강의하는 이유가 바로 딸의 명령을 실천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 이 일을 멈추지 않을 거예요.”
자녀에게 존경받는 부모가 되려면…
바닷가에서 청소년 심리상담사가 되겠다고 선언한 딸은 우연한 기회에 지인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천신만고 끝에 상담심리학을 전공, 오는 5월 중순 귀국을 앞두고 있다. 영어가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공부를 하느라 어려움이 많았지만 잠을 줄여가며 이를 악물고 공부한 결과 첫 학기 모든 과목에서 올A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자신감이 없는지 “4년이나 미국에서 공부했는데 한국 가서 영어 못한다는 소리 들으면 어쩌지?” 하고 걱정하는 딸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올A 성적도, 학사 증서도 중요하지 않아. 너는 공부하러 거기에 간 게 아니야. 살기 위해 간 거야. 그런데 지금까지 이렇게 잘 살아서 엄마 품으로 다시 돌아온 것만으로도 대견하고 고마워”라고.
이유남 교감은 ‘성공의 조건, 행복의 조건’으로 ‘자식에게 존경받는 부모가 되는 것’을 꼽는다. 그렇다면 현재 그는 행복한 사람일까? 정답은 얼마 전 그가 아들과 나눈 대화를 들으면 알 수 있다.
“제 생일 날 아들과 함께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갔는데 평소 잘 알고 지내던그곳 매니저분이 아들한테 ‘어머니 정말 좋으시죠?’ 하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아들이 ‘네. 그럼요. 제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에요’ 하더군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요즘은 아들과 3시간 이상도 대화가 가능하답니다(웃음). 코칭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아이를 지지해주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대화가 아이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많은 부모님들이 저의 부끄러운 과거를 교훈 삼아 중요한 깨달음을 얻으실 수 있길 바랍니다.”
■ 디자인 · 최진이 기자
그렇다면 ‘코칭’이란 무엇일까. 이는 일정한 목표를 성취할 수 있도록 자신감과 의욕을 고취시키며 개개인이 가진 잠재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을 말한다. 티칭(Teaching)이 일방적 정보를 주며 가르치는 것이라면 코칭(Coaching)은 사람이 가진 능력을 끌어내주는 것, 즉 문제보다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 효과적인 대화 기법과 그 과정을 통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시켜주는 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 이슈가 되고 있는 ‘감정코칭’은 아이의 감정에 초점을 맞춰 대화를 통해 생활지도, 문제해결능력, 사회적응력, 나아가 자기주도학습능력을 향상시키는 교육법을 말한다.
이유남 교감과의 인터뷰는 강연이 끝난 뒤 그가 몸담고 있는 용산초등학교 교무실에서 진행됐다. 사진 촬영을 위해 운동장으로 나오던 이 교감은 하교 시간에 맞춰 아이를 기다리고 있던 학부모에게 “00가 학교생활 잘 하고 있던데요?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적응을 아주 잘하고 있어요” 하며 친근하게 말했다. 담임 선생님도 아닌 교감 선생님이 어떻게 학생들 이름을 다 알까 싶었는데, 그는 전교생의 이름을 거의 다 외우는 것으로 유명하다. 수시로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부드럽고 잔잔한 목소리’로 도란도란 얘기도 나눈다. 물론 불과 7년 전만 해도 그 자신조차 전혀 상상하지 못한 일이다.
“저는 아이들을 죽이는 교육의 장본인이었어요. 내 집 아이도, 남의 집 아이도요. 보통 부모교육 강사들이 두 종류가 있어요. ‘나처럼 하면 자녀교육 성공할 수 있다’ 하는 ‘팔로 미’형이 있고, ‘나처럼 키우면 큰일 난다’ 하는 경각심형 강사가 있는데 저는 후자예요. 자식이 아들(27), 딸(25) 이렇게 둘 있는데, 저는 그동안 아이들을 ‘나의 자랑거리’로 키웠어요. 특히 아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각종 대회에 나가 상을 휩쓸었고, 학생회장도 도맡아 했어요. 모두가 저를 부러워했죠. 우리 반 아이들도 제가 담임만 맡으면 성적이 오르고, 숙제도 잘하고, 지각도 하지 않았어요. 부모님들이 좋아하셨죠,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저의 억압적인 가르침과, 심한 질책들이 있었어요. 저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늘 ‘SKSK’였어요. ‘시키면 시키는 대로’(웃음).‘ 다행히 아이들은 엄마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을 하며 잘 따라줬어요. 그래서 저는 단 한 번도 제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아이들을 더 벼랑 끝으로 몰고 갔습니다.”
내신 1등급 유지하던 아들 자퇴 후 폐인돼
그는 오후 5시만 되면 칼퇴근을 했다. 두 아이를 잘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집 안에 들어서는 동시에 아이들에게 “알림장 가져와!”를 외쳤다. 숙제를 다 해놓지 않은 날에는 불호령이 떨어졌고, 시험을 치른 날에는 잘 보든 못 보든 잔소리를 피할 수 없었다. 특히 초등학생인 딸은 ‘받아쓰기’ 시험을 잘 못 본다는 이유로 늘 오빠와 비교당하며 온갖 수모를 당했다. 당시 그는 아이들이 견뎌낼 수 있는 한계치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고 한다.
“고3 아들이 3월 모의고사를 봤는데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어요. 그런데 5월 어느 날 아들이 할 말이 있다고 하더니 ‘내일부터 학교 못 가겠어요. 그만 둘래요’ 하더군요. 미쳤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더니 아들은 눈물을 뚝뚝 흘리더니 자기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갔고 그날부터 전쟁이 시작됐죠. 학교를 다니긴 했지만 평생 안 하던 지각을 하고, 머리가 아프다고 조퇴를 하고, 학원은 가지도 않고, 그야말로 집에서 빈둥대고, 반항이라곤 몰랐던 아이 입에서 ‘아, 씨’가 쉴 새 없이 나오고. 그러다 결국 8월 말 자퇴서에 도장을 찍었어요.”
청천벽력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당시 강남 유명 여고 2학년에 재학중이던 딸마저 자퇴를 선언한 것. 당시 딸은 그에게 “잘나가는 오빠도 학교를 그만두는데 덜 나가는 내가 왜 학교에 다니냐”며 등교를 거부했고 결국 한 달 만에 자퇴했다. 그 날부터 두 아이는 집 밖을 나가지 않고 1년 반 동안 게임 중독, 대인 기피증을 보이며 폐인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당시 남편의 사업도 부도가 나 지하 월세방을 전전하는 등 경제적 어려움도 동시에 찾아왔다.
“지옥이 따로 없었어요. 어떤 말로도 그때의 고통을 다 표현할 수 없죠. 어느 날은 진정제를 먹고 아들에게 ‘도대체 왜 이러고 있냐’고 물었더니 저를 조롱하듯 말하더군요. ‘그렇게 똑똑하신 분이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이유요? 딴 거 없어요. 바로 당신’이라고요. 너무 기가 막히고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옆에 있던 빗자루로 아이를 때리려고 하자 아이는 살기어린 눈으로 순식간에 제 손목을 확 휘어잡고 벽으로 몰아붙이더군요. 이러다 아이가 제 목을 조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겨우 도망치듯 밖으로 뛰쳐나왔어요. 얼마나 서럽고 원통하던지. 내가 그동안 어떻게 아이들을 키웠는데 결국 받은 보상이 이건가 싶어서 더 이상 살 의미가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죠.”
엄마에게 복수하고자 자살 생각했던 딸
우울증 증세가 심했던 딸은 그가 하는 말은 듣지도 않고, 그가 차려주는 밥도 제대로 먹지 않으며 그를 투명인간 취급했다고 한다. 딸은 집에만 틀어박혀 있으면서 살이 점점 찌기 시작해 급기야 몸무게가 80kg을 육박했다. 어느 날 이유남 교감은 딸의 방에서 들려오는 통곡 소리와 거실에 온갖 살림살이가 어질러져 있는 광경을 목격하고 또 한 번 충격에 휩싸였다. 문을 걸어 잠그고 아무리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아 창틈으로 들여다 본 딸의 방 안에서는 더욱 참담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책을 집어 던지고, 옷을 갈기갈기 찢으며 광분하는 딸의 모습이 보인 것.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고 그도 분노하며 아이를 혼낼 생각을 하다가 한 가지 섬광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이러다 아이가 자살하면 어쩌지?’ 결국 그는 아이를 혼낼 생각을 접고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지나간 세월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때야 비로소 깨달았어요. 제가 그동안 단 한 번도 아이들을 제대로 칭찬해준 적이 없다는 사실을요. 아이들이 아무리 잘해도 제 성에는 차지 않았던 거예요. 전교 1등 성적표를 가지고 오면 ‘국어는 올랐는데 왜 수학은 떨어졌어? 이 성적으로는 강남에 가면 중간도 못 가’ 하는 등 아이 마음에 비수를 꽂았던 거죠. 딸아이에게도 마찬가지였어요. ‘엄마, 나도 오빠처럼 100점 맞았어요’ 하며 신나서 달려올 때 저는 ‘이번 시험이 좀 쉬웠냐? 너희 반 다 100점이지? 100점 몇 명이야?’ 하고 아이 기를 꺾는 말만 골라 했어요. 그러면 아이들이 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잘 자랄 줄 알았어요. 한 번도 따뜻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말한 적이 없었죠. 30분 이상 대화해본 적도 없었고, 아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게 뭔지 관심도 없었어요. 그동안 아이들에게 얼마나 잔인했는지, 얼마나 부족한 엄마였는지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됐죠.”
그날부터 그는 좋은 부모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공부하기 시작했고 전국을 다니며 유명 기관과 유명 강사들을 쫓아다니며 부모교육 코칭, 리더십, 상담 등의 강의를 들었다. 결국 그는 몇 년에 걸쳐 감정 코칭, 교육 코칭, 가족 코칭 등 8개에 달하는 코칭 관련 자격증을 포함해 각종 강사 자격증 20여 개를 취득해 학부모와 교사들을 가르치는 강사로 다시 태어났다. 강의 내용은 코칭을 비롯해 진로교육, 학생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코칭교수법, 창의적교수법, 마인드 맵,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토의토론, 자기주도학습능력 향상 지도, 학급경영, 리더십 등 분야도 다양하다.
“처음 코칭을 접한 뒤 왜 진작 아이들에게 이렇게 대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들어서, 강사로서 코칭 강의에 더 빠져들게 됐어요. 코칭에서 가장 중요한 3요소는 선택, 지지, 성공감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아이에게 선택의 기회를 부여하고 그 선택을 인정하고 지지해주라는 거예요. 아이들의 선택하는 말과 행동에는 모두 이유가 있거든요.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집중하는 것이 부모의 몫이에요. 아이가 선택한 것을 지지해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동기 부여가 되지 않고 성공감을 가질 수 없으니, 자존감이 떨어지고 학습 능력도 발휘하지 못해요. 사실 저희 아들도 중학교 2학년 때 드럼, 중학교 3학년 때 힙합 댄스를 배우고 싶다고 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이유가 뭔지 묻지도 않고 단칼에 안 된다고 했죠. 그런데 아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몇 년 뒤 군대를 갔다 온 뒤, 눈물을 흘리며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엄마 저는 제 인생에서 한 번도 성공감을 느껴본 적이 없어요. 뭔가를 시작하려고 하면 두려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하고요.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는데 그 이유를 저는 너무 잘 알고 있었어요. 한 번도 아이 스스로 뭔가를 선택하게 놔두지 않았던 거죠. 각종 대회에 나가 상을 휩쓴 것도, 학생회장으로 당선된 것도 다 제 작품이었어요.”
그 뒤 아들은 ‘예전에 드럼 배우고 싶다고 한 거 기억나세요? 하고 물었다고 한다. 그제야 그는 어린 시절 왜 아이가 드럼을 치고 싶어했는지를 깨달았다. 부모에 대한 분노를 드럼 채를 휘두르며 발산하고 싶었던 것. 나중에 그는 코칭, 상담 등의 공부를 하고 나서야 아들이 고3 때 학교를 그만둘 무렵 심각한 공황장애를 겪었음을 알게 됐다.
“아들이 드럼 얘기를 다시 꺼내고 드럼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며칠 만에 드럼 채를 돌리며 콧노래를 흥얼대더니 비로소 얼굴에 화색이 돌더라고요. 그리고 그 뒤 아이는 자신의 길을 조금씩 찾아가기 시작했어요. 저 역시 코칭 공부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를 배웠고, 아들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서서히 저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어요. 결국 아이는 검정고시 패스 후 수능을 봤고, 당초 목표했던 대학은 아니지만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찾았고 지금은 글을 쓰는 문예창작을 전공하며 소설가를 꿈꾸고 있어요.”
엄마가 변하자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변하기 시작했다. 딸은 아들보다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결국 진심으로 다가서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조금씩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해나갔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다고 하던 딸이 드디어 파티시에가 되고 싶다며 제과 제빵을 배우기 시작했고 자격증도 취득했다. 그 일로 자신감이 생긴 딸은 다이어트도 시작했다. 언젠가 딸에게 강헌구 교수의 책 ‘가슴 뛰는 삶’을 넌지시 건넨 적이 있는데, ‘꿈을 이루기 위해 종이에 목표를 쓰고 눈에 보이는 곳에 붙이라’는 책 속 지침대로 집 안 곳곳에 ‘48kg S라인’이라는 목표를 붙이더니 3개월 만에 정말로 25kg 이상을 감량했다. 현재 딸은 누가 봐도 날씬하고 예쁜, 어엿한 아가씨가 됐다.
딸이 진로를 잡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렸다. 제과제빵학과에 합격했지만 두 달 만에 그만두고 다시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그도 몇 달 가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이유남 교감은 ‘죽는 것보다는 낫다’는 마음으로 아이와 스스로를 위로했다고 한다. 그러던 이 교감은 딸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아이의 속내를 듣게 됐다.
“아이가 바닷가 모래밭에 ‘남친 생겨라’라는 소원을 적더군요. 왜 남자친구가 있으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학교 그만두고 집에만 있을 때 자살 사이트를 찾아다니며 어떻게 죽는 게 가장 좋을까 고민을 한 적이 있다면서, 문득 남자친구도 한번 못 사귀어보고 죽는 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엄마가 달라지고 자기도 죽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면서 남자친구를 꼭 사귀어보고 싶더라는 거죠. 그리고 또 한 가지 소원으로, 미국에 가서 심리학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자기처럼 힘든 청소년기를 보낸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다면서요. 그러면서 이런 말을 하더군요. ‘엄마, 나는 용기 있게 학교를 그만두고 나왔지만 내 친구들 중에는 정신과 약 먹으면서 학교 다니는 애들도 있었어. 우리 학교에서 1년에 꼭 한두 명씩 자살했는데, 왜 죽는 줄 알아? 복수하고 싶어서야. 자기를 힘들게 한 사람들을 가장 마음 아프게 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 그 말에 어찌나 가슴이 아프던지, 아이에게 ‘너의 행복한 유년기, 청소년기를 빼앗은 엄마를 용서해줘’ 하며 눈물로 사죄했어요. 그러자 아이는 ‘엄마는 늦게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이야. 아직도 못 깨달은 이 땅의 수많은 부모님과 선생님들을 위해서 열심히 강의해줘요’ 하더군요. 제가 이렇게 전국을 다니며 강의하는 이유가 바로 딸의 명령을 실천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 이 일을 멈추지 않을 거예요.”
자녀에게 존경받는 부모가 되려면…
바닷가에서 청소년 심리상담사가 되겠다고 선언한 딸은 우연한 기회에 지인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천신만고 끝에 상담심리학을 전공, 오는 5월 중순 귀국을 앞두고 있다. 영어가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공부를 하느라 어려움이 많았지만 잠을 줄여가며 이를 악물고 공부한 결과 첫 학기 모든 과목에서 올A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자신감이 없는지 “4년이나 미국에서 공부했는데 한국 가서 영어 못한다는 소리 들으면 어쩌지?” 하고 걱정하는 딸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올A 성적도, 학사 증서도 중요하지 않아. 너는 공부하러 거기에 간 게 아니야. 살기 위해 간 거야. 그런데 지금까지 이렇게 잘 살아서 엄마 품으로 다시 돌아온 것만으로도 대견하고 고마워”라고.
이유남 교감은 ‘성공의 조건, 행복의 조건’으로 ‘자식에게 존경받는 부모가 되는 것’을 꼽는다. 그렇다면 현재 그는 행복한 사람일까? 정답은 얼마 전 그가 아들과 나눈 대화를 들으면 알 수 있다.
“제 생일 날 아들과 함께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갔는데 평소 잘 알고 지내던그곳 매니저분이 아들한테 ‘어머니 정말 좋으시죠?’ 하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아들이 ‘네. 그럼요. 제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에요’ 하더군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요즘은 아들과 3시간 이상도 대화가 가능하답니다(웃음). 코칭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아이를 지지해주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대화가 아이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많은 부모님들이 저의 부끄러운 과거를 교훈 삼아 중요한 깨달음을 얻으실 수 있길 바랍니다.”
■ 디자인 · 최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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