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의사 홍지호(53)·탤런트 이윤성(42) 가족은 5일 동안 몰래 카메라가 설치된 집에서 생활했다. 욕실만 제외하고 부부의 침실에도 카메라가 설치됐다. 일종의 실험 카메라였다. 이들에게 주어진 미션은 다름 아닌 ‘아이들에게 권력을 주라’였다. 규칙은 이랬다. ‘모든 결정은 아이들이 내리며, 심지어 경제적인 부분까지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한다.’ 지난 1월 14일 종영한 tvN ‘아이에게 권력을?!’에서다. 이 프로그램은 독일의 심리·사회학자 요헨 메츠거가 실제 자신의 가정을 대상으로 부모와 자녀가 30일간 권력을 바꾸어 보는 실험을 한 내용을 담은 동명의 책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이 엉뚱한 실험에서 부모는 아이들에게 권유하거나 부탁할 수는 있지만 지시하거나 명령할 수 없다. “씻어라” “밥 먹어라” “TV 끄고 숙제해라”가 아닌, “이제 그만 씻으면 어떨까?” “밥 먹을래?” “TV를 끄고 숙제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식이다. 실험 시간 동안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부탁은 대부분 “싫어!” 한 마디로 거절당해야 했다. 아이들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부모의 마음은 타들어갔다. 언제나 너그러운 아빠였던 홍지호는 “머리에서 사리가 나올 것 같은 시간이었다”고 하소연했다.
“처음 이 실험의 제안을 받았을 때, ‘그게 말이 되나?’하는 생각이었어요. ‘아이들에게 권력을 준다고 해서 그게 진짜 이루어질까?’ ‘방송을 할 만큼의 내용이 나올까?’ 의심했는데 의외로 사건이 많았고, 느끼는 바도 있어서 놀랐어요.”(홍지호)
“친한 작가 언니가 ‘아이들에게 권력을 주면 어떨까’ 하고 제안을 해왔어요. 저는 당연히 ‘그럼 가족이 무너지지!’라고 했죠. 그런데 ‘아이들이 그런 상황에 있으면 어떻게 행동할까, 또 그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궁금증이 생기더군요.”(이윤성)
큰딸 세라(11)와 둘째 세빈(9) 두 아이가 집 안에서 무소불위 권력자가 된 실험은 이렇게 시작됐다.
자유 만끽한 막내, 책임감 드러낸 맏이
실험이 시작되자 ‘설마’ 했던 일들이 하나 둘 펼쳐졌다. 부모의 예상 그 이상이었다. 일단 두 아이 모두 학원에 가지 않았다. 그동안 자매는 영어학원과 태권도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대신 학교에서 돌아오면 친구들과 맘껏 놀았다. 세빈이는 밤이 깊어도 TV 앞을 떠나지 않았다. TV를 보느라 취침 시간을 훌쩍 넘긴 것은 물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TV를 켰다. 이 때문에 학교에 지각했다. 밥 대신 초콜릿을 먹었고, 며칠 동안 씻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실험 중간 (개입하지 말아야 할) 작가가 나서서 아이를 씻겨야 했다. 프로그램 사진 촬영이 있었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세빈이는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면서 5일을 보냈다.
“씻지 않아서 좋았어요(웃음). 그리고 엄마가 ‘TV 한번 정지하면 안 될까?’ 하고 말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평소에는 ‘TV 꺼!’라고 하거든요.”
세빈이는 부드러워진 엄마의 말투가 신기했다고 한다. 항상 명령조로 말하던 엄마였다. 이 부분에서 이윤성도 느끼는 바가 많았다.
“아이들에게 좋게 말하려고 해도 시간이 촉박하고 할 일이 많으니까 늘 명령조로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실험 기간 동안 명령이 아닌 부탁처럼 말해야 했는데, 그 부분이 정말 힘들었죠. ‘이렇게 이야기하면 아이들이 내 말을 알아들을까?’ 싶었는데, 알아듣긴 해도 제 말에 따르지는 않더라고요(웃음).”
반면, 세라는 자유가 주어져도 자신이 할 일은 했다. 그날의 숙제를 했고, 시간 맞춰 등교했다. 오히려 의젓해졌다. 엄마가 되어 동생에게 밥을 먹였고, 동생이 어지럽힌 방을 청소했다. 물론 학원에 가지 않거나 아빠와의 약속을 잊고 친구와 놀다가 엄마와 갈등을 빚긴 했지만, 대부분 큰 틀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음… 싫었던 점은, 세빈이가 정리를 안 해서 제가 다 해야 했어요.”(세라)
“큰아이는 그런 상황이 좀 스트레스였던 것 같아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는데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알더라고요. ‘역시 큰딸이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홍지호)
사실 두 아이의 행동은 부모의 예상 밖이었다.
“의외였어요. 평소 세빈이는 말을 잘 듣는 편이라 걱정이 없었어요. 반면 세라는 평소 엄마와 충돌이 있는 편이어서 걱정했고요. 그런데 막상 권력이 생기니, 오히려 세빈이가 통제가 안 되는 거예요. 예상치 못한 행동에 많이 힘들었어요. 그동안 제가 무섭게 하지 않아도 말을 하면 듣는 편이었는데, 실험 기간에는 전혀 듣지 않더군요.”(홍지호)
“딸들의 몰랐던 면들을 보게 됐어요. 그동안 저는 누구보다 아이들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죠. 아마 다른 엄마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권력을 주고 나서 아이들 본연의 모습을 만났다고 할까요? 제가 고쳐야 할 것이 정말 많다는 걸 느꼈어요.”(이윤성)
아이들이 원하지 않는 건 강요하지 않을 터
5일간의 실험이 끝난 후, 이들 가족에게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일단 부부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이게 됐다.
“그동안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간다는 생각에 무조건 복종을 요구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리다고 해서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어요. 그런 면을 확인하고 나니, ‘풀어줄 때는 풀어주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2주 정도가 지나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더군요(웃음). 그래도 의식적으로 노력을 많이 하게 됐죠.”(이윤성)
홍지호는 “이전까지는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면서 “이번 실험을 통해 아이들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확연히 알게 됐다”고 말했다. 가장 큰 변화는 아이들이 영어학원을 다니지 않게 된 것이다.
“큰아이는 실험 기간 동안 다른 것은 다 알아서 했는데, 영어학원은 안 가더군요. 학원 숙제까지 다 해놓은 날에도요. 작은아이는 영어학원은 안 갔지만, 태권도학원은 가더라고요. 태권도를 정말 좋아하는 걸 알게 됐어요. 그동안 아이들이 영어학원에 다니는 걸 그토록 싫어하는줄 몰랐어요. 가라고 하면 갔었거든요. 그걸 알고 나서 ‘왜 굳이 보냈을까? 아직까지 어린 나이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이 부부도 ‘다른 아이들은 영어학원에 다니는데 우리 아이만 안 보내면 뒤처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필요성을 느낄 때까지는 강요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얼마 전에 태국으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어요. 남편은 시간 관계상 잠깐 왔다 가고 아이들과 저는 2주 정도 머물렀는데, 그 기간 동안 아이들이 영어를 거의 쓰지 않더라고요. 저도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닌데, 어떻게 해서든지 의사소통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영어를 모르면 불편하니 공부를 해야 하는 거다’라고 말해줬어요. 세라는 그 상황을 이해하더라고요. 한 달 후에는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어요.”
부부는 이전에도 교육을 위해 큰 결단을 내린 적이 있었다. 서울 서초동에서 지금 사는 경기도 수지로 이사한 것. 서초동에 살던 시절 세라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을 호소했는데 병원에서 내린 진단과 처방은 다음과 같았다. “학원을 그만두게 해라.”
“남편 병원이 서초동에 있어서 전엔 그 동네에 살았어요. 아무래도 교육열이 높은 지역에서 살다 보니, 기본적인 사교육만 시켜도 아이에게는 스트레스가 되더군요. 지금 사는 곳은 앞에 개울이 있고 뒤에 산이 있어요. 전원 속에 아파트가 들어서 있어 이곳으로 이사한 뒤부터 겨울을 제외한 세 계절 동안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게 됐어요. 그 덕분에 세라 두통도 많이 나아졌죠.”
아이들은 지난 5일이 꿈만 같았다. 다시 권력자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듯한 아이들에게 ‘부모에게 바라는 점’을 물어봤다.
“공부하라고 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할 수 있어요.”(세라)
“에이~ 설마?”(이윤성)
“씻으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머리는 사우나에서만 감으면 좋겠어요.”(세빈)
“아빠 어렸을 때 (일주일에 한 번 머리 감고) 그랬단다. 더운 물 안 나올 때.”(홍지호)
아빠의 권력 vs. 엄마의 권력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무작정 자유만을 줄 수는 없다. 그것은 방임이 될 것이다. 부모와 아이가 모두 행복한, 진정한 자유란 무엇일까?
“아이들의 행동을 너무 제약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최소한의 선만 정해주면 되지 않을까요? ‘남의 물건을 훔치면 안 된다’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면 안 된다’와 같은 기본적인 덕목을 가르치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게만 교육한다면 그 안에서는 무엇을 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홍지호)
“아이들이 매일 밤 이를 닦지 않고 잠들어도, 치과 의사로 그냥 둘 생각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자 그는 “그건 일종의 집착”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물론 많이 신경 쓰이겠죠. 하지만 그건 부모의 집착일 수 있어요. 그냥 넘겨도 되는데, 부모 개인의 집착으로 인해 아이를 들들 볶는 경우가 있거든요. 어느 정도 풀어줘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기본만 잘돼 있으면, 사춘기 때 어느 정도 벗어나더라도 다시 돌아오더라고요.”
엄마 이윤성은 아빠의 입장과는 다르다.
“아빠의 입장은 이해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인성 교육이죠. 그런데 엄마들은 하루 종일 아이들과 붙어 있으니까 잔소리를 안 할 수 없어요. 아이들이 꼭 해야 하는 일들이 있는데 그냥 놔두면 순간순간 잊거든요. 그러다 보면 습관이 되어버려요. 그래서 저는 ‘할 일을 먼저 하고 그 뒤에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해요. 책임감을 갖게 하는 거죠. 세라는 책임감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큰아이라 더 신경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세빈이는 아직 어려서 그런지 엄마의 지도가 필요하죠.”
평소 부부는 육아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다. 두 사람의 입장 차이도 엄마와 아빠의 역할이 따로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일 뿐, 모두 아이들에게 필요한 부분이다. 이들에게 부모의 권력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엄마의 권력이란, 아이들에게 엄마로서의 자리를 잘 잡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엄마가 해야 할 역할은 따로 있죠. 아이들이 일관성 있게 살아가게 하는 것,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죠.”(이윤성)
“아빠는 큰 틀만 잡아주고, 아빠라는 존재만 인식시켜주면 되지 않을까요. 뒤에서 지켜보며 버팀목이 돼주는 거죠. 세세하게 관여하는 건 엄마의 몫이고요.”(홍지호)
두 아이에게 꿈을 물었다. 엄마의 대를 이어서 배우를 해도 좋을 만큼 예쁜 두 아가씨의 꿈은 모두 ‘의사’다. 세라는 “수의사”, 세빈이는 “외과 의사”라는 명확한 답을 내놓았다. 아빠 홍지호는 형제가 모두 의사인 집안의 셋째 아들로 유명한데, 피는 못 속이는 것일까? 이윤성은 “동물을 사랑하고, 집에서도 강아지를 책임감 있게 돌보는 세라에게는 수의사가 딱 맞는 것 같다”고 한다. 세빈이는 수술하는 의사를 동경해왔다고. 평소 외과 의사가 등장하는 프로그램을 눈여겨보면서 “외과 의사가 되어 아픈 사람들을 치료했으면 좋겠다”는 구체적인 꿈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의 꿈과 별개로 이들 부부의 바람은 단순하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만큼은 부부의 생각이 정확히 일치했다.
“모범 답안 같지만 아이들이 커서 어떤 일을 하든,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잘 자라준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 디자인·최진이 기자
■ 헤어&메이크업·플리페(02-548-7473)
이 엉뚱한 실험에서 부모는 아이들에게 권유하거나 부탁할 수는 있지만 지시하거나 명령할 수 없다. “씻어라” “밥 먹어라” “TV 끄고 숙제해라”가 아닌, “이제 그만 씻으면 어떨까?” “밥 먹을래?” “TV를 끄고 숙제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식이다. 실험 시간 동안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부탁은 대부분 “싫어!” 한 마디로 거절당해야 했다. 아이들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부모의 마음은 타들어갔다. 언제나 너그러운 아빠였던 홍지호는 “머리에서 사리가 나올 것 같은 시간이었다”고 하소연했다.
“처음 이 실험의 제안을 받았을 때, ‘그게 말이 되나?’하는 생각이었어요. ‘아이들에게 권력을 준다고 해서 그게 진짜 이루어질까?’ ‘방송을 할 만큼의 내용이 나올까?’ 의심했는데 의외로 사건이 많았고, 느끼는 바도 있어서 놀랐어요.”(홍지호)
큰딸 세라
큰딸 세라(11)와 둘째 세빈(9) 두 아이가 집 안에서 무소불위 권력자가 된 실험은 이렇게 시작됐다.
자유 만끽한 막내, 책임감 드러낸 맏이
실험이 시작되자 ‘설마’ 했던 일들이 하나 둘 펼쳐졌다. 부모의 예상 그 이상이었다. 일단 두 아이 모두 학원에 가지 않았다. 그동안 자매는 영어학원과 태권도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대신 학교에서 돌아오면 친구들과 맘껏 놀았다. 세빈이는 밤이 깊어도 TV 앞을 떠나지 않았다. TV를 보느라 취침 시간을 훌쩍 넘긴 것은 물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TV를 켰다. 이 때문에 학교에 지각했다. 밥 대신 초콜릿을 먹었고, 며칠 동안 씻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실험 중간 (개입하지 말아야 할) 작가가 나서서 아이를 씻겨야 했다. 프로그램 사진 촬영이 있었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세빈이는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면서 5일을 보냈다.
“씻지 않아서 좋았어요(웃음). 그리고 엄마가 ‘TV 한번 정지하면 안 될까?’ 하고 말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평소에는 ‘TV 꺼!’라고 하거든요.”
둘째 세빈
“아이들에게 좋게 말하려고 해도 시간이 촉박하고 할 일이 많으니까 늘 명령조로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실험 기간 동안 명령이 아닌 부탁처럼 말해야 했는데, 그 부분이 정말 힘들었죠. ‘이렇게 이야기하면 아이들이 내 말을 알아들을까?’ 싶었는데, 알아듣긴 해도 제 말에 따르지는 않더라고요(웃음).”
반면, 세라는 자유가 주어져도 자신이 할 일은 했다. 그날의 숙제를 했고, 시간 맞춰 등교했다. 오히려 의젓해졌다. 엄마가 되어 동생에게 밥을 먹였고, 동생이 어지럽힌 방을 청소했다. 물론 학원에 가지 않거나 아빠와의 약속을 잊고 친구와 놀다가 엄마와 갈등을 빚긴 했지만, 대부분 큰 틀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음… 싫었던 점은, 세빈이가 정리를 안 해서 제가 다 해야 했어요.”(세라)
“큰아이는 그런 상황이 좀 스트레스였던 것 같아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는데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알더라고요. ‘역시 큰딸이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홍지호)
사실 두 아이의 행동은 부모의 예상 밖이었다.
“의외였어요. 평소 세빈이는 말을 잘 듣는 편이라 걱정이 없었어요. 반면 세라는 평소 엄마와 충돌이 있는 편이어서 걱정했고요. 그런데 막상 권력이 생기니, 오히려 세빈이가 통제가 안 되는 거예요. 예상치 못한 행동에 많이 힘들었어요. 그동안 제가 무섭게 하지 않아도 말을 하면 듣는 편이었는데, 실험 기간에는 전혀 듣지 않더군요.”(홍지호)
“딸들의 몰랐던 면들을 보게 됐어요. 그동안 저는 누구보다 아이들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죠. 아마 다른 엄마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권력을 주고 나서 아이들 본연의 모습을 만났다고 할까요? 제가 고쳐야 할 것이 정말 많다는 걸 느꼈어요.”(이윤성)
아이들이 원하지 않는 건 강요하지 않을 터
5일간의 실험이 끝난 후, 이들 가족에게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일단 부부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이게 됐다.
“그동안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간다는 생각에 무조건 복종을 요구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리다고 해서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어요. 그런 면을 확인하고 나니, ‘풀어줄 때는 풀어주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2주 정도가 지나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더군요(웃음). 그래도 의식적으로 노력을 많이 하게 됐죠.”(이윤성)
홍지호는 “이전까지는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면서 “이번 실험을 통해 아이들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확연히 알게 됐다”고 말했다. 가장 큰 변화는 아이들이 영어학원을 다니지 않게 된 것이다.
“큰아이는 실험 기간 동안 다른 것은 다 알아서 했는데, 영어학원은 안 가더군요. 학원 숙제까지 다 해놓은 날에도요. 작은아이는 영어학원은 안 갔지만, 태권도학원은 가더라고요. 태권도를 정말 좋아하는 걸 알게 됐어요. 그동안 아이들이 영어학원에 다니는 걸 그토록 싫어하는줄 몰랐어요. 가라고 하면 갔었거든요. 그걸 알고 나서 ‘왜 굳이 보냈을까? 아직까지 어린 나이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이 부부도 ‘다른 아이들은 영어학원에 다니는데 우리 아이만 안 보내면 뒤처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필요성을 느낄 때까지는 강요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얼마 전에 태국으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어요. 남편은 시간 관계상 잠깐 왔다 가고 아이들과 저는 2주 정도 머물렀는데, 그 기간 동안 아이들이 영어를 거의 쓰지 않더라고요. 저도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닌데, 어떻게 해서든지 의사소통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영어를 모르면 불편하니 공부를 해야 하는 거다’라고 말해줬어요. 세라는 그 상황을 이해하더라고요. 한 달 후에는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어요.”
부부는 이전에도 교육을 위해 큰 결단을 내린 적이 있었다. 서울 서초동에서 지금 사는 경기도 수지로 이사한 것. 서초동에 살던 시절 세라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을 호소했는데 병원에서 내린 진단과 처방은 다음과 같았다. “학원을 그만두게 해라.”
“남편 병원이 서초동에 있어서 전엔 그 동네에 살았어요. 아무래도 교육열이 높은 지역에서 살다 보니, 기본적인 사교육만 시켜도 아이에게는 스트레스가 되더군요. 지금 사는 곳은 앞에 개울이 있고 뒤에 산이 있어요. 전원 속에 아파트가 들어서 있어 이곳으로 이사한 뒤부터 겨울을 제외한 세 계절 동안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게 됐어요. 그 덕분에 세라 두통도 많이 나아졌죠.”
아이들은 지난 5일이 꿈만 같았다. 다시 권력자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듯한 아이들에게 ‘부모에게 바라는 점’을 물어봤다.
“공부하라고 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할 수 있어요.”(세라)
“에이~ 설마?”(이윤성)
“씻으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머리는 사우나에서만 감으면 좋겠어요.”(세빈)
“아빠 어렸을 때 (일주일에 한 번 머리 감고) 그랬단다. 더운 물 안 나올 때.”(홍지호)
아빠의 권력 vs. 엄마의 권력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무작정 자유만을 줄 수는 없다. 그것은 방임이 될 것이다. 부모와 아이가 모두 행복한, 진정한 자유란 무엇일까?
“아이들의 행동을 너무 제약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최소한의 선만 정해주면 되지 않을까요? ‘남의 물건을 훔치면 안 된다’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면 안 된다’와 같은 기본적인 덕목을 가르치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게만 교육한다면 그 안에서는 무엇을 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홍지호)
“아이들이 매일 밤 이를 닦지 않고 잠들어도, 치과 의사로 그냥 둘 생각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자 그는 “그건 일종의 집착”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물론 많이 신경 쓰이겠죠. 하지만 그건 부모의 집착일 수 있어요. 그냥 넘겨도 되는데, 부모 개인의 집착으로 인해 아이를 들들 볶는 경우가 있거든요. 어느 정도 풀어줘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기본만 잘돼 있으면, 사춘기 때 어느 정도 벗어나더라도 다시 돌아오더라고요.”
엄마 이윤성은 아빠의 입장과는 다르다.
“아빠의 입장은 이해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인성 교육이죠. 그런데 엄마들은 하루 종일 아이들과 붙어 있으니까 잔소리를 안 할 수 없어요. 아이들이 꼭 해야 하는 일들이 있는데 그냥 놔두면 순간순간 잊거든요. 그러다 보면 습관이 되어버려요. 그래서 저는 ‘할 일을 먼저 하고 그 뒤에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해요. 책임감을 갖게 하는 거죠. 세라는 책임감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큰아이라 더 신경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세빈이는 아직 어려서 그런지 엄마의 지도가 필요하죠.”
평소 부부는 육아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다. 두 사람의 입장 차이도 엄마와 아빠의 역할이 따로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일 뿐, 모두 아이들에게 필요한 부분이다. 이들에게 부모의 권력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엄마의 권력이란, 아이들에게 엄마로서의 자리를 잘 잡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엄마가 해야 할 역할은 따로 있죠. 아이들이 일관성 있게 살아가게 하는 것,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죠.”(이윤성)
“아빠는 큰 틀만 잡아주고, 아빠라는 존재만 인식시켜주면 되지 않을까요. 뒤에서 지켜보며 버팀목이 돼주는 거죠. 세세하게 관여하는 건 엄마의 몫이고요.”(홍지호)
두 아이에게 꿈을 물었다. 엄마의 대를 이어서 배우를 해도 좋을 만큼 예쁜 두 아가씨의 꿈은 모두 ‘의사’다. 세라는 “수의사”, 세빈이는 “외과 의사”라는 명확한 답을 내놓았다. 아빠 홍지호는 형제가 모두 의사인 집안의 셋째 아들로 유명한데, 피는 못 속이는 것일까? 이윤성은 “동물을 사랑하고, 집에서도 강아지를 책임감 있게 돌보는 세라에게는 수의사가 딱 맞는 것 같다”고 한다. 세빈이는 수술하는 의사를 동경해왔다고. 평소 외과 의사가 등장하는 프로그램을 눈여겨보면서 “외과 의사가 되어 아픈 사람들을 치료했으면 좋겠다”는 구체적인 꿈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의 꿈과 별개로 이들 부부의 바람은 단순하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만큼은 부부의 생각이 정확히 일치했다.
“모범 답안 같지만 아이들이 커서 어떤 일을 하든,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잘 자라준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 디자인·최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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