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21대 임금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는 지금도 논란의 한복판에 자리한 인물이다. 그의 아내 혜경궁 홍씨가 저술한 ‘한중록’은 흉악한 병에 걸린 광인(狂人)으로, 사관의 기록인 ‘영조실록’은 15세에 대리청정을 시작해 28세에 이르기까지 정사를 무리 없이 이끈 왕의 재목으로 그를 묘사한다. SBS 드라마 ‘비밀의 문 : 의궤살인사건’(이하 ‘비밀의 문’)은 후자에 무게를 둔 팩션 사극이다. 사도세자와 영조를 주인공으로 하는 조선왕조의 가장 잔혹한 비극에 의궤 살인 사건이라는 허구의 양념을 가미해 궁중 미스터리를 표방한다.
아들을 죽인 영조, 미침증에 걸려 뒤주에서 죽은 것으로 알려진 비운의 왕자 사도세자, 비명에 간 아비를 애틋하게 그리워한 정조. 우리가 이미 잘 아는 왕조사를 다뤘음에도 이 드라마가 새삼 기대를 모으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믿고 보는 배우’ 한석규(50)에서 찾을 수 있다.
2011년 사극 ‘뿌리 깊은 나무’를 통해 16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해 세종으로 깊은 인상을 심어준 그는 ‘비밀의 문’에서도 왕좌에 앉는다. 이 드라마에서 영조는 ‘천한 무수리의 아들’이라는 자격지심과 ‘형을 죽이고 권좌를 얻은 자’라는 정통성 시비에서 자유롭기 위해 울면서 눈엣가시 같은 신하들을 제거하는 정치 9단의 군주. 또한 선위의 뜻을 밝혀 아들 사도세자(이제훈)의 마음을 끝도 없이 시험하다 끝내 죽음으로 내모는 비정한 아비다.
‘비밀의 문’ 김형석 PD와 윤선주 작가는 기획 단계부터 영조 역으로 한석규를 염두에 뒀다. 작품을 까다롭게 고르는 한석규도 이들의 출연 제의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수락했다.
마음 깊숙이에서 연기 의욕 솟게 한 영조와의 조우
“전작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을 연기하면서 영조라는 인물을 마음에 품게 됐어요. 세종은 훈민정음을 만드는 등 많은 창의적인 업적을 남긴 왕으로 칭송받고 있지만 영조는 아들을 매정하게 죽인 아버지로 기억되고 있잖아요. 그에 대한 궁금증은 거기서부터 출발했어요. 그 사람은 왜 아들을 죽였을까. 무엇이 그를 비정한 아비로 만들었을까. 오랜 고심 끝에 당시 시대 상황과 그의 성장 배경이 그런 비극을 낳은 게 아닐까 하는 결론에 도달했죠. 세종은 왕권이 가장 강했던 조선 전기의 왕이고, 영조는 왕권이 약화된 조선 후기의 군주니까요. 대학 시절 연극 무대에서 만난 ‘리어왕’처럼 마음 깊숙이에서 연기 의욕이 불끈 솟게 하는 인물이라 50대 후반이나 60대에 맡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그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왔네요.”
권력을 어찌 쓸까보다 어떻게 지킬까에 골몰한 영조는 그런 복심을 눈물 속에 감춘다. 기뻐도, 노여워도 눈물을 흘리는 그의 이중적인 모습을 연기하기가 연기 달인인 그로서도 쉽진 않을 듯했다.
“늘 어떻게 해야 연기가 안 보일까를 고민하게 돼요. 연기라는 일은 시간을 살아내는 거예요. 하지만 그 시간은 실제 삶과는 다른 허구의 시간이죠. 작품이 만들어낸 시간을 보는 분들이 진짜인 것처럼 믿도록 사는 게 실은 너무 어려워요. 배우 자신이 그 시간을 ‘진짜’라고 믿어야 보는 이들도 ‘진짜 같다’고 느끼는데, 진짜라고 믿는 게 참 힘들어요. 늘 어떻게 하면 연기하는 티를 덜 낼까, 어찌 해야 진짜처럼 보일까 고민하는데 시행착오를 많이 겪다 보니 이젠 좀 할 만해졌어요. 스스로 끊임없이 검열하면서 완성도를 높이는 거죠.”
그는 자신이 사는 허구의 시간 속 영조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잠시 고민하던 그가 내놓은 답은 “그냥 사람이오”다.
“연기를 하면 할수록 ‘배우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직업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그 사람을 시청자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인물로 만들어내는 게 정말 힘든 일이죠. 제가 영조를 사람이라고 표현한 건 미움·증오·질투·그리움 등 모든 감정이 사랑 안에 담겨 있는 것처럼, 사람 안에는 인간의 모든 면이 들어 있기 때문이에요. 사람이 지닌 여러 속성을 민낯 그대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게 바로 영조거든요. 오래전부터 마음에 품어온 인물이니 후회 없이 잘 만들어볼게요(웃음).”
사도세자 역의 이제훈과 그는 영화 ‘파파로티’에서 스승과 제자로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2년 만에 아버지와 아들로 다시 만난 이들은 극 중에서는 살벌한 부자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실제로는 친한 선후배 사이다.
‘자식에게 기대하지 말라’는 교훈 얻어
고등학교 2학년 때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를 보고 처음 배우를 꿈꿨던 소년은 어느덧 하늘의 이치를 안다는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렀다. 그 사이 드라마 ‘서울의 달’ ‘뿌리 깊은 나무’, 영화 ‘쉬리’ ‘넘버3’ ‘닥터 봉’ ‘접속’ ‘8월의 크리스마스’ 등 수많은 히트작을 남긴 그에게 지금도 도전해보고 싶은 배역이 있을까.
“한국 사회에서 공감할 만한 소재인 아버지와 장남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20~30대엔 그런 쪽에 관심이 없었는데 중년이 되니까 부자의 이야기가 훅훅 들어와요.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았을 영조도 60세가 됐을 때 다시 해보고 싶어요. 그때 만난 영조는 또 다른 느낌일 것 같아요. 이순신이라는 인물도 마음에 품은 큰 꿈 중 하나예요. 기회가 찾아온다면 놓치고 싶지 않은 캐릭터죠.”
영조와 상황은 다르지만 ‘비밀의 문’을 촬영하며 자식을 키우는 같은 아비로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는 한석규. 지나온 시간을 더듬으며 그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아이들에게 기대하지 말자고 마음먹었어요.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해서 비극을 맞은 거예요. 생각해보면 저도 부모님이 기대를 안 해서 큰 제약 없이 자유롭게 살다가 제가 꿈꾸던 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어요. 제가 막내여서 부모님이 전혀 기대하지 않았거든요. 제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아 남에게 피해를 안 주면서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아버지로서 바람은 그거 하나예요.”
‘뿌리 깊은 나무’에서 근엄한 표정으로 ‘육시랄’이라는 육두문자를 쏟아내 웃음을 자아낸 그는 ‘비밀의 문’에서도 간간이 욕의 진수를 보여줄 예정이다. 하지만 욕설이 난무하면 시청자가 불편해할 수 있어 거부감이 들지 않는 범위에서 그 나름대로 순화한 표현을 쓰겠다고 약속했다.
“늘 조심하고 있어요. 욕하는 연기가 재미있다는 반응에 마음이 약해져 더 나갔다간 정말 ‘지랄하고 자빠졌네’ 할 거 아니에요(웃음). 드라마를 보면서 더러 오해하는 분이 계셔서 이 자리를 빌려 바로잡겠습니다. 연기는 연기일 뿐 개인적으로는 욕 많이 안 하는 사람입니다. 하하.”
아들을 죽인 영조, 미침증에 걸려 뒤주에서 죽은 것으로 알려진 비운의 왕자 사도세자, 비명에 간 아비를 애틋하게 그리워한 정조. 우리가 이미 잘 아는 왕조사를 다뤘음에도 이 드라마가 새삼 기대를 모으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믿고 보는 배우’ 한석규(50)에서 찾을 수 있다.
2011년 사극 ‘뿌리 깊은 나무’를 통해 16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해 세종으로 깊은 인상을 심어준 그는 ‘비밀의 문’에서도 왕좌에 앉는다. 이 드라마에서 영조는 ‘천한 무수리의 아들’이라는 자격지심과 ‘형을 죽이고 권좌를 얻은 자’라는 정통성 시비에서 자유롭기 위해 울면서 눈엣가시 같은 신하들을 제거하는 정치 9단의 군주. 또한 선위의 뜻을 밝혀 아들 사도세자(이제훈)의 마음을 끝도 없이 시험하다 끝내 죽음으로 내모는 비정한 아비다.
‘비밀의 문’ 김형석 PD와 윤선주 작가는 기획 단계부터 영조 역으로 한석규를 염두에 뒀다. 작품을 까다롭게 고르는 한석규도 이들의 출연 제의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수락했다.
마음 깊숙이에서 연기 의욕 솟게 한 영조와의 조우
60세에 또 다시 영조 역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한석규. 그는 그만큼 영조라는 인물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권력을 어찌 쓸까보다 어떻게 지킬까에 골몰한 영조는 그런 복심을 눈물 속에 감춘다. 기뻐도, 노여워도 눈물을 흘리는 그의 이중적인 모습을 연기하기가 연기 달인인 그로서도 쉽진 않을 듯했다.
“늘 어떻게 해야 연기가 안 보일까를 고민하게 돼요. 연기라는 일은 시간을 살아내는 거예요. 하지만 그 시간은 실제 삶과는 다른 허구의 시간이죠. 작품이 만들어낸 시간을 보는 분들이 진짜인 것처럼 믿도록 사는 게 실은 너무 어려워요. 배우 자신이 그 시간을 ‘진짜’라고 믿어야 보는 이들도 ‘진짜 같다’고 느끼는데, 진짜라고 믿는 게 참 힘들어요. 늘 어떻게 하면 연기하는 티를 덜 낼까, 어찌 해야 진짜처럼 보일까 고민하는데 시행착오를 많이 겪다 보니 이젠 좀 할 만해졌어요. 스스로 끊임없이 검열하면서 완성도를 높이는 거죠.”
그는 자신이 사는 허구의 시간 속 영조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잠시 고민하던 그가 내놓은 답은 “그냥 사람이오”다.
“연기를 하면 할수록 ‘배우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직업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그 사람을 시청자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인물로 만들어내는 게 정말 힘든 일이죠. 제가 영조를 사람이라고 표현한 건 미움·증오·질투·그리움 등 모든 감정이 사랑 안에 담겨 있는 것처럼, 사람 안에는 인간의 모든 면이 들어 있기 때문이에요. 사람이 지닌 여러 속성을 민낯 그대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게 바로 영조거든요. 오래전부터 마음에 품어온 인물이니 후회 없이 잘 만들어볼게요(웃음).”
사도세자 역의 이제훈과 그는 영화 ‘파파로티’에서 스승과 제자로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2년 만에 아버지와 아들로 다시 만난 이들은 극 중에서는 살벌한 부자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실제로는 친한 선후배 사이다.
‘자식에게 기대하지 말라’는 교훈 얻어
고등학교 2학년 때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를 보고 처음 배우를 꿈꿨던 소년은 어느덧 하늘의 이치를 안다는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렀다. 그 사이 드라마 ‘서울의 달’ ‘뿌리 깊은 나무’, 영화 ‘쉬리’ ‘넘버3’ ‘닥터 봉’ ‘접속’ ‘8월의 크리스마스’ 등 수많은 히트작을 남긴 그에게 지금도 도전해보고 싶은 배역이 있을까.
“한국 사회에서 공감할 만한 소재인 아버지와 장남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20~30대엔 그런 쪽에 관심이 없었는데 중년이 되니까 부자의 이야기가 훅훅 들어와요.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았을 영조도 60세가 됐을 때 다시 해보고 싶어요. 그때 만난 영조는 또 다른 느낌일 것 같아요. 이순신이라는 인물도 마음에 품은 큰 꿈 중 하나예요. 기회가 찾아온다면 놓치고 싶지 않은 캐릭터죠.”
영조와 상황은 다르지만 ‘비밀의 문’을 촬영하며 자식을 키우는 같은 아비로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는 한석규. 지나온 시간을 더듬으며 그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아이들에게 기대하지 말자고 마음먹었어요.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해서 비극을 맞은 거예요. 생각해보면 저도 부모님이 기대를 안 해서 큰 제약 없이 자유롭게 살다가 제가 꿈꾸던 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어요. 제가 막내여서 부모님이 전혀 기대하지 않았거든요. 제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아 남에게 피해를 안 주면서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아버지로서 바람은 그거 하나예요.”
‘뿌리 깊은 나무’에서 근엄한 표정으로 ‘육시랄’이라는 육두문자를 쏟아내 웃음을 자아낸 그는 ‘비밀의 문’에서도 간간이 욕의 진수를 보여줄 예정이다. 하지만 욕설이 난무하면 시청자가 불편해할 수 있어 거부감이 들지 않는 범위에서 그 나름대로 순화한 표현을 쓰겠다고 약속했다.
“늘 조심하고 있어요. 욕하는 연기가 재미있다는 반응에 마음이 약해져 더 나갔다간 정말 ‘지랄하고 자빠졌네’ 할 거 아니에요(웃음). 드라마를 보면서 더러 오해하는 분이 계셔서 이 자리를 빌려 바로잡겠습니다. 연기는 연기일 뿐 개인적으로는 욕 많이 안 하는 사람입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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