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 민들레영토수녀원 이해인 수녀님 앞’
이해인 수녀에게 얼마 전 한 초등학생으로부터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제대로 된 주소가 아니었는데도, 그 편지는 놀랍게 주인을 찾아왔다(심지어 그가 살고 있는 곳은 민들레영토수녀원도 아닌, 성베네딕도수녀원이다).
“정말 그렇게만 써도 편지가 오더라고요. 제 시집 서문에 ‘부산 민들레영토수녀원에서’라고 썼는데 그걸 보고 보낸 모양인데…. 그래도 그 편지가 어떻게 제게 도착할 수 있었을까요? 민들레 홀씨가 멀리 날아가 기쁨을 퍼트리는 것 같았어요.”
1976년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시작으로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발표해온 이해인 수녀는 종교를 초월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아왔다. ‘국민 이모’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을 정도. “이제 시는 그만 써야지, 하는데도 계속 써진다”는 푸념 아닌 푸념을 하는 그에게 올해는 더 뜻깊은 해다. 칠순을 맞았고, 수도원 생활을 하며 써내려간 일기 노트는 어느덧 1백47권이나 쌓였다. “올해로 (수녀원) 입대 50년이 됐다”고 말하는 그는 소녀 같은 미소나 유쾌함만큼은 여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내 이상형
일흔이 되어도 늘 시상이 샘솟는 그가, 이번에는 묵상집을 발간했다. ‘교황님의 트위터 : 이해인 수녀의 프란치스코 교황 말씀 묵상’(분도출판사)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년 5개월 동안 트위터에 올린 문구 중 3백 개를 뽑아 자신의 묵상을 덧붙인 책이다. 그동안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내왔지만, 이번 책은 다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함이 있었다.
“애인에게 ‘러브 레터’ 쓰듯이 작업한 책이에요. 그 과정에서 암세포도 없어지는 것 같은 기쁨을 경험했죠. 요즘 (젊은이들이) 트위터를 많이 하잖아요. 신세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참여하게 됐어요.”
책 출간을 기념해 8월 7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이해인 수녀의 북콘서트 ‘작은 이들의 참된 벗, 교황 프란치스코’가 열렸다. 콘서트에서 이해인 수녀는 3백 개의 교황 트윗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우리 식탁에 여분의 자리를 남겨두자’를 꼽았다
“꼭 밥 한 끼 먹는 것뿐 아니라 일상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자리를 남겨두자는 뜻이에요. 내 몫을 절제해 이웃을 도와준다는 의미가 있어요. 절제가 부족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생각의 여지를 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해인 수녀가 살고 있는 수녀원은 과일 먹는 횟수를 일주일에 3번에서 2번으로 줄여 힘든 이웃을 돕고 있다고 한다. 그는 “희생과 절제, 인내가 이 시대의 잃어버린 덕목”이라며 “각 가정에서도 절제를 통해 이웃 사랑에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해인 수녀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 “참으로 멋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종교인 이전에 좋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수도 생활을 하다 보면 부자연스러워지고 왠지 종교적 냄새를 피워야 할 거 같은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교황님을 뵈면 종교의 틀 안에서도 한없이 자유롭고 열려 있어요. 남에게는 자비로우면서도 자신에게는 엄격하시죠. 제 이상형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2014년 새해 결심 목록 10가지는 이해인 수녀 자신에게도 지침이 되는 말씀이라고 말했다. 이 중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하면서 자신의 인간적인 면모를 가감 없이 드러내 웃음을 주었다.
“첫째, ‘험담하지 마십시오.’ 저도 찔리곤 해요. 며칠 전에 뒷담화를 하게 됐는데, 그 대상이 되는 수녀님이 제 앞에서 웃지를 않는 거예요. ‘혹시 내가 하는 말을 들었나?’ 하는 생각에 잠이 안 왔는데, 다행히 그다음 날 평소처럼 대해주더라고요. ‘이것도 보통 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다음부터 안하리라 결심했죠.”
이해인 수녀는 ‘(사람에 대한) 판단은 더디게 하고 사랑은 빠르게 하자’는 생각을 했으나, 생각처럼 잘 안 된다고도 고백했다.
“나이 들면서 너그러워져야 하는데, 잔소리가 듣기 싫었어요. ‘원로인데 좀 봐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죠. 살면서 자랑할 것이 덕이 아니라 약점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다 또 합리화하죠. ‘약점을 자랑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게 어디야?’”
이해인 수녀는 2008년 대장암 선고를 받은 뒤 6년째 투병 중이다. 방사선 치료, 항암 치료만 수십 회를 지나왔다. 아직 완치되지 않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다른 기관으로 전이되지 않았다. 지난 7월 14일은 이해인 수녀가 암 선고를 받은 지 꼭 6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 “점심 먹고, 한두 시간 쉬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고 설명했다.
“항암 주사만 30번을 맞았죠. 방사선 치료도 28번 했는데, 그렇게 고생하며 투병 중인 사람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예전부터 암에 걸리면 명랑하게 투병하겠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본보기가 되려고 합니다. ‘기쁘게 아프자’ ‘기쁘게 싸우자’ 마음먹고 있어요. 암세포와 ‘조금만 더 살게 해달라’고 대화하니 암세포가 참아주는 것 같아요.”
고된 항암 치료를 받으면 신을 원망할 법도 하고 시를 놓을 것 같기도 한데, 오히려 시를 쓰는 횟수는 더 늘었다. 시상을 적어두는 작은 수첩에 빼곡히 시가 쌓여간다. 만남과 이별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화나고 힘들어도 웃어요
“아프니까 시를 더 쓰게 돼요. 암 투병을 시작한 후 시가 더 깊어졌다는 평을 많이 듣게 됐어요. 독자로부터 ‘아픈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국민 이모 수녀님’이라는 새로운 별칭도 얻었죠. 건강한 사람들이 건성으로 뱉는 말이 아픈 사람들에게 어떻게 눈물이 되는지 표현하고 싶어요. 담백하지만 묵상이 될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최근에는 조금 특별한 글을 하나 썼다. 유언장이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유언장을 작성하게 됐지만, 한 번쯤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다는 뜻에서였다.
“장례는 문인이 아닌 수녀로서 다른 수녀들과 똑같이 극히 간소하게 해달라고 썼어요. 이번 전집을 포함한 제 저작물의 사후 인세는 현재와 마찬가지로 모두 제가 속한 성베네딕도수녀회로 귀속될 예정이고요. 이승 정리가 다 끝나니 이제 저쪽 세상으로 이사 갈 날만 남았구나 싶어 홀가분합니다.”
가깝게 마음을 나누던 소설가 박완서와 최인호가 차례로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마다 이해인 수녀는 큰 상실감에 빠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은 많은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교황님의 ‘절여진 오이처럼 살지 말고 기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다. 야전 병원에 있는 환자처럼 깨어 살아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어요. 화나고 힘들더라도 교황님 말씀을 생각하면서 ‘웃으라고 했으니 웃어야지’ 해요. 프란치스코 효과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효과’, 그것은 이해인 수녀가 지난한 암 투병 속에서도 명랑함을 유지할 수 있는 큰 힘이었다.
이해인 수녀에게 얼마 전 한 초등학생으로부터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제대로 된 주소가 아니었는데도, 그 편지는 놀랍게 주인을 찾아왔다(심지어 그가 살고 있는 곳은 민들레영토수녀원도 아닌, 성베네딕도수녀원이다).
“정말 그렇게만 써도 편지가 오더라고요. 제 시집 서문에 ‘부산 민들레영토수녀원에서’라고 썼는데 그걸 보고 보낸 모양인데…. 그래도 그 편지가 어떻게 제게 도착할 수 있었을까요? 민들레 홀씨가 멀리 날아가 기쁨을 퍼트리는 것 같았어요.”
1976년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시작으로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발표해온 이해인 수녀는 종교를 초월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아왔다. ‘국민 이모’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을 정도. “이제 시는 그만 써야지, 하는데도 계속 써진다”는 푸념 아닌 푸념을 하는 그에게 올해는 더 뜻깊은 해다. 칠순을 맞았고, 수도원 생활을 하며 써내려간 일기 노트는 어느덧 1백47권이나 쌓였다. “올해로 (수녀원) 입대 50년이 됐다”고 말하는 그는 소녀 같은 미소나 유쾌함만큼은 여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내 이상형
일흔이 되어도 늘 시상이 샘솟는 그가, 이번에는 묵상집을 발간했다. ‘교황님의 트위터 : 이해인 수녀의 프란치스코 교황 말씀 묵상’(분도출판사)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년 5개월 동안 트위터에 올린 문구 중 3백 개를 뽑아 자신의 묵상을 덧붙인 책이다. 그동안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내왔지만, 이번 책은 다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함이 있었다.
“애인에게 ‘러브 레터’ 쓰듯이 작업한 책이에요. 그 과정에서 암세포도 없어지는 것 같은 기쁨을 경험했죠. 요즘 (젊은이들이) 트위터를 많이 하잖아요. 신세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참여하게 됐어요.”
책 출간을 기념해 8월 7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이해인 수녀의 북콘서트 ‘작은 이들의 참된 벗, 교황 프란치스코’가 열렸다. 콘서트에서 이해인 수녀는 3백 개의 교황 트윗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우리 식탁에 여분의 자리를 남겨두자’를 꼽았다
“꼭 밥 한 끼 먹는 것뿐 아니라 일상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자리를 남겨두자는 뜻이에요. 내 몫을 절제해 이웃을 도와준다는 의미가 있어요. 절제가 부족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생각의 여지를 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해인 수녀가 살고 있는 수녀원은 과일 먹는 횟수를 일주일에 3번에서 2번으로 줄여 힘든 이웃을 돕고 있다고 한다. 그는 “희생과 절제, 인내가 이 시대의 잃어버린 덕목”이라며 “각 가정에서도 절제를 통해 이웃 사랑에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해인 수녀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 “참으로 멋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종교인 이전에 좋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수도 생활을 하다 보면 부자연스러워지고 왠지 종교적 냄새를 피워야 할 거 같은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교황님을 뵈면 종교의 틀 안에서도 한없이 자유롭고 열려 있어요. 남에게는 자비로우면서도 자신에게는 엄격하시죠. 제 이상형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2014년 새해 결심 목록 10가지는 이해인 수녀 자신에게도 지침이 되는 말씀이라고 말했다. 이 중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하면서 자신의 인간적인 면모를 가감 없이 드러내 웃음을 주었다.
“첫째, ‘험담하지 마십시오.’ 저도 찔리곤 해요. 며칠 전에 뒷담화를 하게 됐는데, 그 대상이 되는 수녀님이 제 앞에서 웃지를 않는 거예요. ‘혹시 내가 하는 말을 들었나?’ 하는 생각에 잠이 안 왔는데, 다행히 그다음 날 평소처럼 대해주더라고요. ‘이것도 보통 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다음부터 안하리라 결심했죠.”
이해인 수녀는 ‘(사람에 대한) 판단은 더디게 하고 사랑은 빠르게 하자’는 생각을 했으나, 생각처럼 잘 안 된다고도 고백했다.
“나이 들면서 너그러워져야 하는데, 잔소리가 듣기 싫었어요. ‘원로인데 좀 봐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죠. 살면서 자랑할 것이 덕이 아니라 약점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다 또 합리화하죠. ‘약점을 자랑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게 어디야?’”
이해인 수녀는 2008년 대장암 선고를 받은 뒤 6년째 투병 중이다. 방사선 치료, 항암 치료만 수십 회를 지나왔다. 아직 완치되지 않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다른 기관으로 전이되지 않았다. 지난 7월 14일은 이해인 수녀가 암 선고를 받은 지 꼭 6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 “점심 먹고, 한두 시간 쉬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고 설명했다.
나이 드니 민들레꽃보다 화려한 장미꽃이 좋아진다는 이해인 수녀. 남에게 상처를 주는 가시가 아닌 싱그러운 향기만 닮고 싶다고 한다.
고된 항암 치료를 받으면 신을 원망할 법도 하고 시를 놓을 것 같기도 한데, 오히려 시를 쓰는 횟수는 더 늘었다. 시상을 적어두는 작은 수첩에 빼곡히 시가 쌓여간다. 만남과 이별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화나고 힘들어도 웃어요
“아프니까 시를 더 쓰게 돼요. 암 투병을 시작한 후 시가 더 깊어졌다는 평을 많이 듣게 됐어요. 독자로부터 ‘아픈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국민 이모 수녀님’이라는 새로운 별칭도 얻었죠. 건강한 사람들이 건성으로 뱉는 말이 아픈 사람들에게 어떻게 눈물이 되는지 표현하고 싶어요. 담백하지만 묵상이 될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최근에는 조금 특별한 글을 하나 썼다. 유언장이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유언장을 작성하게 됐지만, 한 번쯤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다는 뜻에서였다.
“장례는 문인이 아닌 수녀로서 다른 수녀들과 똑같이 극히 간소하게 해달라고 썼어요. 이번 전집을 포함한 제 저작물의 사후 인세는 현재와 마찬가지로 모두 제가 속한 성베네딕도수녀회로 귀속될 예정이고요. 이승 정리가 다 끝나니 이제 저쪽 세상으로 이사 갈 날만 남았구나 싶어 홀가분합니다.”
가깝게 마음을 나누던 소설가 박완서와 최인호가 차례로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마다 이해인 수녀는 큰 상실감에 빠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은 많은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교황님의 ‘절여진 오이처럼 살지 말고 기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다. 야전 병원에 있는 환자처럼 깨어 살아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어요. 화나고 힘들더라도 교황님 말씀을 생각하면서 ‘웃으라고 했으니 웃어야지’ 해요. 프란치스코 효과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효과’, 그것은 이해인 수녀가 지난한 암 투병 속에서도 명랑함을 유지할 수 있는 큰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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