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브랜드 에르메스 ‘버킨 백’의 뮤즈이자 프렌치 팝의 아이콘으로 꼽히는 배우 겸 모델 제인 버킨(67). 영국 출신이지만 남편 세르주 갱스부르의 영향으로 프랑스의 상징 같은 존재가 됐다. 세르주 갱스부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샤를로트 갱스부르(42) 역시 배우와 모델로 활동하며 대를 이어 프렌치 시크의 아이콘으로 사랑받고 있다. 그런 제인 버킨이 3월 30일 서울에서 공연을 선보였다. 제목은 ‘제인 버킨과 세르주 갱스부르’. 남편은 1991년 세상을 떠났지만 대신 그가 만든 노래와 함께 찾아온 제인 버킨의 한국 공연은 2012년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해 한국 공연에서의 기억이 정말 좋았어요. 공연을 좋아하고 열광해주는 아름다운 청중들이 인상적이었죠. 이번 투어를 마치면서 공연을 기록한 앨범을 낼 예정인데, 전세계 다른 지역에서의 공연과 서울에서의 공연도 담을 거예요. 지난번 공연 때는 폐렴에 걸려 고생했는데 이번에는 몸 상태도 좋아서 더 나은 공연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홍상수 감독 영화에도 카메오 출연
그는 이번 투어가 생애 마지막 월드 투어이자 남편이 만든 노래를 부르는 마지막 투어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오랫동안 남편이 만든 곡을 불러왔죠. 이번 투어도 자선 공연이 확대된 것이지만, 어쩌면 마지막 투어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종종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기도 해요. 오래전 투어할 당시의 콘셉트였던 ‘아라베스크’로 공연해달라는 요청을 받아 연말까지 몇 군데에서 또 다른 공연을 할 예정이거든요. 뮤지컬처럼 과거에 했던 공연을 다시 재연하는 일은 할 수 있겠지만, 새로운 투어를 시작하는 것은 아마도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오랜 기간 가수로 활동했기에 사람들에게 새로움을 안겨주는 것은 숙제다.
“선곡 과정은 늘 선택의 연속이에요. 제가 부른 곡과 남편이 불렀지만 일반에게 알려지지 않은 곡도 준비하고 있죠. ‘Ex-Fan des sixties’는 아라베스크 투어 때 부른 곡인데, 그걸 부를 때면 가사에 등장하는 엘비스와 티렉스가 녹음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상을 떠난 기억이 나요.”
얼마 전 그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주인공 해원에게 ‘웨스트 빌리지’가 어디인지 물어보는 관광객으로 깜짝 출연했다.
“지난해 한국에 왔을 때 함께했던 이들이 다양한 한국 영화를 추천해줬어요. DVD도 선물로 받아서 봤는데 무척 흥미롭더라고요. 홍상수 감독을 비롯한 몇몇 한국 감독들의 영화는 프랑스에서도 쉽게 볼 수 있어요. 영화제에서도 자주 선보이기에 친숙하죠. 어쩌면 지금 가장 뛰어난 영화를 많이 만들어내는 곳은 한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요. 감독보다는 영화 이름을 먼저 기억하는데, 홍상수 감독은 워낙 인상적으로 본 영화가 많아 이름을 알고 있었어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강원도의 힘’ 같은 영화가 기억에 남아요.”
자기 취향을 파악하는 게 패션의 시작
그는 음악, 영화뿐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예술가로서 가장 중시하는 가치는 뭘까.
“누구나 다 각자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꼭 무언가를 추구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가치를 강요하지 않더라도 가정에서 좋은 엄마, 아빠가 되거나 가족이나 이웃을 돕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하죠. 전 남들을 도울 때 가장 큰 행복을 느껴요. 제가 노래하고 영화 작업을 하는 것 이상으로 할 일이 여전히 많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일이라면 더 열심히 하고 싶어요.”
그가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배우였던 어머니 주디 캠벨의 영향이 컸다.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1963년 연예계에 배우로 첫발을 내디딘 제인 버킨. 뱅 스타일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긴 생머리와 쭉 뻗은 다리, 깡마른 몸매는 그에게 시크함을 더해줬고, 심플한 의상 선택은 그의 자유로움을 보여주는 ‘버킨 룩’이었다.
“옷 입을 때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하면 결국 오래된 옷에 손이 가더라고요. 제 옷 중에는 30년 된 것도 많아요. 빈티지라고 생각해서 입는 건 아니에요. 때로는 아버지의 바지나 남자 친구의 재킷을 입기도 하죠. 원하는 옷, 자신감을 가지고 오래된 옷을 입을 때 행복해요. 딸 케이트는 쇼핑을 잘하는 편인데, 그렇다고 돈을 모조리 쇼핑에 쏟아붓지도 않더라고요. 케이트는 자기가 좋아하는 걸 잘 알고 있어요. 그게 결국 자기 삶을 구성하는 거죠.”
제인 버킨에 대해 논하면서 시대를 아우르는 잇 백인 ‘버킨 백’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버킨 백의 뮤즈인 그와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인연이 재미있다. 1984년 런던에서 파리로 가는 비행기에서 실수로 가방 속 내용물을 옆자리 신사에게 쏟아버린 제인 버킨. 신사는 물건을 주워주며 “가방에 따로 주머니가 없느냐”고 물었고, 제인 버킨은 “주머니가 있는 에르메스 가방이 있다면 좋을텐데”라고 답했다고. 그 신사가 바로 에르메스의 최고경영자 장 루이 뒤마. 그는 제인 버킨에게 주머니가 있는 가방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버킨 백이라 쓰고 전 세계 여성들의 로망이라 읽는 가방이 탄생하게 됐다. 아직도 버킨 백을 쓰느냐는 물음에 그는 “마지막 버킨 백은 얼마 전 런던에서 잃어버렸다”고 했다.
“택시에서 잃어버렸는데 아마도 누군가 훔쳐간 것 같아요. 이후엔 작은 백에 화장품을 넣고 돈은 주머니에 넣어 다니는데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더군요.”
시대를 아우르는 뮤즈는 외면뿐 아니라 내면까지 아름다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제인 버킨은 아웅산 수치 여사의 석방을 위해 오랫동안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다. 인권과 동물을 위해 힘쓰게 된 계기가 궁금해졌다.
“오랫동안 희망했던 아웅산 수치의 석방은 이뤄졌지만 여전히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요. 자연재해가 덮친 아이티나 원자력에 대한 공포가 남아 있는 일본도 있고, 프랑스에는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해 수감되거나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이민자들이 많아요. 그들을 만나 도와줄 수 있고,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원래 고기를 먹지 않았지만, 바람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사육·도살되는 동물을 보며 점점 더 고기를 안 먹게 됐어요. 지금도 동물에게 스테로이드를 쓰거나, 태양도 볼 수 없는 곳에 가두는 등 불필요하고 끔찍한 일이 자행되고 있어요. 그래서 그것을 소비하지 않는 게 효과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서로 영향을 준 세기의 모녀
제인 버킨은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 카메오 출연했다. 홍상수 감독(왼쪽), 배우 정은채와 함께한 제인 버킨.
제인 버킨이 어머니의 영향으로 연예계에 입문했다면, 그는 딸 샤를로트 갱스부르에게 영향을 주었다. 부모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1984년 영화 ‘사랑할 때와 이별할 때’에서 카트린 드뇌브의 딸 역으로 데뷔한 샤를로트 갱스부르는 다음 해 영화 ‘귀여운 반항아’에서 주연을 맡아 세자르 영화제에서 신인여우상을 받았다. 그는 12편이 넘는 청소년 영화에서 주연을 맡으며 프랑스의 문화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연기 활동을 하면서 아버지 세르주 갱스부르와 앨범 작업을 하고, 어머니 못지않은 매력을 발산해 음악적으로도 인기를 얻었다. 모전여전은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대를 이어 프렌치 시크의 대명사이자 세계 패션 디자이너들의 뮤즈가 된 샤를로트 갱스부르. 영화음악,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제작자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그를 보는 선배이자 어머니로서 제인 버킨의 마음은 어떨까. 그는 “샤를로트는 대단한 배우”라며 딸을 추켜세웠다.
“샤를로트는 자기 세대에서 최고의 배우라고 생각해요. 그 뛰어남 때문에 저도 그의 팬이 될 수밖에 없었죠. 어린 시절의 저보다 더 앞서나가 있어요. 부서질 듯하면서도 견고한 노래도 마음에 들고요. 딸들이 있어서, 그리고 그들과 함께 있을 때 정말 행복하다는 것을 느껴요. 제가 하는 건 딸들을 믿고 용기를 주는 정도죠. 루(셋째 딸 루 드와이옹, 가수 겸 배우)가 앨범 작업을 할 때도 좋은 음악가를 소개해주는 정도만 했어요. 곡을 쓰고 노래하는 건 전부 그 아이의 몫이었죠. 딸들이 아이를 가져 훌륭한 어머니가 돼가는 모습을 보면 뿌듯해요. 사진작가로 존경받고 있는 케이트(첫째 딸 케이트 배리), 샤를로트, 루의 엄마라는 것이 자랑스러워요. 딸들과 함께 있을 때면 늘 행복하죠.”
그는 인터뷰를 마치며 “이번 투어를 기록한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가능하다면 새 앨범도 낼 계획이다.
“영화는 올해도 두 편을 하는데, 내년에는 두 번째 연출작을 찍고 싶어요. 여든 살이 될 때까지는 꾸준히 영화 작업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물론 사람들을 돕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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