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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최성수·박영미 부부라는 아름다운 늪

글 | 김명희 기자 사진 | 조영철 기자

2012. 09. 19

1980년대를 주름잡던 가수 최성수의 활동이 뜸한 이유가 있었다. 아내 박영미 씨는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스타일이다. 최성수는 그런 아내가 만든 행복의 늪에 빠져 10년 넘게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최성수 부부와 그의 작업실에서 보낸 유쾌했던 반나절의 기록.

최성수·박영미 부부라는 아름다운 늪


“마누라, 이건 어디 둘까?”
촬영을 위해 소품을 이리저리 옮겨보던 최성수(52)가 도저히 결정을 못하겠다는 듯 아내에게 도움을 청하자 메이크업을 받느라 두 눈을 감고 있던 박영미(51) 씨가 “저~기 두세요”라고 코치한다. 구체적으로 방향을 가리키지 않았건만 최성수는 텔레파시라도 통하는 듯 아내가 점찍은 위치에 척척 소품을 배치했다. 인터뷰 장소는 서울 강남 압구정동 최성수의 작업실. 5년 전 아내가 이곳에 집을 지으면서 지하 1층을 남편을 위한 공간으로 꾸몄다. 장식을 최소화하고 피아노와 오디오, 곡 작업을 할 수 있는 설비들만 들여놓았다. 건축 사업을 하는 아내의 탁월한 안목 덕분인지 이곳에 들어서면 몸과 마음이 저절로 편안해진다.
오래전부터 최성수 부부를 만나고 싶었다. ‘재혼 부부의 롤모델’이란 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내가 6백억대 자산가라는 소문부터 가수 인순이와의 법적 분쟁 등등으로 만날 기회가 점점 멀어지는 듯했다. 9월 최성수가 백암아트홀에서 ‘마이스토리’라는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번에는 ‘OK’ 사인이 왔다. “아내를 꼭꼭 숨겨놓은 탓에 불필요한 의혹들이 더 커지는 것 같다. 이번 기회에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설명이 덧붙었다.

인연 … 무작정 미국으로 찾아온 아내와의 운명적인 사랑

최성수·박영미 부부라는 아름다운 늪


부부는 바로 전날 미국에서 돌아온 참이었다. 큰아들 일우(26) 군과 딸 선정(24) 양이 미국에서 유학 중인데, 아이들도 만날 겸 막내 동현(10) 군 서머스쿨에도 참여시킬 겸해서 미국에 다녀왔다고. 아이들 나이를 묻자 아내는 “그러니까 일우가…” 하면서 더듬더듬하는 사이 남편이 정확히 짚어줬다. “우리 아이들이 벌써 그렇게 됐어요?” 아내는 ‘언제 아이들이 그렇게 컸나’ 믿기지 않는 표정이다. 최성수에게 그렇게 장성한 자녀가 있었나.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큰아들과 딸은 박영미 씨가 사별한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얻었고 동현이는 부부가 재혼해서 낳은 막둥이다.
최성수와 박영미 씨의 결혼 이야기는 한 편의 드라마 같다. 첫 만남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 보스턴에 있는 버클리 음대에서 유학 중이던 최성수가 방학 기간 동안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이문세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박씨가 이를 듣고 먼저 전화를 한 것이다.
“그전부터 친분이 있는 연예 관계자들한테 남편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참 좋은 사람이라고.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는 보통 험담도 하고 그러는데, 하나같이 좋은 얘기를 하니까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사족을 덧붙이자면 사람은 좋은데, 가진 건 없다 뭐 그런 소리를 들었답니다(웃음). 제가 그전에 활동은 많이 했지만 집 한 채 마련하고 유학생활 하고 그러니까 막상 손에 쥔 건 별로 없었거든요.”
박씨는 그래도 사람만 좋다면 뭐 어떠냐 싶어 전화번호를 알아내 최성수에게 연락을 했다. 그런데 그날 방송된 내용은 사전 녹음이어서 최성수는 이미 미국으로 떠난 후였다. 이때부터 국제전화 데이트가 시작됐다. 적극적인 성격의 박씨는 최성수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나는 당신 팬이 아니고, 사실 노래도 잘 모른다. 그런데 라디오를 듣다 보니 정말 좋은 사람 같더라. 같이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평소 최성수 같으면 ‘정신 나간 사람 아니냐’며 전화를 끊었을 텐데 이상하게도 박씨의 전화는 싫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에 금방 들어갔다 나왔기 때문에 향수병도 있었고, 수다가 그립기도 했는데 자꾸 얘기를 하다 보니 재밌더라고요. 집사람 전화 목소리가 굉장히 예뻐서 얼굴도 예쁜 줄 알았고요(웃음).”
“전화로 얼굴은 어떻게 생겼느냐, 몸매는 어떠냐고 자꾸 묻더라고요. 남편은 긴 생머리에 호리호리한, 소위 말하는 청순가련형을 상상했나 봐요. 그런데 사실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그렇게 말라본 적이 없는데…(웃음).”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 두 사람은 하루에도 여러 번 통화를 했고 급기야는 박씨가 그해 12월 23일 최성수를 찾아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당신을 만나러 간다”고 하면 부담을 느낄 것 같아 “뉴욕에 일이 있어서 가는데 보스턴에 잠시 들르겠다”고 둘러댔다. 그렇게 두 사람은 보스턴 공항에서 처음 얼굴을 마주했다.
“엄청 예쁘게 생긴 여자를 상상하고 공항에 나왔겠죠. 그런데 비행기에서 동양 여자가 딱 한 명 내리는데 자기가 생각했던 모습이 아니라서 당황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제 스타일은 아니더라고요. 예쁘게 보이려고 한껏 꾸몄는데 더 촌스러운…(웃음). 순간 도망가야 하나 어쩌나 고민했는데, 제가 도망가면 집까지 찾아올 성격이지 그냥 한국으로 돌아갈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힘들게 왔는데 식사 대접이나 제대로 하자는 심정으로 보스턴의 유명한 바닷가재 레스토랑으로 데려갔어요. 저도 유학생 신분이라 어쩌다 한 번 큰 맘 먹고 가는 비싼 곳인데, 거기서 아내가 혼자 2인분을 해치우더라고요.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 예뻤어요. 숨기는 것 없이 솔직하고 당당하고 시원시원하고, 지금도 그게 아내의 최고 매력이라고 생각하죠.”
박씨가 미국으로 찾아갈 땐 처음부터 ‘최성수를 내 남자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저 조금 더 알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함께 지낼수록 점점 호감이 생겼다. 직접 헤어스타일을 다듬어주는 자상한 면에 반했고, 남자다운 면에 빠져들었다.
“제가 그때 한국에서 유행하던 섀기 커트를 하고 있었는데 그게 마음에 안 든다는 거예요. 평소 제 성격 같으면 ‘남의 헤어스타일에 무슨 상관이람?’ 하고 말았을 텐데, 남편이 싫다니까 당장 바꾸고 싶더라고요. 남편이 군대 시절 배운 솜씨로 머리를 깎아주겠다고 해서 머리를 들이밀었죠(웃음). 그러고 한국에 돌아오니까 저희 회사 직원들이 ‘어머 사장님 미국 다녀오신다더니 동남아 다녀오셨나 봐요’ 하면서 놀리더라고요(웃음). 그렇게 자상한 면도 좋았고, 의외로 남자 같은 면도 있더라고요. 보스턴은 주차 공간이 부족해서 앞뒤로 빽빽하게 주차하기 때문에 폭설이 내리면 차를 빼기 힘들어요. 그런데 남편이 차에 시동을 켜고 앞뒤 차를 쭉쭉 밀어 공간을 확보하더니 차를 빼는 거예요. 그 상황에서 어쩔 줄 몰라 벌벌 떨었더라면 별로였을 텐데, 믿음직해 보이더라고요.”



최성수·박영미 부부라는 아름다운 늪


선물 … 행복을 가져온,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세 아이

최성수·박영미 부부라는 아름다운 늪

최성수는 지난 3월 KBS ‘여유만만’에 아들 동현 군과 함께 출연했다. 사랑스럽고 의젓한 동현이는 최성수 가족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다.



이렇게 보스턴에서 일주일을 함께 보낸 후 사랑이 싹텄다. 하지만 결혼은 조심스러웠다. 한 번 결혼에 실패한 최성수는 또 다른 사랑을 받아들일 용기가 나지 않았고, 박영미 씨 역시 1990년 남편과 사별하고 두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양가의 반대와 아이들이라는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혔다.
“저희 아버지께서 굳이 아이 딸린 사람과 결혼할 필요가 있겠냐며 반대를 하셨어요. 제가 한 번도 아버지 뜻을 거스른 적이 없는데 그때만큼은 고집을 피웠죠. 아버지도 제가 평소와 달리 강경한 태도를 보이니까 그럴 만하다 생각하시고는 허락을 하셨죠. 집사람이 아니었으면 저는 그냥 혼자 살았을 거예요.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어도 먼저 다가가는 성격이 아닌데, 집사람이 그렇게 좋아해주고 적극적으로 나오니까 저도 마음이 끌리더라고요.”
“그때 일우가 열두 살, 선정이가 열 살이었어요. 저희가 결혼하겠다고 하니까 친정어머니가 아이들은 본인이 키우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남편이 아이들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을지 걱정하셨던 거죠.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어요. 서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맞지 않는 부분은 노력하며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 달간 일하는 아주머니도 내보내고 아이들과 넷이서 연습 삼아 살아봤는데 안 맞기는커녕 이산가족이 상봉한 것처럼 반갑고 좋더라고요.”
“처음 아이들을 만난 곳이 공항이었는데, 몇 년간 원양어선 타고 바다를 헤매다 돌아와 내 새끼를 품는 기분이랄까, 왠지 아이들이 짠하고 잘 커준 게 대견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때 아이들한테 ‘아저씨는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함께 살려고 한다. 너희들에게도 좋은 아버지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아빠라고 부르지 않아도 좋다’고 했어요. 아이들도 ‘생각해보겠다’고 하더니 그 다음날부터인가, 바로 아빠라고 부르더라고요.”
아이들에게 처음 ‘아빠’라는 말을 듣는 순간, 최성수는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고마웠다고 한다. 일찍 친부와 사별한 아이들은 아버지의 빈자리를 크게 느꼈고, 최성수는 1998년 아이들의 정식 아빠가 돼 넘치는 사랑으로 그 여백을 꽉꽉 채웠다.
“재혼 가정을 보면 아이들 문제로 갈등하는 경우가 더러 있더라고요. 저희가 겪어보니까 어른이 먼저 다가가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아이들과 대화를 할 때도 무릎 꿇고 눈을 맞춰가며 이야기했어요. 아이들은 스펀지 같아서 사랑을 주면 쏙쏙 빨아들이게 마련이죠.”
2002년에는 가족의 마스코트 동현이가 태어났다. 최근까지 부모가 재혼했다는 걸 몰랐던 동현이는 아빠의 방송 출연을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충격을 받았을 법도 한데, 동현이는 “우리 가족이 행복하면 그만이지 그게 무슨 상관이냐”라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눈치라고.
부부의 양육 태도는 극과 극이다. 최성수가 아이들의 개성을 최대한 존중하며 자유롭게 키우자는 주의라면, 아내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기준을 정해놓고 아이들이 따라주기를 바라는 스타일이다. 평생 다투는 일 없는 이 부부도 가끔 그 문제로 티격태격한다고.
“예를 들어 동현이를 데리고 외출할 때 저는 옷부터 신발까지 다 준비해놓고 ‘동현아 이렇게 입어’ 하는 스타일인 반면 남편은 ‘동현아, 네가 제일 멋지다고 생각하는 옷으로 입고 나와!’ 그러죠. 그렇게 하면 아이는 모자는 모자대로, 옷은 옷대로, 신발은 신발대로 각양각색으로 입고 나오잖아요. 제가 잔소리를 하면 남편은 ‘그게 아이다운 거다. 왜 아이를 당신 틀에 가둬서 키우려고 하느냐’고 말리고…. 그래서 우리 집 아이들은 전부 아빠 편이에요. 쇼핑을 갈 때 저만 쏙 빼 놓고 가고 전화나 문자 메시지도 아빠한테 더 자주 하고…(웃음).”
“저는 어릴 때 아버지가 무서워서 내가 아이를 낳으면 그렇게 키우지 말아야지 생각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제가 이렇게 아이들을 놓아 키울 수 있는 것도 다 아내가 평소 잘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미국에 있는 아이들 시험 때면 시간 맞춰 전화해서 공부하라고 당부하고, 뉴욕의 딸 집에는 카메라를 설치해서 외출했다 돌아오면 딸이 카메라에 대고 ‘다녀왔습니다’ 하고 인사해요(웃음). 여느 아이들 같으면 불평도 했을 텐데, 전혀 그런 것 없고 오히려 ‘엄마가 뒷바라지 잘해준 덕분에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고마워해요. 아빠 엄마가 모두 너그러웠다면 아이들이 이만큼 잘 컸을까 싶기도 해요. 아이들 키우는 데는 회초리를 드는 사람도 필요하고, 다독여주는 사람도 필요한데 좋은 역은 제가 하고, 악역은 아내가 하는 거죠.”
최성수 부부의 장남 일우 군은 군복무를 마치고 현재 미시간주립대(MSU)에서 마케팅을 공부하고 있고, 딸은 뉴욕주립대(NYU)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하고 있다. 아들딸 모두 남부럽지 않은 명문대에 진학해 걱정이 없겠다 싶은데 여기에도 스토리가 있다.
“딸이 어릴 때부터 미술을 하고 싶어 했는데, 공부를 잘하니까 성적이 좀 아깝더라고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억지로 엄마 뜻대로 밀고 갔는데 마지막 학기에 미술을 해야겠다고 하는 거예요. 곰곰 생각해보니 사랑하는 사람과 살며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보다 인생에서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허락했죠.”
“딸을 보면서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이 따로 있다는 걸 느껴요. 딸이 어릴 때 제가 미술학원에 데려다주곤 했는데 처음에는 줄 긋기부터 시작하잖아요. 저는 10분만 보고 있어도 지겨운데 딸은 그걸 하루 다섯 시간씩 하곤 했어요. 제가 ‘딸, 지겹지 않아?’ 물었더니 ‘아니. 나는 아빠 방에서 음악을 30분만 들으면 머리에서 지진이 나는데 줄 긋기는 아무리 해도 질리지 않아’ 그러더라고요(웃음). 싫어하는 일은 백날 붙잡고 있어도 늘지 않지만 좋아하는 일은 한 시간만 해도 실력이 쑥쑥 느는 것 같아요.”

변화 … 행복이 가져다준 가수 인생의 터닝 포인트

최성수·박영미 부부라는 아름다운 늪

최성수의 아내 박영미 씨는 현대적 의미의 현모양처다. 자신의 일을 똑부러지게 하면서 남편·아이들 뒷바라지도 소홀함이 없다.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고 행복한 가정을 일구면서 가수 최성수의 인생 항로도 바뀌었다. 1983년 ‘그대는 모르시더이다’로 데뷔한 그는 이후 ‘풀잎사랑’ ‘동행’ ‘해우’ ‘기쁜 우리 사랑은’ 등 발표하는 노래마다 큰 히트를 했다. 당시 가수 몸값은 밤무대 출연료로 가늠할 수 있었는데, 그는 단연 최고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90년대 초반 들어 가수 생활에 회의가 생겼다. 1993년 결혼 6개월 만에 이혼하면서 심경이 더 복잡해졌다. 그러던 94년 어느 날, 거실에서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거짓말처럼 성수대교 붕괴사건을 목격했다. 인기고 뭐고 다 부질없다는 회의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95년 버클리 음대로 유학을 결심한 이유다.
“농담 반으로 서태지 때문에 유학을 갔다고 해요(웃음). 최고가 됐다고 생각한 순간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 후배들에게 점점 밀려나는 느낌이 들더군요. 공부를 통해 돌파구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곳에서 작곡을 공부했는데,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것 같았어요. 새벽 공기를 마시며 공부하러 갔다가 한밤중에 돌아오는 게 그렇게 행복하고 뿌듯할 수가 없었죠. 원래는 디플로마만 받고 돌아오려고 했는데 학위까지 받은 건 집사람의 힘이 컸어요. ‘국적은 바뀌어도 학적은 바뀌지 않는다’며 학위를 따라고 독려해줬죠.”
최성수와 결혼할 당시 박영미 씨는 스포츠 의류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박씨의 사업도 타격을 입었다. 여느 아내들 같았으면 하던 공부도 접고 생업으로 돌아가라고 채근했을 텐데, 박씨는 자신이 식당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뒷바라지를 하겠다고 버텼다.
“제가 옆에서 살며 지켜보니까 남편은 가수로서도 훌륭하지만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일에도 재능이 있어 보였어요. 또 가수로서는 최고까지 올라가본 사람인데 그 위치를 계속 유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더라고요. 가수가 아니더라도 자기의 길이 있어야겠다 싶어 학위를 따라고 권했죠.”
어떻게 보면 아내가 길을 인도하고 남편은 순순히 따라가는 순한 양 같다. 현재 최성수는 아내의 바람대로 경기도 수원 장안대 실용음악과 학과장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요즘 아이돌과 오디션 열풍으로 실용음악과의 인기는 날로 치솟고 있는 추세. 최성수는 가수 활동만큼이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보람 있다고 말한다.

최성수·박영미 부부라는 아름다운 늪


“유사 이래 우리나라 음악이 이렇게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적이 없잖아요. 비틀스 음악을 ‘쓰레기’라고 할 정도로 문화적 자존감이 높은 프랑스 사람들까지 K팝 팬이 됐다고 하니 감회가 새롭죠. 그런 열풍 때문에 음악을 하려는 학생들이 급증해서 올해 우리 과 경쟁률이 50대1을 넘었어요. 하지만 그중 아이돌이 되는 건 한두 명 될까 말까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나머지 친구들이 좋아하는 음악 안에서 제 길을 갈 수 있도록 기초를 탄탄하게 다져주는 것이죠. K팝이 인기를 끌수록 음악 비즈니스, 매니지먼트 등 관련 분야에 필요한 인력도 점점 늘어날 거예요. 음악을 아는 친구들이 그 일을 한다면 한류가 더 풍요로워지겠죠.”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데 목소리에 흥이 묻어났다. 이렇게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니 새 노래는 언제 만드나 걱정이 됐다. 그는 자신의 히트곡 대부분을 직접 작사·작곡했다.
“세상은 참 공평해요. 하나가 들어오면 하나가 빠져나가니까 말예요. 예술은 정신적으로 허기진 상태에서 나오는 건데, 저는 모든 게 너무 좋으니까 노래가 안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웃음). 하지만 후회는 없어요. 제 선택으로 공부를 했고, 가정을 일구면서 가수 활동을 등한시했고 그것 때문에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더 큰 사랑을 받고 있으니까요.”
“제가 남편 하나는 잘 만났죠?(웃음). 솔직히 어떨 땐 제가 남편 발목을 잡은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어 미안하기도 해요. 그래도 둘이 마주 앉아 ‘우리 참 잘살았지’ 그런 얘기를 하죠.”

동행 … 기쁜 순간도, 고통의 순간도 진심으로 함께하는 부부

최성수·박영미 부부라는 아름다운 늪

아내가 만든 행복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최성수. 그 덕분에 가수 활동은 소홀했지만 가장으로서의 성공이 더 보람 있다고 말한다.



부부는 지금까지 살면서 부부싸움을 한 적이 없다. 가끔 남편이 사소한 일로 토라지는 일이 있긴 하지만 무딘 성격인 박씨가 모르고 그냥 지나치기 때문에 싸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남편은 가끔 제가 알아서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데 제가 남 눈치를 살피거나 그런 성격이 아니라 모르고 그냥 넘어갈 때가 많죠. 그러다 이상하게 분위기가 안 좋아지는 것 같으면 제가 무조건 잘못했다고 해요(웃음). 그럼 남편도 ‘당신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뭐’ 하면서 슬그머니 화를 풀어요(웃음).”
인터뷰하는 잠깐 사이 지켜보기에도 박씨는 에너지가 넘쳐서 주변까지 좋은 기운을 전해주는 스타일이었다. 박씨는 결혼 후 빌라 건축 사업을 하고 있다. 본인은 “옷 장사를 했더니 재고로 옷이 남더라. 집 장사를 하면 망해도 집은 남겠다 싶어 건축 사업을 시작했다”고 농담 삼아 이야기한다. 하지만 공사 현장에 서 있는 크레인만 보면 가슴이 설렐 정도로 건축 사업에 열정이 있다. 외국에 나가도 여행은 뒷전이고 집 구경에 더 열을 올린다.
“같은 라인에 있는 집인데 왜 가격 차가 날까, 어떤 집이 사람 살기에 편안할까 이런 걸 생각하면서 구경하면 참 재미있어요. 책을 통해 배울 수도 있지만 발품을 팔아가며 직접 배우는 것만 못하죠.”
박씨가 운영하는 회사가 장동건·고소영의 신혼집으로 화제를 모은 흑석동 마크힐스 시행사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부부가 수백억대 자산가라는 소문이 돈 적도 있다.
“어디서 그런 소문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말도 안 돼요. 물론 (돈이) 없다고 하는 것보다는 있다는 소문이 낫긴 하지만(웃음) 그것 때문에 자꾸 불필요한 오해가 생겨서 속이 상해요. 어떤 날은 부자라고 했다가 또 어떤 날은 ‘괜찮냐’고 주변 사람들이 전화를 해서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면 ‘너희 쫄딱 망했다는 소문이 있더라’고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이혼했느냐고 하고….”
부부가 겪었던 최대 위기는 동료 가수 인순이와의 법적 분쟁이다. 인순이가 박씨 회사를 통해 흑석동 빌라에 수십억원을 투자했지만 원금을 돌려받지 못했다며 지난해 최씨 부부를 고소한 것. 하지만 검찰은 지난 5월 이 부부에게 무혐의 판결을 내렸다. 당시 최씨 부부는 진흙탕 싸움을 원치 않아 대응을 자제했지만 그 일로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그 일이 터지니까 가장 먼저 아이들 얼굴이 떠오르더군요. 미국에 있는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우리는 엄마 아빠를 믿는다’고 하더라고요. ‘언론에 보도되면 친구들이 안 좋은 시선으로 볼 수 있을 텐데 괜찮겠느냐’고 했더니 우리 딸이 ‘그 일로 우리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평소 우리 가족을 잘 모르는 사람들일 테니 신경 쓰지 말고 소신껏 대처하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사건을 겪으면서 처음으로 ‘일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했어요. 천직이라고 생각했고, 새벽에 현장에 나갈 생각하면 잠들기 전부터 가슴이 뛰었지만 내 일로 가족이 피해를 받는다고 생각하니 견디기 힘들더라고요.”
“오히려 제가 아내에게 더 미안했어요. 제가 연예인이 아니었다면 그렇게까지 구설에 오르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저는 아내를 믿었어요. (분쟁)상대가 제 오랜 연예계 동료기 때문에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지만 제 아내가 누굴 속이고 감추고 그럴 사람이 아니거든요. 이 사람이 처음부터 좋았던 것도 자신감 있고 당당한 점 때문이었어요. 바탕에 진실함이 없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모습이죠.”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서로 진심으로 위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로맨틱 코미디로 시작했던 부부의 이야기가 교육 다큐로 갔다가 ‘무릎팍도사’ 같은 심경 토로로 이어졌다. 인터뷰를 마친 후 근처 식당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겪은 이야기가 한 편의 시트콤처럼 펼쳐졌지만 지면 관계상 다 싣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이토록 유쾌하며 손발이 척척 맞는 부부가 또 있을까 싶다. 두 사람은 서로의 빈 가슴을 채워주는 최고의 ‘동행’임이 분명해 보인다.

최성수 콘서트 마이 스토리

9월 8일과 9일, 15일과 16일 4일 동안 서울 삼성동 백암아트홀에서 펼쳐지는 최성수의 ‘마이 스토리’는 노래와 아울러 힐링·열정·드림·공감 등 4가지 테마로 꾸며진다. 힐링 콘서트엔 자연주의 살림꾼, 보자기 공예가 이효재와 함께하며 시골의 정취와 감미로운 노래들이 만나 가슴 한구석을 따뜻하게 만들어줄 예정이다. 이야기와 노래, 서정적인 문화와 감동을 목적으로 한 치유 콘서트다.
두 번째 스토리 열정은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의 주인공인 백청강, 이태권, 손진영이 함께하고 드림(Dream)은 최성수와 팝핀 현준, 그의 아내 국악인 박애리 씨가 퓨전 스타일로 꾸민다. 공감을 주제로 준비한 네 번째 스토리는 방송인 박경림과 함께한다. 문의 1544-2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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