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람 선수(오른쪽)는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해 개인전에서의 아쉬움을 털어냈다. 왼쪽은 최인정 선수.
유독 오심 논란이 많았던 2012년 런던 올림픽. 전 세계 모든 선수가 피땀 흘려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고 정당히 실력을 평가받아야 할 신성한 대회에서 사상 최악의 오심에 주저앉은 선수가 있어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국가대표 펜싱 선수 신아람(26)이 그 피해자였다. 1초만 버티면 결승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얄궂게도 그 1초는 세상에서 가장 긴 시간이 됐다. 7월 31일 여자 개인 에페 준결승 경기에서 독일 선수 하이데만의 공격을 치열하게 방어하다 결국 마지막 한 방에 신아람은 패자가 됐다. 심판에게 초시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며 “그 시간이 어떻게 해서 1초냐”고 항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피스트(펜싱 경기가 진행되는 코트) 위를 떠날 수 없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떠나면 판정에 승복한다는 이야기였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결국 피스트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단체전에 출전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압박 때문이었다.
이 모습을 한국에서 지켜보던 그의 어머니는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말도 안 되는 오심에 분노했다. 딸이 걱정됐지만 달려갈 수 없었다. 전화를 할까 하다가 더 힘들어질까봐 문자만 보냈다. 신 선수도 엄마의 걱정을 알았는지 괜찮다고 했다. 며칠 뒤, 잠도 제대로 못 자며 힘들어 하던 딸은 단체전 결승에 올라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신아람은 만감이 교차하는 복잡한 마음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귀국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묻자 그는 가장 먼저 어머니를 찾았다. 어머니 윤지희(48) 씨는 멀리서 딸을 바라보고 있었다. 합숙 훈련이며 대회며 일 년에 몇 번 얼굴 보기도 어려운 데다 올림픽 기간 중 딸이 받은 상처가 안쓰러웠던 어머니는 딸을 웃으며 맞겠다고 결심했지만 결국 모녀는 끌어안고 한바탕 눈시울을 적셨다.
서로에게 너무도 애틋한 모녀
어머니 윤지희 씨와 신아람 선수의 남동생 찬우 씨. 닮은꼴 가족은 서로에게 친구였고 의지되는 한 몸과도 같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폭염이 수그러들고 하늘에 구멍이 난 것같이 폭우가 쏟아지던 8월 여의도에서 윤지희 씨를 만났다. ‘2012 런던 올림픽 선수단 환영 국민 대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전날밤 대전에서 온 윤씨는 아침 일찍 방송 녹화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미녀 검객’ ‘얼짱 검객’이라는 신아람의 별명처럼 어머니 윤씨도 큰 눈이 시원스러운 미모를 자랑했다. 윤씨 곁에는 누나와 얼굴이 똑 닮은 두 살 아래 남동생 찬우 씨도 함께였다. 인터뷰는 어머니를 중심으로 진행됐고, 찬우 씨는 어머니가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채워줬다.
“딸 덕분에 저도 덩달아 ‘신아람 엄마’로 유명해진 것 같아요. 방송사, 신문사, 잡지사에서도 불러주시니까요. 요즘은 직장에서 ‘스타 엄마’라고 불려요.”
신아람은 런던 올림픽 당시 인터뷰 때마다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라는 말을 빼놓지 않고 할 정도로 어머니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과시했다. 정작 국가대표 훈련이며, 소속팀 훈련 등으로 휴가를 받아도 집에 머물 시간이 많지 않아 언제나 애틋하기만 한 딸이라고 했다. 그마저도 윤씨가 직장에서 돌아오면 늦은 밤이어서 밥 한 끼 제대로 차려주지 못했단다. 어머니의 사정을 아는 딸은 한 인터뷰에서 “지금 먹고 싶은 게 있느냐”는 질문에 “밥이랑 햄이요”라고 대답했다. 일하는 엄마가 고생하지 않고 뚝딱 차려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말하는 착한 딸의 마음이 드러난다. 윤씨는 딸이 귀국하자마자 해물탕을 끓여 먹였다.
신아람은 대학 3학년 때 아버지를 잃었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사망 소식. 슬픔도 잠시, 어머니는 가장이 됐다. 원래도 운동을 시킬 만큼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는데, 그나마 신 선수가 장학생으로 한국체대에 입학한 덕분에 운동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신 선수는 대학 졸업 후 실업팀(계룡시청)에 입단해 자신이 받은 월급으로 남동생의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댔다.
“딸이 번 돈을 고스란히 모아놓고 싶었는데, 오히려 딸의 도움을 받고 있으니 아람이가 보내준 돈을 쓰면서 미안함에 가슴이 저리더라고요.”
런던 현지에서 진행됐던 한 인터뷰에서 신아람은 “아버지 노릇까지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윤씨는 “딸이 그렇게까지 큰 부담을 가지고 있었는지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신 선수는 말수가 적은 대신 생각이 깊었다. 4년 전 신 선수는 느닷없이 강아지를 키우자고 했다. 동생이 서울에서 공부해 대전 집에서 홀로 지내는 어머니가 적적할까봐 걱정해서였다. 딸의 빈자리를 채워준 강아지는 윤씨에게 없어서는 안 될 식구가 됐다.
엄마가 반대할까봐 힘들다는 말 못하고 묵묵히 연습만
펜싱은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1896년부터 올림픽 정식 종목이었으나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펜싱은 크게 몸통만 공격할 수 있는 ‘플뢰레’, 마스크와 장갑을 포함한 전신을 찌를 수 있는 ‘에페’, 허리 위쪽으로 찌르기와 베기가 모두 가능한 ‘사브르’ 등 3종목이 있다. 그중 신 선수의 주 종목은 ‘에페’. 에페는 누가 더 먼저 찔렀느냐를 두고 점수가 갈린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던 신 선수지만 몸놀림은 민첩했다. 밖에서 뛰어놀 때는 결코 남자아이들에게 지지 않았다. 철봉에 올라가 거꾸로 매달리는 것도 좋아해 별명은 ‘날다람쥐’. 금산여중 1학년 때, 핸드볼 수업 도중 체육 선생님이 펜싱을 권했다. 흰옷 차림에 마스크를 쓰고 칼을 휘두르는 펜싱부 언니들이 마냥 예쁘고 신기해 그때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딸이 펜싱을 하겠다고 했을 때 달갑지 않았어요. 칼을 가지고 하는 운동이라 위험해 보였거든요.”
학교에서 평균 80~90점의 성적을 받아오던 딸이 운동을 하면서부터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도 반대 이유 중 하나였다. 학교를 찾아가서 선생님과 상의도 하는 등, 운동하는 것을 반대했지만 이미 펜싱의 매력에 빠진 딸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딸은 피스트 위에 올라가면 눈빛이 반짝였고, 발은 더 날쌔게 움직였다. 엄마는 딸을 붙잡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이야기했다.
“‘힘들어도 네가 하고 싶어서 한 거니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데 괜찮겠니’라고 물었어요. 그래도 한다고 하더라고요. 쫓아다니면서 반대하다 결국 제가 포기했죠.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아람이는 힘든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아요.”
2002년부터 대기업에서 비인기 종목인 펜싱을 지원했지만 중·고등학교 펜싱부까지 그 지원이 미치지는 않았다. 펜싱은 검, 마스크, 도복 상하의, 보호대, 메탈 재킷, 와이어, 펜싱 양말, 펜싱화, 장갑, 장비가방 등 풀 세트를 구입하는 데만 수백만원이 든다. 도복은 5년 정도 입을 수 있지만 검은 워낙 잘 부러지는 소모품이라 자주 바꿔줘야 한다. 신 선수는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선배들이 쓰다 물려준 장비로 버텼다.
“평일에는 합숙을 하고, 주말에는 집에 빨랫감을 들고 왔어요. 하루는 새 장비를 물려받았다며 가지고 왔는데 깜짝 놀랐죠. 도저히 새 거라고 하기 어려울 만큼 낡아 있었어요. 그거라도 생겼다고 좋아하는 딸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죠.”
엄마가 운동하는 딸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장비 손질이었다. 펜싱을 할 때는 온몸을 보호 장구로 감싸는데, 땀을 많이 흘리는 부분에 쉽게 곰팡이가 생겼다. 특히 목 부위가 심했다. 주말마다 엄마는 두툼한 솔로 도복 구석구석에 핀 곰팡이를 닦아냈다. 낡은 도복 상하의도 수선했다. 날카로운 칼날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두껍고 질긴 소재 도복은 보통 바늘로는 구멍조차 낼 수 없었다. 이불 꿰맬 때 쓰는 굵은 바늘도 번번이 부러졌다. 딸이 입는 옷인 만큼 예쁘게 수선해주고 싶었지만, 빳빳한 도복은 이런 엄마의 마음을 몰라주었다. 그렇게 엉성하게 기운 도복을 입고도 좋아라 하는 딸이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신 선수는 고등학교 졸업 뒤 한국체대에 단 한 명 뽑는 에페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부담스러웠던 장비들을 지원받게 되자 날개를 단 신 선수는 2006년 국가대표로 선발돼, 도하 아시안게임 에페 개인전 동메달리스트가 됐다. 그리고 2012 런던 올림픽 국가대표로 뛰게 됐다.
지금까지 신 선수는 가족에게 힘들다는 말, 속상하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윤씨도 이런 딸을 담담하게 대했다. 경기가 있을 때면 “잘, 건강하게, 편안하게 해라”라고만 했다. 런던으로 출발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람아, 우리 딸내미. 컨디션만 좋으면 소도 잡는다는 말이 있대’라고 해줬어요. 평소에도 경기 나가기 전까지는 별 말 안 해요. 끝나고 나서야 전화를 걸어 잘했냐고 묻죠.”
피스트 위에서는 누구보다 행복해하던 딸. 어머니는 딸의 그런 모습을 쭉 지켜주고 싶다고 한다.
“아람이가 겪은 억울한 일, 다시는 없기를”
런던 올림픽 여자 펜싱 에페 준결승전. 그 무대를 망쳐버린 오심 사건으로 심판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가족들은 이후 대응 과정에서 더 상처를 입은 듯 보였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아람이가 당한 것과 같은 일이 더는 없으면 좋겠다”는 말로 이 사건을 애써 잊고자 했다.
신 선수는 앞으로 선수 생활과 병행해 대학원에서 이론 공부를 할 예정이다. 딸을 뒷바라지하는 엄마의 바람은 무엇일까. 제일 먼저 남자 친구가 생기면 좋겠다고 한다. 스물여섯인 딸이 칼은 잠시 내려놓고 예쁜 사랑을 키워가기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느껴진다.
“지금까지도 잘 해왔고, 지금처럼 잘 해줬으면 좋겠어요. 큰 아픔을 딛고 내년 세계선수권대회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개인전에서는 보란 듯이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아람이는 우는 얼굴보다 웃는 얼굴이 훨씬 더 예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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