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 작가 홍자매(홍정은, 홍미란)의 기세가 예전만 못하다. ‘쾌걸 춘향’에서 ‘최고의 사랑’까지 내놓는 작품마다 ‘중박’ 이상은 보장한다는 로맨틱 코미디의 대가인 이들이 올여름 월화드라마 대결에서 고전을 하고 있다. 안재욱이 이끄는 전통의 강호 ‘빛과 그림자’가 시청률 20%를 가져가고, 신흥 강호로 등장한 ‘추적자’가 야금야금 10%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서 순한 드라마 ‘빅’이 힘겨워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하지만 KBS2의 드라마 ‘빅’에는 비장의 카드가 있다. 바로 주인공 공유(33)다. 그는 전형적인 조각미남은 아니지만 오똑한 콧날, 작은 얼굴, 긴 목, 넓은 어깨, 탄탄한 등근육과 우월한 ‘기럭지’까지 육체적 매력을 고루 갖췄다. 순수한 소년의 모습과 남성적인 모습을 두루 보여줘야 하는 ‘빅’의 서윤재는 공유를 위해 탄생한 캐릭터다.
‘빅’은 로맨틱 코미디에 판타지를 덧입힌 작품이다. 판타지가 가미된 탓에 스토리의 전개가 쉽지 않다. 기간제 교사로 앞이 깜깜한 미래를 살아가고 있는 어리바리 선생님 길다란(이민정)의 약혼자는 재력과 외모, 스펙까지 모든 것을 다 갖춘 남자 서윤재(공유)다. 다란을 바라보는 또 다른 남자가 있다. 미국에서 전학 온 열여덟 날라리 소년 강경준(신원호)이다. 다란이 약혼자 때문에 가슴앓이 하는 것을 보며 경준은 연민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오토바이를 탄 경준과 차를 탄 윤재 사이에 사고가 난다. 눈을 뜬 경준은 자신의 몸이 아님을 느낀다. 경준의 영혼이 윤재의 몸에 들어가게 된 것. 그 사실을 안 다란. ‘빅’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여기까지 듣고 보면 금세 ‘시크릿 가든’이 떠오른다. 방영 전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공유도 이 부분을 언급했다. “작가를 처음 만났을 때 ‘영혼 체인지’라는 설정이 식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며 “전에 나왔던 작품들과 비교를 안 할 수가 없을 텐데, 소재 자체만 놓고 볼 때에는 큰 차이가 없고 진부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하지만 뒤이어 “대본을 읽다보니 ‘시크릿 가든’과 ‘빅’은 전혀 다른 드라마더라”라고 못 박았다.
“‘빅’은 단순히 영혼이 바뀌는 이야기가 아닌 한 남자가 성장해나가는 점에 초점을 둔 드라마예요. 저도 그 점을 고려해 작품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18세 소년이 세상과 부딪히며 30대의 사랑을 겪는 과정에서 멋지게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봐주시면 좋겠어요.”
개구쟁이 공유냐, 댄디한 공유냐. 극이 전개되면 과연 누구를 사랑하게 될지 궁금하다.
30대 얼굴에 담긴 10대의 표정, 그 오묘함이란!
극 초반 공유가 모든 것을 다 갖춘 완벽한 남자를 연기했다면, 교통사고 이후에는 말투며 행동, 표정까지 자연스럽게 10대를 연기한다. 한 인물이 두 가지 캐릭터를 동시에 소화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터.
“작가는 열여덟 살짜리 남자와 30대 남자의 두 모습을 연기함으로써, 여성 시청자들이 봤을 때 둘 중 누가 더 나을지 고르기 힘들 만큼 매력적으로 표현해달라고 부탁했어요. 영화처럼 매번 찍으면서 모니터링을 할 수 없어 아쉽지만 연기를 할 때 징그러워 보이지 않게, 밉지 않게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빅’에서 경준을 좋아하는 마리 역으로 나오는 수지가 공유에게 ‘삼촌’ ‘아저씨’라 부를 만큼 10대와는 동떨어진 외모를 지녔지만 이번 작품에서 그는 30대 남자가 얼마만큼 귀여워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10대가 자주 쓰는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을 뿐 아니라 소년만이 갖고 있는 급변하는 감정 변화를 자연스럽게 얼굴에 담아내고 있다. 특히 5회(6월 18일 방영)에서 다란은 약혼자인 윤재가 전 여자친구인 세영(장희진)과 자신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친 사실을 알게 됐고, 다란이 세영에게 사실을 확인하러 가려하자 (윤재 몸에 들어간) 경준이 다란에게 소리치는 장면에서 극대화됐다.
“그럼 제대로 해! 문 열어주기 기다릴 거 없이 돌 던져서 창문부터 깨버려. 나오면 선빵(상대에게 먼저 주먹을 날리라는 비속어)부터 날리고. 한 번만 더 홍차 타달라고 찾아오면 홍차가 녹차될 때까지 패준다고 해버려. 질질 짜고 바보처럼 굴기만 해!”
이것은 30대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할 수 있는 언어가 아니다. 극이 진행될수록 인터넷 댓글들이나 SNS를 보면 윤재보다 경준을 연기하는 공유의 모습에 빠져들어 드라마를 보게 된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쯤이면 그의 노력은 성공한 것 아닐까.
‘빅’에서 공유가 연기하는 두 캐릭터는 각각 전작들과 맞닿아 있다. 서윤재는 공유의 대표 흥행작이 된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한결을 떠올리게 하고, 강경준은 초창기 작품인 드라마 ‘건빵선생과 별사탕’에서 그가 연기한 초특급 문제아 태인과 연결된다. 다작을 한 배우는 아니지만 기존에 자신이 연기했던 것들을 재조립해 완결판으로 내놓은 셈이다.
‘빅’은 경준과 윤재가 다시 자신의 몸으로 돌아온 뒤 어떻게 될지 등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산더미다. 급변하는 드라마 전개 속에서 두 연령대를 오가야 하는 공유도 함께 혼란스러울 수 있다. 캐릭터가 얼마나 자신의 역을 인지하고 극 중에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느냐에 드라마의 성공이 달려 있다.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고 지금의 연기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전작 ‘커피프린스 1호점’에 이어 이번 ‘빅’까지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에서 공유라는 이름을 확고히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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