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런 거 싫어요. 그냥 앉을게요.”
11월 중순, 서울 목동 SBS에서 열린 SBS 드라마 ‘내 딸 꽃님이’ 제작 발표회. 진세연, 손은서, 김보미 등 여배우들이 한 줄로 의자에 앉는다. 하나같이 짧은 스커트를 입은 그들은 담요로 허벅지를 가렸다. 그런데 가장 나이가 많은 조민수(46)만은 사양했다. 작은 체구지만 당당한 자세와 눈빛에서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왔다. “열심히 투자해서 관리받는다”는 그의 몸매와 피부는 젊은 배우들 못지않게 탄력이 넘친다. 예쁘고 젊은 후배들 틈에 서 있는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글쎄, 여자라면 누구나 긴장감을 갖고 살지 않나? 이 친구들이 세월(연륜)을 이길 순 없을 것”이라고 맞받아친다.
‘내 딸 꽃님이’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모녀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통해 절절한 가족애를 그린다. 조민수는 대학 시절 불꽃같은 사랑의 아픔을 갖고 있고 친딸이 아닌 꽃님(진세연)을 자신의 딸처럼 아끼는 장순애 역을 맡았다. 박상원과 중년의 로맨스도 펼칠 예정. 조민수의 드라마 출연은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이후 2년 만이다. 방송 나들이가 뜸하다고 하자, 그는 “사랑 이야기를 기다렸다”고 답했다.
“엄마라는 역만 있었다면 이 작품을 택하지 않았을 거예요. 박상원 선배와 ‘모래시계’에서 못 했던 진한 사랑을 펼쳐 아직까지 열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팜 파탈, 코믹한 캐릭터, 연기력을 검증받을 수 있는 배역은 얼마든지 많은데, 왜 사랑 이야기여야만 하느냐고 다시 물었다. 연기 25년 차인 그는 지금까지 집요하리만큼 사랑에 매달렸다. ‘피아노’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등 조연으로 출연한 드라마에서도 그랬다.
“어떻게 보면 드라마와 영화의 기본은 사랑인데, 배우로선 그 부분이 없으면 무척 슬퍼요. 특히 중년 여배우의 역은 늘 모성애에만 초점이 맞춰지더라고요. 하지만 우리 나이에도 사랑을 하고 그걸 더 성숙하게 표현해낼 수 있어요. ‘나이 들면 사랑을 못 한다’는 편견에 대한 오기랄까, 그런 것에 대한 발버둥으로 사랑에 더 집착하게 되는 것 같아요.”
중년에도 사랑을 하고, 더 성숙하게 표현할 수 있어
조민수는 ‘내 딸 꽃님이’에서 박상원과 중년의 로맨스를 선보인다. 오른쪽은 그가 직접 짠 니트 카디건.
현실에서의 사랑은 난항 중이다. 그는 2005년 네 살 연상의 사업가와 결혼했으나 4년 만에 이혼했다. 이후 새로운 사랑을 찾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어떻게 보면 지나온 세월이 있기 때문에 다시 실수를 하는 게 두려워 신중해지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많았는데, 지금은 접근해오는 남자도 많지 않고(웃음). 하지만 끊임없이 원하고 있어요.”
이렇게 말하는 그는 천생 여자다. 제작 발표회에 앞서, 드라마 출연자들이 SBS가 진행하는 스타 경매 행사에 내놓을 물품을 공개했는데, 조민수는 직접 짠 니트 카디건을 내 놓았다. 방울이 조르르 달린 흰색 카디건은 고급 브랜드 제품이라 해도 믿길 만큼 정교했다.
“뜨개질을 배운 적은 없고 다른 사람이 하는 걸 어깨너머로 보니 어떻게 뜨는 건지 대충 감이 잡히더라고요. 배우들은 촬영장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기니까, 그때 뜨개질을 해요. 또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이 있는데 빨리 지워버리고 싶을 때, 그때도 뜨개질을 하고요. 제가 뜬 옷을 한 번도 다른 사람한테 준 적이 없는데 이번엔 좋을 일에 쓰인다고 해서 내놓게 됐어요.”
자신이 짰다는 카디건을 두르자 조민수는 화사하게 빛났다. 나이 들면 젊은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슬그머니 뒤로 물러서는 여느 배우들과 달리 조민수는 시종일관 당당해서 더 아름다웠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