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9일 오후 여의도 KBS 라디오홀 무대는 ‘남자의 자격(이하 남격)’ 청춘합창단원들이 차지했다. 단원들 사이로 이경규·김국진·양준혁·이윤석·전현무·윤형빈 등 익숙한 얼굴들도 눈에 띄었다. 무대 위에 세 줄로 늘어선 합창단원들은 ‘남격’ 멤버 6명을 포함해 모두 45명. 멤버들을 제외한 단원들은 1960년 이전 출생자들(평균 나이 62.3세)이란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활기가 넘쳤다. 지나가는 농담 한마디에도 ‘까르르’ 웃음을 쏟아내는 여성 단원들의 모습은 흡사 사춘기 소녀 같았다. “매주 볼 때마다 젊어지시는 것 같다”는 보컬 코치 임혜영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오디션 때부터 뛰어난 가창력과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로 화제가 된 서울시립합창단 출신의 ‘꿀포츠’ 김성록씨는 이날 연습에 불참했다. 조성숙 PD는 “허리가 안 좋아 지방에서 여기까지 장시간 차를 타기가 부담스러워 못 나올 것 같다고 말하고 오늘만 결석했다”고 전했다.
노래는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 만나자마자 급속도로 가까워진 어르신들
지난 7월 초 첫선을 보인 청춘합창단 특집은 인생의 중반을 넘어선 참가자들의 사연과 오디션 과정을 잔잔히 전하며 호평을 받고 있다. 제작진은 9월24일 열리는 전국민합창대회까지 합창단의 도전 과정을 카메라에 담을 계획이다. 지금은 매주 화요일에 모여 연습하지만 대회가 가까울수록 연습 횟수가 늘어날 것이라는 게 조 PD의 설명. 그는 “처음 시작할 때 의구심이 많았다. 도대체 어떻게 풀릴까 고민이 많았는데 흘러가는 대로 정리해서 방송을 만들고 있다. 감동을 준다는 방향성이 있는 건 아니지만 시청자들이 다른 예능에서 볼 수 없는 재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이날 합창단은 지휘자 김태원의 자작곡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를 중점적으로 연습했다. 단원들은 지휘를 맡은 김태원의 손끝에 시선을 맞추며 소리를 가다듬었고 쉬는 시간에도 함께 악보를 보며 자신이 부를 파트를 확인했다. ‘남격’ 멤버 중 가장 맏이인 이경규는 “노래를 좋아하는 분들이 모여서 그런지 서로 급속도로 친해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는 가스펠과 가요, 합창을 섞은 곡으로 연습에서 후반 독창은 최고령자인 노강진씨(84)가 맡았다. ‘연륜이 묻어나는 음색’이라는 보컬 코치 박완규의 평가처럼 노씨의 목소리는 화려하진 않지만 잔잔한 울림을 선사했다. 첫 곡 연습이 마무리되자 두 번째 미션곡인 아이돌 메들리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제작진이 투애니원의 ‘I don’t care’, 소녀시대 ‘지니’, 아이유 ‘잔소리’, 2PM ‘하트비트’, 샤이니 ‘링딩동’ ‘루시퍼’, 시크릿 ‘샤이보이’, 지드래곤 ‘하트브레이커’, 2AM ‘죽어도 못 보내’ 등 총 9곡으로 구성된 메들리를 들려주자 한 여성 단원은 흥에 겨운 춤사위를 선보였고 단원들은 그간의 피로를 잊은 듯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전현무 아나운서가 “단원들 중에는 이 노래들을 처음 듣는 분들도 계시다. 예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연습량을 소화할 수 있을까 싶다”고 걱정을 드러내자 김태원은 “나도 50%는 처음 듣는 노래인데 각자 파트를 분담해서 연습하기 때문에 시간은 촉박하지 않다. 부담감을 최소화할 예정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아이돌 곡을 택한 배경에 대해 “28년 동안 음악을 하며 살아왔지만 사실 나조차도 아이돌의 음악에 편견을 가지고 있던 게 사실이다. 이번 기회에 노래를 자세히 들어보니 역시 히트곡에는 이유가 있다는 걸 느꼈다. 2AM ‘죽어도 못 보내’ 같은 경우 그 가사와 멜로디가 좋고 훌륭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휘를 맡으면서 ‘지휘자는 단원들과 눈을 마주쳐야 한다’는 이경규의 조언에 따라 트레이드마크였던 짙은 선글라스의 색깔도 옅게 바꿨다. “청춘합창단은 합창 미션이자 김태원의 지휘 미션이기도 하다”는 김국진의 말처럼 김태원은 청춘합창단을 통해 지휘라는 낯선 분야에 도전했다.
합창단 연습을 하기 전 몇 시간씩 따로 지휘 개인지도를 받는다는 그는 “이제껏 누구한테 배우면서 음악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배우는 희열을 느끼고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제가 클래식을 전공한 게 아니기 때문에 처음에는 부담이 많이 됐어요. 천성이 게을러 뭔가 배우는 걸 싫어해 처음에는 지휘가 가시방석이었는데 이제는 화요일이 기다려집니다. 이분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드리는 게 제 역할입니다.”
합창단 주연은 어르신들, ‘남자의 자격’ 멤버들은 조연
뮤지컬 배우 임혜영과 함께 보컬 코치를 맡고 있는 박완규는 ‘합창단원들의 개인적 성량과 버릇을 모두 파악할 정도로 몰입하고 있다’는 이윤석의 전언대로 쉬는 시간에도 단원들과 일일이 대화하며 부족한 부분을 짚어줬다. 그는 관심이 쏠리고 있는 솔리스트 선정 기준에 대해서는 “아직 확정된 분은 없다. 본인의 실력과 곡 해석력, 융화력 등을 보고 최종적으로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보컬 코치답게 ‘남격’ 멤버들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평가를 내렸다.
“양준혁씨는 목소리가 우렁차고 전현무씨는 고운 목소리로 테너 파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경규씨는 좋은 베이스 소리를 내고 있어요. 윤형빈씨는 테너에서 베이스로 이동했는데 젊어서 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김국진씨는 소리가 제대로 나오는 관을 갖고 있고 이윤석씨는 너무 열정적이에요. 턱이 빠질 정도로(웃음).”
임혜영은 본격적인 연습에 앞서 몸 풀기 운동을 지도하며 단원들의 긴장을 풀어줬다. 임혜영의 나긋나긋한 태도와 시원한 미소에 단원들로부터 ‘며느리 삼고 싶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방송 출연 후 출연 중인 뮤지컬 ‘그리스’가 매진이 됐다는 임혜영은 “주변 사람들이 예능은 장난이 아니라고 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남격’ 멤버들도, 어르신들도 모두 좋은 분들이라 방송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날 연습현장에서 ‘남격’ 멤버들은 간간이 한마디씩 할 뿐 스포트라이트를 단원들에게 양보하고 조연을 자처했다. 이경규는 “우리 역할은 구슬을 연결하는 선 같은 존재”라며 “우리 6명이 선을 잡아줌으로써 구슬 같은 분들이 노래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윤석은 “어르신들과 같이 노래를 해보니까 살아온 시간이 헛되거나 사라진 게 아니라 목소리에 남아 있다는 걸 매번 느낀다. 2~3시간 연습하면 나는 지치는데 어르신들은 지치지 않는 걸 볼 때마다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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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말말
1 “언제 떠올려도 아름다운 추억이 됐으면…”(김태원)
“지난해 ‘하모니’ 편이 워낙 센세이션을 일으켰기 때문에 부담이 많이 됐다. 하지만 살아온 날들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정도는 역경이라고도 할 수 없다. 자작곡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는 어떻게 보면 종교적일 수도 있는데, 나는 천국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종교가 없어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곡으로 만들려고 했다. 나는 추억을 소중하게 여긴다. 합창단원들께는 대회 입상보다 지금 연습하는 순간들이 매우 아름답게 각인될 것이다. 뭔가를 가르치는 차원이 아니라 언제 어느 때 생각해도 아름답게 해드리려고 한다.”
2 “합창단을 뒤에서 지휘하는 사람은 나다”(이경규)
“합창의 생명은 단원과 지휘자가 서로 눈을 마주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내가 김태원에게 안경 색깔을 빼라고 했다. 그렇다고 갑자기 색깔을 빼면 보는 사람들이 당황하니까 서서히 색을 줄이고 있다. 박완규에게는 아예 선글라스를 벗으라고 했다. 선한 사람인데 선글라스 때문에 인상이 강하다. 선한 모습을 보여야 합창단원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처럼 자잘한 지휘는 내가 하고 있다(웃음).”
3 “립싱크 하려고 했는데…”(전현무)
“노래는 자신 없어서 민폐 끼치지 않으려고 립싱크를 했는데 아카펠라를 하는 바람에 바로 티가 났다. 이번 기회가 노래 실력을 키우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고 있다. 처음에는 묻어가려고 시작했는데, 지금은 합창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려고 한다.”
4 “타율로 치면 3할까지 끌어올리겠다”(양준혁)
“내가 이렇게 노래를 못하는 줄 몰랐다. 합창단을 시작하기 전에는 악보 보는 법도 몰랐는데 하나하나 배우면서 하니까 조금씩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고 있다. 타율로 치면 1할5푼에서 2할8푼까지 끌어올렸는데 3할까지 끌어올리려고 열심히 하고 있다.”
5 “어르신들이 소년 소녀 같다”(임혜영)
“항상 긴장하고 어르신들 마음이 안 다치게끔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있다. (아이돌 메들리 안무를 준비하고 있는데) 젊은 사람들 노래이니만큼 움직임이 빨라서 단원들이 쉽게 따라올 수 있도록 안무를 구성할 계획이다. 연극적인 요소를 넣는 것도 검토 중이다. 율동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어르신들과 피부로 많이 부딪힐 거 같은데 어떻게 짤지 고민 중이다. 계획된 건 없지만 어르신들 마주칠 때마다 눈을 보고 어떤 마음인지를 읽고 반응하려 한다. 일단 좀 더 따뜻하고 편안하게 하는 게 목표다.”
“어르신들과 같이 노래를 해보니까 살아온 시간이 헛되거나 사라진 게 아니라 목소리에 남아 있다는 걸 매번 느낀다. 2~3시간 연습하면 나는 지치는데 어르신들은 지치지 않는 걸 볼 때마다 존경스럽다.”(이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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