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 화백(75)의 일흔다섯 번째 생일인 6월24일,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이 화백의 회고전이 개막됐다. 석 달간 열리는 이번 전시는 후기 미니멀리즘 미술의 가능성을 확장한 이 화백의 창작물 90여 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한국에서 태어나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일본에서 살고 유럽에서 작품 활동을 한 그는 낯선 환경에서 오는 불안감 때문에 ‘만남’과 ‘시간’ ‘순환’이란 주제에 천착하며 회화와 설치 작업을 해왔다.
이 화백의 회고전 ‘무한의 제시’는 2000년 비디오 아티스트 고(故) 백남준 회고전 이후 구겐하임에서 두 번째로 열리는 한국 작가의 전시. 이를 기획한 알렉산드라 먼로 수석 큐레이터는 “최근 세계 미술계에서는 모더니즘의 과거를 돌아보며 비(非)미국 작가의 작품을 발굴하는 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면서 “이우환은 이런 맥락에서 지금 세계가 가장 주목하는 작가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기진맥진한 대중에게 ‘고요함의 오아시스’ 선사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은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작품으로 그 자체만으로도 예술성을 인정받는 곳이다. 하지만 공간이 나선형으로 6층까지 이어지는 탓에 이곳에서 전시를 여는 작가들은 작품을 배열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전시를 앞두고 진행된 ‘작가와의 대화’ 시간. 이 화백은 “구겐하임은 내가 바라던 장소”라는 뜻밖의 발언을 했다.
“처음에는 비스듬하고 벽도 평탄치 않은 공간이어서 혼란스럽게 느껴졌지만 내 작품을 더욱 생동감 있게 보여줄 것 같습니다. 구조가 안과 밖을 구분하기 힘든 애매한 공간이다 보니 평생 고민해온 경계 구분 문제에 대해 실험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죠. 작품과 공간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내 몸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1층부터 6층까지 이어지는 곡면의 벽에 작품을 배치하는 데만 꼬박 22일이 걸렸다. 관람객의 동선을 고려, 일정한 기법으로 점을 반복해 찍거나 한번에 획을 내려 그은 작품부터 점 하나로만 표현하는 최근 회화 작업을 이어놓았다. 또한 비탈진 복도 사이에는 설치 작품을 놓았는데, 평소 전시관과 가까운 곳의 돌을 활용해 설치 작품을 만들던 그는 이번 전시를 위해 뉴욕 주 롱아일랜드까지 가서 돌을 채집해왔다.
동양의 미학을 담아낸 이번 전시는 현지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올여름 구겐하임은 피곤하고 기진맥진한 대중에게 고요함의 오아시스를 선사한다”는 내용의 전시 리뷰를 실으며 이우환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세계 미술의 중심에 우뚝 선 이우환 화백, 치열한 세월을 보낸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우환 화백은 나선형으로 이어진 구겐하임미술관의 특징을 고려해 작품을 생동감 있게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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