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던 3월 초순, 경기도 수원 자택에서 조연배우 차광수(46) 가족을 만났다. TV에서 보이는 ‘젠틀한’ 이미지대로 차광수는 미리 식탁에 찻잔과 과자를 준비해 두고 취재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따뜻한 녹차 한 잔을 거의 다 마셔갈 무렵 유치원 음악교사로 활동 중인 아내 강수미씨(42)가 부랴부랴 집으로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중학교 1학년인 아들, 승용군이 활기차게 집안으로 뛰어 들어오며 아빠에게 안겼다.
이렇게 오후 6시만 되면 온 가족이 한데 모여 오붓한 시간을 보낸다. 촬영이 늦게까지 있는 날을 제외하고 차광수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 최근에는 아내와 함께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현재 촬영 중인 SBS 일일드라마 ‘호박꽃 순정’에서 ‘춤바람 난’ 연기를 하면서 탱고를 배웠는데, 부부가 같이하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남편은 운동신경이 좋고 원래 춤을 잘 추는데, 저는 몸치라서 따라 하기 힘들어요(웃음). ‘슬로슬로 퀵퀵’ 기본스텝도 쉽지 않더라고요.”
차광수는 20년 전 동국대 연극학과 후배인 탤런트 유준상과 우연히 댄스대회에 참가해 상을 받은 에피소드를 소개해줬다. 나이트클럽에서 유준상의 입영전야 모임을 갖던 중 당시 가수 박남정이 출전해 우승한 ‘댄스 댄스 댄스’ 서울 예선전이 진행됐다.
“본선 진출자를 뽑는 순간이었는데, 준상이의 기분을 좀 돋워주려고 같이 갔던 친구가 즉석에서 참가 신청을 했어요. 저와 준상이가 나갔는데 그때 한창 학교에서 재즈댄스, 현대무용, 발레 등을 배우고 있던 터라 리듬감은 괜찮았죠(웃음). 마침 영화 ‘더티댄싱’이 유행할 때여서 그 춤을 흉내 내서 준상이를 하늘로 띄웠다가 다시 받고, 무릎을 꿇고 스타카토로 뒤로 넘어졌다가 올라오고, 텀블링해서 뛰고 재즈 턴으로 돌고, 지금 생각해도 참 재밌었어요. 그렇게 한바탕 출 수 있는 춤은 다 보여줬더니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고, 결국 동상과 인기상을 동시에 탔어요. 본선 진출권을 따냈지만 다음날 준상이가 군대를 가면서 다음 대회는 못나갔죠(웃음).”
공부와 아르바이트 병행하며 연기자의 꿈 키워
91년 MBC 공채탤런트로 연기생활을 시작한 그는 군대에 있으면서 배우의 꿈을 키웠다. 연출자가 되려고 연극학과에 입학했지만, 홀어머니와 동생들을 부양해야 하는 고학생이었던 탓에 연기자란 직업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돈을 빨리 벌 수 있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대학교 3학년 1학기 재학생 중에서 유일하게 공채 탤런트 시험에 합격, 작은 역부터 시작해 점점 배역의 비중을 늘렸다. 그리고 20여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그는 어떤 배역이든 맛깔스럽게 표현해내는 베테랑 연기자가 됐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만 해도 그는 지금 자신의 모습을 상상조차하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집안의 실질적 가장 노릇을 해온 그는 고1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찹쌀떡 장사, 호프집 아르바이트, 포장마차 운영 등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당시 그에게 대학 진학은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었다. 친구들은 대학 캠퍼스를 누비며 청춘을 노래할 때, 그는 복사 인쇄 기술을 익혀 서울 혜화동 성균관대 앞에 복사가게를 차렸다. 마침 친한 친구의 누나가 그 옆에 햄버거 가게를 차리자 오후에는 그곳에서 지배인 노릇을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대학 입학의 꿈을 이루게 해준 은인을 만났다.
“당시 친구 누나의 남자친구가 대리사장으로 왔는데, 그 형이 어느 날 같이 등산을 가자고 했어요. 눈이 많이 오는 날 전북 완주에 있는 대둔산에 올랐죠. 우여곡절 끝에 정상에 오르니까 감회가 새롭고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것 같았어요. 그때 형이 간절히 바라는 소원이 있으면 저 산에 대고 외쳐보라고 하더군요. 그때 저도 모르게 ‘대학에 가고 싶어요’ 하는 말이 튀어나왔어요. 그날 제 마음을 알아챈 누나네 커플이 한 달 뒤 제 앞에 입시학원 수강증을 내밀면서 대입시험을 준비하라고 하더군요.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났어요.”
공부를 하더라도 생계는 책임져야 했기에 일을 접을 수는 없었다. 대신 햄버거 가게 사장의 배려로 오후 5시까지는 학원 수업을 듣고 그 이후부터 가게에서 일을 했다. 또 밤 10시에 가게 문을 닫으면 집에 가지 않고 그곳에서 학원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하며 새벽까지 공부를 했다. 식사는 매일 햄버거였다. 학원에 도시락을 싸갈 형편도 못돼 매일 아침 그는 햄버거를 10개씩 만들어 학원 친구들의 도시락과 바꿔먹거나, 싼값에 팔아 점심값을 마련했다. 물론 동생들에게 줄 햄버거는 따로 남겨뒀다.
연예계에서 애처가로 소문난 차광수는 매일 아침 정성스럽게 식사를 챙겨주는 아내에게 진심어린 고마움을 표했다.
1년 뒤 그는 동국대 연극학과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때 연극반 활동을 한 경험도 있었고, “어떻게든 대학에 붙고 봐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연극학과를 지원했다. 다행히 4년 내내 장학생으로 선발돼 무리 없이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승부욕이 강하고 부지런한 성격인 그는 신인시절에도 ‘열심히’ 연기했다. 수습기간 중 미션을 잘 수행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도 그의 차지였다. 그는 “우리 기수 교장선생님이었던 이병훈 PD에게서 금시계를 선물로 받았다”며 웃었다.
그는 ‘여명의 눈동자’ ‘우리들의 천국’ ‘우리들의 천국 2편’ 등에 출연하면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해, 93년 MBC 베스트극장 ‘명궁’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다. ‘명궁’은 그에게 주연 자리를 안겨줌과 동시에 평생 배필, 아내를 만나게 해준 작품이기도 하다. 당시 중앙대 국악관현악단에서 거문고 연주가로 활동한 아내가 지방순회공연 중 숙소에서 우연히 ‘명궁’을 보게 됐는데, 화면 속 차광수의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한 것. 더욱 극적인 것은 다음날 두 사람의 만남이 실제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친구 집에 놀러갔는데, 친구 여동생의 친구가 놀러왔더라고요. 그 친구가 바로 아내예요(웃음). 잠깐 얼굴을 봤지만 첫눈에 호감이 가더라고요. 아내가 돌아간 뒤 친구한테 ‘네 동생 친구 중 저런 미인도 있냐’고 했더니, 친구 어머니께서 직접 중매를 서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에 용기를 내서 친구 동생에게 ‘8282’라는 숫자를 찍어 삐삐를 쳤어요. 바로 전화가 와서 ‘좋은 데서 밥을 사 줄 테니, 아까 그 친구와 꼭 함께 나와라’ 하고 말했죠(웃음). 밥을 먹으면서는 말수도 적고, 여성스러운 아내 모습이 참 예뻐 보였어요.”
“처음 남편을 보고 정말 놀랐어요. 어제 TV를 보면서 괜찮다고 생각했던 사람인데, 그 사람이 바로 제 눈앞에 있으니까요. 더군다나 저한테 관심을 보이니까 어리둥절하면서도 기분 좋았어요(웃음).”
두 사람은 이내 연인 사이로 발전했고,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할 정도로 뜨거운 연애를 했다. 그리고 95년 마지막 달에 결혼식을 올렸다. 여전히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때였지만, 아내는 남편의 성실하고 진솔한 모습을 믿었다고 한다.
“남편이 연예인이라고 거드름 피우고, 허황된 모습을 보였다면 결혼까지 결심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그때만 해도 연기자란 직업에 대해 편견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남편이라면 뭐든 믿음이 가더라고요. 물론 지금도 톱스타는 아니지만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인정받고, 꾸준히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남편이 자랑스럽고 고마워요.”
차광수 역시 모든 공을 아내에게 돌렸다. 지금껏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자신을 위해, 그리고 가정을 위해 애써준 아내가 있었기에 마음 편하게 일을 할 수 있었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 자신이 후배 연기자들 사이에 퍼뜨렸다는 ‘국밥론’에 대해 들려줬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침밥상에 국과 밥이 빠진 적이 없어요. 요즘 아침밥 얻어먹고 나오는 남자들이 많지 않다는데, 그런 면에서 저는 정말 복 받은 거죠. 아침마다 아내의 칼질 소리,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를 들으면 절로 행복해지거든요. 얼마 전 ‘호박꽃 순정’ 회식 자리에서 이 얘기를 했다가 후배들로부터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어요(웃음).”
올해로 21년째 연기자의 길을 걸어오고 있는 그의 인생에서 단 한 번의 외도가 있었으니 바로 골프다. 골프 티칭 프로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을 정도로 골프 마니아인 그는 연예계에서도 골프 잘 치는 연기자로 유명하다. 한때 골프연습장 사업에 빠져 있던 적도 있지만, 이내 본업은 연기임을 깨닫고 허튼 꿈을 접었다.
“친척분의 도움으로 골프연습장을 차려볼까 했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일단 투입되는 자본이 워낙 커서 취미 삼아 부업으로 하기에는 한계가 있더군요. 제대로 하려면 본업인 연기를 포기하고 사업에만 매진해야 하는데, 그건 애초 제가 바라던 일이 아니에요. 결국 고민 끝에 원래 제 자리로 돌아왔죠(웃음).”
“매 순간 즐기기에도 인생은 짧다”
그간의 방황을 끝내고 ‘호박꽃 순정’으로 2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 그는 요즘 함께 출연 중인 선배 탤런트 임현식을 보며 많은 깨달음을 얻는다고 한다. 빛나는 조연이란 어떤 것이지, 연기자로서 어떻게 나이 들어가야 하는지 인생 공부를 제대로 하는 느낌이라고. 차광수는 “지금껏 연기를 천직이라 생각했는데, 임현식 선생님을 보면서 다시금 좋은 연기자의 조건이 무엇인지 배우게 됐다”고 말한다.
“극중 제 아버지로 나오시는데 촬영장에서 언제나 밝고 긍정적인 모습이세요. 요즘 임현식 선생님을 뵙는 게 낙일 정도로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그런 분이에요. 가장 강조하시는 게 하루하루를 기쁘게 살라는 거예요. 지난번에는 ‘광수야, 매순간 즐기기에도 인생은 짧다. 그런데 왜 다들 그렇게 심각하니. 즐겨라. 즐겨’ 하면서 허허 웃으시는데 참 보기 좋았어요.”
행복하게 연기하는 것, 앞으로 그가 꿈꾸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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