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을 넘기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조혜정 감독(57)을 만나고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넉넉하고 푸근한 첫인상처럼 대화를 나눌수록 마음이 편안해졌다. 조 감독은 지난 5월 큰 수술을 받았다. 선수들과 친해지려고 축구 경기를 하다가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사고를 당한 것. 퇴원 후 한 달이 지났지만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으리라 짐작되었다. 팀을 맡자마자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사고가 났으니 좋지 않은 징조라고 느꼈을 것도 같다.
“저는 긍정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성격이라 생각을 빨리 바꿨어요. 너무 성급하게 가지 말라는 계시구나, 과욕하지 말고 천천히 가자고 생각했습니다. 병원에 있는 동안 하루 종일 비디오만 봤어요. 선수들의 작년 시합 자료인데 나름 좋은 시간이 됐습니다. 같이 축구하자고 떼를 썼던 선수들이 죄송하다고 문자까지 보냈으니 가까워진 계기도 됐고요(웃음).”
여성 감독에 대한 인식 많이 바뀐 것 느껴
조혜정 감독은 GS 칼텍스서울 KIXX 배구단 감독 제의를 받고 일주일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칫 잘못해 후배들 진로에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오랜 고민 끝에 지금 여자 배구가 변화해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어 결정하게 됐습니다. 다행히 선수들이 여성 지도자를 긍정적으로 받아줘 고맙고 흥분됩니다.”
2010년 이제야 여성 감독이 탄생하다니, 프로스포츠 세계가 생각보다 더 보수적이고 냉정하다 했다. 조 감독은 “과거에는 여자 선수들도 여자 감독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여자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선수들이 작은 부분까지 간섭받고 싶지 않아 꺼려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감독에 선임됐을 때 주변의 냉랭한 시선을 느꼈고, 그가 선임한 남성 코칭스태프들은 여성 감독 밑으로 가냐는 비아냥거림도 들었다고 한다. 그는 “남자들도 실수를 하는데 여자가 실수를 하면 바로 실패로 몰아간다”고 말했다.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선수들을 마주한 그는 크게 놀랐다고 한다. 선수들의 인식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생각이 많이 프로화됐다. 이전에는 감독은 자신을 끌어주는 사람,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하는 존재로 생각했다면, 이제는 자신을 도와주는 스태프라고 생각한다”며 “의식이 바뀐 만큼 여자 선수들도 곳곳에 진출할 기회가 많이 주어질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혜정 감독이 감독직을 수락했을 때 누구보다 기뻐한 사람은 프로골퍼로 활동하는 두 딸 조윤희(28)·윤지(19)였다.
“엄마, 축하해. 엄마가 이제 우리 집 서열 1위야.”
조혜정 감독이 선임됐을 때 큰딸이 한 말이다. 조 감독은 “큰딸이 가족 모두가 선수 출신이니 재미삼아 우리 집 서열을 정한다”며 “얼마 전까지 둘째 딸 윤지가 1위였고 내가 2위였는데, 감독이 됐다고 1위로 올려주더라”며 웃었다.
어려운 환경, 작은 키 극복한 ‘나는 작은 새’
조혜정 감독의 남편은 삼성라이온즈 야구코치를 지낸 조창수씨(61)다. 조 감독은 “모두가 축하한다고 하는데 딱 한 사람, 남편이 축하 말을 안 했다”며 “감독 선임이 되고 나서, 내가 잠든 줄 알고 손을 꼭 잡더라. 본인도 야구를 했기 때문에 가야 할 길이 멀고 험하다는 것을 알기에 안쓰러워한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조혜정 감독은 감독으로 선임되기 전 공백기 동안 두 딸을 뒷바라지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뒤 은퇴한 그는 고교 배구부 코치, 비치발리볼사무국장 등으로 활동했지만 첫째 윤희가 골프에 잠재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뒷바라지에만 전력하기로 뜻을 굳혔다. 자신은 두 가지 이상에 몰입하는 멀티플레이형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 딸이 중3이 되던 해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고 10년간 대구에서 냉면집을 운영했다. 2008년 한국배구연맹 경기운영위원 일을 시작하면서 배구계로 돌아왔고 이제는 배구에만 몰입할 작정이다.
세계무대에서 뛰던 조 감독인 만큼 딸들에 대한 기대도 크지 않을까. 그는 “울타리를 크게 만들어주되 영향력은 줄이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의 딸로서 영향력이 생긴 모양이다”며 “큰아이가 울면서 나는 세계에서 3등을 해야 본전이라고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저는 노력형이라 목숨을 걸고 했어요. 그런데 큰아이는 ‘나는 지금도 행복하다. 너무 즐겁다’고 해요. 큰아이는 저처럼 하지 않으면 야단도 치고 했는데, 작은아이는 시행착오를 겪은 후라 칭찬해주고 의논하고 그래요. 그 덕분에 훨씬 더 행복하게 선수생활을 하는 것 같아요.”
두 딸을 통해서도 요즘 선수들의 특징과 지도 방향을 깨닫는다는 그. 그에게 자신이 감독으로서 성공하는 것과 딸이 프로골퍼로서 성공하는 것 중 무엇이 더 기쁘겠냐고 짓궂게 물었다. 조혜정 감독은 “배구로 성공하는 게 더 기쁘다. 이건 내 인생이고 딸 성공은 딸 인생이다”며 웃었다.
딸과 자신의 성공을 정확히 가르는 냉정한 엄마,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여자 배구 동메달의 주역이었던 조혜정 감독은 선수 시절 져본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뛰어난 선수였다. 선수 시절 이야기가 나오자 “그때 했던 플레이 하나하나를 다 기억한다”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당시에는 절박한 마음이 더 컸다.
“모든 경기를 역전승했어요. 우리나라 여성의 끈기와 투지를 보여줘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너무 절박하게 승부에 매달려서 이젠 가위바위보도 안 해요. 오죽하면 스물세 살 때 그만뒀겠어요. 당시 분위기는 북한과의 경기에서 지면 못 돌아가나 싶었던 때예요. 숙소 17층에서 떨어져야 하나 싶고, 나 때문에 졌다고 자책할 때도 있었죠.”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따고 나니 할 걸 다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메달 자체보다 그것을 따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더 소중했다”며 “다시는 그만큼 최선을 다할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했기에, 세상 사는 데 두려운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이 악물고 운동한 예전 세대와 달리 즐기며 운동하는 후배들
그의 배구 인생은 좌절과 극복을 오가는 한 편의 드라마 같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반에서 달리기를 가장 잘한다는 이유로 배구선수가 됐다. 운동은 깡패나 하는 일이라며 어머니는 교문 앞까지 찾아와 말렸지만 그는 배구가 너무 재밌었다고 한다. 야단을 맞고 몸이 힘들어도 관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결국 1년 후에 어머니는 그의 첫 팬이 됐다.
조혜정 감독에게 늘 걸림돌이 됐던 것은 164cm라는 작은 키였다. 숭의여고 배구팀에서 마지막 해에 전승을 했지만 실업팀 선발에서 ‘키가 작아 고등학교용’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실업팀에서 결국 최우수상을 타며 그 편견을 깼지만 국가대표 선발에서도 ‘국내용이지 국제용이 아니다’라는 벽에 부딪혔다. 조 감독은 “오죽하면 고등학교 때 정형외과에 가서 5cm만 크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겠냐”며 웃었다.
“돌아보면 전화위복이 됐어요. 작은 키를 극복하려면 점프를 하고 정점에서 스파이크를 하는 방법밖엔 없겠더라고요. 절묘한 타이밍을 찾아야 하니 개인 연습을 죽어라 했습니다. 휴가를 주면 그 타이밍을 잃을까봐 걱정이 돼서 하나도 즐겁지 않았어요.”
이런 노력 덕분에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고 외신들은 그에게 ‘나는 작은 새’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조 감독은 “작은 키가 서러움의 원인이었는데 나중에는 근사한 별명이 붙더라”며 웃었다.
조혜정 감독을 서럽게 했던 또 하나는 어려운 가정형편이었다. 홀어머니와 떨어져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용돈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었다. 친구들이 버터빵을 먹을 때 자존심이 상해서 밖에 나가 있었던 적도 있었다.
“집에 가면 늘 어려운 엄마를 보는데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마음이 아팠어요. 제가 어릴 때 장티푸스를 앓았는데 병원에 데려가지 못해서 오른쪽 귀가 잘 안 들려요. 그게 엄마에게 한으로 남아 밤마다 우셨어요.”
조 감독은 요즘 후배들과 프로골퍼인 두 딸을 보면서 많은 것이 변했다고 느낀다. 그는 “우리 때 운동은 어렵고 처절한 환경에서 신분 상승을 꿈꾸며 했다. 연습하기 전에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했다”며 “요즘 선수들은 즐기면서 운동을 하되 자기 일이라 생각하며 최선을 다한다. 그러다 보면 좋은 결과가 따라오는 거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일주일에 두 번 음대생을 불러 선수들과 합창 시간을 가지고, 최신 댄스를 배우는 수업 시간도 만들었다. 일상이 즐거워야 시합도 즐길 수 있다고 믿기 때문.
선수들이 신나는 배구, 관중이 보고 싶은 배구, 단체·기업 등이 직접 하고 싶은 배구. 조혜정 감독이 꿈꾸는 배구의 미래다. 그는 “관중과 팬이 없는 프로스포츠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다. 자성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앞날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혜정 감독이 현재 집중하는 것은 기본기연습과 동기를 부여하는 훈련이다. 그는 “보다 조직력이 있는 플레이를 전개하면서 빠른 배구를 해야 한다. 그러려면 기본기가 중요하다”고 전했다. 또 그는 코칭스태프를 같은 팀 출신의 스타급 선수였던 장윤희 코치와 한국도로공사 배구단 감독이었던 신만근 코치로 정했는데, “후배들이 장 코치를 보며 ‘나도 잘하면 저 선배처럼 되겠다’는 용기를 갖길 바라고, 연습을 재밌게 하고 유머러스하기로 유명한 신 코치를 보며 운동을 즐길 수 있길 바란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조혜정 감독은 매일 출근하는 길이 즐겁다. 그는 “정말 마음껏 해볼 생각이다. 우승이라는 결과는 따라오는 것이지 쫓아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선수들이 시합장에게 발랄하고 자신감 있게 경기하는 게 좋아요. 시합에서 지면 감독인 제가 책임지니 선수들은 배구장에서 마음껏 뛰어놀라고 합니다. 그래야 보는 관객도 즐겁죠. 옛날 배구가 세계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처럼, 국제 경쟁력이 있는 스포츠로 거듭날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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