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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안타까운 소식

故 이정화 여사 알려지지 않은 삶

갑작스레 세상 뜬 현대가 안주인

2009. 11. 24

현대가가 큰 슬픔에 빠졌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부인이자 현대가의 실질적 안주인이던 이정화 여사가 세상을 떠난 것. 50여 년 동안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에 전념하며 이웃을 챙길 줄 알았던 그의 소박한 삶이 뒤늦게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故 이정화 여사 알려지지 않은 삶

지난해 1월 기아차 야심작 ‘모하비’가 처음 공개되던 날. 출시 기념 행사장에는 한 여인이 조용히 들어와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모하비를 덮은 천막이 벗겨지자 탄성이 쏟아졌고 이 여인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그는 박수를 치며 행사가 끝날 때까지 한시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이윽고 정의선 부회장(39)이 단상에 올랐고 여인을 향해 “어머니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그제야 이 여인을 향해 플래시 세례가 이어졌다.
바로 정의선 부회장의 어머니이자 현대·기아차그룹 정몽구 회장(72)의 부인인 이정화 여사였다. 평소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그였기에 기자는 물론 회사 임직원들도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예정된 운명이었을까. 이날의 인사는 정의선 부회장이 공식석상에서 어머니를 향해 전한 마지막 인사가 됐다.
이정화 여사는 지난 10월5일 담낭암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향년 71세. 그는 석 달 전 암이 발견돼 국내에서 항암치료를 받았다. 그러던 중 추석 직전 급하게 병세가 악화돼 수술을 하기 위해 현대가 전세기 편으로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MD앤더슨 병원으로 이송됐다. 당시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내외, 큰딸 성이씨, 둘째 딸 명이씨 등 가족이 동행했다. 하지만 수술대에 오른 그는 끝내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고인의 시신은 곧바로 서울로 옮겨져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에 안치됐다. 3일간 가족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에는 영부인 김윤옥 여사, 정운찬 국무총리, 이건희 전 삼성회장의 부인 홍라희 여사,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최태원 SK 회장 등 많은 인사가 찾아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반평생을 같이해온 남편 정몽구 회장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깊어 보였다. 영결식에서 고인의 친구인 이화여대 음대 장혜원 교수가 추도사를 읽던 중 “수수하고 소박한 삶을 살았던 이 여사가 가슴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정 회장은 끝내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정 회장은 곧바로 상복 오른쪽 상의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으며 북받치는 감정을 추슬렀다.
갑작스럽게 어머니를 잃은 정의선 부회장은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빈소를 지켰다. 한 시간 남짓한 영결식이 끝난 후 이정화 여사는 경기도 하남시 창우리 선영에 안장됐다.
故 이정화 여사 알려지지 않은 삶

조용한 내조 실천한 ‘현모양처’
이정화 여사는 평양 출신으로, 홍대 미대를 다니던 중 정몽구 회장을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 현대가의 자유연애 가풍에 따라 연애결혼을 통해 현대가의 며느리가 된 것. 결혼 후 그는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남편을 내조해 시아버지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사랑을 받았다.
정 명예회장의 장남인 몽필씨가 82년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손위 동서인 이양자씨도 91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부터 이정화 여사는 현대가의 실질적인 맏며느리로서 집안의 대소사를 도맡았다. 정 명예회장이 생전에 매일 새벽 5시 서울 청운동 자택에서 온 식구와 함께 한자리에 둘러앉아 아침식사를 하며 근면과 검소한 습관을 자녀들에게 강조한 것은 유명한 일화. 이를 위해 한남동에 사는 이 여사는 매일 새벽 3시30분 시집인 청운동에 가 아침을 준비했다.
시어머니인 고 변중석 여사가 지난 89년부터 18년간 아산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하던 때, 이 여사의 헌신적인 면은 더욱 빛을 발했다. 거의 매일 병원을 찾아 간호를 했던 것.
정몽구 회장과의 사이에 성이·명이·윤이·의선 등 3녀1남을 둔 이정화 여사는 자녀교육에 많은 열정을 쏟았는데 특히 ‘겸손’을 강조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을 어릴 때부터 자주 들려주며 공손함이 몸에 배도록 애썼다고. 본인 스스로도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공경하며 항상 예의를 갖춰 대해 자녀들이 직접 이를 보고 배울 수 있도록 했다.
그의 오랜 친구였던 장혜원 교수는 이 여사가 ‘이웃을 돌보는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해마다 명절이 되면 한남동 자택 앞을 지나가는 신문배달원, 미화원들에게 정성 어린 선물로 따뜻한 마음을 전했다고.
또 그는 아버지를 잃은 조카들을 친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살폈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4남인 정몽우씨가 세상을 뜬 후 동서인 이행자 여사와 그의 아들들을 따스하게 돌본 것. 지난 2006년 이행자 여사의 3남인 대선씨가 노현정 전 KBS 아나운서와 결혼할 때 상견례 자리에 참석하는 등 든든한 버팀목이 돼줬다.
남편 정몽구 회장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공식석상에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가끔 공식석상에 나설 때조차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조용히 다녀갔다.
지난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금의환향한 양궁선수들을 위한 피로연 자리에 부부동반으로 참석했을 때다. 이날도 역시 이 여사는 정 회장과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남편이 행사장을 떠난 뒤 그는 마무리 정리작업을 하고 따로 귀가했다고 한다.
이토록 조용한 스타일이었지만 자식을 향한 사랑만큼은 누구보다 컸다. 사실 정의선 부회장이 2005년 기아차 사장으로 부임한 이후 기아차 영업실적은 한동안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러자 최고경영자로서의 자질 검증 논란이 일었다. 정 부회장의 마음고생이 심했을 터. 하지만 그보다 더 가슴 졸였던 이는 어머니 이정화 여사였다. 때문에 아들이 각고의 노력 끝에 재도약을 하는 날 이를 응원하기 위해 이 여사는 지난해 1월 모하비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정 부회장이 건넨 ‘감사하다’는 인사 뒤에는 그런 사연이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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