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을 잃어 빛을 보지 못하는 대신 눈부신 가창력으로 스스로 빛을 밝힌 김지호군(17).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 수유동에 위치한 한빛예술단을 찾았다. 그가 생활하고 있는 기숙사 방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열린 문틈 사이로 음악에 맞춰 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열중해 있던 터라 선뜻 다가가지 못한 채 잠시 멈칫거리다 인사를 건넸다. 마치 훼방꾼이 된 듯 괜스레 미안해졌다. 밥 세 공기를 뚝딱 해치울 정도로 식성이 좋지만 좀처럼 살이 붙지 않은 마른 체구로 인해 더욱 앳돼 보이는 지호군. 그런 외모와는 달리 다소 어른스러운 말투로 자신의 열일곱 인생 이야길 들려줬다.
그를 이야기할 때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을 빼놓을 수 없다. 우연한 기회에 출연한 프로그램 하나가 그의 삶을 단숨에 바꿔놓았다. 지난 5월 무대에 오른 지호군은 ‘영혼을 울리는 천상의 목소리’라는 찬사를 들으며 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렸다. 그의 노래를 숨죽인 채 듣고 있던 방청객들은 노래 사이사이 감탄사를 터뜨렸고, 2PM 닉쿤을 비롯한 게스트들도 눈물을 흘리며 찬사를 보탰다. 이후 3연승을 거두며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상반기 결산편에서 왕중왕으로 선정되면서 유명세를 얻었다.
“‘스타킹’의 한 작가가 저희가 공연한 동영상을 보고 출연 섭외를 해오셨어요. 3~4일 만에 준비해야 하는 빠듯한 일정이라 처음에는 거절했는데, 다른 작가한테서 또 전화가 온 거예요. 부족하지만 그럼 한번 해보자는 생각에서 나갔죠. 결과를 떠나 좋은 음악을 들려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는데, 3승을 거뒀어요. 그날 이후로 아버지가 기분이 아주 좋으신 지 술도 잘 안 드세요(웃음).”
아들의 말에 멋쩍은 웃음을 짓는 김형로씨(47). 아들 덕분에 매스컴에 자주 얼굴을 비쳐선지 알아보는 사람도 부쩍 많아졌다. 얼마 전 지하철을 탔는데 승객 중 하나가 방송 잘 봤다며 응원의 메시지가 적힌 쪽지를 전해주기도 했다. 아들 잘 키웠다는 말에 어깨가 으쓱해지는 요즘이다. 사실 지호군의 음악성은 부모로부터 대물림된 것이다. 김형로씨는 1978년 TBC 제1회 해변가요제에서 ‘여름’이란 곡으로 대상을 수상한 ‘징검다리’ 4기 멤버로 활동했다. CF로 잘 알려진 ‘뭉게구름’을 부른 주인공이기도 하다.
“당시 ‘징검다리’ 모토가 ‘노래는 프로같이, 성향은 아마추어같이’였던 만큼 다들 학업도 열심히 했어요. 그래서 석·박사 출신도 많아요. 졸업하고 다들 자신의 길을 찾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음악과 멀어졌죠. 제 경우는 선배인 이택림씨를 통해서 가수로 데뷔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와 동시에 김도향씨가 운영하는 서울프로덕션의 입사 제의도 받았어요. 당시만 해도 가수란 불안한 직업이었거든요. 고민 끝에 안정을 택하자 해서 김도향씨 사무실로 들어가 음향엔지니어로 일하며 CM송 코러스에도 많이 참여했어요. 이후로 금강기획에서 광고팀 팀장도 했고요. 사실 음악을 완전히 떠난 건 아니죠.”
첫 직장에서 만난 아내 역시 만화 ‘아기공룡 둘리’와 ‘떠돌이 까치’ 등의 주제곡을 부른 CM송 가수 출신이다. 음악가족임에도 다 같이 모여 노래 부를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스타킹’을 통해 처음으로 부자가 함께 무대에 올랐다. 아버지의 히트곡 ‘뭉게구름’을 부르며 하모니를 맞춘 것이다. 말 붙여도 한마디 할까 말까 할 정도로 내성적인 지호군은 처음에는 아버지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쑥스러워서 연습하자는 말도 못 하고 혼자 방안에서만 흥얼거렸다. 그럼에도 무대에 올라가서는 환상의 하모니를 펼쳤다.
“사람들은 제가 눈이 안 보이니까 인터넷을 못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음성지원이 되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그걸 이용해 기사를 읽어요. ‘영혼을 울리는 천상의 목소리’라는 기사를 보고 ‘내가 그런 목소리를 가졌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사하다는 말밖에는 안 나와요. 응원해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해요.”
선천성 녹내장으로 인한 시각 장애, 수차례 수술로도 끝내 회복 못해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당연해서 그 소중함을 모를 때가 많다. 하지만 어떤 이에겐 그토록 간절한 것일 수도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선천성 녹내장을 앓아 16번의 수술을 거쳤으나 끝내 시력을 회복하지 못한 지호군에게 눈은 그런 존재일 것이다.
태어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의 눈에 이상이 있어 찾은 병원에서 선천성 녹내장임을 알게 된 김형로씨는 안과로 유명하다는 병원이란 병원은 다 찾아다녔다.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수술을 거절당하기도 수차례. 그러던 중 한 병원에서 안압을 조절하는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반복된 수술에 각막에 이어 수정체까지 혼탁이 왔다. 결국 의사도 손을 들고 시각장애 1급을 떼어줬다. 마지막 희망을 걸고 지난 2001년 각막이식수술을 했다. 이번에도 결과는 좋지 않았다.
“워낙 어릴 때라 기억이 잘 안 나요. 부모님한테 항상 들어왔던 얘긴데, 수술을 거의 한 달에 한 번 하다시피 했대요. 각막이식수술은 기억이 나요. 의사 선생님은 수술해도 별로 효과는 없을 거라고 말했지만 저희 가족은 눈을 뜨리라는 믿음을 버릴 수 없었어요. 그런데 이식수술 후 더 안 보이게 됐어요. 전에는 빛 정도는 보였는데…. 그때까진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눈 뜨고 싶다, 뜨고 싶다’고만 생각했어요. 좌절도 많이 했어요. 폭력적인 드라마도 많이 보고, 거기 나온 장면을 실제로 따라서 하기도 하고. 그땐 조폭시절이었어요(웃음).”
방황의 시간을 이겨낸 건 음악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력의 눈은 닫혔지만 음악적 재능의 눈은 활짝 열렸다”는 그의 말처럼 음악은 위로이자 위안이었다. 부모의 영향으로 음악을 일상처럼 접한 그는 세 살 무렵부터 엄마의 노래에 화음을 넣을 정도로 음악에 재능을 보였다.
“지호가 어릴 때 많이 안아줬어요. 음악 들으면서 무릎으로 리듬을 타줬는데, 그래서 리듬감이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처음에는 막연히 피아노 치며 노래할 수 있는 특기나마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에 음악을 많이 접하도록 하고, 피아노와 드럼 같은 악기를 배우도록 지원을 해줬어요. 사실 처음엔 노래를 잘하는지는 몰랐어요. 교내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기에 인터넷에 올린 노래를 들어봤는데, 어, 실력이 보통이 아닌 거예요. 혼자 연습을 많이 했나봐요.”
김지호군은 2003년부터 한빛예술단 밴드부에서 드럼을 맡고 있다. 오디션 당시 99점으로 합격할 정도로 드럼 실력도 수준급이다. 하지만 음악의 매력을 알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 2005년 세종문화회관에서 한빛예술단 정기연주회를 가진 적이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무대에 올랐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박수소리가 컸다. 그 순간 음악의 힘이 이렇게 위대할 수 있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때부터 음악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만심이 고개를 들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겸손하라’며 그를 꾸짖었다. 지적받는 게 죽기보다 싫을 만큼 자존심 강했던 그는 창피하고 억울한 마음에 아이처럼 목 놓아 울었다. 그 사건이 자신을 돌아보게 한 계기가 되었고 그 이후로 아버지의 말을 좌우명처럼 달고 살았다.
“부모님은 저를 강하게 키우셨어요. 약간은 군대식 같다고 할까…(웃음). 아버지는 발차기도 좀 하셨어요.”
아들의 말에 “내가 언제 발차기 했어?”라며 정색하는 김형로씨. “교회 본당 앞에서 안 올라간다고 했을 때 엉덩이를 풍 찼잖아요.” “그땐 네가 쓸데없는 고집 피워서 그랬지.” 부자가 주고받는 대화가 왠지 정겹다.
아들이 음악에 재능있다는 사실 알고 우쭐해하자 겸손하라며 꾸짖기도
지호군에겐 동생 건욱(14)도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존재다. 어릴 적엔 별거 아닌 걸로도 많이 싸웠지만 점점 철이 들어가면서 우애도 깊어지고 있다. 몇 해 전에는 ‘TV 특종 놀라운 세상’에 형제 이야기가 방송을 탄 적도 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동생을 형이 정거장으로 마중 나가고, 함께 손 붙잡고 실내화를 사러 가는 그들의 소소한 일상이 전파를 탔다. 당시 포털사이트 검색순위 1위에 오를 정도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동생한테 늘 도움만 받은 거 같아 미안하다는 그는 라면 끓이는 법을 배워서 조만간 동생에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을 끓여주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푸른 바다를 항해해보자는 뜻에서 이름 붙인 ‘블루오션’. 메인 보컬의 지호군을 비롯해 건반 양한규, 보컬 김수환, 기타 이준희, 베이스 김미선, 드럼 엄진용 등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그룹이다. 최근 정식 앨범을 발표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가 ‘스타킹’에서 불러 화제가 됐던 발라드 ‘다만’을 포함해 ‘In your eyes’등 총 4곡이 수록돼 있다. 타이틀곡 ‘다만’을 너무도 애절하게 불러 혹여 그런 사랑 경험이 있는지 물었다.
“여자친구는 아직 없어요. 짝사랑은 해본 적 있는데…. 10대 때는 사귀지 않을 생각이에요. 아무리 달콤하게 유혹해도(웃음). 지금은 배우는 단계니까 노래에 전념해야죠. 저 같은 경우는 상상하면서 부르기 때문에 굳이 여자친구를 안 사귀어도 될 것 같아요.”
그가 가장 닮고 싶은 뮤지션은 스티비 원더다. KBS ‘사랑의 가족’에 출연할 당시 MC가 스티비 원더·레이 찰스·안드레아 보첼리 등 시각장애인 뮤지션에 대해 얘기해줬다. 그중 스티비 원더가 자신의 음악 색깔과 가장 잘 맞았다. 지긋한 나이에도 여전히 보컬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존경하는 마음이 더욱 커졌다. 그 이후로 닮고 싶은 뮤지션에 대해 물으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름이 됐다. 그 다음으로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나얼이다.
“명실상부 R&B의 황태자잖아요. 기교에 대해 배우고 싶어 조언을 구한 적이 있어요. 그때 형이 ‘기교보다는 발성이 더 중요하다. 소리를 잘 내야 기교도 잘 부릴 수 있다. 너는 사람들을 자극하는 목소리를 가졌으니까 굳이 기교를 안 써도 된다’고 말해줬어요. 며칠 전 형 미니홈피에 글을 남겼는데, 일촌 신청을 한 거예요. 생각지도 못했어요. 성격도 좋으시고, 노래도 잘하시고 정말 닮고 싶은 형이에요. 처음에 듣고 있던 노래도 나얼 형의 ‘My story’예요.”
거만해질 때는 따끔한 채찍질을, 의기소침해질 때는 따뜻한 위로를 해주는 아버지는 그에겐 세상에서 가장 높고, 넓은 존재다.
“제가 지호에게 항상 얘기하듯이 감사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활동하면 오래 남을 수 있는 가수가 될 거예요. 도움이 된다면 음향엔지니어를 했던 경험을 살려서 블루오션 2집 녹음이나 믹싱에 참여하고 싶어요(웃음).”
2집이나 3집 작업 때 아버지가 피처링으로 참여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아들의 말이 내심 성에 차지 않았는지, 말끝을 흐리며 ‘피처링’이란 말만 되뇐다. 이를 눈치 챈 지호군. 인심 후하게 써서 3.5집 때 아버지 곡을 리메이크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노래란 사람들과 대화하는 거잖아요. 심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노래로 치유하는 의사역할을 하고 싶어요. 해외로도 진출해서 세상 모든 사람에게 좋은 메시지를 전달하고도 싶고요.”
그의 말 속엔 자신이 노래를 통해 장애를 이겨냈듯 그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 역시 세상사 아픔을 이겨내길 바라는 마음이 엿보인다.
촬영을 위해 부자의 듀엣 무대가 즉석에서 펼쳐졌다. 비가 그친 다음 날이라 유난히 뭉게구름 피어오른 하늘 아래서 아버지는 기타를 치고, 아들은 그 반주에 맞춰 ‘뭉게구름’을 부른다. “이 땅이 끝나는 곳에서 뭉게구름이 되어 저 푸른 하늘 벗 삼아 훨훨 날아다니리라~ 이 땅의 끝에서 모두 다시 만나면 우리는 또다시 둥글게 뭉게구름 되리라~.” 노랫말처럼 두 사람의 마음도 둥글게, 둥글게 뭉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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