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나를 분리하기. 아이 스스로 인생을 설계하도록 돕기. 이 두 가지만 기억하면 부모와 자녀가 함께 행복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 사범대 조영달 학장(49). 너털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지만 그에게도 자녀교육은 어려운 숙제다. 그는 대학 3학년인 딸과 3수 중인 아들을 뒀다. 얼마 전 둘째 아이와 진로에 대해 나눴다는 대화는 조 학장이 어떤 아빠인지를 단박에 보여준다.
“꼭 일류대학을 나와야 행복한 삶을 사는 건 아니야. 현재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면 얼마든지 즐거움을 찾을 수 있어. 전문대 진학, 취업, 3수 중 하나를 선택해라. 단 3수를 하려면 TV, 인터넷, 휴대전화는 허락하에만 사용하도록 할 거다.”
조 학장은 대학 졸업 후 2년간 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했다. 그리고 미국유학을 거쳐 2000년부터 서울대 사범대에서 교사를 꿈꾸는 학생들을 가르쳐왔다. 중간에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비서관을 지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가르치는 데 할애한 셈이다. 최근 그는 이런 경험을 책으로 펴냈다. 제목은 ‘‘웬수’같은 내 아이의 열린 미래를 향한 도전’. 독특한 우리 교육 현실을 짚어보고자 하는 바람을 담았다.
새 시대가 원하는 인재의 덕목은 창의적인 문제해결 능력과 사회성
자녀교육 앞에는 장사도 성자도 없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야’라며 마음을 다잡아도 ‘작품’ 하나 만들고 싶은 게 부모 마음. 김연아 선수처럼 스포츠 스타로 키울까, 아이비리그 3개 교에 합격했다는 ‘공신’이 좋을까. 맹모가 된 것만큼 즐거운 상상도 없다.
이렇듯 자녀를 어느 정도 지위 있는 사회인으로 길러내는 것은 대한민국 부모의 공통된 바람. 하지만 조 학장은 “자녀교육을 성취의 측면에서 생각하는 것은 욕심일 뿐”이라며 “욕심을 버려야 부모와 자녀가 상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욕심 버리기의 비법은 ‘자녀와 거리 두기’.
“말은 쉽지만 자녀에 대한 욕심을 포기하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죠. 아무리 마인드컨트롤을 해도 주변 분위기에 휩쓸리기 쉬우니까요. 하지만 자녀와 나를 분리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부모와 자녀는 반드시 정서적으로 독립해야 해요. 속박관계에서는 솔직한 대화가 불가능하고 불만만 쌓여 서로를 더 멀어지게 하거든요. 의도적으로 자녀와 떨어져 지내거나 너와 나를 따로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해요. 또 부모 자신의 삶을 열심히 돌봐야 하고요. 자녀는 부모의 모습에서 삶을 꾸리는 방법을 배우니까요.”
‘고등학교 3년이 평생을 좌우한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란 말이다.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은 모든 부모의 염원이자 교육 목표. 출신 대학이 앞날을 좌우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렇다면 좋은 대학이란? 주관적으로는 사회적 명성이나 분위기를, 객관적으로는 연구수준과 취업률을 지표로 삼지만 보통은 일류대학을 뜻한다. 이에 조 학장은 “세상이 변했으니 좋은 대학의 개념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은 세상이 요동치는 시기예요. 마치 산업혁명 이후의 사회처럼 변화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지요. 새 세상이 열리면 과거의 사고방식으로는 더 이상 현재의 문제를 풀 수 없어요. 새로운 방식의 해결책이 필요한 것이죠. 자연히 이를 위한 교육도 달라져야 하고요.”
농경사회에서는 튼튼한 체력이, 산업사회에서는 단순 작업기술이 능력을 가늠하는 잣대였다. 지식정보사회 너머 다른 어딘가로 나아가는 지금의 인재는 또 다른 역량을 필요로 한다. 조 학장이 꼽는 미래 인재의 덕목은 창의적인 문제해결 능력과 사회성. 불확실하고 복잡하며 낯선 오늘날의 문제를 풀어가는 데 이 두 가지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조 학장은 “이런 덕목을 갖추기 위해서는 교육 목표를 입시에서 자기개발 능력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같은 조건이면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좋겠지요. 하지만 오늘날 기업은 졸업장보다 실질적인 업무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대학 졸업장보다 꾸준히 스스로를 개발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 것이죠. 여기서 능력이란 구체적으로 전문분야 확보와 사회성을 뜻해요. 여러 분야가 거미줄처럼 얽힌 현 사회에서는 전문분야를 갖추고 다른 이와 원만하게 소통해야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으니까요.”
꿈 위해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아이로 키우기
방향 없이 나아가는 삶은 막연하다. 막연함 속에 오래 머물다 보면 의욕을 잃게 된다. 성취 없이는 행복도 즐거움도 없다. 인생의 나침반인 목표가 필요한 이유다.
누구나 이런 계획의 중요성을 알지만 제대로 실천하는 이는 드물다. 이에 조 학장은 “계획의 첫 단추인 목표 설정의 방법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보통 어떠한 직업을 갖겠다거나 박사학위 취득을 목표로 정해요. 하지만 이것은 좋은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 삶은 역동적이고 유동적이에요. 어떤 직업이나 생활도 새롭게 충전하지 않으면 타성에 젖게 되죠. 예컨대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것은 한번 성취하고 나면 더 이상 추구할 가치가 없어지는 것처럼요.
이런 점에서 인생의 목표는 최종생산물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무언가여야 해요. 교사보다는 교육으로 세상의 진리를 세우겠다는 목표가, 박사학위 취득보다는 그 분야를 깊이 연구해 새로운 이론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더 효과적인 것이죠.”
직업과 비전은 인생설계의 중요한 부분. “당신은 누구냐”고 물으면 대부분 하는 일을 이야기하며, 실직 상태에서는 자아 상실감을 느끼기도 한다. 가슴 설레는 직업을 목표로 삼으면 자녀는 생활과 공부에 박차를 가할 터. 자녀의 진로는 어떻게 결정해야 할까.
“추구하는 가치, 흥미, 재능, 성격, 보수….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은 다양해요. 이 가운데 가치와 흥미와 적성부터 따진 뒤 나머지를 고려하는 게 좋죠. 음악적 재능이나 운동 능력 등은 재능 여부를 일찍 판단해야 하고요. 일반적으로 인문계에 진학할 때에는 시중에 나와 있는 진로검사를 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진로를 선택하기가 힘들다면 대략의 직업군으로 나눈 뒤 세분화할 것을 권해요. 미국의 진로심리학자 존 홀랜드는 실제적·탐구적·예술적·사회적·기업적·관습적 등 6가지로 직업군을 나눴어요. 자녀의 성격에 따라 해당 직업군의 직업들을 살피며 대화하다 보면 범위를 좁히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목표를 정한 다음은 계획을 세울 차례. 아이의 꿈을 담은 계획을 세우는 데는 몇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계획은 변경될 수 있고, 장·단기로 구분해서 짜야 하며, 한 분야의 전문가를 목표로 꾸준한 성장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계획의 성취 여부는 불확실합니다. 그래서 성공가능성이 높은 계획을 세우되 실패할 경우 몇 가지 대안을 생각하는 것이 좋겠죠. 즉 상황에 따라 계획은 바뀔 수 있는 겁니다. 또 계획은 기간을 나눠서 짜야 해요. 기간이 너무 길면 계획이 피상적일 수 있고, 큰 목표는 작은 목표를 달성해가며 이뤄지는 것이니까요. 마지막으로 계획은 한 분야의 최고를 목표로 꾸준히 정진하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삶은 오랜 시간 꾸준히 인내한 결과니까요.”
“자녀의 모든 것을 기록하다 보면 소통의 길이 열립니다”
조 학장은 두 자녀를 외국에서 공부를 시킬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발전적 미래를 위해 조기유학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가족관계 형성에 있어 소중한 시기를 함께하고 싶다는 바람이 더 컸기 때문이다.
“국제화 등 많은 필요성으로 최근 외국으로 떠나는 학생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국 학교 교육에 대한 불만이 있거나 향후 진로선택 시 이점을 고려해 조기유학을 가는 것이죠. 하지만 조기유학으로 잃게 될 부분도 신중히 생각해야 해요.
먼저 의무교육기간에 외국에서 공부하면 한국 사회에서 필요한 부분을 갖추기 힘들어집니다. 각 사회에서 요구하는 자질은 제각각이라 귀국 후 재적응을 해야 하는 거죠. 가족 구성원들도 여러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요. 부부 갈등이나 과중한 유학 경비는 가족 모두에게 큰 스트레스죠. 또 자녀는 사춘기 갈등을 더 심하게 겪을 수 있고요. 물론 저학년인 경우에는 덜 경쟁적인 학교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여유 있게 적응할 수 있으니 상황이 다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조 학장이 우려하는 부분은 자녀와의 관계다. 성장기인 학창시절은 자녀와 부모 간 친밀감이 형성되는 기간. 이 시기를 다른 사회에서 떨어져 지내다 보면 괴리감이 커져 나중에는 바람직한 가족의 모습을 이루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자녀의 사회성은 거의 가정의 영향으로 결정된다”며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자녀를 키우며 화목한 가족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한 인간이 태어나 자라는 가정이 사회성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자녀는 부모와 생활하며 사회의 질서를 배운다. 가정에서 갖게 되는 불만이나 좋지 않은 감정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부적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자녀와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한 첫 단추는 소통. 이를 실천하기 위한 핵심 도구는 대화다. 조 학장이 몇 가지 대화의 기술을 일러줬다.
“부모는 자녀의 모든 것에 늘 촉각을 세워야 해요. 그래야 심드렁한 자녀와 대화를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자녀의 심리나 변화를 파악하는 데는 기록일지가 큰 도움이 돼요. 자녀의 친구관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 참석할 행사, 생활사, 입시정보 등을 기록하면 생활과 심리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제때 필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는 거죠. 맞벌이를 해서 여유가 없다면 규칙적으로 시간을 정해 대화를 나누는 방법이 좋아요. 저도 일요일 오전에는 꼭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죠.”
자율학습 능력 키우는 명약, 격려와 보상
공부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될까. 모든 학습 부진에는 이유가 있다. 조 학장은 학습전략의 부재, 기본 학습능력의 부족, 자신감 부족, 성적 스트레스 등을 주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학습 부진은 원인을 찾아 처방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부모가 잘못된 대응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공부 못하는 아이의 부모는 대체로 두 가지 태도를 보여요. 하나는 사교육에 치중하고 학습 계획을 주도하는 등 부모가 모든 것을 책임지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예 포기하거나 비난을 하며 자녀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죠.
두 방법은 모두 바람직하지 않아요. 성적이 뒤처지는 원인을 찾아 바로잡아줘야 하죠. 예컨대 학습력이 부족한 자녀라면 교과 과정을 분석한 뒤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도록 해야 해요. 집중력이 부족하다면 좋아하는 과목부터 꾸준히 공부하는 훈련을 시키고 성적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면 노력하는 자세는 강조하되 결과에 대한 부담은 주지 말아야겠죠.”
시켜서 하는 공부 10시간은 스스로 하는 공부 1시간만 못하다. 배움의 주체가 되면 내용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고 지루함도 덜하기 때문. 조 학장은 “자율학습 능력은 학교 교육 이후의 삶을 개척하는 데도 중요하다”며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키우기 위한 방법을 들려줬다.
“우선 자녀의 흥미와 욕구를 허용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해요. 마음껏 시도를 격려하고 때론 그에 대한 보상을 하면 공부의 즐거움이 커지죠. 또 부모는 언제나 조언자 역할에 머물러야 해요. 자녀 스스로 답을 찾아나가도록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줘야 합니다. 사교육은 이런 자율학습 능력을 갖춘 뒤에 시켜야 하며, 선택할 때는 인터넷 강의가 적합한지 개인지도가 적합한지를 따져 시작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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