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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Family Special/가족이 있어 행복한 사람들 1

자폐 피아니스트 송선근 어머니 이수진 아름다운 동행

글 김명희 기자 | 사진 지호영 기자

2009. 05. 21

좁은 집에 살면서, 큰아이는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데… 선근이 엄마는 무슨 좋은 일이 있어서 매일 웃을까. 아픈 큰아이를 업고 기저귀도 떼지 않은 둘째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치료실로 발바닥이 닳도록 뛰어다니던 시절에는 몰랐다. 중증 발달장애를 앓던 선근이가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주변에 기쁨을 나눠주는 오늘 같은 날이 올 줄은.

맑은 날만 계속되지 않는 게 인생이다. 힘들고 지칠 때 불러본다. 엄마, 아빠, 그리고 내 아이들… 가슴에서 불덩이 같이 뜨거운 것이 솟아올라 금세 마음이 따뜻해진다. 여기 사랑으로 똘똘 뭉친 세 가족을 소개한다. 이들은 말한다. 가족이 있다면 가진 게 많지 않아도, 시련이 닥쳐도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자폐 피아니스트 송선근 어머니 이수진 아름다운 동행


서울 광진구 광장동 호젓한 주택가. 한 다세대 주택 1층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선율이 봄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이웃에게 멋진 음악 선물을 나눠주는 주인공은 송선근군(16). 송군은 얼마 전 서울시와 건국대가 지원하는 장학교육 프로그램 ‘건국 음악영재 아카데미’에 합격했다. 보통 사람에겐 3대 1의 경쟁을 뚫고 합격한 게 대수롭지 않을 수 있겠지만 송군 가족에겐 특별한 의미가 있다. 송군이 발달장애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송군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7세 때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습해 지금의 실력을 닦았다. 인터뷰를 하던 날도 선근이는 한 곡을 마칠 때마다 A4 용지에 기록했다. 하루 2백 곡을 연주하기로 엄마와 약속했기 때문이다. 취재를 위해 몇 곡을 더 연주한 선근이는 엄마 이수진씨(41)에게 자꾸 ‘내일 연주할 분량에서 빼주겠다’는 다짐을 받았다. 연습이 싫어서가 아니라 정해진 틀에서 어긋나는 걸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눈도 안 맞추고 울기만 하는 아이 보는 게 괴로워 우울증 앓은 적도 있어요”
보통 아기들은 첫돌 무렵 ‘엄마’를 부르고 자신의 이름이 불리면 반응하고 장난감을 원하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등의 행동을 한다. 그런데 선근이는 만 두 돌이 될 때까지 엄마를 알아보지 못했고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이 거의 되지 않았다.
“선근이한테 ‘엄마’ 소리 한 번 듣는 게 소원이었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들었어요. 요즘은 제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자주 ‘엄마 사랑해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지만요.”
선근이는 생후 27개월 때 자폐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증상이 심하지만 부모니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잘 키우라고 말했다.
“자폐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던 남편은 진단명을 듣고 크게 좌절했어요. 반면 저는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처음엔 씩씩할 수 있었죠.”
‘요즘 의술이 좋으니까 열심히 치료하면 낫겠지’라고 생각한 이씨는 선근이를 업고 둘째는 안고 부지런히 병원이며 치료기관을 오갔다. 전철 문턱에 걸려 넘어져 무릎 성할 날이 없었다. 그래도 선생님한테서 ‘지난번보다 좋아졌다’는 말을 듣는 날은 행복했다. 선생님 메시지가 시원치 않은 날엔 이를 악물어도 눈물이 쏟아졌다.
자폐 피아니스트 송선근 어머니 이수진 아름다운 동행

“나쁜 생각도 해봤어요. ‘왜 내 삶이 이렇게 됐을까, 어쩌다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을까’라는 생각을 하니 견딜 수 없었어요. 하루는 둘째를 안방에 재우고 선근이를 안고 있는데 베란다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후다닥 뛰어내리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어요.”
하지만 세상에 나와 줄곧 울기만 한 선근이가 불쌍했다. 아이에게 웃음을 찾아주고 싶었다. 치료기관에서 만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엄마들과 아픔을 나누고 위로를 받은 것도 우울증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됐다. 선근이의 상태도 조금씩 좋아졌다.
“치료기관에서 설리반 같은 훌륭한 선생님들을 만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선생님들이 선근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가 되자 일반학교에 가야 할지, 특수학교에 가야 할지에 대해 조언을 안 해주시더라고요. 부모가 선택할 문제라면서요. 지금 돌아보면 선근이 상태가 좋지 않으니까 특수학교에 가는 게 좋겠다고 에둘러 말씀하신 게 아닌가 싶어요.”
이씨는 일반학교를 선택했다. 특수학교에 들어가면 편할 수는 있겠지만, 더 이상의 발전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환경이 좋고 학생 수가 적은 학교를 찾아 발품을 판 끝에 광장초등학교를 찾아냈고, 온 가족이 그 동네로 이사를 했다.
“선근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담임선생님 앞에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나요. 선생님께 미안하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하고… 여러 감정이 교차하더라고요. 선생님께는 ‘감사하고 죄송하다. 이런 아이를 맡겨서 면목 없지만 부모로서의 도리는 다할 테니 잘 봐달라’고 말씀 드렸어요.”
선근이는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사회성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던 이씨도 선근이를 키우면서 세상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었다.

자폐 피아니스트 송선근 어머니 이수진 아름다운 동행

“선근이가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게 하려면 제가 먼저 대문을 열어야겠더라고요. 그때가 아파트 1층에 살 때였는데 집에 정수기를 설치해놓고 현관문에 ‘생수 받아가세요’라고 써 붙였어요. 그땐 지금처럼 정수기가 흔하던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죠. 이웃 사람들이 집에 자주 드나들고 친구들이 곁에 가서 말 한마디라도 걸어주는 게 선근이한테 좋은 영향을 미쳤어요. 저도 성격이 밝아졌고요.”
이씨는 학교, 이웃이라는 틀에 익숙해진 선근이에게 좀 더 강한 자극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선생님, 부모의 영향권 밖에서 적응하는 법을 익히게 하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둘째와 함께 태권도 학원에 보냈다고 한다.
“6개월 지났을 무렵 둘째가 울면서 ‘엄마, 제발 형 도장 보내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학원 형들이 못살게 군다는 거예요. 선근이도 선근이지만 그걸 지켜보는 둘째가 더 스트레스를 받아서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태권도학원보다 좀 안전하겠다 싶은 피아노 학원에 보내기 시작했죠.”
선근이는 7세 때부터 다니기 시작한 피아노 학원을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그 사이 원장 선생님이 6번 바뀌었고 선근이는 이제 학원에서 가장 ‘원로’가 됐다. 선근이는 이곳에서 처음 6년 동안 열심히 바이엘만 쳤다.
“발달장애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소근육·대근육이 발달하지 못해 음식을 먹을 때 수저질을 잘 못해요. 그래서 포크로만 음식을 먹거나 그것도 싫으면 먹여달라고 하죠. 그런 점이 개선되면 좋겠다 싶었지, 음악에 대한 기대감은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뜻밖에도 건반을 익히고 악보도 읽더라고요. 물론 그 과정은 다른 아이들보다 몇 배나 힘들고 길었죠. 초등학교 6년 내내 바이엘만 칠 정도였으니까요. 그래도 그 덕분에 기초는 잘돼 있어요(웃음). 수학도 마찬가지예요. 입에서 단내 나도록 더하기만 하는 것부터 시작해 지금은 인수분해까지 해요. 한번 익힌 원리를 다른 데 응용하는 것까지는 못하지만 이 정도 하는 것만 해도 저희로서는 기특하죠.”
선근이는 현재 발달장애가 있는 청소년들로 구성된 ‘하트-하트 윈드 오케스트라’에서 유포늄을 맡아 연주하고 있다. 피아노 실력이 바탕이 돼 유포늄은 금방 익혔다고 한다. 음악은 선근이의 감성 부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어려서는 감정이 없는 건 아닌데 오류가 많았어요. 영화에서 자동차 사고가 난 장면을 보고 데굴데굴 구르며 웃고, 친구들이 학교에서 혼나는 것 보고도 몸 개그라고 생각해 웃는 식이었죠. 선근이에게는 오류지만 다른 사람은 그걸 왜곡해서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그게 걱정이었는데 음악을 하면서 많이 좋아졌어요.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얼굴 표정 같은 비언어적 사인을 이해하고, 단조 음악을 들으면 슬퍼하고, 신나는 음악을 들으면 좋아하고요.”



아들이 앞으로 음악 통해 다른 사람과 기쁨 나눌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어
선근이는 발달장애 중 특정 분야에 뛰어난 천재성이 있는 ‘서번트 증후군’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피아노 실력은 순전히 노력에 의한 것이다. 때로는 벅차게 느낀 순간도 있었겠지만 다행히 선근이는 피아노 치는 시간을 가장 행복하게 생각한다. 자신이 피아노를 칠 때 엄마가 행복해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런 선근이지만 지난해 예고 입시를 준비하면서 좌절을 겪었다.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적용되는 내신성적 때문이었다. 이씨는 “선근이가 내신에서 점수를 딸 수 있는 건 출석과 봉사활동에 불과하다. 지원 제한을 두지 않았다고 해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조건에서 평가를 한다는 건 뇌성마비가 있는 아이에게 100m를 10초 안에 뛰면 얼마든지 받아주겠다는 억지와 같다”며 아쉬워했다. 예고 전형에서 불합격한 선근이는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선근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 다른 사람은 희생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이씨에게는 보람이고 선물이라고 한다. 그는 선근이를 통해 개인적인 성취도 이루었다. 선근이 같은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2003년 사회복지사 공부를 시작, 예비직원을 거쳐 지난해 정직원으로 병원에 취직했다. 한때 선근이로 인해 위기를 겪었던 가족도 이제 평화를 되찾았다.
“선근이 아빠가 전엔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않았는데 선근이가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같은 말을 하고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니까 이젠 굉장히 좋아해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형과 엄마 따라 보따리처럼 이리저리 옮겨 다닌 탓에 강박증세가 있던 둘째도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았고요. 사실 예전에는 둘째가 미워서 방치하다시피 키웠어요. 형이 없는 걸 갖고 났다고 생각하니 얄밉더라고요. 그러다 영화 ‘말아톤’을 보고 많이 반성하고 둘째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했어요.”
이씨는 가끔 선근이가 자폐가 아니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지만 결국, 이 모든 일이 선근이가 가장 좋아하는 베토벤의 교향곡 제목처럼 ‘운명’ 같다고 한다. “장애가 있는 선근이는 또 다른 나”라고 생각한다는 이수진씨. 그는 이제 선근이가 좋아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새벽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일어나 보면 선근이가 공부를 하고 있어요. 선생님이 하루에 영어 단어 1백 개를 외우라고 하면 무조건 그렇게 해야 하거든요. 그런 모습을 볼 때 ‘보통 아이로 태어나 저렇게 열심히 했더라면 공부를 얼마나 잘했을까’ 싶어 마음이 짠하지만,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앞으로는 선근이가 음악을 통해 다른 사람과 기쁨을 나눌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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