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큰아이가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어느 늦가을 오후, 아이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나 친구와 싸우다가 맞았는데 눈 밑이랑 코가 부어올랐어. 선생님이 얼른 병원 가보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크게 다친 건 아니겠지’ 하며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동네 정형외과에서 아이와 만나기로 하고 종종걸음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웬걸, 병원에서 만난 큰아이는 시쳇말로 완전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모습이었다. 눈 밑이며 콧잔등이 시퍼렇게 부어올라 원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X-레이를 찍고 진료 차례를 기다렸다. 그 사이 들은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큰아이와 친한 A가 새로 산 휴대전화를 쉬는 시간에 마구 자랑했다. 그러자 또 다른 친구 B가 A의 휴대전화를 이리저리 만지다가, 제멋대로 유료 게임을 다운받아 갖고 놀았다. 제가 무슨 ‘정의의 사도’라고, 주인은 가만히 있는데 큰아이가 오지랖 넓게 나섰다. “왜 남의 휴대전화에 네 맘대로 유료 게임을 다운받느냐?”고 B에게 따진 것이다. 당연히 B는 “네 휴대전화도 아닌데 웬 참견이냐?”고 맞섰고….
티격태격 말다툼하던 두 아이는 급기야 몸싸움을 벌이게 됐다. 그러다 그만 내 아이가 B의 몸 아래에 눌렸는데, B가 주먹도 아닌 발로(!) 큰아이의 얼굴을 가격한 것이다. 나의 분노는 거의 폭발할 지경이었다.
때마침 진료 받을 차례가 돼 진료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의사가 아이 얼굴을 살펴보고 X-레이 사진을 불빛에 비춰본 뒤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종합병원에서 CT 촬영을 해보셔야겠는데요. X-레이 사진만으로는 판단할 수가 없네요.”
큰아이와 함께 급히 S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침착했다. 그런데 CT 촬영을 한 뒤 응급실에 근무하는 젊은 의사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듣는 순간, 그만 눈앞이 캄캄해지고 말았다.
“왼쪽 눈 밑에 잔뼈들이 있는데, 그게 죄다 바스러졌어요. 왼쪽 코뼈도 살짝 주저앉았고요. 수술을 안 하면 왼쪽 눈 밑과 코가 움푹 들어가 안면비대칭이 되고, 수술을 한다 해도 정상이 된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게 무슨 청천벽력인가? 안면비대칭? 쉽게 말하면 얼굴 왼쪽과 오른쪽이 짝짝이가 된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수술 방법은 또 얼마나 끔찍하던지…. 전신마취를 한 뒤 얼굴 왼쪽 눈 아래를 ‘ㄱ’자로 절개해 바스러진 잔뼈들 아래 철판을 집어넣어야 한다는 거였다. 주저앉은 코뼈를 세우려면 콧구멍 속으로 실리콘 주사를 쏘아야 한다나? 나는 응급실 밖으로 나와 큰아이를 껴안고 펑펑 울며 말했다.
“걱정마. 엄마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네 얼굴 절대 짝짝이로 안 만들 테니까. 우리나라에서 못하면, 외국에 데려가서라도 바로잡아줄 테니까.”
청천벽력 같은 아이의 부상, ‘희망의 힘’으로 행복 되찾아
정말 그때 내 마음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집을 팔아서라도, 빚을 내서라도, 세계 최고 병원을 찾아 큰아이 얼굴만은 반듯하게 원상복귀시켜놓겠다는 그런 마음!
그날 나는 밥도 먹을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수술을 시켜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할 수 없었다. 내가 울먹이며 조언을 구하자, 언제나 든든한 우군인 친정오빠는 이렇게 말했다.
“그거 옛날 같으면 절대 수술할 일 아니다. 요즘에야 의학이 발달해 CT 촬영이니 뭐니 해서 눈 밑 잔뼈가 바스러졌다는 걸 알아내지, 옛날 같으면 어찌 알겠냐? 그저 멍들고 부어올랐다 생각하고 내버려두지. 그러다 보면 뼈도 다시 자리 잡고, 부기도 저절로 가라앉을 거야.”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새언니도 조심스레 나를 달랬다.
“너무 걱정 말아요. 응급실 인턴이나 레지던트는 임상경험이 부족해 원칙론만 얘기하거든요. 외래 진료하는 전문의를 한번 만나보자고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뒤, 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S병원 외래 진료 예약을 했다. 그러곤 어렵게 짬을 낸 새언니를 대동하고, 큰아이와 함께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은 특진의가 없었다. 근무 연차가 짧아 보이는 전문의는 응급실 의사와 소견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새언니는 아무래도 경험 많은 특진의를 만나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다음 날 큰아이를 데리고 다시 특진의를 만나러 갔다. 다행히도 그 의사는 우리의 불안감을 충분히 이해하며 오랫동안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이런 경우 의사에 따라 수술을 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해요. 그만큼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경우라는 겁니다. 혹시 이렇게 말씀드리면 판단에 도움이 되실까요? 제 동생이라면 수술 안 시킵니다. 아직 성장기이기 때문에 가만히 둬도 바스러진 잔뼈들이 3개월 정도 뒤면 자리를 잘 잡을 수 있거든요. 또 왼쪽 코뼈 역시 저절로 올라올 수 있습니다. 만약 수술 안 하고 놔두었다가 안면비대칭의 문제가 생기면, 대학생쯤 됐을 때 수술해도 늦지 않고요.”
‘내 동생이라면 수술 안 한다’는 의사의 말은 친정오빠와 새언니의 조언과 더불어 판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줬고, 남편과 나는 큰아이에게 수술을 시키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까 ‘긍정의 힘’을 믿기로 한 것이었다. 의사와 친정오빠, 새언니의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큰아이의 얼굴이 저절로 자리 잡히기만을 바라며, 우리 스스로에게 ‘희망의 최면’을 걸었던 것이다.
그런 결정을 내리니, 그토록 원망스럽던 B란 녀석에게도 너그러운 마음이 생겼다. 집까지 찾아와 용서를 비는 B의 엄마에게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괜찮을 거란 생각만 할 거예요. 그러면 정말 괜찮아질 테니까요. 그러니 B엄마도 우리 아이한테 아무 일 없기만을 빌어주세요.”
나는 진료비에 위자료까지 챙겨주려는 B엄마의 ‘성의’를 거절하고, 들어간 진료비의 딱 반만 받았다. 큰아이와 B는 친한 친구였던데다, 원인이 어디에 있든 서로 싸우다가 다쳤기 때문이다. 실은 진료비의 반도 안 받고 싶었지만, 그러면 B엄마가 너무 부담을 가질 것 같아 그러진 못했다. 물론 학교에서도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B엄마는 완전 감동한 눈치였다. 큰아이의 담임선생님도 무척 고마워했다. 사실 학교 교실에서 일어난 사고라서, 피해자인 우리가 문제를 제기한다면 담임에게나 B에게나 모두 불이익이 가게 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세상일을 어찌 그렇게 각박하게만 처리하겠는가?
우리 스스로에게 건 ‘희망의 최면’ 덕분이었는지, 다행히 큰아이의 얼굴은 아무 문제없이 잘 자리 잡았다. 또 그 일을 그렇게 잘 마무리한 덕분에 큰아이와 B는 지금까지도 아주 친하게 지내고 있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내가 만약 부정적인 판단을 해서 큰아이의 얼굴을 수술했다면 어찌 됐을까 싶어서다. 그랬다면 큰아이는 지금 얼굴에 철판을 대고 콧속엔 실리콘을 집어넣은 채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그때 긍정적인 판단을 하게 했던 친정오빠와 새언니, 그리고 S병원 정형외과의 특진의가 지금도 늘 고맙다.
※ 신현수씨는… 1961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국민일보 등에서 15년 동안 신문기자로 일했고, 2001년 샘터상에 동화 ‘생각하는 자전거’가, 2002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끝이 없는 길은 없다’가 당선돼 등단했다. 지금까지 장편소설 ‘끝이 없는 길은 없다’, 장편동화 ‘내 마음의 수호천사’, 창작동화집 ‘빵점이어도 괜찮아’, 어린이 교양서 ‘옛날 사람들은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어린이 국보 여행’ ‘우주비행, 하늘로 쏘아올린 인류의 꿈’ 등을 펴냈다.
“엄마, 나 친구와 싸우다가 맞았는데 눈 밑이랑 코가 부어올랐어. 선생님이 얼른 병원 가보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크게 다친 건 아니겠지’ 하며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동네 정형외과에서 아이와 만나기로 하고 종종걸음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웬걸, 병원에서 만난 큰아이는 시쳇말로 완전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모습이었다. 눈 밑이며 콧잔등이 시퍼렇게 부어올라 원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X-레이를 찍고 진료 차례를 기다렸다. 그 사이 들은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큰아이와 친한 A가 새로 산 휴대전화를 쉬는 시간에 마구 자랑했다. 그러자 또 다른 친구 B가 A의 휴대전화를 이리저리 만지다가, 제멋대로 유료 게임을 다운받아 갖고 놀았다. 제가 무슨 ‘정의의 사도’라고, 주인은 가만히 있는데 큰아이가 오지랖 넓게 나섰다. “왜 남의 휴대전화에 네 맘대로 유료 게임을 다운받느냐?”고 B에게 따진 것이다. 당연히 B는 “네 휴대전화도 아닌데 웬 참견이냐?”고 맞섰고….
티격태격 말다툼하던 두 아이는 급기야 몸싸움을 벌이게 됐다. 그러다 그만 내 아이가 B의 몸 아래에 눌렸는데, B가 주먹도 아닌 발로(!) 큰아이의 얼굴을 가격한 것이다. 나의 분노는 거의 폭발할 지경이었다.
때마침 진료 받을 차례가 돼 진료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의사가 아이 얼굴을 살펴보고 X-레이 사진을 불빛에 비춰본 뒤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종합병원에서 CT 촬영을 해보셔야겠는데요. X-레이 사진만으로는 판단할 수가 없네요.”
큰아이와 함께 급히 S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침착했다. 그런데 CT 촬영을 한 뒤 응급실에 근무하는 젊은 의사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듣는 순간, 그만 눈앞이 캄캄해지고 말았다.
“왼쪽 눈 밑에 잔뼈들이 있는데, 그게 죄다 바스러졌어요. 왼쪽 코뼈도 살짝 주저앉았고요. 수술을 안 하면 왼쪽 눈 밑과 코가 움푹 들어가 안면비대칭이 되고, 수술을 한다 해도 정상이 된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게 무슨 청천벽력인가? 안면비대칭? 쉽게 말하면 얼굴 왼쪽과 오른쪽이 짝짝이가 된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수술 방법은 또 얼마나 끔찍하던지…. 전신마취를 한 뒤 얼굴 왼쪽 눈 아래를 ‘ㄱ’자로 절개해 바스러진 잔뼈들 아래 철판을 집어넣어야 한다는 거였다. 주저앉은 코뼈를 세우려면 콧구멍 속으로 실리콘 주사를 쏘아야 한다나? 나는 응급실 밖으로 나와 큰아이를 껴안고 펑펑 울며 말했다.
“걱정마. 엄마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네 얼굴 절대 짝짝이로 안 만들 테니까. 우리나라에서 못하면, 외국에 데려가서라도 바로잡아줄 테니까.”
청천벽력 같은 아이의 부상, ‘희망의 힘’으로 행복 되찾아
정말 그때 내 마음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집을 팔아서라도, 빚을 내서라도, 세계 최고 병원을 찾아 큰아이 얼굴만은 반듯하게 원상복귀시켜놓겠다는 그런 마음!
그날 나는 밥도 먹을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수술을 시켜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할 수 없었다. 내가 울먹이며 조언을 구하자, 언제나 든든한 우군인 친정오빠는 이렇게 말했다.
“그거 옛날 같으면 절대 수술할 일 아니다. 요즘에야 의학이 발달해 CT 촬영이니 뭐니 해서 눈 밑 잔뼈가 바스러졌다는 걸 알아내지, 옛날 같으면 어찌 알겠냐? 그저 멍들고 부어올랐다 생각하고 내버려두지. 그러다 보면 뼈도 다시 자리 잡고, 부기도 저절로 가라앉을 거야.”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새언니도 조심스레 나를 달랬다.
“너무 걱정 말아요. 응급실 인턴이나 레지던트는 임상경험이 부족해 원칙론만 얘기하거든요. 외래 진료하는 전문의를 한번 만나보자고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뒤, 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S병원 외래 진료 예약을 했다. 그러곤 어렵게 짬을 낸 새언니를 대동하고, 큰아이와 함께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은 특진의가 없었다. 근무 연차가 짧아 보이는 전문의는 응급실 의사와 소견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새언니는 아무래도 경험 많은 특진의를 만나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다음 날 큰아이를 데리고 다시 특진의를 만나러 갔다. 다행히도 그 의사는 우리의 불안감을 충분히 이해하며 오랫동안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이런 경우 의사에 따라 수술을 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해요. 그만큼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경우라는 겁니다. 혹시 이렇게 말씀드리면 판단에 도움이 되실까요? 제 동생이라면 수술 안 시킵니다. 아직 성장기이기 때문에 가만히 둬도 바스러진 잔뼈들이 3개월 정도 뒤면 자리를 잘 잡을 수 있거든요. 또 왼쪽 코뼈 역시 저절로 올라올 수 있습니다. 만약 수술 안 하고 놔두었다가 안면비대칭의 문제가 생기면, 대학생쯤 됐을 때 수술해도 늦지 않고요.”
‘내 동생이라면 수술 안 한다’는 의사의 말은 친정오빠와 새언니의 조언과 더불어 판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줬고, 남편과 나는 큰아이에게 수술을 시키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까 ‘긍정의 힘’을 믿기로 한 것이었다. 의사와 친정오빠, 새언니의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큰아이의 얼굴이 저절로 자리 잡히기만을 바라며, 우리 스스로에게 ‘희망의 최면’을 걸었던 것이다.
그런 결정을 내리니, 그토록 원망스럽던 B란 녀석에게도 너그러운 마음이 생겼다. 집까지 찾아와 용서를 비는 B의 엄마에게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괜찮을 거란 생각만 할 거예요. 그러면 정말 괜찮아질 테니까요. 그러니 B엄마도 우리 아이한테 아무 일 없기만을 빌어주세요.”
나는 진료비에 위자료까지 챙겨주려는 B엄마의 ‘성의’를 거절하고, 들어간 진료비의 딱 반만 받았다. 큰아이와 B는 친한 친구였던데다, 원인이 어디에 있든 서로 싸우다가 다쳤기 때문이다. 실은 진료비의 반도 안 받고 싶었지만, 그러면 B엄마가 너무 부담을 가질 것 같아 그러진 못했다. 물론 학교에서도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B엄마는 완전 감동한 눈치였다. 큰아이의 담임선생님도 무척 고마워했다. 사실 학교 교실에서 일어난 사고라서, 피해자인 우리가 문제를 제기한다면 담임에게나 B에게나 모두 불이익이 가게 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세상일을 어찌 그렇게 각박하게만 처리하겠는가?
우리 스스로에게 건 ‘희망의 최면’ 덕분이었는지, 다행히 큰아이의 얼굴은 아무 문제없이 잘 자리 잡았다. 또 그 일을 그렇게 잘 마무리한 덕분에 큰아이와 B는 지금까지도 아주 친하게 지내고 있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내가 만약 부정적인 판단을 해서 큰아이의 얼굴을 수술했다면 어찌 됐을까 싶어서다. 그랬다면 큰아이는 지금 얼굴에 철판을 대고 콧속엔 실리콘을 집어넣은 채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그때 긍정적인 판단을 하게 했던 친정오빠와 새언니, 그리고 S병원 정형외과의 특진의가 지금도 늘 고맙다.
※ 신현수씨는… 1961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국민일보 등에서 15년 동안 신문기자로 일했고, 2001년 샘터상에 동화 ‘생각하는 자전거’가, 2002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끝이 없는 길은 없다’가 당선돼 등단했다. 지금까지 장편소설 ‘끝이 없는 길은 없다’, 장편동화 ‘내 마음의 수호천사’, 창작동화집 ‘빵점이어도 괜찮아’, 어린이 교양서 ‘옛날 사람들은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어린이 국보 여행’ ‘우주비행, 하늘로 쏘아올린 인류의 꿈’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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