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거리를 물들이고 또 한 해가 저문다는 스산함에 아쉬움이 쌓이는 계절. 따뜻한 기억을 공유한 두 사람을 만났다. 개그맨 이홍렬(53)과 가수 전영록(53). 언뜻 봐서는 좀처럼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두 사람은 중학교 동기동창이다. 이들은 오는 12월23·24일 이틀 동안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동창’이라는 이름으로 디너쇼를 연다.
서울 상수동 홍익대 앞에 자리한 이홍렬의 햄버거 가게에 먼저 도착한 이는 경쾌한 재킷 차림의 전영록. 그는 예전 모습 거의 그대로였다. 혹시나 해서 손가락으로 그의 팔을 ‘꾸욱’ 누르자 돌덩이처럼 단단한 느낌이 전해져왔다. 그리고 잠시 후 이홍렬이 투덜거리며 들어왔다. 공연 포스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니, (디너쇼) 포스터를 보니까 자기가 잘 나온 사진을 뽑았구먼.”
듣고도 모른 체하는 건지, 한 귀로 흘리는 건지 전영록의 ‘모른 척’이 이어졌다. 오히려 약속시간에 늦어 미안한 마음을 에둘러 표현하는 친구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좋아서 그러는 거지?”라고 되물었다. 아닌게아니라 포스터를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던 이홍렬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학교 창문 너머로 수영장 훔쳐보던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전영록과 이홍렬이 12월 말 여는 디너쇼 ‘동창’의 포스터용 사진. 이홍렬은 전영록이 자신에 비해 잘 나왔다고 불평(?)했다.
동창(同窓).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같은 창문으로 세상을 본다는 뜻이다. 두 사람은 70년대 후반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나 학교 창문 너머로 수영장을 훔쳐보던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들이 중학교 동창임을 알게 됐다고 한다.
“우리 학교 창문 너머로 동대문운동장 야외 수영장이 보였거든요. 그래서 쉬는 시간마다 창문에 매달려 수영복 입고 지나가는 아가씨들을 보는 게 큰 재미였는데 이 친구가 그걸 기억하고 있더라고요.”(이홍렬)
소심한 편인 이홍렬은 전영록이 혹시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집에 돌아오자마자 중학교 졸업 앨범을 찾아보았다고 한다.
“그랬더니 정말 이 친구가 있는 거예요. 반이 바뀌었더라면 한 번쯤 만났을 텐데 3년 내내 같은 반으로 올라가는 바람에 한 번도 못 만났던 거죠. 그래도 앨범 사진을 보니까 귀여운 인상에 뿔테 안경을 쓴 이 친구 어렸을 적 얼굴이 어렴풋이 기억나더라고요.”
“홍렬이가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게 그때는 나이를 속이는 사람이 많았거든요. 유인촌 이계인 태진아 전인권 등이 다 같은 또래인데 그때는 폼 잡고 몇 살 씩 높여서 말하곤 했으니까요. 태진아는 우리가 모두 ‘형’이라고 불렀는데 어느 날 혜은이가 그걸 보고는 ‘왜 형이라 불러? 우리 다 친구야’ 하는 바람에 들통이 났고 한참 후배인 (이)택림이는 우리와 동갑이라고 말했다가 나중에 그 형이 우리 친구인 게 밝혀져서 혼쭐이 났어요(웃음).”
두 사람은 ‘수영장 사건’ 이후로 가까워졌지만 이홍렬은 전영록에게 약간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당시 전영록은 ‘애심’이라는 노래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다 배우 고(故) 황해씨와 가수 백설희씨 아들이라는 후광까지 더해져 일찌감치 스타로 자리매김했던 반면 자신은 TBC 라디오 ‘가요대행진’에 고정출연하며 방송활동을 막 시작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저는 그냥 평범한 개그맨인데 영록이는 대스타였죠. 게다가 가족이 다 스타잖아요. 지금이야 2세 연예인들이 흔하지만 그때는 그런 경우가 드물었거든요. 하루는 집에 찾아갔는데 황해 선생께서 일본 영화를 보면서 동시통역해주더라고요.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아무튼 인상 깊었어요.”
옆에서 듣던 전영록이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가물가물한 옛 기억을 하나 더 떠올렸다.
“10년 전 이혼을 한 뒤 수중에 돈이라고는 한 푼도 없었어요. 그래서 경기도 수서에 있는 10평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부산으로 공연을 다닌 적이 있어요. 좋은 노래를 들려준다는 보람은 있었지만 부산까지 매번 오가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지금까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때가 그때였는데 그때 홍렬이가 부산까지 찾아왔었죠. 지금처럼 말도 많이 안 했는데 왜 왔는지 눈빛만으로도 마음이 다 전해지더라고요.”
그러면서 전영록은 몇 달 전 이홍렬이 보냈다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여주었다.‘친구야 잘 지내? 난 잘 지내. 오늘은 내 생일. 더 즐거울 수 있게 축하 문자 메시지 하나 찐하게 때려줘~.’
“글이 예뻐서 아직 간직하고 있어요. 이것만 보면 기분이 좋아지거든요.”(전영록)
“이 친구가 좀 오버가 있지. 하하하.”(이홍렬)
깐깐함 VS 자상함, 서로 다른 자녀교육법
이날 인터뷰에는 이홍렬 아들 재혁군, 전영록의 아들 유빈군이 함께 했다.
올해로 결혼 20주년을 맞는 이홍렬은 대학교 1학년,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두 아들을 두고 있고 99년 재혼한 전영록은 여섯 살배기 아들과 두 살배기 딸 남매를 두고 있는데 몇 달 전에는 가까운 친지만 초대한 가운데 조촐하게 딸 돌잔치를 치렀다고 한다. 전처 이미영과의 사이에서 낳은 두딸은 그가 키우다가 얼마 전 엄마에게 보냈다고. 마침 이날은 한시도 아빠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전영록의 아들과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홍렬의 아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이홍렬은 두 아들 교육에 각별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다고 무조건 뒷바라지하는 스타일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덜 주고 강하게 키울까’를 고민하는 쪽이라고 한다. 반면 늦둥이 아이들을 둔 전영록은 아이들이 예뻐서 어쩔 줄 모르는, 그래서 웬만한 자리에는 꼭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자상한 아버지다.
“아이들과 오래전부터 세 가지 약속을 했어요. 용돈은 고등학교까지. 대신, 공부는 하고 싶을 때까지 시켜준다. 하지만 물려줄 재산은 없다. 이렇게 세 가지요. 약속이라기보단 세뇌죠. 그런데 큰아들이 대학에 들어가서 얼마 후 한밤중에 전화를 했어요. ‘지금 지하철이 끊겨 집까지 택시 타고 가려 하는데 택시비를 계산해줄 수 있냐’고요. 잠깐 갈등했죠. 하지만 요때 매섭게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우리가 여러 번 약속한 게 있는데 그렇게 나오면 곤란하다. 미안하지만 알아서 들어오라’고 하고는 전화를 뚝 끊었어요. 다음 날 어떻게 들어왔냐고 물으니 친구에게 돈을 빌려서 택시를 타고 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도저히 못살겠다는 표정으로 ‘밖에서 술 한 잔 하자’고 하더니 “친구들 보니까 다들 집에서 용돈을 받더라”며 하소연하더라는 것.
“딱 잘라서 말했어요.‘다른 사람 이야기하지 말자. 자기가 학비를 벌어서 다니는 학생도 있지 않느냐’고 말했죠. 그랬더니 아들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한 달에 10만원씩 교통비만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것도 그냥 줄 수가 없어서 ‘네가 아르바이트를 하면 교통비를 주겠다’고 했더니 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 하더군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홍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전영록은 “그러다가 아이들이 비뚤어지거나 나중에 늙어서 아이들한테 그대로 당하면 어떻게 하냐”라는 질문을 던졌다.
“아이들이 자신을 스스로 책임지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서예요. 그렇게 하다 보면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을 기회를 갖게 되죠. 가난했던 우리 어머니가 우리를 가르쳤던 방법이기도 하고요.”(이홍렬)
“그런 걸 보면 부모의 교육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저희 부모님은 어려서부터 자꾸 스스로 뭘 만들어내라고 가르치셨는데 그 덕분인지 저는 평생 창조를 업으로 삼고 있잖아요(웃음). 저는 아이들 일기를 써줘요. 아주 어렸을 때 일은 기억이 안 나잖아요. 부모님한테 듣는 얘기도 미덥지 않고…. 그래서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일기를 써주는 거죠. 아이가 좋아하는 색깔, 음식, 좋아하는 사람…. 오늘은 홍렬이 삼촌을 만났다고 써야지(웃음).”(전영록)
“나이 들수록 서로를 향한 마음이 더욱 애틋해져요”
“사람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진행은 이 친구가 최고죠.”(전영록)
“그건 나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고, 영록이야말로 천재죠. 좋은 노래가 얼마나 많아요. ‘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 ‘바람아 멈추어다오’ ‘나를 잊지 말아요’…. 얼마 전 KBS ‘해피선데이’‘불후의 명곡’에 이 친구가 출연한 걸 봤는데 ‘이 친구가 만든 히트곡이 이렇게 많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죽하면 데뷔 30년 동안 헌정 앨범을 두 번이나 받았겠어요. 헌정 앨범 두 번 받은 가수가 세계적으로 흔하지 않은데. 제가 이 친구한테 툴툴거리는 거, 다 자격지심에서 그러는 거예요. 서로 일하는 분야가 다르니까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질투로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을 거예요(웃음).”(이홍렬)
“나도 내 노래 들으면서 ‘아, 이 노래를 과연 내가 만들었나’ 싶을 때가 있다니까(웃음).”
전영록은 내년 봄쯤 발라드·록·트로트 등 여러 장르를 망라한 새 음반을 낼 계획이며 영화 시나리오도 준비 중이라고 한다. DVD를 1만5천여 장 소장한 영화광인 그는 그동안 영화 관련 매체에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이홍렬은 당분간 사업에 주력하는 한편 그동안 해왔던 봉사활동에도 더욱 정성을 쏟을 계획이라고. 이홍렬이 2005년부터 빈곤 아동들의 따뜻한 겨울나기를 돕기 위해 벌이는 ‘樂樂 페스티벌’에는 전영록도 매년 함께 참여해 힘을 보태고 있다.
“나이가 쉰이 넘고 보니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다 보니 하루하루 알차게 보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친구에 대한 마음도 애틋해지더라고요. 우리 나이엔 왠지 모르게 외롭고 쓸쓸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 가장 의지가 되는 게 친구잖아요.”(이홍렬)
“우리가 폐경기 여성도 아니고, 외롭고 쓸쓸하긴(웃음). 다만 나이가 들면서 건강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저뿐 아니라 이 친구도 술 좀 줄이고 건강하면 좋겠어요.”(전영록)
늦게까지 이어진 두 사람의 이야기에는 함께 보낸 시간이 빚은 편안함과 함께 나이 들어간다는 동질감에서 비롯된 따뜻함이 곳곳에 묻어났다. 전영록과 이홍렬. 이들은 서로의 소리를 알아주는 참된 벗, 진정한 지음(知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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