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대로라면 좀 더 일찍 진행됐어야 할 인터뷰였다. 이윤석(35)이 지난 2월 중앙대에서 신문방송학 박사학위를 받고, 새 학기부터 경기대 엔터테인먼트 경영대학원의 겸임교수가 됐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만남을 이틀여 앞둔 어느 날 그의 매니저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가 과로로 쓰러져 스케줄을 조정해야 한다는 소식. 그는 정말, 국민약골인가.
‘국민약골’ 이윤석을 위한 처방전 - 1. 공부
몇 번의 스케줄 조정 끝에 이윤석을 만났다. 182cm 키에 60kg이 조금 넘는 몸무게. 실제로 만난 이윤석은 확실히 좀 부실해 보인다. 하지만 그 자신은 꼬리표처럼 붙은 ‘약골’ 이미지가 조금 억울하다는 투다. 한의사인 매형과 제약회사에 다니는 남동생 덕에 보약과 건강보조제를 꾸준히 먹으며 버티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생각처럼 그렇게 약한 건 아니라고 한다.
“워낙 말라서 약해 보이는 것 같아요. ‘국민약골’이라는 이미지가 좀 억울해요. ‘대단한 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을 하면서 그런 별명을 얻었는데, 그 프로그램의 촬영이 보통 낮에 시작해서 새벽에 끝나거든요. 밤새도록 운동을 하면서 움직여야 해요. 그런 스케줄을 진짜 약골은 소화할 수 없죠. 그리고 사실 재밌게 못하는 게 더 어렵다는 거 아시죠(웃음).”
그의 항변에 수긍이 간다. 이윤석은 그동안 정말 꾸준히, 많은 프로그램에서 얼굴을 내비쳐왔다. 현재 고정적으로 출연 중인 프로그램도 ‘느낌표-산 넘고 물 건너’ ‘TV 완전정복’ ‘잡지왕’ ‘섹션TV 연예통신’ 등 4개. 거기에 이번 학기부터는 강의까지 한다니, ‘약골’ 이미지 너머의 어떤 ‘독함’이 엿보인다.
“강의를 맡아야 공부를 하게 되더라고요. 또 제가 공부를 하지 않고는 가르칠 수가 없으니까 그렇게라도 공부를 하려고 강의를 하는 거예요. 게다가 방송활동만 하면 이 세계에 갇혀 있으니까, 편협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다른 쪽에 발을 담아야 할 것 같은데 사업은 잘할 자신이 없고, 그나마 공부가 제 성격에 맞아서 하게 됐죠.”
98년 중앙대 신문방송학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시작해 2002년부터 박사과정을 밟았고, 지난해부터 1년간 논문을 준비한 뒤 올해 초 박사논문이 통과됐다고 한다. 본인은 “공부만 하는 분들에 비하면 절대적으로 양이 부족한데 운이 좋았다”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학문에 대한 노력과 열의가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바쁜 일정에서도 대학원 출석을 빠지지 않았으며 논문을 쓰는 동안에는 하루 일정이 끝나면 매일 새벽까지 대학원 도서관에 남아 공부를 했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논문을 준비하던 1년간 살이 6kg 정도 빠졌다는 것만 봐도 그간 ‘고생’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그는 왜 그렇게 ‘공부’에 ‘집착’했던 걸까.
“공부하는 게 제 성격에 맞아요. 유일하게 좋아하는 게 집에서 음악 듣는 거랑 책보는 건데, 이왕 책을 보는 거 깊이 있게 공부 좀 해보자 하는 생각에서 대학원에 들어갔죠.”
거기에 5년 전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뜻도 있었다고 한다. 공부 잘하는 장남이 개그맨이 되는 걸 반대하던 아버지는 그가 공부를 계속하기를 기대하셨다고 한다.
“아버지가 암 투병하실 때 유언 비슷하게 말씀하신 게 ‘공부를 많이 하라’는 거였어요. 당시 박사과정에 합격했을 땐데 정말 기뻐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네가 박사학위 받는 것 보고 죽으면 좋겠다’는 말도 하셨는데, 이번에 박사학위 받고 기쁘면서도 아버지 생각이 나서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아버지의 바람대로 공부를 계속했고, 개그맨에 더불어 ‘교수’라는 호칭도 얻게 됐다. 몇 년 전 중앙대에서 한 학기 동안 교양강의를 맡은 적은 있지만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는 이번 학기부터 ‘현대사회와 매스미디어’를 강의한다. 강단에서 그는 어떤 선생님일까.
“혹시나 학업 분위기가 흐려질까봐 일부러 딱딱하게 하는 것도 있어요. 그래도 가끔 수업 중 웃기고 싶을 때가 있긴 하죠. ‘아, 이거… 텔레비전이라면 이 순간에 이렇게 하면 무조건 웃을 텐데… 그래도 참아, 참아야 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 고민해요(웃음).”
‘국민약골’ 이윤석을 위한 처방전 - 2. 방송
확실히 개그맨의 피가 흐르고 있긴 하지만, 이윤석이 가진 이미지는 다른 개그맨들에 비해 다소 ‘모범생’같다.
“전 아마도 전생에 ‘지렁이’였을 거 같아요(웃음). 지렁이가 그렇잖아요. 땅속에만 있으면서 조금씩 꿈틀거리고, 그렇다고 큰 피해를 주진 않고… 제가 좀 그래요. 집안에 틀어박혀서 혼자 꼼지락거리는 거 좋아하지만 남들에게 피해 주는 건 싫어하거든요.”
학창시절 워낙 심각한 표정을 짓고 다녀 별명이 ‘슬픈 윤석’이었다는 이윤석은 내내 얌전히 있다가 아주 드물게 학교 소풍이나 축제에 나가서 광기(!)를 발휘한 적은 종종 있었지만 대학 3학년이던 93년 서경석과 함께 MBC 개그콘테스트에 나가 데뷔하기 전까진 그 자신 역시 개그맨이 될 줄 몰랐다고 한다.
이윤석은 이번 봄학기부터 경기대 엔터테인먼트 대학원에서 ‘현대사회와 매스미디어’를 강의한다.
“대학(연세대 국문과) 다닐 때 막연히 국어선생님이나 PD, 기자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딱히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하는 건 내키지 않았고 뭐 재미난 게 없나 둘러보다가 개그콘테스트에 나간 거죠. 개그맨이 될 생각이라기보다는 그냥 방송사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지원을 했는데, 지금도 모르겠어요. 왜 붙었는지(웃음). 게다가 다른 개그맨들은 합격해도 최소 1년 이상, 길게는 10년까지 어려운 시기를 겪거든요. 그런데 저랑 경석이는 운 좋게도 그런 시기 없이 바로 방송에 출연하게 됐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명문대생 타이틀을 붙여서 출연시키는 게 방송사의 전략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우연히 히트를 쳤어요. ‘그렇게 심한 말을~’ 뭐 이런 거 하면서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제가 전혀 생각지 못한 길을 걷고 있더라고요. 큰돈도 벌고, 여기저기 다니면 사람들이 알아보면서 좋아하고. 그렇게 이 년 삼 년이 훅훅 지나버렸고 나중엔 돌이킬 수 없게 와버렸더라고요(웃음). 다시 새로운 걸 한다는 것도 어렵고, 아버지가 반대를 많이 하셨기 때문에 갈 만큼 간 후에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부끄럽고 해서 기왕 이 길을 시작했으니 계속 가보자 해서 지금까지 온 거죠.”
그렇게 방송생활도 14년이 흘렀다. 하지만 후회보다는 보람이 더 많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은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 같다”고.
“이 일(방송)을 안 했으면 나란 사람이 어떻게 됐을까 싶어요. 한 예로 방송이 없을 때 저는 밤새도록 제 방에서 뭔가를 하다가 그 다음 날 낮 동안 내내 자거든요. 방송이나 하니까 햇빛 보면서 일하고, 사람도 많이 만날 수 있고 밝은 모습도 보이면서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지금 이 일을 할 수 있어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그가 말하는 ‘인간다운 생활’에는 ‘느낌표-산 넘고 물 건너’를 하면서 오지의 노인들께 의료봉사를 하는 것도 포함되는 듯하다. 그 프로그램을 진행한 뒤로 그는 촬영장에서 만난 할머니 팬들에게 전화를 자주 받는다고 한다.
“(‘…산넘고 물건너’가) 섬까지 가는 데 하루, 오는 데 하루 걸릴 만큼 힘이 많이 드는 프로그램이지만, 적게는 열 명에서 많게는 백 명 가까운 어르신이 종합검진을 받으실 수 있으니까 확실히 보람이 있죠. 비록 제가 검진을 시켜드리는 건 아니지만 제가 한 것 같은 기분도 들고요. 그분들이 가끔 전화를 주시면 받는 게 전부예요. 제가 전화도 자주 드리고 해야 하는데… 많이 부족하죠(멋쩍은 웃음).”
슬럼프를 묻는 질문에 “인기가 우뚝 솟은 적이 없기 때문에 내 방송 자체가 슬럼프”라고 농담을 던지지만 10여 년간 꾸준히 텔레비전에 얼굴을 내비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늘 (인기가) 낮게 깔려 저공 행진을 해왔죠. 저공 행진의 비결요? 아무래도 부담 없는 출연료 때문이 아닐까요(웃음). 시청자 분들이 제게 큰 기대를 안 하시는 만큼 거부감도 없는 것 같아요. 스캔들도 없고,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 같고… 크게 웃길 거라고 기대도 안 하세요. 그래서 웃겨야 한다는 부담이 덜한 편이죠. 가끔 웃기면 오히려 시청자 분들이 ‘쟤도 웃기네’ 그러면서 반가워해주시고요(웃음).”
자기 칭찬에는 유독 ‘박하다’. 어쩌면 그런 겸손함과 자신에 대한 철저함이 낮지만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비결 아닐까.
‘국민약골’ 이윤석을 위한 처방전 - 3. 사랑
“거창한 목표 없이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며 행운이 와주길 기다린다”는 이윤석이지만 이루고 싶은 목표가 없는 건 아니다. 서른다섯 노총각인 그에게 결혼은 요원한 숙제다.
“막 죽도록 사랑하는 거는 글쎄요… 한때는 그런 적도 있지만 이젠 어려울 것 같아요.”
늘 조심스러운 성격의 그이지만 한때 자신 역시 불같은 사랑에 빠진 적도 있다고 한다. 당시 지방에 살던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서울에서 이틀이 멀다 하고 한시라도 빨리 보기 위해 전속력으로 차를 끌고 달리다 보니 “수백만원어치의 ‘교통 위반 딱지’를 끊었을 정도”라고. 그러나 이제는 “편안한 사랑”을 꿈꾼다고 한다. 그의 이상형은 자신의 어머니 같은 여자.
“화려하고 섹시한 여자보다는 인상 좋고 현명한 여자면 좋겠어요. 여자친구 없이 지낸 지 벌써 3년째인데 이젠 결혼하고 싶어요. 혹시 제 빈약한 몸을 평생 돌봐주시고 싶은 의사 선생님이나 한의사 선생님이 계신다면 대환영이에요.”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