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2일 프랑스에서 쿠르조 부부가 처음으로 공개 기자회견을 열어 영아 유기혐의를 전면 부인한 모습. 그러나 베로니크 쿠르조는 10월10일 긴급체포된 후 자신이 영아들을 낳은 뒤 살해했다고 경찰에 자백했다.
‘악마에 시달린 수줍은 젊은 여인.’ (프랑스 ‘르 피가로’) ‘그는 괴물이다.’ (프랑스 ‘수아르’)
서래마을 영아 유기사건의 범인으로 밝혀진 베로니크 쿠르조(39)에 대한 프랑스 언론의 반응이다. 지난 7월 서울 반포 서래마을에 사는 프랑스인 장 루이 쿠르조(40)가 집 냉동고에서 영아 사체 2구를 발견하면서 시작된 영아 유기사건이 비로소 실체를 드러냈다. 그의 부인 베로니크가 지난 10월10일 프랑스 경찰에 긴급 체포된 후 “영아들을 목 졸라 숨지게 했다”고 자백한 것.
쿠르조 부부는 경찰에 긴급 체포되기 전까지 자신들이 숨진 영아의 부모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부인해왔다. 그러나 한국에 이어 프랑스 사법당국의 DNA 분석결과에서도 자신들이 영아의 부모로 밝혀지자 베로니크는 체포 직후 자신의 범행을 인정했다. 이 부부의 변호인인 마르크 모랭 변호사는 “아무것도 몰랐던 장 루이는 아내의 자백 사실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프랑스 수사당국에 따르면, 베로니크는 한국의 집에서 2002년 9월과 2003년 12월 두 차례 아무도 몰래 출산한 뒤 아기의 목을 졸라 살해하고 사체는 비닐봉지에 넣어 냉동고에 보관했다. 한국에서 태어난 두 아기는 당초 알려진 대로 이란성 쌍둥이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베로니크가 입을 열면서 그의 엽기적인 범행 사실이 추가적으로 드러났다. 한국에 가기 전에도 한 명의 아기를 더 죽였다고 밝힌 것. 그는 99년 7월 혼자서 아기를 낳은 뒤 목 졸라 숨지게 하고, 사체를 그날 하루 벽장에 방치했다가 벽난로 안에 넣어 불태웠다고 한다. 범행 장소는 샤랑트-마리팀 지방에 있던 그의 집이었다.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베로니크의 진술을 인용해 사체를 불태운 프랑스에서와 달리 한국에서 사체를 냉동고에 보관한 경위를 전했다. 베로니크는 “한국의 집에서는 벽난로를 사용할 수 없어 출산 직후 어쩔 줄 몰랐는데, 아기들을 없앨 용기도 없어 사체들을 보관했다”고 말했다.
프랑스 검찰 수사에서 베로니크는 범행 동기를 묻는 질문에 “아기를 죽이라고 암시하는 모종의 힘을 임신 중에 느꼈다”고 말했다. 세 번째 희생당한 아기를 가졌을 때는 임신 때 이미 살해를 결심했다고. 그는 아이를 원치 않아 범행을 저질렀다는 진술도 했다. 하지만 아기를 원치 않았던 그가 왜 피임약 복용을 중단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베로니크는 범행을 자백한 뒤에도 후회하는 빛을 보이지 않아 수사당국은 그의 정신상태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프랑스인 친구들이 자주 놀러와 모임을 열었다는 서울 반포 쿠르조의 집 정원(왼쪽).영아 사체 2구가 발견된 냉동고(오른쪽).
임신 중 살해 충동 느껴… 남편의 범죄 공모 여부가 수사 초점
범죄심리학자인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세 차례나 같은 방법으로 살해한 베로니크에 대해 “경계성 인격장애를 의심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여성이 출산 뒤 영아를 유기하는 것은 보통 산후우울증 때문입니다. 하지만 베로니크의 경우 단순히 산후우울증 때문에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똑같은 범행을 세 차례나 반복해서 저지른 것으로 보아, ‘경계성 인격장애’가 의심됩니다. 경계성 인격장애의 특징은 불확실성이 높고 변덕이 심하며 무책임하다는 점입니다. 베로니크는 임신을 미리 피할 수 있었지만, 순간적인 충동을 조절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성격적인 결함이 범행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프랑스 경찰은 지난 10월15일(한국시간) 연쇄 살인 혐의로 베로니크를 구속하고, 그의 정신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전문가에게 정신감정을 의뢰했다. 베로니크의 인격장애 여부가 형량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베로니크는 프랑스 법에 따라 최고 무기징역까지 받을 수 있지만, 정신질환 등 정상이 참작돼 감형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남편은 부인의 범행 사실을 정말 몰랐을까. 프랑스 수사당국은 장 루이의 범행 공모 여부 등 의문점을 밝히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장 루이는 경찰에 긴급 체포된 뒤 이틀간 조사에서 뚜렷한 혐의가 드러나지 않아 10월12일 풀려났지만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수사당국은 지난 4년간 아내가 3차례나 출산과 살해를 반복했는데도 남편이 범죄 사실은커녕 임신 사실도 눈치 채지 못했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장 루이는 출장 때를 제외하곤 거의 매일 집으로 퇴근했으며, 평소 각방을 쓰지 않고 잠자리를 같이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장 루이에게 유리한 증거도 있다. 지난 7월23일 한국 경찰에 냉동 영아들의 존재를 자발적으로 신고했고, 수사에 협조했기 때문이다. 서래마을 영아 유기사건 수사를 담당한 서울 방배경찰서 천현길 강력팀장은 수사 초기 상황을 들려줬다.
“한국 경찰은 베로니크의 단독 범행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냉동고의 영아 시신을 본 뒤 그는 상당히 놀란 모습이었고, DNA 채취에도 선뜻 응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집 계약기간이 1년이나 남은 상황에서 그가 부인의 범죄를 알고 일부러 신고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부인의 범죄를 미리 알았을 가능성도 수사에서 배제해서는 안 되겠죠.”
이번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 언론은 자국의 오만을 반성하며 한국의 과학수사능력을 뒤늦게 인정했다. 유기된 영아 사체 2구, 쿠르조 가족이 썼던 칫솔과 귀이개, 베로니크가 자궁적출 수술을 받을 때 병원 측에서 채취해둔 자궁조직 시료. 여기에서 각각 추출된 유전자 분석을 통해 한국 수사당국은 쿠르조 부부가 영아들의 부모임을 신속하게 밝혀냈기 때문이다.
베로니크는 과연 정신이상일까. 장 루이는 부인의 출산과 범죄 여부를 어느 정도는 눈치 채고 있지 않았을까. 프랑스 수사당국이 최종 결과를 내리기까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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