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머리를 염색하려고 미장원에 갔다. 스팀타월을 씌운 지 5분쯤 지났을까, 머리가 가렵고 열이 솟구쳐 미칠 것 같았다. 미용사가 즉시 찬물로 헹궈줬으나 그날 이후 난 염색할 수 없는 체질이 되고 말았다. 어지간한 알레르기는 일어나지 않는, 피부에 자신 있던 나였는데 나에게 형벌(?)이 가해진 것이다.
그 후 두피에 전혀 해가 없는 염색제를 찾아다녔다. 자연 염색, 천연 염색, 인도에서 직수입한, 그야말로 바로 식물을 찧어서 가루로 만들었다는 식물 염색제까지 구해서 다 써보았지만 내 두피는 염색제만 들이대면 바로 알아차리곤 부글부글하다가 진물을 내며 나를 슬프게 했다. 그때부터 내 눈에 가장 부러운 사람은, 두피 걱정 안 하고 염색하는 사람들이었다. 염색하고 스팀타월 두르고 아무렇지도 않게 잡지책을 보고 있는 여자들을 보면 ‘아, 저 여자는 참 행복하겠다’ 싶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여주인공이 감탄한 것처럼 머리 염색 빛깔들은 왜 그렇게 낭만적이고 멋져 보이는지. 블루 루인, 레드 메닉스, 옐로 피버 등 염색 빛깔 이름은 왜 그렇게 멋지고 부러운지.
몇 달간 자제하다 일본으로 특집 방송 하러 가기 전 날, 오랜만에 하니 괜찮겠지, 하고 염색을 살살 했는데, 역시나 또 그 증세가 나타나 도쿄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하얀 베갯잇에 진물이 묻어 있는 것을 보면서 아침 거울 보는 기분은, 우울하고 참담했다. 귀국해서는 몇 달간 피부과에 다니며 계속 치료받고 약을 먹다가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염포족(염색을 포기한 족속)이 됐다. 최선의 방법은 까만 머리를 여고생 때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던 것처럼 찰랑거리고 윤기나게 노력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새치가 하나둘 생기면서 까만 머리에 유독 하얀 새치가 대비돼 보였다. 내 귀 옆에 새치 여러 개가 있는 것을 발견한 아들이 소리쳤다.
“엄마, 흰머리 많아요. 빨리 염색하세요. ”
“창현아, 하얀 머리가 많아지는 거, 이거, 엄마가 나이 든다는 얘긴데, 나이 든다는 것은, 퇴보가 아니라, 발전이야. 엄마 머리에 새치가 생기는 것도, 세월이 흐르면서 얻는 ‘발전’이라고 생각해. ”
처음 아들이 새치를 문제 삼는 순간, 몇 초 동안은 이제 나도 늙어가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덜커덕 겁이 나고 ‘센티’해졌다. 아, 이제 나도 젊음의 대열에서 이탈해야 하는 것인가. 그런 우울한 감상이 순간 일었다. 그러나 새치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세월이 갈수록 나이 들어가는 게 정상이고, 세월이 가는데도 거꾸로 오히려 더 젊어지고 어려진다면 그것이 오히려 퇴보요, 비정상이 아니겠는가. 나이듦, 영어로 ‘에이징(aging)이라고 하던데 ‘에이, 징’한 것이 세월이라면 그 징한 것을 장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우리 몫이 아닐까. 그렇다면 흰 머리로 변해가는 것, 그것은 화려한 발전이요, 앞으로 나아가는 진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새치가 많지는 않지만, 곧 많아지면, 나는, 새로운 시도를 할 것이다. 이름 하여 새치머리 가꾸기. 염색 대신 보랏빛 헤어 매니큐어를 하는 것이다. 보라색은 하얀 색과 잘 어울리므로 그 옆에 새치가 새로 자라 나와도 조화를 이룰 것이다. 새치를 즐겁게 자연스런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나는 점점 머리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왕 벌어진 것,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빨리 포기하고 나만의 자연적인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아, 그러고 보니 내 두피가 요즘은 깨끗해진 것 같다. 아마 내가 속상함보다는 이왕이면 행복해지는 ‘긍정의 열차’에 올라탔기 때문일까.
그날 새치에 대해서 쓴 시의 앞부분이다.
까만 숲 속에 하얀 길이 하나 생겼다.
가비 빛나는 속살같이 하얗게 빛나는 미로 하나.
까만 숲 속에 생긴 후 급속도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그 하얀 미로가 옆길에 나고 겹쳐지더니
지루한 숲 속이 아름다운 무늬로 변했다.
그 후 두피에 전혀 해가 없는 염색제를 찾아다녔다. 자연 염색, 천연 염색, 인도에서 직수입한, 그야말로 바로 식물을 찧어서 가루로 만들었다는 식물 염색제까지 구해서 다 써보았지만 내 두피는 염색제만 들이대면 바로 알아차리곤 부글부글하다가 진물을 내며 나를 슬프게 했다. 그때부터 내 눈에 가장 부러운 사람은, 두피 걱정 안 하고 염색하는 사람들이었다. 염색하고 스팀타월 두르고 아무렇지도 않게 잡지책을 보고 있는 여자들을 보면 ‘아, 저 여자는 참 행복하겠다’ 싶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여주인공이 감탄한 것처럼 머리 염색 빛깔들은 왜 그렇게 낭만적이고 멋져 보이는지. 블루 루인, 레드 메닉스, 옐로 피버 등 염색 빛깔 이름은 왜 그렇게 멋지고 부러운지.
몇 달간 자제하다 일본으로 특집 방송 하러 가기 전 날, 오랜만에 하니 괜찮겠지, 하고 염색을 살살 했는데, 역시나 또 그 증세가 나타나 도쿄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하얀 베갯잇에 진물이 묻어 있는 것을 보면서 아침 거울 보는 기분은, 우울하고 참담했다. 귀국해서는 몇 달간 피부과에 다니며 계속 치료받고 약을 먹다가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염포족(염색을 포기한 족속)이 됐다. 최선의 방법은 까만 머리를 여고생 때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던 것처럼 찰랑거리고 윤기나게 노력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새치가 하나둘 생기면서 까만 머리에 유독 하얀 새치가 대비돼 보였다. 내 귀 옆에 새치 여러 개가 있는 것을 발견한 아들이 소리쳤다.
“엄마, 흰머리 많아요. 빨리 염색하세요. ”
“창현아, 하얀 머리가 많아지는 거, 이거, 엄마가 나이 든다는 얘긴데, 나이 든다는 것은, 퇴보가 아니라, 발전이야. 엄마 머리에 새치가 생기는 것도, 세월이 흐르면서 얻는 ‘발전’이라고 생각해. ”
처음 아들이 새치를 문제 삼는 순간, 몇 초 동안은 이제 나도 늙어가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덜커덕 겁이 나고 ‘센티’해졌다. 아, 이제 나도 젊음의 대열에서 이탈해야 하는 것인가. 그런 우울한 감상이 순간 일었다. 그러나 새치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세월이 갈수록 나이 들어가는 게 정상이고, 세월이 가는데도 거꾸로 오히려 더 젊어지고 어려진다면 그것이 오히려 퇴보요, 비정상이 아니겠는가. 나이듦, 영어로 ‘에이징(aging)이라고 하던데 ‘에이, 징’한 것이 세월이라면 그 징한 것을 장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우리 몫이 아닐까. 그렇다면 흰 머리로 변해가는 것, 그것은 화려한 발전이요, 앞으로 나아가는 진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새치가 많지는 않지만, 곧 많아지면, 나는, 새로운 시도를 할 것이다. 이름 하여 새치머리 가꾸기. 염색 대신 보랏빛 헤어 매니큐어를 하는 것이다. 보라색은 하얀 색과 잘 어울리므로 그 옆에 새치가 새로 자라 나와도 조화를 이룰 것이다. 새치를 즐겁게 자연스런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나는 점점 머리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왕 벌어진 것,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빨리 포기하고 나만의 자연적인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아, 그러고 보니 내 두피가 요즘은 깨끗해진 것 같다. 아마 내가 속상함보다는 이왕이면 행복해지는 ‘긍정의 열차’에 올라탔기 때문일까.
그날 새치에 대해서 쓴 시의 앞부분이다.
까만 숲 속에 하얀 길이 하나 생겼다.
가비 빛나는 속살같이 하얗게 빛나는 미로 하나.
까만 숲 속에 생긴 후 급속도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그 하얀 미로가 옆길에 나고 겹쳐지더니
지루한 숲 속이 아름다운 무늬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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