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러니까… 솔직히 (공부가) 재밌어요.”
‘제2의 지관순’ ‘광주의 골든벨 소녀’라 불리는 광주 정광고 박나영양(19). ‘공부가 재미있냐’는 첫 질문에 당황하면서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쑥스러운 듯 대답했다.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었을 때나 영어 지문을 읽고 또 읽고 한 열 번 정도 읽고 나서 무슨 뜻인지 알게 되면 느끼는 쾌감 같은 거 있잖아요. 책을 하도 봐서 까매지고 너덜너덜해졌을 때도 뿌듯하고요.”
심지어 EBS 문제집에 나오는 영어 지문 중에도 감동적인 문장이 많아서 좋았다고 말하는 걸 보니 정말로 공부를 좋아하는 듯싶다.
그러나 정작 골든벨 문제를 풀 때는, 상식책을 포함해 학교에서 뽑아준 기출 예상문제를 훑어본 게 도움이 되긴 했지만 “정말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과라 사회나 역사 분야는 자신이 없었거든요. 천운인 거 같아요(웃음).”
그렇다면 학업성적은? 박양은 올 수능시험에서 언어에서 2개, 수학에서 3개, 화학에서 2개를 틀려서 4백82점(5백점 만점)을 맞았다. 현재 전남대 의대에 합격한 상태고 서울대는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 그에게 공부 잘하는 비법을 물으니 “수업 열심히 듣고 EBS 방송을 열심히 봤다”는 모범답안이 나온다.
“맘에 드는 책이 하나 있으면 끊임없이 봐요. 저는 EBS 문제집을 좋아했는데,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EBS 방송을 빠짐없이 보고, EBS에서 나온 문제집은 다 풀어봤어요. 문제집 한 권당 평균 두세 번씩은 반복해서 본 것 같아요. 친구들은 학습지랑 다른 문제집도 많이 풀었지만 여러 문제집을 풀면 깊이 생각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았어요. 제 경우에는 문제집 하나를 택해서 하나만 완벽히 이해하기에도 모자랐거든요.”
특히 생물을 좋아하는 박양은 나중에 의학자가 되고 싶다고 한다.
“의대를 마치고 개인병원을 차리기보단 계속 공부했으면 좋겠어요. 선생님들도 학자가 맞는 것 같다고 하시고요.”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하지만 엄마, 아빠가 저를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요”
박양은 3년간 학비보조를 받으면서 학교에 다녔다. 사실 그가 언론의 큰 관심을 받게 된 것도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은 그런 시선이 불편하다고 말한다.
“부모님이 광주의 한 재래시장에서 이불가게를 하시는데 먹지 못하고 살 정도는 아니에요. 돈 없어서 대학 못 가는 친구도 있는데, 전 그런 것도 아니고요. 혹시 언론에 제가 나온 걸 보고 저보다 훨씬 힘들게 사는 친구들이 ‘별로 가난한 것도 아니면서 엄살 피운다’고 비난할까봐 많이 걱정돼요. 보다시피 전 옷도 입고 있고…(웃음).”
자신의 모습이 과장되게 비쳐지는 게 부담스러운 듯했다. 다만 공부 잘하고 못하고와 부유하고 가난하고는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중3 땐가, 저는 광주 변두리에 살아서 몰랐는데 시내에 사는 친구들은 한 과목에 30만~40만원 하는 학원에 다니더라고요. 그때 조금 걱정했어요. 쟤들은 저렇게 공부하는데 나는 이렇게 놀아도 될까 해서. 하지만 고등학교 와서는 그런 생각도 안 들었어요. 모르는 건 선생님한테 질문하면 되니까요.”
공부만 잘하는 게 아니라 속도 깊은 듯하다. 하지만 그래도 가난한 부모님을 원망한 적이 한 번도 없을까.
“그냥 ‘우리 엄마랑 아빠는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왜 우리집은 부자가 안될까’ 그런 생각은 해봤어요. 그런데 저희 엄마도 어린 시절 외할머니를 보면서 ‘우리 엄만 몇 십 년 일만 했는데 왜 저렇게 살까’ 했었대요. 엄마가 그랬어요. ‘인생이 다 그런 거’라고요. 그러니까 저희가 가난한 건 엄마, 아빠 잘못만은 아닌 것 같아요.”
엄마, 아빠는 한 번도 박양에게 “공부하라”고 한 적이 없다고 한다. 다만 “사람이 돼라”고는 종종 하셨다고.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하지만 엄마, 아빠가 저를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요. 나중에 제가 성공해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는 싶어요. 하지만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어요. 엄마, 아빠도 그런 말씀은 안 하시고요.”
박양은 특히 엄마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한 번도 칭찬이나 애정표현을 드러내놓고 한 적이 없지만 밤에 같이 잘 때면 항상 자신의 손을 잡아주신다고.
“저희 엄마는 정말 대단한 분이에요. 예전에 엄마가 일하던 곳에 가본 적이 있어요. 빛도 안 들어오고 먼지가 가득한 골방에서 아줌마 몇 분과 함께 재봉틀을 돌리셨는데 방이 너무 작아서 다리도 필 수 없었죠. 그런 곳에서 엄마는 10년을 일하셨어요.”
그래서일까. 골든벨을 울리고 나서 박양이 울먹이며 했던 말도 “그분(엄마)의 인내심을 존경한다”였다. 엄마의 성실함을 닮은 것 같다고 말하자 “그러면 정말 영광이죠”라며 하얀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는다.
현재 고등학교 마지막 방학을 보내고 있는 박양은 고향에서 사촌동생들의 공부를 돌봐주며 용돈을 벌고 있다.
“방학이 된 후 지금까진 시간을 헛되이 보낸 거 같아요. 이제부터 열심히 해야죠. 다이어트도 하고(웃음). 의대에서는 원서를 본다니까 영어공부도 하려고요.”
벌써부터 공부 얘기다. “대학에서도 남들이 감탄할 만큼 열심히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는 걸 보니, 손때 묻은 의학서적을 읽고 또 읽으면서 재미있게 공부하고 있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공부 말고 대학생활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뭘까.
“여행을 가고 싶어요. 선생님들이 ‘대학 1학년 땐 무조건 해외로 나가라’고 하셨거든요. 저는 못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골든벨 덕에 갈 수 있을 거 같아요. 정말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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