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사업을 함께 하면서 티격태격 싸우다 정이 들었다는 김영애 박장용 부부.
지난 10월초 전북 정읍에서 중견 탤런트 김영애(53)가 남편 박장용씨(49)와 함께 경영하고 있는 황토전문업체 ‘참토원’의 두번째 공장 준공식이 있었다. 단아한 정장 차림으로 고사상에 절을 하는 김영애와 우렁찬 목소리로 자리를 빛내준 김동건, 이보희, 김보연 등의 연예인들을 향해 감사인사를 전하는 남편 박장용씨는 한껏 고무된 표정이었다.
“어려운 고비를 잘 견뎌내고 나니 회사가 나날이 잘돼서 너무 기쁩니다. 그동안 도와주신 분들에게 너무 감사하고요. 공장을 신축한 건 수출 길이 열려 수요와 공급을 맞추기 위해서예요. 연매출이 올해는 3백50억원, 내년에는 4백80억원 정도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데 그동안 번 돈은 대부분 재투자를 했습니다. 덕분에 처음에는 월세를 내고 썼던 공장 부지도 지금은 우리 땅이 되었고, 1억원을 호가하는 기계도 여러 대 들여오고, 직원들과 나눠 쓸 돈도 열심히 모으고 있어요. 회사가 어려워도 직원들의 생계에 지장이 없도록 은행이자로 봉급을 줄 수 있는 정도까지 돈을 비축하는 게 제 목표거든요. 저나 아내나 다른 데 한눈 팔지 않고 황토로 끝장을 볼 생각입니다.”
“남편과 알고 지낸 지는 5년 됐고, 연애한 건 2년 됐는데 저희는 싸우면서 정든 것 같아요. 2001년초 남편과 황토사업을 시작하면서 일 때문에 많이 티격태격했거든요. 집에서 본의 아니게 비밀 결혼식을 하게 된 건 매스컴에 스캔들로 비쳐 회사 이미지가 실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어요. 그렇지 않아도 결혼 얘기가 오가던 터라 더 이상 미룰 이유도 없었고요.”
“심장이라도 떼어주겠다”는 남편의 말에 결혼 결심해
두 사람은 지난 98년 치료사와 환자로 처음 만났다. 당시 김영애는 드라마 ‘파도’에 출연하고 있었는데 세번이나 촬영을 펑크 냈을 정도로 건강 상태가 최악이었다. 양방 치료로 별 효험이 없자 지인의 소개로 기치료사를 만났는데 그가 바로 지금의 남편이다. 88년부터 미국에서 기치료 공부를 시작했다는 남편 박씨는 최형우 전 장관의 중풍을 치료해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제가 운영하는 수련원으로 아내가 찾아와 처음 만났는데 그때는 연예인인 줄도 몰랐어요. 저한테 아내는 그저 환자일 뿐이었고, 저는 건강을 회복시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다행히 치료를 받으면서 아내의 병세가 좋아졌는데. 이후 2년 정도는 서로 자기 일로 바빠서 정신없이 보냈어요. 그러다 김영애씨가 황토 집을 짓고 싶다며 자문을 구해서 터도 봐주고, 타일도 찍어줬어요. 30년 동안 풍수를 공부해서 땅을 볼 줄 알거든요. 그러다 아내가 황토사업을 같이 하자고 제의하길래 저도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던 일이라 기꺼이 응했어요.”
기념일을 꼬박꼬박 챙기며 아기자기하게 살아가는 김영애 박장용 부부.
황토사업을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상당히 고전했다고 한다. 치료사의 관점에서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남편의 고집이 만만치 않았고, 자금 부족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적지 않았던 것. 본래는 황토 타일로 사업을 시작해놓고 솔림욕이라는 입욕제와 비누, 샴푸, 린스 등을 먼저 만들어낸 것도 그 때문이었다.
“처음에 황토 타일을 만들기 위한 연구비로 몇억원의 돈을 다 까먹어 수중에 몇백만원 정도밖에 없었어요. 수억원을 호가하는 기계를 들여오기에는 역부족이었죠. 30억원이 있어야 기계 두 대를 들여오고 공장을 짓겠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것들을 먼저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 제가 ‘여자는 왜’ 출연료 1억원을 선급 받아 사업에 투자했어요. 그렇게 번 돈으로 이번에 기계를 들여왔어요. 황토 타일 특허가 얼마 전에 났거든요. 사업을 한 2~3년 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 한 10년은 된 것 같은 느낌이에요.”
사업을 하는 동안 동고동락하며 자연스럽게 사랑이 싹튼 두 사람은 당초 올여름이나 가을쯤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다고 한다. 김영애가 심장의 통증으로 고생했던 지난해 “내 심장을 떼어주는 한이 있어도 지켜주겠다”는 박씨의 말에 결혼을 결심했던 것. 하지만 언론에 밀려 다급히 결혼식을 올리게 된 김영애는 지난 5월 비밀 결혼식을 치르기 전 사업차 미국 LA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프러포즈를 받아냈다.
“이제는 내 인생을 이 사람에게 맡기고 죽을 때까지 사랑하면서 살자고 마음먹으니 근사한 프러포즈를 받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프러포즈를 요청했더니 결혼하자고 한마디 하더라고요. 왜 나랑 결혼하려고 하냐니까 착해서 그렇대요. 본래 모양내서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거북한 질문은 피해버리거든요.”
“심장을 떼어준다면 그것으로 됐지 뭘 또 프러포즈를 하라고 하냐니까 자꾸 듣고 싶다는 거예요. 쉰살이 넘은 사람한테 착해서 결혼한다니 웃을 일이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더라고요. 쑥스러우니 더 이상은 묻지 말라고 했죠. 사실 결혼을 결심한 것은 아내의 남은 인생이 걱정되어서예요. 건강도 안 좋고, 마음도 착하고 여린데, 세상에 대한 분별이 없으니까 제가 아니면 붙잡아줄 수가 없겠다 싶었어요.”
그렇다면 김영애는 박씨의 어떤 매력에 끌린 것일까. 그는 “비록 남편이 고집도 세고, 성격도 괴팍하지만 오랜 시간 지켜보면서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자신을 대하는 한결같은 마음에 매료됐다”고 한다.
“남편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 상처를 많이 받았더라고요. 그런데도 참 순수한 면이 많은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이에요. 저도 고집이 만만치 않고, 보기보다 애교가 없는 편이에요. 거기다 한번 결혼에 실패한 사람이라 마음을 닫고 살았던 것 같아요. 이혼할 때도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으니까요. 하지만 세상 일이 마음먹은 대로 잘 안 되네요. 그동안 너무 힘들어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던 게 솔직한 심정이에요.”
프랑스에서 유학중인 아들 역시 그의 재혼 소식에 거부감을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엄마가 건강하고 행복할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며 그보다 더 기뻐했다고 한다.
“아이는 평소에도 자기가 엄마 곁에서 인생을 책임져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냐며 좋은 사람을 만나기를 바랐어요. 그동안 제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알고 있으니까요. 아직 아이가 정식으로 남편과 인사할 기회가 없었는데 10월말쯤 잠깐 들어올 예정이니 그때는 만나야죠.”
하지만 당초 예상했던 모양새의 결혼식이 아니어서 다소 미진한 느낌을 갖고 있던 김영애는 얼마 전 과로로 일주일 동안 병원 신세를 지면서 많은 걸 느꼈다고 한다. 뜬눈으로 병석을 지키며 지극정성으로 돌봐주고, “자장면 장사를 해서라도 굶기는 일은 없을 테니 제발 건강에 신경을 쓰라”며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남편의 모습에 감동을 받은 것.
“사실 제가 무리해서 일을 해왔기 때문에 건강이 그다지 좋지 못해요. 그래서 남편은 제가 부르면 열일을 제쳐두고 달려와요. 늘 제 걱정을 하는 사람이죠. 아플 땐 그런 게 더 잘 보이더라고요. 병원신세를 지면서 남편과 결혼하기를 참 잘했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이전에는 사업을 같이 하는 동지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 일로 부부간의 사랑도 돈독해지고 더욱 열심히 예쁘게 살아야지 하는 마음도 갖게 됐어요.”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리기 얼마 전에 매입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집에서 지내고 있다. 그 집은 남편 박씨가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감지하고 2년 전부터 점찍어둔 집이라고.
“정말 특별한 집인 것 같아요. 병을 달고 사시는 친정어머니가 저희 집에 오시면 몸이 아프지 않대요.”
회사 경영에 수출 계약, 영업 관리까지 직접 하는 남편 박씨는 결혼 후 에너지가 세배로 든다고 말한다. 아내의 건강관리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혹여 아내가 아플까봐 노심초사하다 보니 밖에서든, 집에서든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단다. 아내가 호출하면 어디든 달려가는 그는 두 세시간에 한번씩은 전화로라도 아내의 건강을 체크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래서 자다가도 서너번은 깨는데, 확실히 잠이 많이 부족해요. 둘이서 홈쇼핑 방송을 틀어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새벽 서너시를 훌쩍 넘겨요. 그러니 아내나 저나 나가서 힘들 수밖에요. 전 사실 개인적으로 아내가 당분간은 방송 일을 접었으면 해요. 일보다 건강이 먼저 아니겠어요. 충분히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후에 1년에 한번 정도 좋은 작품이 있을 때 출연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남편의 가장 큰 불만이 제가 연기생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는 거예요. 제 나이가 나이인데다 그동안 누릴 만큼 누렸으니 이제는 떠날 준비를 하라고요. 처음에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싶었는데 남편 말에도 일리가 있더라고요. 건강이 좋지 않아 최상의 연기를 보여줄 수 없다면 아쉬워할 때 멋지게 돌아서는 게 저의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 아닌가 싶어요.”
서로 성격을 너무 잘 알고 조금씩 포기하면서 살다 보니 결혼 후에는 거의 싸우지 않는다는 김영애와 박장용씨. 두 사람은 기념일을 꼬박꼬박 챙기는 아기자기한 신혼부부다. 남편 박씨는 주로 김영애가 좋아하는 꽃을 선물하고, 김영애는 남편에게 고가 제품도 선뜻 건네준다. 하지만 그럴 때는 반드시 남편의 호된 질타가 뒤따른다.
“한번은 아내가 시계를 사줬는데 2백만원짜리더라고요. 당장 백화점에 가서 줄이 맞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고 반품해버렸어요. 전 검소하게 사는 게 좋아요. 남에게 보여주는 겉치레는 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다고 무조건 아끼자는 주의는 아니에요. 신세를 지면 꼭 갚아야 직성이 풀리거든요. 돈을 많이 벌어도 사회사업보다 주위 사람들부터 챙길 거예요. 저희가 이만큼 오기까지 도와준 직원들의 자녀 학자금 문제를 해결해주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요. 근데 아내는 여기저기 저 모르게 기부를 많이 하더라고요. 그런 문제 때문에 다투곤 하는데 알면서도 모른 척할 때가 많아요.”
이들 부부는 앞으로 정읍에 황토찜질방, 체험방 등을 만들어 외국인들을 위한 관광 코스로 활용하고, 황토 제품들을 수출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한다.
늦게 만난 사랑인 만큼 서로 더욱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한길을 걸어가는 이들 부부의 모습은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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