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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나누는 삶

태풍‘매미’이재민 돕기 위한 바자회 여는 대한적십자 부총재 홍소자

■ 글·구미화 기자 ■ 사진·김성남 기자

2003. 10. 10

재해가 휩쓸고 간 곳이면 빠지지 않고 나타나 구호의 손길을 내미는 대한적십자가 10월29일 태풍 ‘매미’ 이재민을 돕기 위한 바자회를 연다. 홍소자 대한적십자 부총재를 만나 매년 열리는 적십자 바자회의 의미와 함께 그와 적십자의 각별한 인연, 그리고 남편 한승수 한나라당 의원과 이모 육영수 여사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태풍‘매미’이재민 돕기 위한 바자회 여는 대한적십자 부총재 홍소자

지난해나 올해나 너무 비참해요. 손이라도 잡고 위로하려고 하면 그들이 확 뿌리치는 게 충분히 이해가 가요.”
지난 9월16일, 서울 남산 자락에 위치한 대한적십자사(총재 서영훈)에서 만난 홍소자 부총재(64)는 하루 전날 강원도 정선의 고립지역을 위문차 방문하고 돌아온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구호품들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뭐가 더 필요한지를 알아보고, 봉사원들의 활동에 감사와 위로의 말을 전하기 위해 재난지역을 찾아갔다가 인정사정 없는 태풍이 할퀴고 간 상처가 이재민들의 가슴에 분노를 남겼음을 확인한 것.
지난해도 올해와 마찬가지로 태풍 ‘루사’ 이재민 돕기 바자회를 진행했던 그는 이렇듯 재해가 거듭될 때면 ‘앞으로는 봉사활동이 예방 차원으로 방향을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구호활동의 의미가 퇴색할 수는 없는 일. 태풍 피해가 심각한 만큼 이재민을 돕기 위해 10월29일 코엑스 대서양홀에서 여는 바자회에 대해 적십자 회원들이 거는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 하겠다. 매년 이맘때면 열리는 적십자 바자회는 대한적십자사 여성봉사특별자문위원회에서 주관하고, 수요봉사회가 후원하는데 각 부처 장관·정부투자기관장 등 국내 지도급 인사의 부인과 국내 유수 기업인의 부인들이 주요 구성원이다. 이들이 1인 1점 이상씩 내놓은 기증품들과 주한외교사절 부인들이 준비한 각국의 민예품과 쿠키, 케이크 등이 바자회 상품이 된다.
혜원여자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72∼90년) 중이던 76년부터 대한적십자 청소년분과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남편 한승수 한나라당 의원이 주미대사, 상공부장관, 경제부총리, 외교부장관 등 주요 관직을 두루 거치면서는 수요봉사회 회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실 홍소자 부총재와 적십자의 인연은 이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다. 1950년대 초 전후복구가 한창이던 시절, 고등학생 신분으로 대한적십자 주니어 활동을 했던 것.
“6·25 전쟁때를 생각하면 너무도 암담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질 정도예요. 그런 상황에서 대한적십자 주니어 활동은 아름답고 신나는 출구같았어요. 외국에서 보내온 구호품들이 비록 내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줄 때의 기쁨은 정말 대단했죠. 부러지지 않는 연필, 찢어지지 않는 공책, 잘 지워지는 고무, 그리고 아름다운 색연필, 구호품들은 모두 내가 너무너무 갖고 싶었던 것들이지만 앰뷸런스에 가득 싣고 나갔다가 전부 다 나눠주고 돌아올 때의 기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어요.”
그때의 경험이 봉사 활동에 대한 꿈을 심어줬고, 따뜻한 마음을 갖게 해준 것 같아 지금도 홍부총재는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이번 바자회 역시 기금 마련도 중요하지만 국내 유수 기업 및 각계 지도자의 부인들이 남을 위해 1년 동안 준비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같은 뜻을 갖고 그 물건을 사주려고 찾아오고 있는데 이런 것 모두 다 정신적인 봉사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어서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태풍‘매미’이재민 돕기 위한 바자회 여는 대한적십자 부총재 홍소자

지난해 열린 적십자 바자회가 성황을 이루고 있는 모습.


홍소자 부총재를 소개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있다. 바로 남편 한승수 의원과 고 육영수 여사. 그는 육영수 여사의 조카로 박정희 대통령 시절, 육영수 여사의 비서로 활동하기도 했을 만큼 이모와 이모부에게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제가 어려서부터 이모를 그렇게 좋아했어요. 학교 에서 돌아왔을 때 이모가 집에 와 있으면 너무 좋았거든요. (저를 비서로 둔 건) 이모가 워낙 따뜻하고, 성품이 곧은 데다 낯가림이 심한 분이라 그저 조카와 지내는 게 편해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어요. 지금 생각하면 아쉬움이 많죠. 20대 초반, 철없던 시절이라 잘해드리면서도 주변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던지는 말을 들을 때면 이모와 이모부께 반감이 생길 때도 있었거든요.”
관운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을 만큼 요직만을 두루 거친 남편 한승수 의원에 대해서는 “자기 채찍질이 심하고, 자신에겐 모질게 굴지만 여자의 능력에 굉장한 점수를 주는 페미니스트”라고 표현했다.
“제가 지금껏 바깥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것도 남편의 절대적인 이해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죠. 사실 뒤에서 보이지 않는 격려를 많이 해줬어요. 그동안 ‘힘들면 그만둬라’ 한마디 정도는 했을 법도 한데 전혀 그러지 않았어요. 오히려 ‘힘드니까 소중한 일이고, 그만큼 보람이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해요.”
이러한 남편의 지원은 분명 그에게 든든한 경쟁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에 그는 “이제 사랑과 봉사도 경쟁력”이라고 말한다. 봉사는 따뜻한 마음만으로는 되지 않고,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해외에 나갈 때마다 바자회에 내놓을 만한 좋은 물건들을 주의 깊게 찾아보곤 했다는 그는 독특한 상품을 발견하고, 가격을 흥정하는 과정에서 “적십자 바자회용으로 쓰려고 한다”고 얘길 하면 이탈리아의 작은 구멍가게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조차 값을 깎아주거나 물건을 덤으로 얹어줄 만큼 적십자 활동에 대한 인지도가 높은 것이 무척 부러웠다고 한다. 그는 그 정도의 적극성은 아니더라도 일반인과 적십자 활동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라고 할 수 있는 적십자 회비에 소홀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적십자 회비를 꼭 내주셨으면 좋겠어요. 적십자 회비가 적십자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유일한 길이잖아요. 그리고 대한적십자는 적십자 회비를 대행하고 있을 뿐, 긍지와 보람은 적십자 회비를 내는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느껴야 하는 거죠.”
앞에 나서 봉사할만한 기술 하나 갖고 있지 않은 자신이 봉사자들을 지켜보고 격려하며 뒤에서 거들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하다는 그는 “모든 게 변하는 시대라 상실해서는 안될 것들을 상실할 수도 있으나 적십자 정신만은 지켜야 한다”며 이를 널리 전파하고, 재해를 입은 곳에 즉각 구호활동을 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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