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가창력과 섹시한 외모로 90년대 중반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가수 박미경(38)이 9월말 새 앨범을 낸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 이태원동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았다. 카페 분위기로 꾸며진 81평의 넓은 아파트에는 여전히 늘씬하고 아름다운 그말고도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지난해 5월 그와 백년가약을 맺은 남편 트로이 아마도(43). 서글서글하고 나이보다 10년은 젊어 보이는 외모를 지닌 트로이는 무역업을 하고 있다.
‘콩글리시’로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 인터뷰에 앞서 진행한 사진촬영의 백미는 두 사람이 커다란 그랜드 피아노 앞에서 즉석으로 펼친 ‘부부 콘서트’. 박미경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영화 ‘엔들리스 러브’의 주제곡 ‘엔들리스 러브’를 부르는 부부의 모습은 퍽 인상적이었다. 그윽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다이애너 로스와 라이오넬 리치가 불렀을 때보다 더욱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뤄낸 두 사람은 그야말로 환상의 부부듀엣이었다.
“트로이는 노래도 잘하지만 춤도 무척 잘 춰요. 한번 스테이지에 오르면 세 시간 내내 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신명나게 추니까 사람들 눈에는 댄서로 비쳤나봐요. 결혼하기 전에 ‘박미경 미국인 댄서와 열애중’이라는 기사가 나기도 했어요. 끼가 참 많죠. 다 그게 집안 내력인 것 같아요. 친척 중에 하와이 전통안무가도 있고, 가수도 있어요. 트로이의 친누나가 하와이에서 유명한 가수예요. 그에 비하면 전 가수 축에도 못 껴요. 트로이가 워낙 노래를 잘하니까 이번 앨범이 나오면 콘서트 때마다 깜짝 이벤트로 이런 모습을 선보이면 어떨까 싶기도 해요(웃음).”
10년 사귀다 결혼했는데도 더 잘해주는 남편
박미경이 새 앨범을 발매하기는 4년 만인 데다 결혼 후 처음. 그는 팬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완성도 높은 앨범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음반시장이 불황인 요즘 이전보다 더 많은 제작비를 들여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녹음작업을 하고, 주요 팬층인 386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발라드곡 위주로 만든 것.
“이번 앨범엔 제가 작곡한 노래도 다섯곡이나 돼요. 유일한 댄스곡은 ‘하루’의 김범수씨와 함께 듀엣으로 부른 건데, ‘마법의 성’의 김광진씨가 만들어 노래가 참 예뻐요.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도 발라드로 갈 거예요. ‘민들레 홀씨 되어’나 ‘화요일에 비가 내리면’ 같은 편안한 발라드요. 가사 내용도 ‘아담의 신부’ ‘이브의 경고’처럼 극단적이지 않아요. 부담없이 들을 수 있는 편하고 긍정적인 내용이에요.”
박미경은 2년 전부터 이 앨범을 염두에 두고 곡을 써왔다. 그간 박미경이 작곡한 노래는 모두 30여곡. 그 가운데 특히 좋은 곡들만 엄선해 이번 앨범에 담았는데, 하나같이 남편과 함께 있을 때 작곡한 노래라고 한다.
“묘하게도 신랑이 없으면 악상이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남편이 TV 보고 있을 때 피아노를 치다 보면 곡이 술술 나왔어요. 신랑도 들으면서 참 좋다고 했고요. 근데 제가 작곡을 했다니까 좀 의아하신가 보네요. 사실 제가 김건모와 같은 서울예전 국악과 출신이에요. 하지만 둘다 국악은 잘 몰라요. 국악과 내에 실용음악과가 따로 있어서 성악과 작곡을 배우며 실용음악을 전공했으니까요.”
그는 이번 앨범에서 인간 박미경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공백기 동안 결혼이라는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을 맞은 그가 이번 앨범에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몸에 밴 삶의 여유와 편안함을 담아낸 것도 그 때문이다.
아이는 한번에 쌍둥이를 낳고 싶다는 박미경 트로이 부부.
“결혼해서 좋은 점은 여유 있게 살 수 있단 거예요. 확실히 삶의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어떤 친구들은 1년에 판을 두 장씩이나 내는데 저는 그런 데 구애받지 않고 마음 편히 음반 작업을 할 수 있었어요. 본래 지난해에 앨범을 내려고 했는데 사정이 생겨 좀 늦어졌어요. 녹음이 이번주면 끝나니까 9월말이나 10월초쯤엔 발매할 수 있을 거예요. 추석 연휴만 안 끼였다면 벌써 발매했을 텐데 전국민이 쉬는 명절에 일할 순 없잖아요. 저희는 추석연휴에 집에만 있었어요. 따로 추석 음식을 만들어 먹지도 않았고요. 신정이나 구정 때도 떡국만 끓여먹는 정도예요. 양가 부모님이 모두 하와이에 사셔서 그렇기도 하지만 명절이 돌아와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진 않아요. 매일 명절처럼 특별하게 사니까요. 앗, 나의 실수! 너무 행복해 보이면 책 읽다가 찢어버릴지도 몰라요. 적당히 써주세요. 하하하.”
화통하고 시원시원한 여자 박미경과 다정다감하면서도 쿨한 남자 트로이는 오누이라고 해도 믿길 정도로 많이 닮았다. ‘부부가 닮으면 잘산다’던데 그 말이 꼭 맞는 듯했다. 10년에 걸친 질긴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지만 두 사람은 지금껏 권태기를 모르고 살고 있다고 한다.
“트로이는 한결같은 사람이에요. 연애기간이 길어지면 시들해질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트로이는 해가 바뀔수록 더 잘해줘요. 대개 나이를 먹으면 사랑 표현이 줄어든다는데 오히려 더 많이, 더 강하게 표현하니까 그게 너무 고마울 뿐이에요.”
한달 동안 꽃 건네준 정성에 감동해 첫 데이트
두 사람은 93년 하와이에 있는 한국인 클럽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는 박미경이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유명세를 타기 직전으로, 꼭 10년째 무명시절을 보내던 때였다. 87년 가족을 따라 하와이로 이민을 간 그는 비자문제로 6개월에 한번씩 하와이를 다녀와야 했는데, 그때 아는 언니가 운영하는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트로이의 눈에 띈 것이다.
“돌이켜보면 저에게는 과도기나 다름없는 시기였어요. 한국에서는 가수로서의 희망이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차라리 하와이에 터를 잡고 살까 하는 충동이 일 정도로 힘든 시기였는데 그때 트로이를 만난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 트로이는 친구가 한국인 클럽에 가자고 하도 졸라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끌려온 거였어요. 근데 노래를 부르며 무대에 서 있는 제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웠대요. 그때는 나이도 어렸고, 머리까지 길게 늘어뜨려서 제법 괜찮았어요. 그렇지?”
“그때 허니(트로이가 박미경을 부르는 호칭)는 ‘아이 캔 스탑 러빙 유’를 부르고 있었어요. 너무 예뻤죠. 한마디로 제 이상형이었어요. 거기다 노래도 환상적으로 불렀어요. 첫눈에 반해서 결혼하자고 했더니 결혼은 절대 안된다고 딱 자르더라고요. 그러면서 처음 본 사람한테 어떻게 결혼하자는 말을 하느냐, 당신 플레이보이 아니냐고 쏘아붙이면서 가버리더군요.”
하지만 거기서 물러날 트로이가 아니었다. 트로이는 이후 매일 클럽에 출근하다시피하면서 그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무 말 없이 꽃만 주고 돌아갔다. 처음엔 친구 대신 가져왔다고 둘러대기도 했지만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매일 새벽 3시까지 기다리다 꽃만 주고 가는 남자의 마음을 헤아리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술 마시러 오는 것도 아니고, 참 대단하더라고요. 태어나서 남자한테 꽃을 받아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그것도 한달씩이나요. 하지만 엄마는 그 얘기를 듣고 걱정되셨는지 항상 저를 데리러 오셨어요. 남동생도 제가 끝나는 시간에는 항시 대기하고 있었고요. 근데 트로이와는 엮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한번은 우리 밴드의 베이스주자가 사촌여동생이 유명한 가수인데 노래를 정말 잘한다면서 너도 보면 도움이 될 거라고 해서 입장료를 1백달러씩 주고 공연을 봤어요. 근데 그 가수가 바로 트로이의 누나인 비니였어요. 그날도 트로이가 저한테 꽃을 주고 갔는데, 참 묘한 인연이다 싶더라고요.”
남편에게 인생을 즐기는 법을 배웠다는 박미경과 아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한다는 트로이.
아무런 요구도 없이 한달 동안 꽃만 주고 가던 트로이가 그에게 정식으로 데이트를 신청한 건 아르바이트 마지막날이었다. “하루만 데이트를 해달라”는 그의 제의를 거절할 수 없었던 그는 집주소를 알려주었다. 그런데 잔뜩 기대하고 그의 집으로 달려간 트로이는 뜻밖의 상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박미경이 엄마는 물론 동생들과 이모들까지 줄줄이 데리고 나온 것.
“정말 미치겠더라고요(웃음). 나중에 가족들은 돌아가고 허니와 둘이 남아 데이트를 하려고 했는데, 남동생이 계속 따라오는 거예요.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장모님이 처남에게 시키신 거죠.”
“그날이 마침 남동생 생일이었어요. 그래서 트로이가 샴페인도 사고,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면서 남동생한테 점수를 많이 땄어요. 저도 그날 이후 트로이와 가까워졌고요. 당시 전 더 이상 가족과 떨어져 살기도 싫고, 가수활동도 포기하고 싶어져 하와이에 남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트로이가 저더러 ‘한국에 가서 오지 말아라. 이젠 하와이가 아니라 한국에서 만나자’고 하더라고요. 왠지 성공할 것 같은 느낌이 온다면서요. 그러고 나서 8개월 후에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제가 뜬 거예요.”
“강원래 김송 박진영은 저보다 트로이를 더 좋아해요”
두 사람은 이후 서로 ‘허니야’ ‘자기야’ ‘트로이’ ‘미키야’ 등 다양하게 호칭을 바꿔가며 남모르게 사랑을 키웠다. 하와이에서 만날 때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할 필요가 없었지만 한국에서는 스캔들로 비쳐질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트로이는 어렵게 정상의 자리에 오른 박미경의 인기에 누가 될까봐 스스로 몸을 사렸다고 한다.
“제가 친구도 못 사귀게 했고, 자기도 나다니질 않았어요. 혹여 실수할까봐 미국에서 오면 집에만 있고…,감옥생활이나 다름없었을 거예요. 그런데도 저한테는 화도 안 내고, 더 잘해주려고 했어요.”
언젠가는 결혼할 사람으로 생각하며 트로이와 교제하던 그가 트로이에게 프러포즈를 받은 건 98년 하와이에서다. 근사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와인을 마셨는데, 박미경의 와인 잔에 반지가 들어 있었던 것. 그것이 청혼 반지임을 직감한 박미경이 순간 당황하자 트로이는 진지하게 결혼하자고 말했고, 박미경은 청혼을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감사합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후에도 결혼을 서두르지 않았다. 박미경이 5집 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었던 데다 좀더 일에 매진한 후에 결혼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 것. 그런 두 사람이 결혼을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는 뜻밖에도 2001년에 일어난 9·11 테러 사건. 당시 사건 현장인 미국 세계무역센터 안에 갇혀 있던 트로이는 박미경 앞으로 ‘허니야. 비행기가 내 앞으로 오고 있는데 오늘 이후로는 못볼 것 같다’고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
“그 얘기를 듣는데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빌딩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뇌리를 스치면서 ‘우리가 사랑하는데 왜 숨기고 살아야 하나. 말도 안되지. 당장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행히 트로이는 그 건물을 빠져나왔고 서둘러 결혼발표를 했죠.”
두 사람은 지난 2001년 9월19일 여의도 63빌딩에서 결혼발표를 위한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을 할 당시만 해도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던 박미경은 회견이 끝난 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이렇게 편하고 좋은 걸 왜 진작에 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들었다고.
“트로이는 그때도 저한테 결혼 발표해서 인기 떨어지면 어떡하냐며 난 이대로 숨어 지낼 수 있다고 저를 걱정해줬어요. 우리 문화에 동화돼서 한국남자 다 됐다니까요(웃음). 제가 여성스럽지 않으니까 한국 남자들은 저를 여자로 보지 않아요. 늘 대모, 왕누나처럼 여기며 잘 따를 뿐이에요. 근데 이 남자 앞에서는 제가 여자라는 걸 느껴요. 한국남자와 결혼했으면 벌써 쫓겨났을 텐데 이 남자의 사랑으로 문제 없이 사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내키지 않던 애교도 부리고요. 결혼하면서 더 부드러워진 것 같아요. 이 남자 앞에서는 울기도 편해요. 이 사람은 펑펑 울라고 하면서 같이 울어주죠. 전에는 창피하고 자존심 상해서 혼자 울었는데, 그렇게 한번씩 울고 나면 스트레스가 더 잘 풀리더라고요.”
궁합까지 잘 맞는 천생연분이라고 자부하는 두 사람은 지금껏 부부싸움을 한 적이 거의 없다. 어쩌다 한번 틀어져도 5분 내에 풀린다고 한다. 박미경의 영어 실력이 싸움을 오래할 만큼 유창하지 못한 데다 워낙 화통한 성격이라 꽁하고 있지 못하는 것. 그렇다고 박미경을 항상 ‘공주님’으로 모시는 남편 트로이가 언성을 높일 리는 만무. 더욱이 출장이 잦은 트로이가 한두 주일씩 집을 비울 때는 남편이 보고 싶어 앞으로 더 잘해야지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고 한다.
“떨어져 살면 부부의 정이 더 애틋해지는 것 같아요. 강원래, 김송, 박진영은 우리가 처음 사귈 때부터 알고 있었는데 저희를 보고 언제나 한결같이 산다고 말해요. 처음에는 그들이 저를 더 좋아했는데 지금은 제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까지 트로이한테 뺐겼어요. 놀러오면 트로이가 알아서 다 챙겨주거든요. 또 그 친구들이 가면 저는 자는데 자기가 뒷정리를 다 하고요. 아침도 트로이가 직접 차려줘요. 전 가만히 있기만 하면 돼요. 제가 못해서가 아니라 트로이가 저에게 요리해주는 걸 큰 기쁨으로 여기니까요. 오히려 제가 부엌을 기웃거리면 공주님은 쉬라면서 접근도 못하게 해요. 자기가 요리 때문에 나한테 사랑받는데 내가 비결을 알게 되면 자기는 뭘로 사랑받냐면서요. 정말 요리를 잘하거든요. 된장찌개, 김치찌개, 청국장, 불고기, 갈비찜 등 뭘 해도 맛있어요.”
두 사람은 운동도 같이 한다. 먼저 한 시간 동안 유산소 운동인 계단밟기를 한 후 바닥에 누워 30분간 스트레칭 체조를 하고, 한시간 반 동안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는 것. 대신 시간이 없을 때는 집에서 러닝머신에서 1시간 정도 뛴다.
“아이는 한번에 쌍둥이를 낳고 싶어요. 이번 앨범을 발매해 반응이 좋으면 스트레이트로 한장 더 낸 후 그때 가질까 해요. 아이를 가지면 한동안은 활동하기 힘드니까 몰아서 일하려고요(웃음).”
“남편과 함께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고, 뭐든 같이 나누면서 인생을 즐기는 법을 배웠다”는 박미경과 “연예인 같지 않게 털털하고 검소한 아내를 평생 공주처럼 모시고 살겠다”는 트로이. 두 사람의 모습은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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