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아침마당’은 대한민국 주부들에겐 아주 특별한 프로그램이다. 가정폭력 등 가정사의 은밀한 이야기를 방송으로 끌어내 같이 고민해보는 대화의 장을 만들었고, 누구나 속에 담고 있지만 채 털어놓지 못했던 답답한 심경을 속시원히 대변해주기도 했고, 기구한 인생을 살아온 인물들의 지난한 삶의 역정을 같이 들여다보며 ‘과연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아침마당’이 아침프로의 대명사로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엄앵란, 하일성 등 개성 넘치는 패널들의 구수한 입담, 누구나 ‘무장해제한 기분’으로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 등 이 프로그램이 가진 여러 장점 덕분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남편 직장 보내고 자녀들 학교 보내느라 정신없이 지나간 바쁜 아침 시간 직후, 잠시 손을 놓고 쉬는 주부들을 브라운관 앞으로 끌어들인 건 항상 옆집 아저씨처럼 편안한 웃음으로 시청자를 맞이하던 MC 이상벽(56)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상벽이 ‘아침마당’을 떠났다. 이상벽은 9월16일 고별방송에서 “그동안 매일 아침 방송에 출연하느라 너무 주변을 돌아볼 경황이 없었다. 이제 잠시 쉼표를 찍고 더 배워서 오려고 한다”며 사임의 변을 밝혔다. 이상벽의 후임으로는 손범수 아나운서가 긴급 투입됐다.
중간에 1년여 정도 쉬긴 했지만 이상벽은 이 프로그램이 시작되던 지난 92년 4월부터 무려 10년6개월 동안 3천58회의 방송을 진행, 생방송 최장기간 진행 1위 기록을 남겼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를 6년간 진행했던 임성훈의 2위 기록과 비교해보면 거의 2배에 가까운 기간이다.
9월16일 그의 고별 생방송에는 원래 이날 주제였던 ‘부부탐구’를 쉬고, 영화배우 엄앵란, 정신과의사 송수식 박사, 탤런트 전원주, 야구해설가 하일성 등 그동안 같이 프로그램을 꾸려왔던 고정패널들이 출연해 지난 10여년을 추억하는 특별 프로그램으로 꾸며졌다. 패널들은 “1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일 아침 생방송을 진행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선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동안 너무 수고 많았다. 이상벽이 없었다면 오늘의 ‘아침마당’이 없었을 것”이라며 그간 이상벽의 노고를 치하했다. 공동 진행을 맡아왔던 이금희 아나운서는 프로그램 말미에 결국 눈물을 쏟기도 했다.
이상벽은 10년간 경향신문 기자로 활동하다 MC로 변신, ‘주부가요열창’ ‘TV는 사랑을 싣고’ 등을 진행하며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시청자들도 섭섭해하기는 마찬가지. ‘아침마당’ 시청자 게시판은 이상벽을 떠나보내는 아쉬운 마음을 표현한 시청자들의 글들이 잇달아 올라왔다.
‘무엇보다 이상벽씨 삶에서 나오는 구수한 얘기, 힘들게 살아온 사람들을 대변이라도 하듯 그 마음들을 잘 어루만지며 진행하셨는데…. 아마 일반인이 가장 다가가기 편한 방송인 투표하면 이상벽씨가 단연 일등이었을 겁니다.’
‘아침마당’을 즐겨 시청하던 30대 중반의 주부입니다. 화요일 고별 방송을 마치고 떠나신 이상벽님의 노고에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10년 이상을 시청해온 저로서는 이상벽님의 은퇴에 아쉬움도 크지만 KBS의 큰 대들보를 잃은 느낌이 듭니다.’
이런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자기 그의 고별방송이 나간 탓일까. 그의 MC직 사퇴를 두고 방송가에서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돌았다. 그가 방송을 그만두는 것이 꼭 건강상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
부인 이씨와는 군 복무 시절 만났다. 신혼 시절, 부인 이씨는 구멍가게를 여는 등 부업을 통해 넉넉치 않은 살림을 꾸려온 말 그대로 ‘조강지처’라 이들의 별거사실은 주변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논란의 와중에 한 스포츠 신문이 ‘이상벽이 두달간 부인과 별거하고 있는 중’이라고 보도해 ‘아침마당’을 그만둔 데 다른 사연이 있음이 드러났다. 처음 이 보도에 대해 법적인 조치를 강구중이라며 강력히 부인하던 이상벽은 논란이 이어지자 결국 “아내와 별거해왔다”며 가정사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이상벽은 이 스포츠 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두달 전부터 아내와 ‘아침마당’ MC 하차 등 향후 계획에 대해 논의하던 중 의견차이가 있었다. 몇 차례 말다툼 후 화실 용도로 마련해둔 서울 신길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주로 생활했는데 이게 주위 사람들에겐 심각한 불화로 비친 것 같다. 이유야 어찌됐든 공인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게 된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그는 고별 방송 당시 “매주 화요일 ‘부부 탐구’를 진행하면서 느낀 게 많았다. 이혼 위기에 처한 시청자를 초청해 같이 이야기를 나눠보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나 또한 바깥 일에 바빠 가정을 등한시한 면이 있다. 이제 그런 점들도 반성해보면서 살고 싶다”고 밝혔는데, 그 말의 배경에는 바로 이런 내막이 있었던 것.
사실 항간에는 그의 사생활과 관련된 괴소문이 떠돌기도 했다. 그는 이에 대해서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혹시라도 내게 원한이나 불만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직접 연락해 따졌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워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그는 더는 밝힐 게 없다며 인터뷰에는 응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이상벽은 구수한 인상과 달리 낭만적인 연애를 거쳐 결혼한 인물이다. 71년 중위 진급을 눈앞에 두고 있던 이상벽에게 사단장이 “한쪽 계급장은 내가 달아주지만 다른 한쪽은 애인이 달게 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애인이 없던 그는 부대 앞 가게 주인 아주머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혹 여동생이라도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졸랐다. 아주머니는 흔쾌히 대구에 있는 동생을 불러 주겠다고 허락했고, 그는 그 여동생을 설득해 진급 파티에 동반하는 데 성공했다. 그 아가씨는 진급 파티 중 가곡을 불러 상으로 받은 만년필까지 이상벽에게 안겨주고 갔는데, 이상벽은 그 만년필로 석달이나 그 아가씨에게 편지를 써 환심을 얻었다. 그 아가씨가 다섯살 아래의 부인 이윤진씨다.
부인 이씨는 7남매 중 장남인 그에게 시집와 어려운 시절을 함께 보낸 조강지처. 신혼시절 이상벽은 경향신문 ‘주간경향’ 기자였는데, 연신내 변두리에 조그만 살림집을 얻어 구멍가게를 연 적도 있다. 물론 구멍가게 운영은 부인 이씨의 몫이었다. 그가 기자 생활 10년 만에 신문사를 그만두고 전문MC로 나서 성공하기까지 그렇게 고락을 같이해온 터라 두 사람 사이의 금실은 무척 좋았다.
“딸에게 미안한 마음 크다” 반성하며 오피스텔 정리, 별거 끝내
워낙 사람 좋고 부부 금실 좋기로 유명한 그인지라 그의 별거 사실은 방송가에선 의외로 큰 뉴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논란이 커지고 기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지자 별거중인 것으로 알려진 부인은 현재 집을 비우고 있는 상태. 이상벽측은 “의외로 소란이 너무 커져 잠시 일본 친지집에 가있으라고 권했다. 18일 오전 일본 후쿠오카로 출국했다. 현재 큰문제는 없는데 기자들이 몰려와 어쩔 수 없이 취한 조치다”고 부인의 거취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나 두 사람과 절친한 사이인 한 측근에 따르면 부인은 실제 일본에 간 것은 아니고 기자들을 피해 서울 시내 지인의 집에 가 있는 중이라고 한다.
한편 이상벽은 “KBS 아나운서로 재직중인 딸(이지연 아나운서)의 마음 고생이 심했다. 자식들에게 한점 부끄럼 없는 아버지였고, 앞으로도 그러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상벽은 현재 오피스텔을 정리, 집으로 되돌아가겠다고 했으나 아직 귀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아무쪼록 그가 ‘아침마당’을 통해 위기에 처한 많은 부부들에게 해법의 실마리를 찾아주었듯 스스로 이 고비를 슬기롭게 넘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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