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초 딸을 품에 안은 영화배우 박신양(35)이 스크린에 복귀했다. 영화 ‘4인용 식탁’을 들고 나타난 그는 여전히 진지했지만 전보다 훨씬 여유있어 보였다.
‘4인용 식탁’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결혼을 앞두고 보통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죽은 아이들의 영혼과 맞닥뜨리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정원’. 자신처럼 귀신을 보는 ‘연’이라는 여자(전지현)를 만나 자신의 잊힌 과거를 알게 된 후 혼란에 빠지는 역할이다. 전지현과는 SBS 드라마 스페셜 ‘내마음을 뺏어봐’와 영화 ‘화이트 발렌타인’에 이은 세번째 만남. 그 사이 전지현은 고등학생에서 성숙한 여인으로 성장했고, 박신양은 한 아이의 아빠가 됐다. 딸 얘기가 나오자 그의 얼굴은 더욱 환해졌다.
“태어난 지 4개월쯤 지났어요. 뭐 특별히 육아법이라고 할 것은 없고, 많이 안아주고, 얘기 많이 나눠요. ‘에에엥엥엥엥∼’ 하는 거죠(웃음).”
아기의 옹알이를 흉내내는 그의 모습에 주위 사람들이 연신 폭소를 터뜨렸다. 더욱이 “연기만큼 잘하는 것”을 묻는 질문에 “운동과 요리, 그리고 아기 기저귀 갈아주기”를 꼽을 정도니 그가 어떤 아빠인지 짐작이 간다. CF에서 양복저고리를 벗어 ‘쉬’하는 어린 아들의 맨엉덩이를 가려주던 그의 모습이 이제 현실과 동떨어진 것은 아닌 듯하다.
“운동과 요리, 아기 기저귀 갈아주기를 연기만큼 잘해요”
그러나 가족에 대한 그의 각별한 애정도 영화 앞에서는 뒤로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지난해 10월 결혼한 그는 결혼식을 끝내자마자 신혼여행도 미룬 채 ‘4인용 식탁’ 촬영에 들어갔다. 그는 ‘4인용 식탁’의 시나리오를 읽고 난 뒤 일주일 동안 잠을 못 잘 정도로 끌어당기는 힘이 느껴져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이번 영화를 연출한 이수연 감독은 “남자 주인공은 몇 장면을 제외하곤 일상적인 연기를 해야 하면서도 극도의 긴장감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런 연기를 제대로 해낼 수 있는 배우로 박신양만한 사람이 없다”고 평했다. 그러나 일상성을 연기할 수 있는 탄탄한 연기력의 소유자 박신양도 시나리오의 느낌을 영화로 옮기는 일이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죽은 아이들의 혼령을 처음 보게 된 곳이 지하철이란 이유로 일부러 한달 이상 지하철을 타고 다녔고, 등장인물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정신병원을 찾아가보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늦은 밤 그에게 찾아든 악몽이었다고 한다.
“영화를 찍으면 보통 3∼4개월이 걸리는데 촬영기간 내내 배역의 핵심적인 감정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아요. 이번 영화는 특히 에너지 소모가 많았어요. ‘정원’은 시나리오만으로는 특별한 감정의 변화를 찾기 어려운 인물이거든요. 순전히 제 감성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시나리오에 등장한 죽은 아이들이 꿈속에 나타나는 악몽을 꿨어요. 그렇게 무서운 경험은 평생 처음이었어요. 그때의 두려운 감정을 촬영 내내 유지하려고 애썼죠.”
박신양은 귀신을 보고 두려움에 떠는 극중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 악몽을 꿨을 때의 기분을 되새겼다고 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한시라도 빨리 지워버리고 싶은 께름칙한 기분을 그는 영화를 위해 무려 6개월 동안 되새기고 되새겼던 것. 힘들고 고통스러웠을 것 같은데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지난 겨울에 참 힘들었던 기억이 나요. 연기도 힘들었고, 마이크 들고 추운 겨울에 떨고 있던 한 스태프의 모습도 생각나고,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한편으로 (시나리오가) 굉장히 무섭고, 그러면서도 다 읽고 나서 저에게 생각하는 힘을 주는 그런 작품이었어요.”
그는 영화를 위해 소품으로 쓰인 가구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죽은 아이들의 혼령과 조우하는 정원의 신혼집, 그리고 연의 집에 있는 소파가 바로 박신양이 직접 디자인한 것이라고 한다. 그가 디자인한 가구가 강남의 한 가구점에서 판매되고 있을 정도로 그의 가구 디자인은 프로급 실력을 자랑한다. 4년전부터 가구 디자인에 흥미를 가졌다는 그는 자신의 신혼집을 장식한 싱크대와 소파, 식탁, 선반, 옷걸이 등 어지간한 가구들도 직접 디자인했다.
그러나 그의 오랜 꿈이라던 ‘착하고 성실하고, 큰소리 안 나는 가정’을 일궈나갈 그의 보금자리에는 당분간 박신양 혼자 머물러야할 듯 보인다. 출산을 위해 친정이 있는 미국으로 건너간 아내가 미국에 계속 머물며 공부를 할 예정이기 때문. 그는 2월 중순, 영화촬영이 끝나자마자 출산을 지켜보기 위해 부리나케 미국으로 날아갔다. 딸이 태어났을 때 그가 얼마나 좋아했을지는 안 봐도 훤하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매일 전화로 뱃속 아기에게 태교 동화를 읽어주며 아빠가 되기를 고대했던 그가 아닌가.
부인과 딸과 함께한 3개월 정도의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고, 그는 영화 홍보를 위해 다시 홀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는 아내와 아기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기러기 아빠’ 신세가 됐지만 마냥 행복해 보였다.
“단 1%의 고정된 이미지라도 벗어나려고 항상 노력한다”는 박신양은 앞으로 1백편의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했다. 이제 겨우 목표의 10분의 1을 채운 것에 불과하니 앞으로 그가 보여줄 변화가 얼마나 무궁무진할지 내심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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