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해 뼈저린 후회를 하기도 하고, 때론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막연한 아쉬움에 번민하기도 한다. 때문에 누구나 살다보면 한번쯤 자기 자신에게 묻는다. “내가 만약 그때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하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부터 기네스 팰트로 주연의 영화 ‘슬라이딩 도어즈’까지 가지 않았던 길에 대한 미련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묘한 데가 있다. 올여름 국내 극장가에서도 이 같은 여운을 담은 영화를 만나게 될 것 같다. 6월13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역전에 산다’가 그런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
영화 ‘라이터를 켜라’를 통해 코믹 히어로로 등극한 김승우(34)는 이 영화에서 두 가지 상반된 캐릭터를 코믹하게 소화, 특유의 익살을 선사할 예정이다. 요즘 촬영 중인 또다른 영화 ‘불어라 봄바람’의 촬영 도중 무릎 부상을 당한 그는 왼쪽 다리에 압박붕대를 감고 절뚝거리며 나타났다. 먼저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경쾌한 코미디 영화예요. 다른 장르도 있겠지만, 지금 한국 영화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요. 코미디 영화가 흥행 수위를 휩쓰는 상황이니까…. 현재 우리 사회의 화두인 ‘인생 역전’에서 웃음의 소재를 끄집어 냈어요. 제가 일인이역을 하는데, 한 사람은 망가진 인생, 또 한 사람은 대박난 인생입니다. 다른 인생을 선택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해보는 꿈같은 영화죠.”
영화 ‘역전에 산다’의 시놉시스는 대략 이렇다. 주인공 강승완(김승우)은 어릴 적 천재 스포츠맨의 삶을 포기하고, 지금은 파산 직전의 증권사 영업사원으로 살고 있다. 승완은 어느 날 정체 모를 터널 속에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스타 프로골퍼와 사는 세계가 뒤바뀌고, 자신이 포기했던 프로골퍼의 삶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이 영화는 아직 그 정체를 다 드러내진 않았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마음 편하게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영화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한껏 물이 오른 김승우의 코믹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것이란 게 영화 관계자들의 말.
영화 ‘역전에 산다’에서 그는 하지원과 호흡을 맞춰 또한번 특유의 익살을 보여준다.
로또 열풍이 불면서 ‘인생 대역전’이란 말이 유행어가 되고 말았다. 김승우에게 “실제 인생 역전을 꿈꿔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너무나 쉽고 단호하게 “No”하고 대답했다. 그는 “현재 상황에 만족하기 때문에 후회하는 일은 없다”고 딱 부러지게 말을 맺었다. 다시 한 번 물었다. “정말이냐”고.
“데뷔작 ‘장군의 아들’부터 지금까지 해볼만한 역할은 정말 원없이 해봤어요. 그 결과가 좋았건 나빴건 그때그때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이혼 등의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역시 마찬가지에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혀 후회가 없어요. 그냥 편안해요.”
자신이 이제껏 걸어온 길, 그 속에 한 점 후회를 두지 않는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지 않을까? 현재에 대한 만족 그리고 과거를 되새김질하기 싫은 염증.
영화 속에서 프로골퍼로 등장하는 그는 실제 구력 5년의 골프 마니아.
한때 연예가에선 그가 이미연과 재결합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던 적이 있다. 소문의 발단은 이렇다. 영화 ‘역전에 산다’가 막 촬영에 들어갔던 지난해, 이미연이 불현듯 영화 촬영장을 방문했다. 두 사람은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다정한 모습을 연출했고, 이것이 재결합설을 낳은 것.
“다 와전된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날 미연이가 촬영장에 들린 건 같은 연기자 동료로서 격려차 들린 거예요. 다른 선후배들과 함께 온 거라 특별한 의미를 두고 해석할 게 없는 자리였어요. 미연이하고는 사실 지금도 잘 지내요. 이혼한 전 부인이라기보다 같은 길을 걷는 연기자로서 돈독한 우정을 유지하고 있는 거죠.”
그는 이혼 이후 항상 “이미연과는 이제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됐다”고 이야기해왔다. 그럼에도 재결합설 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혼한 남녀가 사이좋게 친구처럼 지내는 것은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경우이기 때문이다.
처음 김승우를 만난 사람 중 열에 아홉은 이렇게 말한다. “과묵하고 치밀한 스타일같다”고. 하지만 친한 사람들이 얘기하는 김승우는 전혀 다르다. 그의 측근들은 그에 대해 한결같이 “낙천적이고 농담을 즐기며 의외로 말이 많다”고 평한다.
활달한 성격 덕에 그는 친구도 많다. 영화계에 데뷔한지 13년째 접어든 그는 연예계에서도 소문난 마당발이다. 영화 ‘역전에 산다’ 촬영 현장에는 그의 말처럼 전 부인 이미연 뿐만 아니라 실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영화계 지인들이 찾아와 주목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임창정은 카메오 출연을 자청해 두터운 우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영화 ‘황산벌’ 촬영이 한창인 박중훈은 어렵게 짬을 내어 찾았고, 10kg가량 감량에 성공해 날씬해진 김선아도 지나가는 길에 들렀다며 초콜릿을 사와 스태프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또한 가수 윤종신이 방문했고, 감독으로는 영화 ‘가문의 영광’의 정흥순 감독과 영화 ‘라이타를 켜라’의 장항준 감독이 촬영장을 찾았다.
장 감독은 ‘라이터를 켜라’를 통해 김승우와 특히 친해졌는데, 촬영장에 들러선 김승우의 약만 올리다 갔다. 그는 김승우가 촬영 내내 얻어맞고 깨지는 걸 보고 매우 신나하면서 “비굴하고 어리버리한 캐릭터가 김승우씨와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영화 ‘불어라 봄바람’에선 김승우씨를 좀 더 강도 높게 망가뜨려야겠다”는 결의를 다졌다는 후문이다. 현재 김승우는 다시 한 번 장항준 감독과 호흡을 맞춰 ‘불어라 봄바람’ 촬영에 들어간 상태.
“영화배우 되지 않았다면 야구선수 됐을 것”
김승우의 폭넓은 인간관계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가수 싸이는 그와의 오랜 우정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영화 ‘역전에 산다’의 메인 타이틀 곡인 ‘홈런’을 만들고 직접 불렀다. 홈런의 뮤직비디오는 ‘역전에 산다’로 만들어질 예정이어서 더욱 기대가 된다.
다시 이야기를 ‘가지 않은 길’로 돌렸다. 이런 질문은 어떨까? “만일 연기자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사람이 됐을 것인가?” 그는 “아마도 야구선수가 됐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중학교 시절 두산의 골수팬으로 시작, 최근에 ‘빅초이 최희섭’ 경기를 보는 낙으로 산다는 광적인 야구팬이다. 사회인 야구단에 가입, 직접 게임을 하는 데도 열심이다. 때문에 ‘가지않은 길’은 아닐 지라도 ‘가고 싶은 또하나의 길’로 그는 서슴치않고 ‘야구선수’를 꼽는다.
실제 그는 운동에도 상당한 재능이 있다. 이 영화 속에서 프로골퍼로 등장하는 그는 실제 구력 5년의 골프 마니아이기도 하다. 골프 자세만 보면 타이거 우즈가 부럽지 않을 것이라는 게 함께 라운딩을 한 측근들의 평가다. 하지만 집중해서 골프를 치는 스타일이 아니라 그저 스트레스 해소 정도로 생각하고 되는대로(?) 치기 때문에 타수는 아직 90타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김승우는 영화의 전체 촬영신 가운데 단 한 신도 빠지지 않은 ‘전 경기 출장’기록도 세워 화제를 낳기도 했다. 한 마디로 김승우의, 김승우에 의한, 김승우를 위한 영화인 셈. 과연 그가 이 영화를 통해 장쾌한 ‘코믹 홈런’을 날릴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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