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요? 저 몸무게 줄면 큰일나요.” 홈쇼핑 채널에서 최고의 모델로 각광받고 있는 표은진씨(27). 요즘 그의 최대 관심사는 몸무게가 줄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다이어트전문 모델인 그에게 뚱뚱한 몸매는 필수.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날씬녀’와 비교되는 ‘뚱뚱녀’ 역할을 하는 표씨로서는 현재의 몸매가 최적조건이기 때문이다. 날씬할수록 미인으로 대접받는 세상이지만 홈쇼핑 광고 속 그녀는 언제나 ‘메인’이다.
1년째 농수산TV 홈쇼핑 채널에서 다이어트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동네 주부들 사이에서는 유명인사가 다 됐다. 게다가 최근 공중파방송 토크쇼에 출연하면서 ‘전국구 모델’이 되었다. 아내 덕분에 덩달아 바빠졌다는 남편 박경민씨(32)도 “전국에 있는 친구들이 한턱 내라고 야단”이라며 유쾌하게 웃는다.
올해 결혼 4년차인 표씨는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주부다. 평범한 전업주부였던 그를 광고현장으로 끌어들인 ‘주범’은 연극영화과 출신인 시누이. 연극영화 전공자답게 홈쇼핑 모델로 활동하는 친구를 여럿 두고 있는 시누이는 한 쇼핑채널에서 급하게 ‘뚱뚱한 아줌마’를 찾는다는 소식에 그를 적극 추천했다. 얼떨결에 출연한 광고 한 편으로 그녀는 1년째 홈쇼핑 광고모델로 활동중이다.
“홈쇼핑에서 흰색 면 티셔츠와 반바지를 준비해오라고 하더라고요. 생전 처음 찍는 광고니까 제 딴에는 공들여 화장하고 나갔죠. 난데없이 티셔츠 소매를 어깨 위로 올리더니 제 팔뚝에 전자파 기구를 갖다대고는 팔뚝살이 ‘위잉’ 떨리는 것을 촬영하는 거예요. 알고 보니 제품 사용 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비포(before)’ 모델이었던 거예요.”
‘환상적인 살떨림’ 때문이었을까. 그가 출연한 다이어트용 저주파 치료기의 주문이 폭주했고 홈쇼핑 채널에서는 아예 고정 출연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동안 주종목(?)인 다이어트 제품 이외에도 생식, 건강식품, 쌀 등 약 20여가지 품목에 출연했다. 날씬한 모델 옆에서 제품 사용전 모습을 열연하기 위해 망가지는 역할이 대부분이지만 표씨는 개의치 않는다며 “자신의 개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다는 것처럼 행복한 일이 어디 있느냐”며 반문한다.
현재 그는 163cm의 키에 몸무게 83kg. 하지만 그에게도 53kg의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던 때가 있었다. 22세에 남편을 만나 결혼한 그는 결혼과 출산을 거치면서 자그마치 30kg이나 체중이 불었다. 이유는 미식가 남편을 둔 덕분.
“남편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는 게 취미거든요. 결혼 전에 남편을 따라 전국 맛집은 가보지 않은 데가 없을 정도예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왜 이렇게 살이 쪘니?’라고 묻거나 친정어머니가 ‘그러다 박서방 바람날라’라고 충고해도 제가 뚱뚱하다는 생각은 못해봤어요. 남편은 항상 제가 가장 예쁘다고 했거든요.”
갑자기 체중이 늘어나면서 우울증을 겪기도 했지만 털털하고 낙천적인 성격 탓에 우울증도 오래 가지 못했다는 표씨. 뚱뚱한 몸매가 오히려 그에게는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집에만 묶여있던 그에게 새로운 세상을 체험하게 해준 ‘고마운 살들’이기 때문이다.
남편 박경민씨와 딸 정빈이도 표씨의 뚱보모델 활동을 적극 지원해준다.
별도의 리허설 없이 본촬영으로 들어가는 홈쇼핑 광고는 ‘사고’만 나지 않으면 무사통과다. 대본도 없이 주어진 상황만으로 표정연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표씨와 같은 아마추어 모델들에게 순발력은 필수 자격요건. 이제 그는 NG 없이 능청스러운 연기를 척척 해내는 것은 물론 촬영 콘티를 제안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다이어트 과자 광고였는데 ENG 촬영이 단 한컷에 끝난 거예요. 날씬녀와 뚱뚱녀가 함께 스쿼시를 치며 비교되는 컨셉트였는데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운동 후 제가 빵을 우적우적 먹는 표정을 한번 더 찍자고 했어요. 나중에 스태프들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냐며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표씨의 주무기는 뛰어난 순발력과 연기력이다. 현장에서 보여주는 애드리브는 그를 따라갈 모델이 없다는 것이 스태프들의 평가. 그만의 연기 비결이란 ‘무조건 잘 먹고 최대한 망가지는 것’이다. 입안 가득히 빵을 구겨 넣기도 하고, 변기 위에서 고통스러운 듯 휴지도 물어뜯거나 러닝머신에서 넘어지기도 불사한다는 그는 ‘오버연기’가 너무 재미있기만 하다.
“그쪽(홈쇼핑)에서 저에게 요구하는 게 뭔지 알기 때문에 확실하게 망가지기로 한 거죠. 제 모습에 대해 나름대로 자부심도 있고 당당한 편인데 상대편은 부탁하기 미안한가 봐요. 대신 제가 알아서 흉하고 밉게 연기를 하죠.”
광고 한편당 촬영시간은 대략 1∼2시간 정도. 1년 경력자인 그녀의 모델료는 25만원선이다. 그나마 처음 받은 모델료 6만원에 비하면 파격적인 대우인 셈이다. 그녀는 일주일에 4번 정도 자신이 살고 있는 양천구 목동에 위치한 농수산TV까지 스쿠터로 움직인다. 촬영 스케줄은 대부분 하루 전날 통보를 받지만 급한 경우 당일날 연락을 받기도 한다.
“지난 여름휴가 때 친정인 부산으로 내려갔는데 다음날 촬영스케줄이 잡혔다는 연락이 온 거예요. 다시 올라갈 형편이 아니라 못하겠다고 했는데 방영시간에 제 역할을 다른 아줌마가 하고 있는 것을 보니까 마치 제 자리 뺏긴 것처럼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광고모델로 바빠지긴 했지만 집안일도 그녀에게 소홀할 수 없는 부분이다. 시부모님과 표씨 부부, 딸과 시누이까지 함께 살고 있는 대가족 살림이지만 그녀는 따로 도우미를 쓰지 않는 억척 아줌마다. 촬영이 있는 날은 시부모님께 딸 정빈이를 맡기고 주말에 일을 한꺼번에 몰아서 하는 요령도 생겼다.
학창시절 축구선수를 꿈꾸기도 했다는 그는 KBS 전국 노래자랑에서 인기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재주가 많다.
“홈쇼핑 모델 중에는 공중파 방송에 진출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 일을 하찮게 여기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더 큰일도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욕심을 부린다면 영화출연을 꼭 해보고 싶다는 그는 망가지는 역할이라면 언제든지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며 그때까지 다이어트는 보류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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