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너무 싫은 나머지 ‘외도’를 한 전직 뉴욕특파원이 있다. 바로 KBS <추적 60분> 진행을 맡고 있는 이영돈 PD(47). 그는 99년부터 지난해까지 뉴욕특파원으로 있으면서 발견한 ‘우리들이 모르는 미국의 이중적 모습’을 <미국 환상 깨기>라는 책을 통해 폭로했다.
그를 만나기 위해 KBS <추적 60분> 사무실을 찾았을 때, 그의 책상 옆에 놓인 텔레비전에선 미국 CNN뉴스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그는 일하는 내내 CNN뉴스에 귀를 열어두고 사는 모양이다. 그런데도 그는 미국이 싫다고 한다.
“저는 미국이 싫어요. 주변 사람들 중에 누가 미국으로 이민간다고 하면 말리고 싶어요. 왜 미국을 싫어하냐고요? 미국인들은 백인이라는 우월감 때문에 아주 세련되게 잘난 체를 하고 무엇보다 거만하잖아요.”
소위 ‘미국물’ 먹은 사람들 치고 미국 예찬론을 안 늘어놓은 사람이 없는데 그는 예외였다. 미워하는 것도 아주 당당한 태도로 미워한다.
“이번에 출간한 책은 뉴욕특파원 생활을 하는 틈틈이 제가 느낀 미국인들의 생활문화를 정리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반미’를 외치는 것은 아니고요. 다만 ‘미국인들이 백인 아닌 다른 인종들에게 잘난 체 할 게 아무것도 없다’는 주장과 그 근거를 실었을 뿐이에요. ‘미국에 대해 너무 부정적인 것 아니냐?’는 주변의 염려가 많은데 이 책은 미국에 대한 총론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각론으로 봐주세요.”
<미국 환상 깨기>는 우리 마음속에 남아있는 ‘아메리카 드림’에 확 끼얹는 ‘찬물’ 세례와도 같다고 할 수 있는데, 과연 그의 필터에 걸러진 미국인들의 단상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미국인들은 잘 웃다가도 정상적인 얼굴로 돌아서는 데는 찰나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아요. 웃으면서 인사하고 이야기했다가도 뒤돌아서면 전혀 낯선 사람처럼 돼요. 그런 모습을 보면 섬뜩한 느낌마저 들어요. 미국인들이 잘 웃는다고 해서 모두 친절하고 좋은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그는 미국인들의 웃음 속에 감추어진 이면을 보라고 경고하면서 그 웃음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파헤쳐 보인다.
“미국인들의 웃음이 생활화되어 있는 이유는 ‘팁 제도’에 있다고 보면 돼요. 종업원들에게 팁은 월급 이외의 가욋돈이 아니라 월급의 일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웃으면서 서비스를 해야 되죠. 팁 제도가 오랜 세월에 걸쳐 정착하면서 미국인들의 웃음으로 정착됐다고 볼 수 있어요. 어떻게 보면 돈을 얻기 위한 처절한 웃음이죠.”
그는 또 우리가 갖고 있는 ‘미국인들은 가정적이다’라는 환상도 깨버리라고 말한다.
“초등학생까지 마약하는 나라가 미국이에요. 현재 미국에서는 연간 1천명 이상의 초등학생들이 마약을 하다가 죽어요. 그래서 미국 청소년들의 마약 사용 방지 일환으로 ‘가족의 날’이란 것도 만들었죠. 가족의 날은 부모가 아이들과 같이 저녁식사를 하는 날인데 오죽하면 이런 날까지 만들었겠어요.”
심지어 미국에서는 ‘어린 자녀에게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를 물어보세요. 그러면 당신 자녀의 마약 복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라는 초등학생 마약 복용 방지 공익광고까지 등장할 정도로 미국 초등학생들의 마약 복용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한다.
“교포 자녀들도 마약을 하는 사례가 많아요. 저도 대학교 1학년, 초등학교 6학년 두명의 사내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미국에 있을 때 아이들 교육에 여러모로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아이들이 친구 집에 놀러간다고 하면 반드시 직접 데려다주고 그 집 부모에게 인사를 하죠. 또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도 꼭 확인했어요.”
친절한 미소 속에 감추어진 미국인들의 가식을 알려주고 싶었다는 이영돈 PD.
그런가 하면 ‘미국남성들은 성적인 힘이 좋다’ ‘미국남성들은 한국남성들처럼 크기에 집착하기보다는 분위기를 따진다’는 속설에도 그는 코웃음을 친다. 진짜 ‘고개 숙인 남자’들이 미국남성들의 모습이라는 것.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섹스의 천국으로 비춰지는 미국에서도 성적인 부조화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어요. 현재 미국의 발기부전 환자만 해도 어림잡아 3천만명이고요. 또 ‘대물 숭배 현상’도 우리나라 못지않아요. 사우나 등에서 자기보다 ‘큰 놈’이 나타나면 힐끔힐끔 눈치보다가 자기 것을 감추기에 바빠요.”
더욱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한 여성 배우들을 보면서 키워온 미국식 ‘섹스’나 ‘오르가슴’에 대한 환상도 실제 미국 여성들의 성생활을 들여다보면 여지없이 깨진다는 점이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미국여성의 93%가 섹스 중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고, 76%의 미국여성은 거짓으로 오르가슴에 오른 것처럼 행동한다고 알려졌어요. 이런 여성은 상대방 남성의 성행위에 대해서 만족을 못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그가 미국에서 다양한 관심분야를 향해 펜대와 카메라를 잡고 휘젓고 다니며 ‘미국 바로 알기’에 천착하는 데에는 9·11테러사건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당시 뉴욕에 머물렀던 그는 충격적인 일을 경험했다는 것.
“미국사람들이 기사도 정신을 지키며 공공질서를 잘 지킬 것 같지만 실제 그렇지 않아요. 사람들 눈에 띄는 곳에서만 질서를 지키죠.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9·11테러사건 때 복구작업이 진행되면서 세계무역센터에 즐비했던 귀금속 상점들의 보석과 명품들이 수없이 도난당했어요. 이런 것만 봐도 미국인들의 속성이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지 않나요?”
이쯤 되면 그가 미국을 싫어하는 이유에 대해<미국 환상 깨기>를 읽지 않은 사람들도 설득당하고 만다. 그가 미국을 향해 퍼붓는 저주가 결코 맹목적인 반미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보편 타당한 근거가 행간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사람들의 ‘인종차별의식’에도 문제제기를 하지만 민족마다 다르게 대하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각을 견지한다.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 사건 이후에 소파협정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았잖아요. 저는 우리나라 소파협정이 일본이나 독일과 큰 차이가 있다고 보지 않아요. 단지 이를 운영하는 미국인들의 마음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이죠. 이것은 미국 안에서 미국인들이 한국인과 일본인, 독일인을 대하는 전반적인 태도를 보면 알아요. 영리한 미국사람들은 그 나라 수준에 맞춰서 법 집행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독자들에게 자신이 미국에 대한 열등감에 빠진 중증 환자인지 아닌지 자가진단을 해보라며 다음의 다섯 가지 증상을 제시했다.
첫째, 백인을 보면 왠지 모르게 잘생긴 것 같고 상대적으로 자신의 외모에 열등감이 생긴다. 둘째, 백인들은 너무나 착하고 너무나 잘 웃고 친절하다. 셋째, 백인들이 하는 말은 다 맞는 말이고 상대적으로 자신의 말은 뭔가 허점이 있고 비과학적인 것 같다. 넷째, CNN, ABC 등 미국의 매스컴은 진실만을 얘기하는 것 같다. 다섯째, 미국 상품은 왠지 모르게 좋아 보이고 우리 물건은 왠지 모르게 품질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위에 열거한 다섯 가지 증상은 미국 우월주의에 희생되고 있는 수많은 한국인들 혹은 아시아인의 대표적인 증상이라고 한다.
“우리의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 미국에 자녀들을 유학 보내는 주부들이 이 중증 환자라는 데 문제가 있어요. 저의 미국 환상깨기 작업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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