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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브리티시 패션 퀸, 케이트 미들턴 스타일

이나래 프리랜서 기자

2022. 07. 08

프린세스 다이애나 뒤를 이어 영국 패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는 케임브리지 공작부인 케이트 미들턴이 엘리자베스 2세 즉위 70주년 행사인 플래티넘 주빌리를 통해 다시 한번 탁월한 패션 감각을 세계에 뽐냈다.

‘Kate Middleton Effect(케이트 미들턴 효과)’라는 신조어가 있다. 영국 왕세손비 케이트 미들턴이 선보인 옷이나 액세서리가 순식간에 품절되는 사태를 설명하는 말이다. 그녀가 영국은 물론 미국과 유럽 패션 시장에까지 미치는 영향력을 증명한다.

6월 초 영국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2세 취임 70주년 행사는 케이트 미들턴의 패션 센스를 다시 한번 대중에게 확인시키는 무대였다. 6월 2일부터 5일까지 4일에 걸쳐 진행된 ‘플래티넘 주빌리’ 기간 동안 영국 패션 매거진을 비롯한 여러 언론은 케이트 미들턴의 동선과 스타일링을 시시각각 보도했다. 그 내용이 세계 각국 신문과 온라인 미디어 헤드라인을 통해 전파되면서 패션계 관계자는 물론 대중까지 깊은 인상을 받게 됐다. 고인이 된 시어머니 다이애나 왕세자빈처럼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꾸준히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는 케이트 미들턴의 패션 세계를 키워드를 통해 알아본다.

영국인 마음 사로잡는 다이애나 스타일링

여왕 즉위 70주년이라는 역사적인 행사의 첫날, 케이트 미들턴은 다시 한번 시어머니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룩을 차용해 영국 국민의 향수를 자극하는 데 성공했다. 화이트 밴드로 포인트를 준 챙 넓은 네이비 색 모자가 그것❶. 왕세손비가 이 모자를 쓰고 등장했을 때, 중년이 넘은 많은 영국인들은 1989년 두바이를 방문했던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이다. 작은 모자를 쓰는 게 트렌드이던 시절, 다이애나가 어깨너비만큼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등장했을 때 받은 신선한 충격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다이애나는 1991년 걸프전에 참전한 영국군 퍼레이드를 관람하면서 다시 한번 이 모자를 써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편 플래티넘 주빌리 행사 첫날 케이트 미들턴이 선보인 의상 또한 특별했다. 생전에 다이애나가 입었던 화이트 원피스와 유사한 깊은 브이넥 재킷을 선택해 기시감을 배로 키웠다는 평. 이날의 화룡점정이었던 주얼리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케이트는 다이애나가 윌리엄 왕자에게 남긴 것으로 알려진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 펜던트 목걸이 및 귀걸이 세트를 착용함으로써, 자신의 스타일이 다이애나 왕세자빈을 향한 헌사임을 분명히 드러냈다.

케이트는 이런 오마주 스타일을 왕실 공식 행사에서 자주 활용한다. 많은 영국인이 여전히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남색 물방울무늬 원피스가 좋은 예다. 2018년 찰스 왕세자의 70세 생일 기념 촬영을 위해 등장한 케이트의 의상은 1985년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미디어 인터뷰 때 입고 있었던 것과 거의 유사했다❷.



또한 케이트는 2013년 첫아들 조지 알렉산더 루이 왕자 출산 후 도트 패턴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대중 앞에 등장했는데❸, 이 의상은 다이애나가 큰아들 윌리엄 왕세손을 낳은 후 처음 언론사 카메라 앞에 노출됐을 때 입었던 원피스와 유사하다. 케이트는 2018년 둘째 아들을 낳았을 때도 다이애나 스타일을 재현했다. 루이 아서 찰스 왕자 출산 후 세인트 메리 병원 입구에서 진행한 기념 촬영 때, 역시 1984년 해리 왕자를 출산하고 카메라 앞에 섰던 다이애나를 오마주한 것이 분명한 의상을 선보였다❺.

케이트는 왕실 행사가 아니어도 영국 국민의 시선이 한데 모이는 자리에 나설 때 자주 다이애나를 떠올리게 만드는 옷을 입는다. 지난해 가을 개봉한 007 시리즈 ‘007 노 타임 투 다이(007 NO TIME TO DIE)’ 월드 프리미어 행사에 등장한 케이트 미들턴은 눈부시게 화려한 골드 컬러 제니팩햄 드레스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눈 밝은 사람들은 즉시 이 드레스가 1985년 열렸던 ‘007 뷰 투 어 킬(007 A VIEW TO A KILL)’ 월드 프리미어 행사 때 다이애나가 입은 드레스를 오마주한 것임을 알아차렸을 것이다❹.

케이트의 패션에서 놀라울 만큼 빠르게 다이애나의 흔적을 읽어내는 영국인들 마음속에는 여전히 다이애나가 ‘영원한 프린세스’로서 살아 숨 쉬고 있는 게 분명하다. 케이트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적절한 때 다이애나를 연상시키는 스타일을 시도해 시어머니를 향한 국민들의 절대적 애정을 흡수하고자 노력한다는 게 중론이다. 물론 그 뒤에는 왕실 홍보 담당자들의 전략적인 제안도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왕세손비의 과제, 패션 외교의 옳은 예

플래티넘 주빌리 행사 셋째 날인 6월 4일, 웨일스 카디프성을 방문한 케이트 미들턴은 레드 컬러 롱 코트를 착용했다. 이 패션에는 “웨일스를 향한 호의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설명이 따라붙었다.

우리에겐 다소 생경하게 느껴지지만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연합국이다. 지역마다 역사와 전통이 상이한 이 나라에서 ‘레드’는 웨일스의 상징색으로 통한다.

케이트는 아일랜드나 스코틀랜드를 방문할 때도 해당 지역을 상징하는 컬러 의상 입기를 즐긴다. 매년 3월 중순 세인트 패트릭 데이 무렵이면 아일랜드를 방문한 그녀의 소식이 전해지는데, 매번 디자인만 다를 뿐 색상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진녹색 의상을 고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인 패트릭을 기념해 열리는 세인트 패트릭 데이 축제 참석자는 모두 패트릭을 상징하는 녹색 옷과 모자, 장신구 등으로 치장하는 전통을 존중하는 것. 한 걸음 더 나아가 케이트는 이때 클로버 모양 장신구나 브로치를 착용한다. 역시 패트릭 성인이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과정에서 ‘삼위일체’ 교리를 클로버의 세 잎에 빗대 설명한 에피소드를 떠올리게 하는 스타일이다. 자신이 아일랜드 전통과 문화를 존중한다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발산하는 셈. 그녀는 스코틀랜드를 방문할 때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타탄체크 패턴 의상을 선택한다❻.

케이트가 패션을 통해 상대에게 우호적인 메시지를 전한 사례는 아시아 방문 때 특히 눈에 띈다. 그녀는 2019년 윌리엄 왕세손과 함께 파키스탄을 방문했을 때 현지 디자이너가 만든 모던한 스타일부터 전통 파키스탄 드레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착장을 소화한 바 있다. 인도와 부탄을 여행하는 동안에도 현지 디자이너 의상을 입거나, 해당 국가의 전통 모티프가 특징인 의상을 착용하는 방식으로 지역 사람들의 호감을 얻는 데 성공했다❽.

국빈 자격으로 외국을 방문할 일이 많은 왕세손비에게는 패션도 외교 수단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던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그랬듯, 케이트 미들턴 역시 11년간의 결혼 생활을 보내며 패션을 통해 상대국에 대한 존중과 호의를 전하는 패션 외교의 달인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속가능성을 강조한 “입고 또 입고”

케이트 미들턴의 패션 키워드 가운데 최근 가장 주목받는 것은 ‘다시 입기’다. 플래티넘 주빌리 첫날 그녀가 다이애나를 오마주하며 입은 블레이저 드레스는 2021년 6월 G7 정상회담 때 이미 한 차례 선보인 의상이다. 케이트가 6월 4일 오전 웨일스를 방문했을 때 착용한 레드 컬러 롱 코트 역시 2020년 국가적으로 진행된 ‘홀드 스틸’ 캠페인 때도 입었던 걸 확인할 수 있다❼. 이어 6월 4일 밤 런던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영국국립초상화미술관)에서 열린 플래티넘 주빌리 공식 콘서트에 등장한 그녀의 원피스 또한 일전에 입은 적 있는 옷이라는 사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뜨겁게 달궜다. 언뜻 블레이저와 주름스커트로 구성된 투피스처럼 보이는 이 의상은 지난해 9월, 같은 장소에서 열린 행사에서 이미 공개된 적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❾. 이 옷은 런던에 위치한 예술대학 ‘센트럴 세인트 마틴’ 출신 말레이시아 디자이너가 설립한 신생 브랜드 ‘셀프포트레이트’ 제품으로 판매 가격은 400파운드, 우리돈 60만원 초중반대였다. 그러나 이미 품절돼 케이트 미들턴의 패션 센스를 오마주하려고 했던 이들의 아쉬움을 자아낸다.

심지어 케이트는 1~2년 이내의, 아직까지는 트렌드가 지나지 않은 옷을 다시 입는 것을 넘어 10여 년 전 공개 석상에서 입었던 옷을 최근 다시 착용하고 나타나기도 한다. 2020년 2월, 그녀가 영국아카데미영화상(BAFTA) 행사장에 등장했을 때 선보인 알렉산더맥퀸의 롱드레스는 2012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방문 당시 입었던 것이다. 페미닌한 핑크 컬러와 로맨틱한 실루엣이 인상적인 제니팩햄 드레스는 2011년과 2016년 각각 케이트의 선택을 받았고, 그녀가 2014년 시드니 로열 투어 때 착용했던 베이비 블루 코트와 모자 조합은 2019년 4월 부활절 예배에서 다시 등장하기도 했다.

케이트 미들턴이 같은 옷을 여러 번 입고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은 이미 영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영국 패션 매거진들은 이런 사례를 모아 칼럼 형식으로 보도할 정도. 왕실로서는 검소하고 친근한 왕세손비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포인트라 할 수 있다. 왕실 재정에서 집행되는 의상 예산을 절감하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그녀가 입으면 완판! 영국 브랜드의 희망

플래티넘 주빌리의 첫날,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은 케이트의 블레이저는 알렉산더맥퀸 제품이다. 맥퀸을 향한 그녀의 애정은 왕세손비가 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유서 깊다. 성공한 사업가 가정에서 성장한 케이트는 대학생 때부터 해당 브랜드 의상을 즐겨 입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심지어 웨딩드레스 역시 맥퀸의 작품을 선택했을 정도. 이는 개인 취향은 물론 패션업계 지형도까지 고려한 선택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영국 패션업계 종사자들은 케이트 미들턴이 영국 패션 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을 10억 파운드 정도로 추산한다. 우리돈 1조5000억원을 훌쩍 넘는 규모다. 올해 1월, 40세를 맞이한 케이트 미들턴이 빨간 드레스를 입고 촬영한 사진이 공개됐을 때 세계적으로 ‘빨간 드레스’에 대한 검색량이 376% 증가했다는 통계가 보고되기도 했다❿. 심지어 이 빨간 드레스 역시 알렉산더맥퀸의 것이었다고!

사실 케이트는 알렉산더맥퀸 외에도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 의상을 자주 입는다. 제니팩햄, 멀버리 같은 영국 기반 명품 디자이너 브랜드는 물론이고 100파운드, 즉 우리돈 10만원대 중반으로 살 수 있는 자라나 앤아더 스토리즈⓬, 막스앤스펜서, 보덴, 갭, 탑샵, 직소 같은 브랜드 의상도 가리지 않는다. 그녀가 신혼여행을 떠나는 길에 선보인 푸른색 자라 원피스는 가격이 10만원대라 보는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케이트가 임신 중 워너 브라더스 스튜디오 행사에 참석할 때 입었던 탑샵의 폴카 도트 드레스 가격은 심지어 5만원대. 이 제품은 케이트 착장이 공개된 뒤 1시간 만에 품절되는 인기를 누렸다.

특히 그녀는 자선 행사나 자녀들 학교 행사에 참석할 때 대중적인 브랜드를 선택하는 센스를 발휘하는데, 케이트가 즐겨 입는 자라의 원피스나 아소스의 랩드레스 같은 제품은 우리돈 6만~12만원 안팎으로 구매할 수 있다.

영국 패션을 널리 알리려는 그녀의 노력은 특히 자녀들 의상을 선택할 때 빛을 발한다. 영국 스트리트 브랜드의 키즈 라인을 선택함으로써 왕실의 이미지 개선과 자국 패션업계 부흥이라는 2마리 토끼를 잡으려 노력하는 것. 플래티넘 주빌리 행사 주간 토요일에 왕세손 가족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공개된 사진에서 케이트의 딸 샬럿 공주는 영국 키즈 웨어 브랜드 넥스트에서 판매하는, 3벌에 2만4000원짜리 티셔츠 차림이었다. 두 왕자는 스페라 브랜드에서 1만원 정도에 팔고 있는 남색 티셔츠를 입었다⓫. 공식 행사에서 샬럿 공주가 선보인 스팽글 드레스가 35파운드, 수국색 시폰 드레스는 77파운드로 각각 우리돈 5만5000원, 12만원 정도에 불과했다. 수국색 시폰 드레스는 ‘샬럿 효과’로 이미 품절된 상황이다.

이처럼 의상마다 다양한 의미와 노력을 담아내는 덕분에, 케이트에 대한 영국인의 신뢰는 점점 상승하는 분위기다. 윌리엄 왕세손과 약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케이트 미들턴의 존재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역시 이제 그녀를 차기 왕비로 인정하는 상황이라고. 앞으로 진정한 퀸의 자리에 오를 그녀의 선한 영향력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기대해봐도 좋겠다.

#케이트미들턴패션 #다이애나스타일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뉴시스 
사진출처 공식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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