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첼시 플라워 쇼’에서 우승자가 호명되는 순간, 햇볕에 까맣게 그을린 한 동양 여인이 단상에 올랐다. 순간 전 세계에서 몰려든 기자들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고, 이 장면은 BBC 를 통해 고스란히 생중계됐다. 우승자는 황지해(36) 씨. 동양인 최초의 영광을 안은 그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짜릿한 승리의 쾌감을 맛봤다. 하지만 지난해도 올해도 그 영광스러운 순간에 그에게 주목하는 한국 언론은 많지 않았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원예 사업이 각광받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특히 ‘가든 디자인’이란 분야는 더욱 생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 무대에서 원예 사업의 위상은 전혀 다르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가드닝 월드컵’을 개최하며 원예 사업에 관심을 쏟고, 꽃의 나라 네덜란드에서는 ‘암스트레담 국제 원예 박람회’와 같은 각종 국제 대회가 열린다. 그중 단연 최대 규모와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것이 이 ‘첼시 플라워 쇼’다. 1862년에 시작된 ‘첼시 플라워 쇼’는 영국 왕립원예협회에서 주관하며 세계 각국의 원예 동향을 소개하는 한편, 다양한 품종의 꽃과 나무를 선보인다. 대회의 하이라이트는 18개월 전부터 기획서 검토 등 까다로운 심사 기준을 통과한 전 세계 전문가들의 작품 전시. ‘안마당 정원’ ‘정원 꾸미기’ ‘도심 정원’ ‘선플라워 거리 정원’ 등 여러 분야의 정원이 전시되며, 각 분야별 심사를 통해 우승작이 가려진다. 우리나라에서 뉴스나 드라마를 방영하는 황금 시간대에 ‘첼시 플라워 쇼’ 수상자들이 출연하는 가든 프로그램을 방송할 만큼 원예 사업이 대중화된 영국이니만큼 대회 우승자는 하루아침에 유명 디자이너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래서 ‘첼시 플라워 쇼’는 원예 전문가들에게 꿈의 무대라 할 수 있다.
2011년 영국 ‘첼시 플라워 쇼’에서 우승을 차지한 황지해 작가의 해우소.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 버림의 미학,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선조의 지혜 등 해우소에 담겨 있는 철학적 의미가 서양인들에게도 큰 감동을 안겨줬다.
2011년 황지해 작가는 ‘해우소’라는 작품으로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그도 그럴 것이 정원 한가운데 ‘해우소’ 즉 화장실을 떡하니 들여놓았기 때문이다. 야생의 숲을 연상케하는 길을 따라 들어가면 곧 쓰러질 것 같이 허름한 한국 전통 화장실이 나오고 용변을 보는 곳에서는 밖을 향해 힘겹게 솟아오르는 담쟁이 풀이 강렬한 생명감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는 일반적인 정원과는 너무도 다른, 새로운 시도였다. 이어 2012년에 소개된 ‘Quiet Time: DMZ Forbidden Garden(이하 DMZ)’는 ‘정원 꾸미기(Show Garden)’ 부문 1위와 전 분야 참가자 8백여 명 중 단 한 명에게 수여되는 ‘첼시 플라워 쇼’ 최고상인 회장상을 수상했으며 영국 에드워드 왕자가 ‘킹 엘리자베스 가든’에 영구 보존할 의사까지 밝혔다. 한국전쟁의 잔재인 비무장지대를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이 작품은 60여 년 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의 숭고함을 정원으로 끌어들였다. 내부에는 전쟁 통에 그을린 군사용 전화기, 누군가의 군화, 남북을 가로막고 있는 철조망들이 흩어져 있다.
황지해 작가는 ‘해우소’와 ‘DMZ ’를 통해 가장 한국적인 정원을 선보이고 싶었다고 말한다. 전 세계인의 찬사를 받은 ‘한국의 정원’이 어떤 모습일까. 그 ‘한국의 정원’은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 이제 ‘가든의 여왕’ 황지해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다.
‘첼시 플라워 쇼’는 영국 왕립원예협회에서 주관하는 대규모 행사로 2011년 황지해 작가가 우승했을 때도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찰스 황태자 부부가 직접 시상식에 참석했다. 맨 오른쪽 사진은 황 작가와 어머니.
전남 시골 소녀, 세계 무대에 꽃을 심다
전남 목포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순수 국내파인 황 작가가 어떻게 세계적인 ‘가든의 여왕’이 됐을까.
전남 곡성의 한 시골 마을, 밭을 매는 어머니 곁에서 소녀는 돗자리를 펴고 누워 하늘을 도화지 삼아, 구름을 물감 삼아 그림을 그리며 미술 학도의 꿈을 키웠다. 털모자의 털 방울처럼 생긴 파꽃의 소담스러움을, 하늘에서 떨어진 별처럼 달빛을 반사하는 도라지꽃의 반짝임을, 더덕 꽃의 향기를 그렸다. 그렇게 한국의 야생화를 주로 그리면서 황 작가는 점점 자연과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됐다.
“대학 시절 교생 실습으로 깊은 산골 학교에 간 적이 있었어요. 실습 기간이 끝날 무렵 아이들에게 선물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에, 학교 안에 있는 낡은 수영장 벽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웅성거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아이들이 1층부터 3층까지 창문에 매달려서 저를 지켜보고 있더라고요.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문화는 너무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그림 그리는 모습이 신기했었나 봐요. 그 순간 많은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문화적인 풍족함을 누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황 작가는 1999년 환경디자이너들이 모여 만든 회사, ‘뮴’에 소속돼 아파트 단지 내 공원이나 동네 어귀의 작은 골목들을 꾸며나가기 시작했다. 벽화를 그리고, 조형물을 설치하는 한편 무의탁 시설 등을 찾아다니며 낡은 건물에 나무와 꽃을 그려 넣는 봉사 활동도 했다. 사람들에게 정신적 치유가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포부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웬일인지 어느 순간 공허함이 찾아왔다.
“아무리 꽃과 나무를 그려도 그건 살아 있는 자연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일반 조형물에 사용되는 서스(sus)나 철판이 주는 한계를 늘 자연에서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마치 중요한 것은 빼놓고 겉보기에 좋은 장식만 하는 느낌이었죠.”
그때 그의 손에 쥐여진 것은 러시아의 한 탐험가에게서 건네받은 ‘첼시 플라워 쇼’ 안내책자였다.
“‘첼시 플라워 쇼’ 관련 자료를 차근차근 살펴보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어요. ‘내가 가야 할 길은 바로 이거구나,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바로 이거야’ 싶었죠. 제 안에 가득 차 있는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첼시 플라워 쇼’는 아무나 출전할 수 있는 대회가 아니어서 그에 걸맞은 경험을 쌓기 위해 10여 년간 쌈지공원, 가로공원을 꾸미며 열심히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나갔어요(웃음).”
‘첼시 플라워 쇼’는 출전 작품 하나만 놓고 평가하는 녹록한 대회가 아니었다. 작가의 성장 과정은 물론 활동 내용이나 하다못해 작가의 가치관이나 철학적 사고들을 점검하는 총체적인 평가가 이뤄진다. 출전 작품의 꼼꼼한 스케치도 함께 제출해야 했다. 그렇게 ‘첼시 플라워 쇼’ 출전을 목표로 차근차근 포트폴리오를 쌓아가던 2007년, 그가 처음 문을 두드린 곳은 프랑스에서 열리는 ‘쇼몽 가든 페스티벌’이었다. 하지만 그가 심사위원에게 들은 말은 “우리는 당신 나라의 정원을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한국에서 원예 사업이 미개척 분야인 만큼, 이들이 한국의 정원에 대해 알 길이 없었겠죠. 하지만 지원서를 제출하는 데도 언어의 장벽 때문에 고생이 많았는데, 정작 기회조차 주지 않으니까 오기가 발동하더라고요.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당시 황 작가가 프랑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건 단지 국제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국내에서 환경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그럴듯한 ‘간판’이 없다는 데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아 해외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게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조경학교에 진학하고 싶었어요. 그것도 유럽에서 명망 있는 조경학교요. 그런데 준비가 미흡해서인지 쉽지 않더라고요. 의사소통의 문제도 컸고요. ‘쇼몽 가든 페스티벌’에서도 낙방하고, 학교 진학도 실패한 채 5개월간 어학연수만 하다 돌아왔죠. 고생만 했던 해죠.”
하지만 2009년 영국을 찾았을 때는 전혀 다른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2011년도 ‘첼시 플라워 쇼’ 출전자 모집에서 대망의 작품 ‘DMZ ’ 스케치를 제출했다. 답변은 “처녀작으로는 아까울 만큼 훌륭하다”는 평이었다. 더불어 2007년에 고배를 마셨던 조경학교에서도 언어 점수만 기준치에 도달하면 입학할 수 있다는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그토록 원하던 두 개의 합격 통지서를 들고 그는 고민에 빠졌다.
“대회 특성상 6개월은 꼼짝없이 출품작에 매달려야 하고, 그 이전부터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학교 진학은 사실상 어려웠어요. 어학 공부를 할 것이냐, 대회에 출전할 것이냐를 놓고 고민하다가 결국 ‘학교는 다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대회를 선택했죠. ‘첼시 플라워 쇼’ 주최 측으로부터 국제 대회에 처음 등단하는 자리인 만큼 규모가 큰 정원보다는 작은 정원으로 도전해보라는 제안을 받고 그때 생각했던 것이 ‘해우소’였어요. 그때부터 유럽 일대를 돌아다니며 각종 원예 박람회를 둘러보고, 다양한 정원을 접하며 공부했죠.”
2012년 ‘첼시 플라워 쇼’ 우승작인 ‘Quiet Time: DMZ Forbidden Garden’. 60년 동안 자연이 만들어냈고, 무엇보다 평화와 전쟁이 공존하는 공간이 바로 DMZ(비무장지대)다.
선조들의 지혜에 세계인이 감탄하다
막상 대회 참가를 결심했지만 모든 게 순탄치만은 않았다. 우선 ‘한국의 정원’을 재현하기 위해 국내 식재를 60% 이상 사용해야 했는데, 비행기로 한국에서 식재를 공수하려면 복잡한 절차와 엄청난 비용을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보통 식재는 반출이 금지돼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살균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다행히 공기업과 대사관의 도움으로 간신히 위기를 넘겨가며 ‘첼시 플라워 쇼’에 ‘해우소’를 소개할 수 있었다. ‘DMZ ’ 때는 고생이 더 심했다. 그가 직접 DMZ 부근의 식재를 채취하는가 하면 유럽 일대 집시촌을 돌아다니며 비철과 잡철을 긁어모아 우리나라의 깽깽이풀을 심었다.
“유럽의 가든 문화도 지금은 대중화됐지만, 그 유래를 따져보면 귀족들의 전유물로 시작됐잖아요. 더구나 어느 나라나 화장실에 대한 생각은 더럽고 저속하다는 이미지가 강하죠. 처음 화장실을 정원에 두겠다고 했더니 대부분 ‘장난하는 거 아니야? ’는 반응을 보였어요(웃음). 하지만 ‘해우소’가 가진 의미는 단순한 화장실이 아니에요. 우리 선조들이 ‘해우소’에 부여했던 의미를 듣고는 모두들 감동의 박수를 쳤죠.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시간, 버림의 미학, 결국에는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식물을 살찌울 수 있는, 해우소가 가진 의미가 세계인들에게도 통한 셈이죠.”
첼시 쇼에서 황 작가가 더욱 빛났던 건, 작업 전체를 진두지휘할 뿐만 아니라 그가 직접 밤을 새며 작품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수천 종의 식재를 3주 만에 직접 플랜팅한 탓에 피부는 햇볕에 잔뜩 그을렸고, 손은 상처투성이였지만 즉흥성이 주는 자연스러움 덕분에 그는 수상의 영광을 안을 수 있었다.
“다른 디자이너들은 작업 현장에서 한 발치 물러나 의자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더라고요. 구상만 하고 직접 꾸미지는 않는 거예요. 디자이너가 직접 작업에 참여해야 디자이너의 감성이 녹아드는 건데 말이에요. 작업을 하다 보면 계획했던 대로 색감이 조화롭지 못하거나, 식재가 생생하지 못한 경우도 종종 발생하거든요. 행사 날짜에 맞춰 꽃이 피어줘야 하는 까다로운 과정이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죠. 그럴 때면 즉흥적으로 디자인을 바꿔 조성할 수 있는데, 다른 디자이너들은 자로 잰 듯 계획대로만 하더라고요.”
황 작가는 자연스러움이야말로 한국 정원의 멋이고 아름다움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원의 대표적인 모습을 한국 정원에서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결국 어떤 작품이든 작가 자신을 이야기하는 창조 작업이잖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 작가가 가진 민족성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일부러 한국 정서를 강조하거나 고집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거죠. 한국의 정원이라 해서 언뜻 떠오르는 모습이 없는 것은, 특별히 가꾸지 않은 정원이기 때문일 거예요. 우리나라는 자연이 풍족한 나라잖아요. 대청마루에 앉으면 그림 같은 산을 볼 수 있고, 대문 밖에만 나가도 야생화가 지천으로 널렸는데, 굳이 정원을 꾸밀 필요가 없었던 거죠. 정자 문화가 발달한 것도 지천에 널린 산천에 정자 하나 지어놓고 즐길 수 있었으니까 가능했던 거죠. 반대로 유럽은 척박한 자연을 아름답게 꾸미고자 정원이 필요했던 거고요.”
올해 4월부터 6개월간 네덜란드에서 전시된 황 작가의 ‘뻘, 순천만 어머니의 손바느질’.
황 작가가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민족성은 과시하지 않는 자연스러움이었다. 토담으로 쌓은 담에 어쩌다 날아온 송악 씨앗이 넝쿨을 이루고, 대문 어귀에는 꿩의다리, 금강초롱, 강아지풀, 매자기, 질경이, 며느리밑씻개가 멋대로 자라도록 내버려뒀다. 언제든지 손을 뻗으면 따 먹을 수 있는 앵두, 감, 밤 같은 유실수를 듬성듬성 심어놨고, 마당 한쪽에는 텃밭도 있다.
“한마디로 한국의 정원은 ‘게으른 정원’이에요. 텃밭 언저리에 야생초 씨앗이 날아들어 싹이 움터도 어머니들은 그 꽃을 뽑지 않으셨죠. 그렇게 자연스럽게 우리의 정원은 풍성해졌어요. 정형화되지 않은 원시 그대로의 정원인 거죠. 앞으로 이런 한국의 정원에 형태와 장르를 만들어 가는 것은 우리 중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한국인의 눈으로 황 작가의 작품을 접하면 처음부터 ‘우와’ 하는 감탄사가 나오지는 않는다. 그저 소박한 시골 마을의 풍경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오래돼 쓰러질 듯한 화장실, 반세기 동안 버려져 있던 DMZ의 순고한 역사를 생각하면 그 안에 숨어 있는 살아 있는 자연을 만날 수 있다.
얼마 전 황 작가는 2007년 자신을 거부했던 프랑스 ‘쇼몽 가든 페스티벌’로부터 2013년 페스티벌 초대장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쇼몽 가든 페스티벌’ 대신 우리나라에서 개최하는 ‘순천만정원박람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사실 그는 ‘DMZ ’ 작업 당시 후원이 끊겨 중도에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몰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국에서 보내준 크고 작은 성원 덕분에 끝까지 작품을 완수할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 그는 영국 각종 방송사로부터 인터뷰 섭외를 받고, 왕족들의 파티에도 초대받는 등 국빈 대접을 받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후원자를 찾기 위해 발을 동동 굴러야 하는 배고픈 예술가다.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장인들을 제치고 당당히 우승을 차지한 자랑스러운 한국인. 한국인도 잊고 지내는 한국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세계에 널리 알린 그를 이제는 우리가 응원해야 할 때가 아닐까.
현재 ‘DMZ ’는 ‘London Pleasure Gardens’ 공원 안에 있으며 2014년까지 전시될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전북 부안의 ‘물의 거리’, 흑산도 일주도로에 위치한 ‘천사의 공원’ 등에서 그녀의 또 다른 작품을 만날 수 있다.
1 ‘가드닝월드컵’ 레드카펫 행사에 외국 디자이너들과 함께한 황지해 씨. 2 3 올 10월 일본 ‘가드닝월드컵’에서 참가 디자이너들이 뽑은 최고작으로 선정된 작품 ‘ 가난, 그 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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