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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다니던 병원 검사지 가져와도 새 병원서 검사시키는 이유는…”

13년차 응급전문 간호사 출신 ‘옆집간호사 구슬언니’

이경은 기자

2023. 05. 15

라이브 방송을 켜고 구독자와 수다 떠는 모습이 영락없는 동네 언니 같지만 한때는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매일 일분일초를 다투던 13년 차 간호사 이구슬 씨를 소개한다.

“사고 현장에서 혈액형 스티커 전혀 도움 되지 않아요!”

얼마 전 차량 뒤 유리에 붙이는 자녀 혈액형 스티커가 실제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린 영상이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를 돌며 화제가 됐다. 위급 상황에 도움이 될 줄 알고 붙여둔 스티커가 그저 상술이었다는 것에 다들 놀랐기 때문이다. 영상 속 유튜버도 덩달아 화제가 되면서 그가 대학병원 응급실 근무 경력을 가진 응급전문간호사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유튜브 ‘옆집간호사 구슬언니’ 이구슬 씨다.

13년간 의료 현장을 누볐다는 그는 어떻게 22만 명의 구독자를 둔 유튜버가 됐을까. 간호사직을 그만두고 카메라 앞에서 별별 병원 이야기를 전하는 그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대학병원 간호사로 오래 근무했습니다.

지금은 퇴사했지만 경기도의 한 대학병원에서 13년 4개월 동안 근무했어요. 그중 10년은 응급실에, 나머지는 인공신장 투석실에 있었습니다.



“혈액형 스티커는 소용없다”고 팁을 나눈 영상이 화제가 됐어요.

어떤 의료인이 차량에 붙은 스티커만을 믿고 수혈을 하겠어요. 남편이 관련 기사 링크를 전달해줬는데 댓글을 보고 정말 뿌듯했어요. “너무 좋은 콘텐츠”라는 말부터 “이 언니 영상은 거를 게 없다”까지 칭찬이 많아 기분이 좋더라고요. 원래는 간호사와 관련한 이야기를 주로 다뤘는데 그 후로는 정보성 콘텐츠도 종종 만들어요. 저 같은 의료계 종사자에겐 당연하지만 일반인은 잘 모르는 의료 정보가 많거든요.

대표적으로 어떤 게 있을까요.

타 병원에서 저희 병원으로 옮기는 환자에게 (저희 병원에서) 재검사하셔야 한다고 안내하면 “검사지 가져왔는데 왜 다시 검사해! 돈 받으려는 거 아니야!” 하는 분이 가끔 계세요. 그건 병의 진행 여부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짧은 시간에도 환자 상태는 계속 변해요. 환자의 말과 전 병원 검사 결과만 믿고 수술을 진행할 수는 없잖아요.

또 검사나 수술을 받으러 갈 때 “걸어갈 수 있다니까요!” 하면서 이동 침대를 타지 않으려는 환자도 있어요. 하지만 의료진에게 가장 두려운 건 환자의 ‘낙상’ 사고죠. 환자가 주저앉기만 해도 간호사는 낙상 보고서를 써야 해요. 어디서 ‘쿵’ 소리가 나면 하던 일을 다 집어던지고 달려갑니다. 그만큼 환자 낙상 예방이 중요한 안전 사항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이동 베드나 휠체어로 (환자를) 옮겨요. 물론 환자분들의 불편도 이해는 됩니다(웃음).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정보도 있나요.

아이를 키우거나 출산을 앞둔 가정은 절대 아이 손이 닿는 높이에 전기밥솥을 두면 안 돼요. 특히 다들 쓰는 무릎 높이의 슬라이딩 수납장이요. 제가 직접 아이를 키우기 전까진 증기에 손이 데어 응급실에 온 아이를 보면 ‘밥솥이 증기 배출을 할 땐 부모가 아이를 잘 보고 있어야지’ 싶었어요. 그런데 ‘치익~’ 할 때가 아니라도 손으로 추를 누르면 바로 증기가 나오더라고요. 저희 딸이 돌 무렵에 그렇게 다치고 알았어요. 저와 저희 친정 엄마가 모두 근처에 있어 바로 처치를 했는데도 아이 손에 2도 화상이 남았죠. 아이들은 반사신경이 느려 뜨거움을 느껴도 바로 손을 떼지 못하고 오히려 더 누르기도 하거든요. 밥솥은 무조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두어야 해요.

삼교대, 육아 병행 어려워 퇴사



유튜브를 시작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2020년 5월 둘째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할 당시 유튜브에 첫 영상을 올렸어요. 신규 간호사를 위한 노하우로요. 10년 넘게 일하다가 집에만 있으니 마음이 어딘가 허전했거든요. 그때만 해도 유튜브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취미 생활 역할이 컸어요. 그러다 복직 후 간호사를 아예 그만뒀고 유튜브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간호사를 그만둔 이유가 있나요.

아이 둘을 키우면서 삼교대 근무를 감당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삼교대 근무는 데이, 이브닝, 나이트로 근무시간이 나뉘어 출근이 불규칙해요. 복직할 때 아이 때문에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하는 상근직 발령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상근직은 모든 연령대 모든 연차 간호사에게 선호받는 직무라 희망자 모두가 배치되긴 힘들죠. 그렇게 아이를 키우면서 삼교대 근무를 했는데 아이의 분리불안이 점점 심해졌어요. 아이가 저의 불규칙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더라고요. 어느 날 깨면 엄마가 있는데 어느 날은 없으니까요.

긴 경력을 포기하는 게 아쉬웠을 것 같아요.

막상 사직원을 쓸 때 눈물이 펑펑 났어요. 응급실 일이 재밌어서 응급전문간호사 자격증도 땄거든요. 애정이 컸던 일을 그만두는 게 슬펐죠. 사직한 다음 날도 집에서 하루 종일 울었어요.

‘병원 귀신’이라 불리던 응급실 간호사

대학병원에서 근무할 당시 이구슬 씨의 별명은 ‘병원 귀신’이었다. 쉬는 날에도 사복을 입고 병원을 돌아다녀 주변에서 “왜 그렇게 열심히 사냐” 물을 정도로 일에 진심이었기 때문. 오죽하면 이 씨와 함께 근무했던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그를 “(일에) 미친 X”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열정 하나로 대학원 과정까지 마친 그는 응급전문간호사 자격증을 따 응급실 전임 간호사로 1년간 일하기도 했다. 이 씨는 “그때 의지와 의욕은 기억도 안 난다”며 머쓱해했다.

응급실에 애정이 많았습니다.

응급실 환자는 대부분 빠르게 회복해서 귀가하는데, 그런 환자들을 보는 게 보람찼어요. 물론 저도 응급실 첫 1년 6개월은 정말 힘들었어요. 당시엔 병원에서 웃는 선배들을 보면 정신이 나간 줄 알았죠. ‘이렇게 공포스러운 곳에서 어떻게 웃지’ 싶어서요.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고 웬만한 일은 제가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 되니 일이 재밌어졌어요.

그런데 10년간 고생한 응급실을 떠나 다른 병동으로 옮겼네요.

응급실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가장 큰 이유는 진상 환자 때문이에요. 특히 술에 취한 분들이요. 나이트(야간 근무)로 응급실에서 근무하면 정말 많은 주취자를 만나요. 폭행, 폭언, 성희롱, 성추행은 흔하죠. 한번은 성추행으로 재판까지 간 적도 있어요. 워낙 털털한 성격이라 웬만하면 넘어가는데 그때는 성추행을 당하자마자 몸이 얼어붙더니 ‘이런 게 수치심이구나’ 싶었어요. 고개를 돌려 그 환자를 보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죠. 다행히 그 장면이 CCTV에 찍혀 신고할 수 있었어요.

현장 대다수 의료진은 그런 일을 당해도 대체로 신고하지 않으려 해요. 일이 복잡해지니 그냥 사과받고 끝내자 싶은 거죠. 하지만 이런 사건을 제대로 처벌해야 그런 일이 점점 없어질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재판도 대법원까지 갔어요.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요.

언제나 인력 부족이 가장 큰 문제죠. 우리나라 대학병원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간호사 한 사람이 맡는 환자 수가 너무 많아요. 주말 응급실에서 근무할 때는 모든 결정이 뇌를 거치나 싶을 정도로 바쁘거든요. 들어오는 환자를 쳐내기 바쁘죠. 사고가 나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예요. 간호사 한 사람이 맡는 환자 수가 법으로 정해지고 인력만 적당히 배치된다면 지금보다 간호사의 근무 환경과 서비스 질 모두 나아질 거예요.

현장 경험 덕에 유튜브에서도 간호사의 애로 사항을 자주 다루는군요.

의료계 종사자가 아닌 분들은 간호사가 무슨 업무를 하고 어떤 처우를 받는지 잘 모르잖아요. 간호사가 정말 힘든 직업이라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대중이 알게 되면 일선에서 일하는 간호사에게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싶었죠. 실제로도 영상에 “간호사 선생님들 고생 많이 하시네요” 등의 반응이 많아요. 뭔가 해냈다 싶어 뿌듯하죠.

병원을 나와서도 간호사를 위해 일하고 있네요.

저는 지금도 제가 간호사로 일한다고 생각해요. 꼭 병원에 있어야만 간호사는 아니잖아요. 학교 보건실에 있는 보건교사도 간호사고, 회사 곳곳의 산업체 간호사도 마찬가지죠. 저는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간호사인 거죠.

콘텐츠 곳곳에 간호사 위한 의미 담아

‘구슬언니’ 이구슬 씨가 유튜브에서 진행하는 콘텐츠의 한 장면.

‘구슬언니’ 이구슬 씨가 유튜브에서 진행하는 콘텐츠의 한 장면.

그가 처음 유튜브를 시작할 때만 해도 신규 간호사를 위한 콘텐츠를 제작했다. 주사 놓는 노하우 등 간호사 근무 꿀팁이 그 예인데, 자신이 신규 간호사로 응급실에서 근무할 당시 누구에게 쉽게 물어볼 수 없어 답답했던 것을 모아봤다고. 그렇게 간호학과 학생과 신규 간호사만으로 구독자 3만 명을 모은 그는 이후로 여러 장르의 콘텐츠에 도전했다. 그중에서‘빵’ 터진 건 지난해 4월 시도한 쇼츠(1분 미만의 유튜브 콘텐츠)다. 인터뷰 당일 기준 대부분 쇼츠의 조회 수는 수백만을 웃돌 뿐 아니라 최고 인기 쇼츠의 경우 600만을 훌쩍 넘기기도 했다.

유튜브 쇼츠 조회 수가 엄청납니다.

시작은 심심해서였어요. 간호사 연차별로 박스 뜯는 법을 콩트로 찍었는데 그게 빵 떴죠. 신규 간호사는 칼이나 가위를 찾고, 14년 차 구슬언니(본인)는 박스 옆을 세게 쳐서 뜯는다는 내용이었어요. 긴 영상으로 찍으면 지루해질까 봐 포기했던 주제들을 쇼츠로 찍으니 얼마든지 재밌게 표현할 수 있더라고요.
쇼츠를 계기로 구독자가 많이 늘어났겠어요. 최근 주요 시청자층은요.

쇼츠 콘텐츠가 대박이 나 구독자가 10만 명을 넘으니 성별이나 연령대를 나누기 애매할 정도로 그 구성이 다양해졌어요. 그즈음에 의료계 종사자만을 위한 팁뿐 아니라 일반인을 위한 의료 정보 같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라이브 방송도 시작했거든요. 지금은 초등학생부터 간호사를 자녀로 둔 60~70대 부모님까지도 봐요.

콘텐츠를 기획할 때 고민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가벼운 콘텐츠에도 숨은 의미가 있어요. 예를 들어 간호사 시청자 중에서 본인의 유니폼 사진을 보내 가장 별로인 유니폼을 뽑는 ‘촌스러운 유니폼 경연대회’ 콘텐츠에는 간호사에게 활동성과 전문성을 고려한 옷을 입히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담았죠. 가장 엉망인 간호화를 고르는 ‘간호화 경연대회’ 콘텐츠엔 간호사는 신발이 이렇게나 찢어지고 벌어질 정도로 많이 뛰어다닌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간호사라는 이름을 달고 유튜브를 운영하니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주제를 다루고 싶어서요.

앞으로 어떤 콘텐츠에 도전하고 싶나요.

언젠가 채널 규모가 훨씬 커진다면 짧은 웹드라마를 기획해보고 싶어요. 현재 제 쇼츠 콘텐츠에서 조금 더 발전시켜 여러 간호사가 등장하는 콩트요. 병원에서 겪은 일 중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많거든요. 틈틈이 올바른 의료 정보도 알려주고 싶어요. 예를 들면 ‘119 구급차를 타고 가면 먼저 봐준다’는 식의 오해를 푸는 거요. 콩트 배경은 제가 잘 아는 응급실이 되겠네요.

#구슬언니 #간호사 #유튜버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사진출처 유튜브 ‘옆집간호사구슬언니’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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