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이 5명인 지방의 작은 새마을금고. 1984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이정순 씨의 첫 직장이었다. 그녀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회사 일에 매진했다. 그곳에서 어린이집과 청소년 공부방, 주부 대학 등 부설 운영을 건의했고 주말과 휴일까지 반납해가면서 최선을 다했다. 이러한 노력들은 이내 커다란 보답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새마을금고의 직원은 30명, 자산 규모는 1백 배로 급성장했으며 이정순 씨는 최연소 부장으로 진급했다. 지금의 자리에 안주하고 싶지 않았기에 더 큰 꿈을 위해 야간대학 경영학과를 다니면서 밤낮으로 노력을 보탰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를 지나면서 직속 상사가 수십억원대의 금융 사고를 냈고 이정순 씨의 인생에도 검은 그림자가 찾아왔다. 상사가 낸 금융 사고에 부실 경영까지 더해져 소송이 시작됐고 신문에 새마을금고의 이름이 오르내리자 대규모 인출 사태가 벌어진 것.
“회사에서 17년 일하는 동안 휴가를 8번 정도 갔던 것 같아요. 정말 열심히 일만 했는데 왜 저뿐 아니라 가족들까지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나, 너무 억울하고 분했죠.”
2년간의 소송 끝에 이정순 씨의 책임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직장 생활에 대한 회의감은 지울 수가 없었다. 또 당장의 급한 불이 꺼지자 ‘앞으로는 무얼 해서 먹고 살아야 하나’ 하는 고민이 커져갔다. 그렇게 방황하던 이정순 씨가 포라이프리서치코리아(이하 포라이프) 사업을 만난 건 예전 회사에서 함께 일한 지인이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에 좋은 제품을 소개해 준 것이 계기가 되었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지인이 있었는데, 예전 회사에서 같이 일한 분이 도움이 될 만한 게 있다며 포라이프 제품을 추천했어요. 마침 면역 관련 제품이어서 먹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전달했는데, 다행히도 그 후 건강을 많이 회복했다는 기분 좋은 소식을 들었어요. 자연스럽게 포라이프 제품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죠. 그래서 2016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정순 씨의 사업은 여러 파트너들의 도움에 힘입어 차츰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저는 굉장히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에요. 학교 다닐 때는 발표하려고 손도 못 드는 그런 학생이었어요. 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있잖아요. 사업자로서 어색하고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멘토의 가르침과 늘 믿음으로 지지해주는 파트너들이 함께하기에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회사에서 믿고 기댈 수 있을 만한 토대를 만들어준 덕분이기도 하고요.”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묻자, 이정순 씨는 ‘셀프 리더 양성’이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사업을 오래 이어가기 위해서는 단기간 매출에 목매기보다는 팀원 서로 간의 신뢰를 키워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모든 일을 혼자 할 수는 없잖아요. 올해는 더 적극적인 후원과 파트너십을 통해 오래도록 함께 성장하는 비즈니스 팀으로 키워나가고 싶어요. 몇 해 전 아버지 장례식에 한 분이 문상을 와서는, ‘회사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었는데 그때마다 다독여주신 저희 아버지 덕분에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할 수 있었고, 결혼하고 자식까지 낳아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그 말을 들으면서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삶도 멋진 인생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그 첫 번째는 우리 파트너들과 함께 행복해지는 삶이고요.”
인생의 위기에서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연 이정순 씨. 훌륭한 마인드와 노력, 회사의 뒷받침이 더해져 앞으로 그녀의 미래는 탄탄대로일 듯 하다.
#인생의 위기에서 만난 기회 #셀프 리더 양성 #행복을 위한 첫걸음
기획 김명희 기자 사진 김도균
어느새 새마을금고의 직원은 30명, 자산 규모는 1백 배로 급성장했으며 이정순 씨는 최연소 부장으로 진급했다. 지금의 자리에 안주하고 싶지 않았기에 더 큰 꿈을 위해 야간대학 경영학과를 다니면서 밤낮으로 노력을 보탰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를 지나면서 직속 상사가 수십억원대의 금융 사고를 냈고 이정순 씨의 인생에도 검은 그림자가 찾아왔다. 상사가 낸 금융 사고에 부실 경영까지 더해져 소송이 시작됐고 신문에 새마을금고의 이름이 오르내리자 대규모 인출 사태가 벌어진 것.
“회사에서 17년 일하는 동안 휴가를 8번 정도 갔던 것 같아요. 정말 열심히 일만 했는데 왜 저뿐 아니라 가족들까지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나, 너무 억울하고 분했죠.”
2년간의 소송 끝에 이정순 씨의 책임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직장 생활에 대한 회의감은 지울 수가 없었다. 또 당장의 급한 불이 꺼지자 ‘앞으로는 무얼 해서 먹고 살아야 하나’ 하는 고민이 커져갔다. 그렇게 방황하던 이정순 씨가 포라이프리서치코리아(이하 포라이프) 사업을 만난 건 예전 회사에서 함께 일한 지인이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에 좋은 제품을 소개해 준 것이 계기가 되었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지인이 있었는데, 예전 회사에서 같이 일한 분이 도움이 될 만한 게 있다며 포라이프 제품을 추천했어요. 마침 면역 관련 제품이어서 먹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전달했는데, 다행히도 그 후 건강을 많이 회복했다는 기분 좋은 소식을 들었어요. 자연스럽게 포라이프 제품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죠. 그래서 2016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정순 씨의 사업은 여러 파트너들의 도움에 힘입어 차츰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저는 굉장히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에요. 학교 다닐 때는 발표하려고 손도 못 드는 그런 학생이었어요. 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있잖아요. 사업자로서 어색하고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멘토의 가르침과 늘 믿음으로 지지해주는 파트너들이 함께하기에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회사에서 믿고 기댈 수 있을 만한 토대를 만들어준 덕분이기도 하고요.”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묻자, 이정순 씨는 ‘셀프 리더 양성’이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사업을 오래 이어가기 위해서는 단기간 매출에 목매기보다는 팀원 서로 간의 신뢰를 키워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모든 일을 혼자 할 수는 없잖아요. 올해는 더 적극적인 후원과 파트너십을 통해 오래도록 함께 성장하는 비즈니스 팀으로 키워나가고 싶어요. 몇 해 전 아버지 장례식에 한 분이 문상을 와서는, ‘회사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었는데 그때마다 다독여주신 저희 아버지 덕분에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할 수 있었고, 결혼하고 자식까지 낳아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그 말을 들으면서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삶도 멋진 인생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그 첫 번째는 우리 파트너들과 함께 행복해지는 삶이고요.”
인생의 위기에서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연 이정순 씨. 훌륭한 마인드와 노력, 회사의 뒷받침이 더해져 앞으로 그녀의 미래는 탄탄대로일 듯 하다.
#인생의 위기에서 만난 기회 #셀프 리더 양성 #행복을 위한 첫걸음
기획 김명희 기자 사진 김도균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