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를 초월한 사제지간
두 사람의 인연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늦깎이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우병서 대표는 오랜 시간 레슨을 받아도 도통 실력이 늘지 않아 고민하던 차 지인의 소개로 이상희 교수를 만났다. 이 교수는 나이 많은 제자의 첫인상에 대해 “당당했다”고 회상했다.
“레슨을 받는 학생들은 보통 쭈뼛거리거나 수동적이기 마련인데 우병서 대표님은 첫 인상부터 자신감 넘치고 사람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었어요. 처음에는 무슨 일을 하는 분인지 잘 몰랐는데 후에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며 무역업을 하신다는 말을 듣고 이해가 되더라고요.”
우병서 대표는 산업용 비옷 등을 만들어 일본, 캐나다 등에 수출해 연간 5백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인이다. 이상희 교수는 기업 오너로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가운데 열정적으로 바이올린을 배우는 우병서 대표의 모습이 많은 학생들에게 귀감이 된다고 설명했다.
“우병서 대표님은 나이도 나이지만 여러모로 쉬운 제자는 아니에요. 우선 질문도 많고 무엇 하나 허투루 넘어가는 법이 없죠. 하지만 그런 모습이 저는 싫지 않았어요. 학생들에게 늘 ‘우 사장님 보면서 좀 배우라’는 말을 하곤 하죠.”
이상희 교수는 우병서 대표를 가르치기 시작한 첫해에 함께 무대에 오르자고 제안했다. 세계를 돌며 맨땅에 헤딩하듯 수출 계약을 성사시킨 우 대표도 이때만큼은 머뭇거렸다. 이 교수는 “연습도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중요하다”며 우 대표를 설득했다. 결국 ‘겁도 없이’ 무대에 오르기로 약속한 우병서 대표는 공연 당일 화장실을 들락거리길 수차례, 무대에 오르기 직전에는 연주할 곡명도 잊어버릴 정도로 긴장했다고 한다.
“처음 무대에 섰을 때를 생각하면 하나도 기억이 나는 게 없어요. 얼떨결에 연주를 마치고 내려오니까 아내가 ‘당신 같은 아마추어가 거기가 어디라고 겁도 없이 올라갔냐?’고 핀잔을 준 것만 기억나네요(웃음).”
이상희 교수가 자선 음악회를 시작한 것은 유학시절부터다. 선화예중을 졸업하고 선화예고 재학 중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그녀는 뤄이 말메종 시 국립음악원 및 파리 국립고등음악원, 블론류 시 국립음악원 연주자 과정을 졸업했다. 그녀는 고등음악원을 졸업하면서 유학생들과 ‘유니송’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자선 음악회를 열었다. 1997년 입양인 단체를 돕기 위해 시작한 유니송 음악회는 해가 갈수록 규모가 커졌다. 2004년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귀국을 앞둔 그녀는 한국에 가서도 이런 음악회를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상희 교수의 바이올린 독주 실황 음반. 이 음반의 수익금 전액은 IVI 후원에 쓰인다.
‘IVI와 함께하는 이상희 바이올린 독주회’는 공연장 대관료 등 실제 사용된 경비를 제외한 모든 수익금을 IVI에 기부한다. 지금까지 누적 기부액은 약 8천만원에 달한다. 우병서 대표는 “행사 포스터를 비롯한 일체의 비용을 이상희 교수가 부담하고 있으며 공연이 끝난 후 3백 명이 넘는 연주자와 스태프 뒤풀이 비용 역시 이상희 교수 어머니가 후원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지난 10년간 옆에서 공연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이 교수님이 하는 일에 작은 도움을 드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10년 넘게 이어온 따뜻한 신뢰
매년 늦가을에 열리는 음악회를 위해 이상희 교수는 곡 선정은 물론 다양한 연령과 실력을 지닌 제자들에 맞춰 편곡자를 섭외하고 맞춤형 악보를 만들어 개별 연습을 지도한다. 햇수로 10년이란 세월이 지나다보니 어린이였던 제자가 자라 함께 공연도 하고 포스터 디자인 작업에 참여하는 등 재능을 기부하는 형태도 다양해졌다.
11월 공연을 앞두고 요즘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상희 교수와 우병서 대표는 “보다 많은 사람이 클래식 공연을 관람하는 문화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현재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싸이먼 본사 한편에 약 1백 석 규모의 음악 홀인 ‘싸이먼뮤직홀’을 연 우병서 대표는 특히 “뮤지컬이나 콘서트와 달리 클래식 공연장은 사람이 많이 찾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경제적으로는 많이 성장했지만 문화적으로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아서 안타까워하던 차에 작은 규모의 공연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 사무실을 옮기면서 임대하려던 공간을 음악 홀로 만들었죠. 앞으로 이곳에서 제2의 이상희 교수님 같은 분이 또 나와서 어렵고 힘든 사람을 도와주는 기회가 많이 생기면 좋겠네요.”
아마추어 음악인인 우병서 대표의 말에는 스승이자 동료인 이상희 교수에 대한 따뜻한 신뢰가 가득 담겨 있었다. 나이를 초월해 한번 맺어진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통해 서로를 돕고 어려운 사람을 위로해주는 두 사람의 마음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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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조영철 기자
■ 디자인 · 유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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