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그룹은 2013년 7월 삼성물산의 삼성엔지니어링 지분 매수를 시작으로 꾸준히 계열사 인수 합병, 매각, 상장 등을 진행하며 그룹 지배구조를 개편해왔는데,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후에는 그 속도가 한층 빨라졌다. 지난해 11월에는 삼성 SDS 상장, 삼성테크윈과 삼성종합화학 매각이 이뤄졌다. 12월에는 제일모직을 상장하고, 올 5월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결정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7월 17일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합병을 승인받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6월 4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경영 참가를 목적으로 삼성물산 지분 7.12%를 사들이며 합병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이번 합병을 성사시켜야 한다. 그는 그룹 내 핵심 계열사인 삼성생명(0.1%)과 삼성전자(0.57%) 보유 지분이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삼성물산-제일모직 통합법인의 지분은 16.5%를 갖게 된다. 이 통합법인은 삼성생명 19.3%, 삼성전자 4.1%의 지분을 갖게 되고 삼성생명도 삼성전자 지분을 7.2% 갖고 있다. 쉽게 말해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통합법인을 통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높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경영권 승계 막바지에 등장한 복병, 엘리엇과 메르스
현재 엘리엇은 1 대 0.35로 산정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은 삼성물산의 지분 가치를 과소평가한 것으로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손해라고 주장하며, 법원에 7월로 예정된 임시주총 소집·결의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상태. 또한 엘리엇의 경영 참여 선언 일주일 후인 6월 11일, 삼성물산이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 5.76%를 백기사인 KCC에 매각한 것도 문제 삼아 주식처분금지 가처분 신청도 제기했다. 가처분 소송에서 삼성이 이겨 임시주총이 열린다고 해도 삼성 측에 우호적인 지분은 20% 안팎으로, 엘리엇을 비롯한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은 상황이다.
삼성서울병원이 허술한 환자 관리와 방역 체계로 메르스 확산의 진원지가 된 것도 이 부회장이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그는 첫 환자가 발생한 지 한 달여 만인 6월 18일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된 민관합동메르스대책본부를 찾아 “메르스 사태를 끝까지 책임지고 빨리 해결하자”고 말하며 수습에 나섰다. 삼성서울병원이 6월 14일부터 부분 폐쇄에 돌입한 것도 그의 의중이 작용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이 밖에도 삼성전자는 샤오미 등 중국 가전업체의 추격, 전자 반도체 이외 분야에서의 부진 등 여러 부분에서 위기에 처해 있다. 하지만 리더에게 위기는 곧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다. 이 부회장이 시험대를 무사히 통과해 삼성그룹 수장으로서의 능력을 검증받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디자인 · 최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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