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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감초 연기자

‘인생은 아름다워’ 윤다훈 ‘귀여운 밉상’ 변신 뒷얘기

글 윤고은 사진 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10. 08. 18

요즘 주말 안방극장에서 매회 실망시키지 않고 웃음을 책임져주는 인물이 있다.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의 병걸이 그다. 병걸은 뻔뻔하고 유들유들한 데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솔직하기까지 한 영락없는 ‘밉상’이다. 병걸에 펄떡펄떡 뛰는 생명력을 불어넣은 배우 윤다훈을 만났다.

‘인생은 아름다워’ 윤다훈 ‘귀여운 밉상’ 변신 뒷얘기


“병걸이는 착하고 순수한 ‘아이’입니다(웃음). 김수현 작가님이 ‘다훈아 이번에는 악역 한번 해보는 게 어떠니?’라고 하셨는데, 병걸이가 악역이라는 거죠. 남의 상처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어떤 순간에든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사는 밉상이잖아요. 또 늘상 반찬투정을 하는 등 투덜대고요. 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죠. 왜냐? 순수하고 솔직하잖아요. 하하. 실제로는 다들 남의 눈치 보고 살기 바쁜데 병걸이 같은 사람 하나 있어도 재미있잖아요?”
‘인생은 아름다워’의 촬영이 진행 중인 경기도 고양시 탄현 SBS 제작센터에서 만난 윤다훈(46)은 이렇게 말하며 병걸처럼 장난스럽게 씩 웃었다. 이 드라마는 격주로 제주도와 탄현제작센터를 오가며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실제로는 동성애자 충분히 이해
병걸은 마흔두 살의 대책 없는 남자다. 그 나이가 되도록 변변한 직업도 없이 펜션을 경영하는 큰형 집에 얹혀살면서 집안일을 돕고 있다. 남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진상’이지만, 어린아이 같은 구석이 있어 유치원 다니는 조카손녀와도 잘 놀고 꼬부랑 노모에게는 여전히 가슴팍을 파고들며 어리광을 부리는 막내아들이다. 그럼에도 눈은 높아서 선을 보러 나가면 까다롭게 굴며 ‘깽판’치고 오기 일쑤다. 이상형에 대해서는 “일단은 늘씬하고 키가 커야 하고 예뻐야 하며 초혼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병걸이는 매사 당당해요. 장가도 안 간 거지 못 간 게 아니라고 생각하죠(웃음). 또 절대 형님 집에 얹혀사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형이 다른 일꾼을 쓰느니 동생인 날 쓰는 게 나아서 붙잡고 있는 것이라는 나름의 당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자기 혼자 착각이긴 하지만 병걸이 형은 펜션의 회장, 자기는 사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 때문이죠(웃음). ‘짠돌이’라 알고 보면 돈도 차곡차곡 모아뒀어요. 집 밖에 나가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하잖아요. 나가면 돈을 쓰니까요.”
양식 있고 선량한 인물로 가득한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병걸은 유일한 돌연변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웃음 코드를 책임지던 그는 그러나 조카 태섭(송창의)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진짜 ‘밉상’의 면모를 드러내며 극에 긴장감도 동시에 불어넣었다. 커밍아웃한 태섭에게 “더러운 자식”이라고 막말을 퍼붓는가 하면, 태섭의 애인이 자신이 사는 집을 드나들던 경수(이상우)라는 사실을 알고는 함께 냉면을 먹던 자리에서 “속이 메슥거린다”며 빈정거리기도 했다.
“저도 실제로는 20년 전에는 동성애자들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싫어했죠. 그런데 데뷔 후 여러 사람과 어울리면서 실제 동성애자인 분들과도 친구가 됐어요. 함께 술 마시고 얘기하다 보니 소외된 계층의 어려움을 알게 됐고, 어느새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주게 됐습니다. 극 중 제가 구박하는 송창의씨에게 실제로는 동성애자들의 몸짓, 손짓에 대한 조언을 많이 해줬습니다.”
그러나 그는 동성애자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혐오하는 병걸의 입장도 충분히 공감하며 연기한다.
“병걸이는 그냥 단순한 거예요. 조물주가 남자, 여자를 만들었던 의도대로, 순리대로 세상이 돌아가길 바라는데 하필 자신이 아끼던 조카가 자신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하니 화가 나고 이해할 수 없다는 거죠.”

수차례 ‘꽈당 신’에 넘어지는 노하우 터득해
‘히트 제조기’ 김수현 작가의 작품이지만 ‘인생은 아름다워’는 시청률이 20% 정도에 머문다. 김 작가의 전작인 ‘엄마가 뿔났다’가 40%를 돌파했던 것과 비교하면 아쉬움을 주는 성적이다. ‘목욕탕집 남자들’ ‘사랑하니까’ ‘내사랑 누굴까’ 등에 출연하며 김수현 작가와 동고동락해온 윤다훈은 “동성애 소재만 없었어도 시청률이 30%는 거뜬히 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주말극에서 동성애를 다룬다는 것은 김수현 작가가 아니면 할 수 없고, 그러면서도 시청률을 이 정도 유지한다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동성애는 우리 드라마의 한 부분일 뿐인데 이로 인해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드라마 자체를 외면하면 어떡하나 고민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작가님이 이성 간의 사랑과 똑같이 아름답게 묘사하니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편견이 많이 없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동성애라는 엄청난 코드를 건드렸지만 사실 이 드라마는 ‘막장 드라마’가 판을 치는 요즘 TV에서 보기 드물게 품격을 갖추고 있다. 인물들은 기본적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자세를 갖고 있고, 용서의 미덕도 잘 알고 있다.
“김수현 작가님은 많은 사람들이 보는 드라마가 뭔가 교훈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이 드라마에도 부모에 대한 효와 가족의 소중함, 사랑의 애틋함 등이 다 녹아 있잖아요. 덕분에 연기자들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요즘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볼 수 있는 드라마가 얼마나 됩니까. 이 드라마를 보며 많은 분들이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느끼게 됐을 것이라 생각해요.”
84년 MBC 특채 탤런트로 데뷔해 연기생활 26년째인 그는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는 언제나 어렵지만 그만큼 연기적인 면에서 성장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김용림·김해숙·김영철 선배님 모두 쟁쟁한 분들이지만 우리 드라마 하면서는 늘 어렵다고 하세요. 그러니 저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그만큼 연구와 공부를 많이 하니까 연기적인 면에서 성장하게 됩니다. 대사를 하도 외우니 어떤 때는 딴생각을 하면서도 입에서는 저절로 그 긴 대사가 줄줄 나오기도 해요. 작가님은 오히려 대사에 엄격하지 않지만 배우들이 토씨 하나 안 틀리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단어 하나 틀리면 대사의 맛이 전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김 작가님의 대사는 길지만 외우기 편하게, 머리에 잘 들어오게 구성돼 있어서 실타래처럼 하나가 풀리면 쫙 풀리는 게 있습니다.”
매회 펼쳐지는 병걸의 코믹한 연기와 대사는 다분히 윤다훈의 애드리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역시 철저히 김 작가의 대본에서 나온 것이다.
“많은 분들이 제가 애드리브를 하는 것이라 생각하시는데 김수현 작가님 작품에서 애드리브는 없어요. 작가님이 대본 자체를 그렇게 적어주세요. ‘병걸이가 중얼중얼한다’는 식으로요.”
‘인생은 아름다워’는 매회 마지막에 누군가가 넘어지는 장면으로 마무리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1회에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병걸은 이후에도 수차례 넘어졌다.
“배우들 중 제가 제일 먼저 넘어지는 연기를 하는 것이어서 그땐 노하우가 없었어요. 그래서 손바닥과 무릎이 까지고 온몸에 피멍이 들었어요. 그 후에는 이런저런 노하우와 안전장치들이 생겼지만 여전히 힘들긴 하죠. 하지만 그런 고생을 하면 엔딩 신을 자신이 가지는 거니까 배우들도 마다하지 않아요(웃음). 지금껏 엔딩 신 최다 출연자가 병걸일 겁니다. 워낙 어수룩 하잖아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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