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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명품 배우

김.갑.수… 브라운관 밖 실제 모습

‘신데렐라 언니’ 속 깊은 아버지

글 문다영 사진 조영철 기자 || ■ 장소협찬 도쿠진 요시오카전 전시관(뮤지엄비욘드뮤지엄)

2010. 06. 16

악역 이미지가 강했던 배우 김갑수가 ‘신데렐라 언니’를 통해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드라마에선 하차했지만 속정 깊은 아버지이자 남편의 모습을 보여준 그는 다양한 연령대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실제는 그렇지 않다”며 쑥스럽게 웃는 그가 가장으로, 배우로서 살아가는 일상을 들어봤다.

보통 중년 배우의 인기와는 다르다. 서울 강남 한 카페에서 배우 김갑수(53)를 만났을 때 그를 보고 환호한 건 중년층이 아닌 20~30대 청년들이었다. 강한 카리스마로 좌중을 얼어붙게 만들던 그는 어느새 친숙하고도 따뜻한 아버지 상으로 젊은 팬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얼마 전 죽음으로 하차한 KBS 수목드라마 ‘신데렐라 언니’ 덕분이다. 김갑수가 맡았던 ‘구대성’은 전통주를 빚는 장인으로 아내와 사별 후 일에만 몰두하다 뒤늦게 재혼해 아내와 의붓딸에게 깊은 사랑을 주는 캐릭터다. 무뚝뚝하고 요령 없지만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역할을 잘 소화해낸 그에게 시청자는 “강한 역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절절한 부정을 표현하는 연기력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김갑수의 연기를 보고 우리 시대 아버지들을 떠올렸다”는 등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김갑수 역시 1회 대본을 받고부터 ‘구대성’이란 인물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심을 거듭했다고.

“중년의 멜로, 선한 아버지 역할 통해 연기자로서 발전한 느낌”

김.갑.수… 브라운관 밖 실제 모습


“‘아버지’를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 힘들었고, 어찌 보면 어수룩한 인물이라 자칫 잘못 연기했다간 사람들에게 바보라는 소릴 듣겠다는 우려도 있었죠. 그래서 일에 대해서는 철저한 장인정신을 지니고 있지만 일 외의 부분에 대해선 숙맥 같은 남자로 표현하려고 애를 썼어요. 다행히 그 방법이 ‘구대성’을 잘 표현해준 것 같아요. 특히 극중 아내 ‘송강숙’의 외도를 알고 난 뒤에도 묵인하잖아요. 초반 연기할 때는 아내의 행적을 알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하다가 대본을 보고서야 알았는데, ‘내 연기가 틀리지 않았구나’ 생각했죠. 만약 일상적이고 사회생활에 익숙한 남자였다면 강숙이 대성의 사후에 일기장을 발견했을 때 큰 효과가 없었을 것 같아요.”
‘그 사람이 가끔 옛 남자를 만나고 돌아와 내게 웃을 때, 분노와 절망과 슬픔이 차례로 왔다가 간다. 왜 그러느냐고 그 사람에게 묻고 싶지만 못난 남자는 겁이 나서 입도 달싹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말하는 그 순간 내가 그 여자와 함께 살아왔던 지난 8년의 세월이 거짓말처럼 사라질 것을 안다.’
극중 아내를 울리고, 시청자에게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는 속 깊은 남편, 구대성의 일기장 속 한 대목이다. 김갑수의 말처럼 만약 그가 예전처럼 강한 카리스마로 그 역할을 소화했다면 감동의 깊이는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는 또한 이번 작품에서 풋풋한 중년의 멜로를 잘 그려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극 초반 강숙과 자전거를 타며 사랑을 키우는 장면은 상당한 공을 들였다고. 한 장면을 찍기 위해 남해까지 6시간을 달려가 촬영을 했고, 일 외엔 서툰 남자의 설렘과 긴장을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어설프게 자전거를 타는 연기로 섬세함을 더했다.
“나이가 드니 멜로에 임하는 마음도 달라졌어요. 96년 강수연씨와 ‘지독한 사랑’이란 영화를 찍었는데 그땐 불륜이기도 했지만 젊은 남자의 패기와 집요함으로 점철된 사랑을 연기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어요. 젊을 적의 멜로가 내가 이만큼 줬으니 너도 이만큼 달라는 사랑이었다면, ‘신데렐라 언니’에서의 멜로는 마음이 넓어진 사랑, 포용을 보여준달까요. 연기자로서도 그래요. 예전엔 전투적이고 강하고 뾰족한 연기를 했는데 나이가 드니 여유롭고 부드러워진 것 같아요.”
드라마 ‘타짜’ ‘혼’ ‘거상 김만덕’ 등 다수의 작품에서 주로 악역을 맡아왔던 그는 “이번처럼 선한 역이 더 마음 편히 즐겁게 연기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누구나 내면에 선악이 공존하지만 악은 아무래도 피곤하다고. 하지만 연기의 맛에 있어서는 악역이 신명 난다.
“‘타짜’ ‘개와 늑대의 시간’에서 맡았던 역들이 기억에 남아요. 풍부하게 캐릭터의 면면을 잘 살릴 수 있었거든요. 반대로 ‘거상 김만덕’은 비중이 작아서 제가 맡은 악역을 맛깔나게, 그럴듯하게 표현할 기회가 적어 아쉬웠어요. 조연일지라도 제가 맡은 역을 잘 살리지 못하면 주인공들이 약해지는 결과가 초래되기 때문에 한 작품 속 인물을 완성시키는가, 못 시키는가에 대한 강박증이 심해요. 그런 집중력 때문에 악역이 힘들죠.”

“어려운 시절 돈 얘기 한번 꺼낸 적 없는 아내, 배우 생활에 큰 힘 됐다”



김.갑.수… 브라운관 밖 실제 모습


‘신데렐라 언니’는 연기자로서의 김갑수를 한 걸음 더 성숙하게 했을 뿐 아니라 실제 가장으로서도 깨달음을 얻게 한 작품이었다고 한다. 드라마를 보고 그의 외동딸은 “우리 아빤 저러지 않는데”라고 말했다는데 그 역시 “‘구대성’과는 간극이 큰 아빠”라고 고백한다.
“딸과 대화를 자주 하긴 하는데, 드라마를 촬영하며 기억을 더듬어보니 딸과 정말 마음을 터놓고 진지하게 대화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드라마를 통해서 생각을 많이 바꿨어요. 자식과의 일상적 대화가 아닌 ‘속을 터놓을 수 있는 대화, 같이 생각하고 공유할 수 있는 일들을 더 많이 해야겠구나’ 다짐했죠.”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는 여느 누구 못지않게 아내와 딸을 사랑하는 가장이다. 슬하에 외동딸을 둔 것 역시 마찬가지. 김갑수는 “두 가지 이유에서 한 자녀만 낳았다”며 “연극 배우였기에 경제적인 이유로 아이를 많이 낳아 키울 자신이 없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아내가 임신한 모습이 굉장히 고통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자의 행복 중 하나가 임신과 출산이라지만 그가 보기엔 너무도 안쓰러웠고, 아내가 두 번 고생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신데렐라 언니’에서 외동딸 ‘효선’에 이어 뒤늦게 늦둥이를 낳은 ‘구대성’과 달리 둘째 계획이 전혀 없다. 다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이에 대한 애착이 커져 얼마 전부터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너무 귀엽다”고 웃어 보인다.
연극무대에서 연기자로서의 첫발을 디딘 탓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을 겪어왔다는 그. 그의 삶에 아내가 가장 고마운 존재다. 그도 그럴 것이 단 한 번도 돈 얘기를 꺼낸 적이 없기 때문.

김.갑.수… 브라운관 밖 실제 모습


“어릴 때부터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고, 연극배우를 하다 보니 많이 힘들었어요. 그런데 아내는 지금까지도 저에게 돈에 대해 얘기를 한 적이 없어요. 금전적인 부분은 자칫 제가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 사항인데, 혹여 돈 문제가 생겨도 늘 제게 말하지 않고 알아서 해결했어요. 저의 보답은 ‘아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저도 제가 하고 싶은 연기를 아내 덕에 마음껏 하잖아요(웃음). 그래서 좀처럼 싸우지도 않아요. 요즘도 모든 걸 아내에게 맡기고 용돈을 타 쓰고 있죠. 제가 아내에게 의지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아내는 ‘신데렐라 언니’에서의 송강숙처럼 애교가 많거나 나긋나긋하진 않지만 우유부단한 저와 달리 결단이 빠르고 이성적이에요. 그래서 어떤 문제가 있을 때면 사소한 것이라도 아내와 상의를 많이 해요. 아, 딸이 성인이 되고 나서는 딸과도 상의를 많이 하죠.”
김갑수는 스무 살 어린 나이에 연극배우로 데뷔했고, 우연히 TV 단막극에 출연한 이래 1년 평균 5편 이상의 작품에 출연했다. 근 20년을 쉼없이 활동해온 그의 필모그래피는 빽빽하다. 뿐만 아니라 ‘김갑수의 연기교실’을 운영하며 후배들을 양성하고, 극단 ‘배우세상’의 대표로서 후배들에게 연기를 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는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여기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저는 무대 배우 출신이잖아요. 제가 연극을 통해 배우고, 성장했고, 얻은 게 많기 때문에 돌려줘야 한다, 능력이 되는 한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늘 있었어요. 힘들고 어렵고 지겨운 시간들을 견디며 무대를 거치지 않았어도 제가 연기자가 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후배들도 그렇게 성장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고 싶었죠. 사실 ‘번 돈으로 편히 혼자 쓰고 재밌게 살 수 있는데 왜 돈도 되지 않는 연극을 하느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제가 하는 일은 명예나 부를 좇기보다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는 재목감들을 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심과 즐거움에서 시작된 거거든요. 즐겁고 행복해요.”

“좋은 연기자 되는 게 바람, 교양 프로 MC도 하고 싶어”

김.갑.수… 브라운관 밖 실제 모습


이런 마인드 때문인지 극단을 이끄는 대표임에도 그는 단원들과 별다를 게 없다. 종종 인터넷에 ‘오늘 김갑수씨가 거리에서 연극 홍보를 하시는 걸 봤습니다’라는 글이 올라올 정도로 단원들과 스스럼없이 포스터를 붙이고 전단지를 배부한다. 이에 대해 그는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나는 TV 배우지만 연극무대로 돌아오면 철저히 연극인이다. 단 한 번도 ‘알려진 사람인데’라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다”고 경쾌하게 답했다.
젊은 후배 연극인들과의 허물없는 교감, 유명세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행보, 거기에 더해 딱 붙는 청바지와 경쾌한 컬러의 운동화. TV밖의 김갑수는 몸도 마음도 훨씬 젊어 보인다.
“저 자신이 선배 연기자들에겐 깍듯하지만 어린 친구들에게 그걸 바라진 않아요. 저를 어렵게만 대하는 게 싫고, 아저씨란 단어도 싫거든요. 6년째 타고 있는 바이크도 극단 후배를 통해 재미를 알게 됐어요. 처음엔 무섭기만 했는데 후배의 스쿠터에 올라탄 순간 다른 세상을 접했달까, 순식간에 매료됐죠. 그래서 의상도 더 젊게 입는 건지 몰라요. 보통 편안하게 비니를 쓰거나 청바지 등을 입고 가면 선배 연기자들이 ‘좀 점잖게 입고 다녀라. 불편하지 않냐’고 해요. 그런데 저는 몸에 꼭 맞는 청바지가 좋은걸요. 나이가 더 들면 주책으로 보일 수는 있겠지만 아마 60~70세가 돼도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제 딸은 지속적으로 ‘아빠의 패션 감각이 많이 떨어졌다’고 잔소리를 하지만요(웃음).”
그는 요즘, 영화 ‘혈투’ 촬영에 한창이다. 봄 햇살처럼 따뜻하고 강직했던 ‘구대성’으로의 나들이를 마치고 다시 카리스마 철철 넘치는 역할을 맡았다. 바쁜 일정으로 인해 그토록 좋아하는 바이크를 못 타 간혹 지하 주차장에서 시동만 거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는 그는 “중요한 역이니 맡아달라는 요청이 왔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늘 ‘중요한 역할이다’라며 맡아달라고 하니 배우로서는 행복한 일이다. 지금도 좋지만, 나중에도 ‘좋은 연기자’라는 말을 듣는 게 가장 큰 바람”이라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신데렐라 언니’로 새로운 김갑수의 모습을 시청자에게 각인시킨 그는 향후 기회가 된다면 시트콤을 통한 코믹한 연기나 교양 프로그램 MC를 해보고 싶다는 바람도 밝혔다. 50대 중반의 나이, 그는 계속 변화하고 진화하는 연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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