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아름다운 인연

주한 카타르 대사 부인 나오미 알미다디의 남다른 한국 사랑

글·정혜연 기자 /사진·지호영 기자

2008. 12. 22

주한 카타르 대사 부인 나오미 알미다디는 외교가에서 소문난 팔방미인이다. 일본 출신인 그는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다가 아랍 출신 외교관 남편과 결혼, 전 세계를 누비며 음악작업을 해왔다. 그런 그가 최근 한국에서 받은 감흥을 피아노 연주곡으로 만들어 발표해 화제다.

주한 카타르 대사 부인 나오미 알미다디의 남다른 한국 사랑

11월 초 해질 녘,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태원의 주한 카타르 대사관저에서 만난 카타르 대사 부인 나오미 알미다디(48). 작은 체구에 까맣고 맑은 눈동자가 인상적인 그는 얼마 전 자신이 쓴 피아노 연주곡을 모아 앨범 ‘Dear Beautiful Moment’를 발매했다. 여기에는 지난 4년간 그가 한국에서 느낀 감동과 애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앨범 재킷을 가리키며 “굽이치는 한강에서 받은 느낌을 표현한 미술작품”이라고 설명했다.
“2005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넓고 깊은 한강을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어요. 뉴욕의 허드슨 강, 런던의 템스 강과는 또 다른 감흥을 주더군요. 한국을 움직이는 강한 에너지와 끝없이 이어지는 영원한 생명의 흐름이 느껴졌어요.”
일본 태생인 그는 테너이자 화가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면서 컸다고 한다. 연습하느라 정신없는 부모에게 ‘배고프다’며 떼를 쓰던 꼬마는 자라면서 자연히 음악에 푹 빠지게 됐고 부모와 함께 공연을 열 정도로 재능도 인정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서른이 되던 해, 운명적으로 인생의 반려자를 만났다. 도쿄에서 열린 아버지 갤러리의 오프닝 파티에서 당시 주일 카타르 대사 아흐메드 세이프 알미다디(54)를 만난 것. 첫눈에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이듬해 결혼식을 올렸다.
“남편을 처음 봤을 때 머릿속에서 폭죽이 ‘펑’ 하고 터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그러고는 은발의 남편이 정원 한가운데 앉아 있고 그 주위로 네 명의 아이가 뛰노는 모습이 연상되더군요. 그때까지 결혼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그를 보자마자 그런 그림이 떠올랐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신기해요(웃음).”

서울을 가로질러 유유히 흐르는 한강, 전통과자 율란 등을 소재로 곡 만들어
그가 한국에서 앨범을 낸 건 우연이 아니었다. 일본 쇼비 음악원에서 작곡을 전공한 뒤 영국에서 7년간 고전음악을 배운 그는 남편을 따라 뉴욕, 런던에 머물 때도 그곳에서 느낀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하려 애썼다고 한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음악이 잘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한국에서는 비교적 쉽게 곡을 쓸 수 있었다고.
“‘엘레지(애가)’라는 곡은 애초 런던에서 작곡했지만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죠. 그런데 한국에서 해금과 대금 연주를 듣고 난 뒤 곡을 새로 썼어요. 해금 연주를 듣는 순간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이 떠오르더라고요(웃음).”
앨범에는 한국인들에게조차 생소한 전통과자 ‘율란’을 소재로 한 곡도 있다. 개성지방의 전통과자인 율란은 밤을 찐 다음 으깨 꿀과 섞은 뒤 다시 밤 형태로 빚고, 계핏가루를 묻힌 것. 그는 우연히 이 율란을 맛 본 뒤 악상이 떠올랐다고 한다.
“김상엽 전 국무총리 댁에 갔다가 율란을 처음 먹었는데 무척 맛있어서 그 부인에게 만드는 법을 배웠죠. 율란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며 ‘여성의 삶’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원석과 같은 작은 아기(밤)가 아직 다듬어지기 전인 소녀(반죽)가 된 후 예쁘게 자란 처녀(과자)가 되기까지의 그림이 떠올랐죠. 이곡은 오랜 정성을 통해 깊은 맛을 내는 율란이 탄생하듯 자신의 삶을 잘 가꾸기 위해 노력하는 여성들을 응원하는 곡이에요.”

주한 카타르 대사 부인 나오미 알미다디의 남다른 한국 사랑

음악 활동 지원하면서도 엄마로서의 본분 잊지 말라고 당부하는 남편
그에게 남편을 위해 쓴 곡도 있냐고 묻자 “‘오버추어’가 바로 그렇다”고 답했다. 오버추어는 오페라가 시작되기 전 첫 부분에 연주되는 곡으로 오페라의 도입곡을 통칭한다.
“이 곡을 앨범의 맨 마지막에 넣었어요. 앨범을 듣는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고 마지막으로 ‘오버추어’를 들으며 새로운 음악을 기대하라는 의미로 만들었죠. 한편으로는 남편에게 바치는 노래이기도 해요. 남편과 전 결혼생활을 하면서 굉장히 강한 유대감을 갖게 됐고 동시에 ‘인간은 독립적인 존재’라는 생각도 하게 됐죠. 제가 음악으로 제 삶을 살아가듯 남편도 훌륭하게 살아가길 바란다는 뜻에서 만들었어요.”
문학·음악·미술 등에 안목이 높은 남편은 그의 음악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준다고 한다. 런던에 근무할 때는 시간을 내 함께 성악을 배우기도 했다고.
“남편이 응원해준 덕분에 앨범을 내고, 그림도 그려 전시했죠. 하지만 남편은 제게 늘 ‘엄마로서의 본분을 잊지 말라’고 당부해요. 아이들을 키우며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을 책임감 있게 해주길 바라죠(웃음).”
그는 열일곱 살인 첫째 딸과 열여섯, 열셋인 아들, 열한 살인 막내딸을 둔 엄마. 네 아이를 키우며 틈틈이 음악과 미술 활동을 하느라 어려움도 많았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음악가로서의 그를 인정하고 활동에도 관심을 가져준다고 한다.
“아이들도 예술에 관심이 많아요. 하지만 절대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진 않아요. 그랬다가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혼낼 것 같거든요(웃음). 다만 아이가 먼저 배우고 싶다고 하면 어떤 일이든 기회를 주는 편이죠.”
주한 카타르 대사 부인 나오미 알미다디의 남다른 한국 사랑

어릴 적 자신도 성악가 아버지, 피아니스트 어머니 사이에서 자연스레 음악을 공부하게 됐던 터라 아이들도 그렇게 되길 바란다고. 그는 어릴 적 추억이 떠오르는지 웃으며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제가 유치원에 다닐 무렵 아버지는 고음을 내기 위해 하루에도 서너 시간씩 연습을 하곤 했고 어머니도 곁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며 연습을 도왔죠. 하루는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밥을 달라고 떼를 썼지만 ‘연습이 끝나고 줄게’라고 말씀하시고는 다시 연습에만 몰두하셨어요. 하도 서러워 그랜드 피아노 밑에 들어가 울었는데 그때 그곳의 울림이 기분을 편안하게 해줬던 게 기억나요. 그 울림이 좋아 피아노를 치게 됐죠. 아이들도 분명 그런 울림을 경험하게 될 거라 생각해요.”

내년에 모스크바로 떠나지만 한국과의 인연 계속 이어가고 싶어
그에게 피아노 연주를 청하자 난처해하며 “피아노는 모스크바로 보냈다”고 답했다. 내년에 남편이 러시아로 근무지를 옮기게 돼 큰 짐은 모두 모스크바 대사관저로 보냈다는 것. 그는 연주를 들려주지 못하는 것도, 한국을 떠나는 것도 모두 아쉬워했다.
“4년간 아이들도, 저도 정이 많이 들었는데 떠나려니 발걸음이 무거워요. 하지만 한국의 음악·춤·문화유산 등 모두 제 가슴속에 담겨 있어요.”
한국에서의 추억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아달라고 하자 그는 “내가 직접 편곡한 ‘한오백년’을 들은 한국인들이 눈물을 흘린 일”이라고 답했다.
“처음 ‘한오백년’을 들었을 때 가슴 저미는 감동을 느껴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러다 새로운 레퍼토리의 피아노 연주곡으로 만들어봤는데 많은 사람이 ‘편안하다’며 좋아했어요. 한국인들이 소위 말하는 ‘한(恨)’과 ‘정(情)’을 제대로 이해한 것 같아 뿌듯했죠.”
‘한’과 ‘정’에 대해 정확히 설명하는 그는 이미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은 듯했다. 어릴 적부터 춤추기를 즐겼다는 그는 ‘살풀이’를 보고 반해 호남 살풀이 이수자 양성희 선생에게 3년 동안 춤을 배웠다고 한다.
“상체는 물 흐르듯 부드럽게 움직이면서 하체는 바위처럼 단단하게 움직임을 절제하며 추는 살풀이를 보고 강한 인상을 받았죠. 한국의 현대무용도 점점 수준이 높아지고 있지만 전 전통무용을 더 좋아해요. 한국인의 정신이 깊숙이 밴 살풀이·민요 등을 배우고 떠나게 돼 다행이에요.”
그는 러시아로 떠난 후에도 한국을 오가며 음악활동을 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음반도 내고 기회가 되면 좋은 공연에도 참여하고 싶다는 것.
“한국에서 배우고 느낀 것들은 어딜 가든 잊지 못할 거예요. 서양의 오랜 역사와 전통이 숨쉬고 있는 모스크바에서 한국의 느낌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도 재미있는 작업이 될 것 같아 기대돼요(웃음).”

나오미씨는 결혼 전 음악가로 활동하던 때를 추억하며 결혼 전 이름 ‘나오미 마키’로 음반을 냈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