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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 여자의 꿈

예술의전당 대관 신청 두 번 탈락 인순이 심경 고백

글·김수정 기자 / 사진·장승윤 기자, 동아일보 출판사진팀

2008. 12. 19

가난과 혼혈에 대한 편견으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인순이가 정상에 설 수 있었던 건 남다른 도전정신과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어 서울 예술의전당 대관 신청에서 또다시 탈락의 쓴맛을 본 그가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이유를 털어놓았다.

예술의전당 대관 신청 두 번 탈락 인순이 심경 고백

지난 11월 초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30년간 뛰어난 가창력과 폭발적인 무대매너로 관중을 사로잡았던 인순이(51)가 ‘대중가수를 외면하는 전문 공연장의 현실’이라는 주제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의 곁에는 대한가수협회장 송대관을 비롯해 정훈희 최백호 등 중견가수도 함께했다.
“내년에 열 콘서트를 위해 올해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내 오페라극장 대관 신청을 했는데, 최근 공연을 불허한다는 통보를 받았어요.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서고 싶어하는 무대이기에 기대를 많이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 속상해요.”
공연 불허 통보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해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 ‘레전드’를 앞두고 지난해에도 예술의전당 대관 신청을 했던 것. 그가 서고 싶은 무대는 예술의전당에서도 클래식 공연을 위해 설계된 오페라극장. 지금까지 예술의전당에서는 이문세·한영애·해바라기 등 여러 대중가수가 공연을 열었지만 메인홀인 오페라극장에서 공연을 한 가수는 조용필뿐이다.
“어려울 거라고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탈락한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디지털사운드가 적합하지 않다면 어쿠스틱을 이용하면 되고, 구체적인 테마가 필요하다면 준비할 수 있어요. 그것 외에 제가 안 되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포기하고,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알려주면 보충해서 다시 도전할 생각이에요. 열심히 노력해서 롤모델인 조용필 선배처럼 꼭 그 무대에 서고 싶어요.”
그의 이런 호소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그저 화려한 이력을 얻고 싶은 것에 불과한 게 아니냐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나누지 않고 음악인에게 공평한 기회를 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예술의전당을 고집하는 걸까.
“오래전 오페레타 ‘박쥐’에 특별출연하면서 그 무대에 선 적이 있어요. 게스트 형식으로 콘서트홀에도 여러 번 섰는데 그때마다 느낌이 좋더라고요. 그러면서 특별출연이나 공연의 일부분에 참여하는 방식이 아닌 저만의 무대를 꾸미고 싶은 욕심이 생겼죠. 색다른 이력이나 인기를 얻기 위해서라는 말도 틀리진 않아요. 미국 뉴욕 카네기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 제가 예술의전당에서도 공연했다고 하면 좀 더 높은 평가를 받겠죠. 하지만 그보다도 최고의 음향시설을 갖춘 무대에서 관객과 즐기고 싶은 바람이 커요.”
기자회견이 끝난 후 다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기자회견을 앞두고 음악하는 사람과 음악하는 곳의 대결로 비칠까봐 며칠 동안 잠을 설쳤다. 어떤 무대보다도 떨리는 자리였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은 어딜 가나 기운 내라는 말을 많이 들어요. 한 꼬마는 ‘누가 우리 아줌마를 울리는 거예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죠. 아무리 힘들어도 팬들 덕분에 웃을 수 있어요.”
인순이는 ‘열정의 디바’라고 불린다. 지난 78년 여성트리오 ‘희자매’로 데뷔, 20여 장의 앨범을 낸 그는 가수 조PD와 ‘친구여’를 듀엣으로 부르고 그룹 카니발의 ‘거위의 꿈’을 리메이크하는 등 신·구 세대를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다.

“투쟁 아닌 상생의 길 원해요”
“완벽주의자는 아니지만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해야지’ 하며 노력을 많이 해요. 누군가는 이런 제게 ‘이제 쉬엄쉬엄해도 되지 않냐’고 묻더라고요. 돈도 벌 만큼 벌었고, 저보다 더 뛰어난 후배들이 많기에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볼까 싶다가도 후회를 남길까봐 멈추지 못하겠어요.”
데뷔 30주년 기념 공연 제목 ‘레전드’는 가요계의 전설이 되겠다는 의지를 담아 그가 직접 지은 것이라고 한다.
예술의전당 대관 신청 두 번 탈락 인순이 심경 고백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많은 레퍼토리를 준비해요. 겉으로는 우아한 척하지만 물속에서는 바쁘게 움직이는 백조처럼…. 핫팬츠를 입고 무대 이곳저곳을 방방 뛰어다니기도 하고, 어르신들을 위해 트로트 메들리를 부르고 창도 하죠. 되도록이면 게스트도 부르지 않아요.”
쉰이 넘은 나이에도 그는 여전히 건강미가 넘친다. 무대에서 춤추고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습관이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그는 나이가 들어 고음을 내기 힘들면 음을 낮추고, 힘이 들면 “이젠 이 정도밖에 할 수 없어요”라고 솔직하게 밝히며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한다.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인순이’로 태어나고 싶을 정도로 저 자신을 사랑해요. 거울 앞에 서서 제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자신 있게 말하죠.”
그는 국내 혼혈아동복지기관으로부터 학비를 받을 정도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런 그에게 예술의전당과의 마찰은 또 하나의 시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인순이는 “확대해석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평소 인터뷰에 인색한 편. ‘어려움을 극복한 가수’ 같은 성공담의 주인공으로 포장되는 걸 경계하기 때문이다.
“저는 지금 투쟁하는 게 아니에요. 상생의 길을 찾고 싶어요. 예술의전당 측에서 영화의 스크린쿼터제도처럼 1년에 일정 기간은 대중가수에게도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좋겠어요. 당장은 어렵겠지만 대중가수를 위한 전문공연장이 만들어져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고요.”
그는 디너쇼와 송년콘서트로 한해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데뷔한 지 30년이 됐지만 소회에 젖기보다는 앞으로의 30년을 준비하고 있다고. 훗날 “열심히 살았으니 부끄럽지 않다”고 떳떳하게 회고하는 게 목표라고 한다.
“이 자리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늦기 전에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어요. 뮤지컬 무대에 다시 서고 싶고, 인순이만의 진짜 이야기를 풀 수 있는 독백콘서트도 열고 싶어요. 당장은 어렵지만 꾸준히 노력한다면 꿈은 얼마든지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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