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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Culture Talk

유명인 3인이 말하는 ‘나만의 숨겨진 공간’

정리·이남희‘The WeeKEND 기자’ / 사진·조영철 현일수 기자

2008. 06. 12

유명인 3인이 말하는 ‘나만의 숨겨진 공간’

서울 대학로 학림다방 입구에 선 화가 황주리. 학림다방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앤티크한 소품들. 벽면을 빼곡히 메운 레코드판.(왼쪽부터 차례로)


Space 1 화가 황주리의 대학로 학림다방

나의 20대는 예술적 감수성이 경직된 사회와 늘 충돌하던 시기였다. 1970년대 후반 대학에서 컬러풀한 색조의 그림을 자유롭게 그리려 할 때마다 여러 선생님은 “원색을 많이 쓰지 말라”고 가르쳤다. 상상력 부재의 시대, 화가로서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내 안의 여행’을 떠나는 것뿐. 그 외로운 여행길을 함께한 공간이 바로 서울 대학로 학림다방이다.
아르코 미술관 등 조형미가 뛰어난 붉은 벽돌 건물과 외국계 커피전문점의 요란한 간판들이 아슬아슬하게 공존하는 대학로 거리. KFC 건물 맞은편에 ‘대학로 최후의 다방’ 학림이 자리잡고 있다. 상업주의에 물든 대학로에 남루한 작은 간판을 내건 이곳은 마치 고립된 섬 같다.
삐걱대는 나무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 과거로 향하는 타임머신에 오른다. 갈색 톤의 낡은 가구와 빛바랜 소파, 레코드판에서 흘러나오는 지글거리는 클래식 선율, 손때 묻은 베토벤 두상, 유명 작곡가들의 포스터….
음울한 분위기에 짓눌린 대학 시절, 나는 수업을 빼먹고 집과 가까운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이틀에 한 번꼴로 들르는 ‘단골 중 단골’이었다. 구석진 자리에 앉아 나는 클래식을 들으며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윌리엄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 릴케의 ‘말테의 수기’는 당시 즐겨 읽었던 책들이다. 답답할 땐 서울대병원 근처를 산책한 뒤 돌아와 친구들과 인생 고민을 나눴다. 때론 종이에 낙서를 하면서 그림의 초안을 구상하거나 글을 쓰기도 했다. ‘사회가 내 그림을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결코 기가 꺾이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유명인 3인이 말하는 ‘나만의 숨겨진 공간’

2층에서 내려다본 학림다방의 풍경.


학림다방은 내가 화가로 성장하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봤다. 머리가 터질 것같이 괴로울 땐 편안한 안식처가, 때론 억눌린 감성을 발산하는 작업실이 돼주었다. 1981년 첫 개인전도 다방 맞은편 문예진흥원 미술관(현 아르코)에서 열렸다. 무명화가 시절의 고독과 초심이 다방과 주변 곳곳에 깃들어 있는 셈이다.
이토록 정든 학림다방에 일부러 발길을 끊은 적도 있다. 1989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다. 출판사를 경영했던 아버지 역시 이곳의 단골이었다. 멋들어지게 양복을 차려입은 아버지는 다방에서 문인들과 담소를 나누거나 홀로 음악 듣기를 즐겼다. 내가 이곳에서 담배를 피우다 아버지에게 들켜 당황하던 기억도 생생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를 질책하지 않았다. 그저 딸의 그림 세계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줬을 뿐이다. 내 개인전이 열릴 때마다 전시장을 하루 종일 지킨 사람도 바로 아버지였다. 90년대 초까지도 대학로 근처에만 오면 아버지가 생각나 우울해지곤 했지만 이제는 담담하게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
아릿한 청춘의 편린을 간직한 학림다방을 요즘엔 1년에 4~5번 찾는다. 1980년대 후반부터 2001년까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고, 집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면서 대학로에 올 기회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림다방은 여전히 그때 그 시절에 느꼈던 평화를 선사한다. 몇 년 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옛 친구처럼. “네가 옳다”고 다독여주던 아버지의 격려가, 뜨거운 초심이 그리울 땐 또다시 학림다방에 들러 커피를 마실 것이다.

황주리는… 이화여대 서양화과,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 뉴욕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0년대 중반 화려한 원색과 열린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독특한 작품 세계로 주목받았으며 ‘꿈꾸는 초상’ ‘땅을 밟고 하는 사랑은 언제나 흙이 묻었다’ 등의 수필집을 펴내기도 했다.

유명인 3인이 말하는 ‘나만의 숨겨진 공간’

2층에서 내려다본 학림다방의 풍경.


Space 2 작가 정이현의 압구정 스폰지하우스
소극장과 멀티플렉스 영화관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 69개의 좌석에 작은 스크린이 앙증맞은 소극장이 오롯이 영화를 위한 공간이라면, 멀티플렉스는 ‘친교의 장’에 가깝다. 부대끼는 인파 속에서 내 머리 모양까지 신경 쓰이고, 커플들의 애정행각이 불편하며, 팝콘 한 봉지는 먹어줘야 할 듯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그저 시간이 지나가는 장소다. 반면 ‘나 홀로 데이트’를 즐기고 싶을 때, 영화와의 치열한 만남을 원할 때 내 발길은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소극장으로 향한다.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거리에 위치한 인디영화 전용관 스폰지하우스는 내게 숨겨둔 아지트 같은 곳이다. 저마다 화려한 간판을 내건 패션숍과 뷰티숍, 카페들이 즐비한 거리에서 스폰지하우스는 정반대로 작은 입구만을 두었을 뿐이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버리기 쉬운 이 은밀한 로케이션은 ‘나만 아는 공간’이라는 쾌감을 선사한다.
문을 열고 영화 포스터들이 걸린 복도 계단을 내려가면, 지하 1층에 티켓팅과 음료 판매를 겸하는 작은 카운터가 나타난다. 그 옆쪽에서는 다른 숍에선 구하기 힘든 인디영화 DVD 셀렉션을 볼 수 있다. 그토록 갖고 싶었던 ‘룩앳미’의 DVD를 구입하고 얼마나 기뻤던지. 상영관과 라운지가 오밀조밀하게 들어선 소극장은 마치 다락방처럼 정겹다.
유명인 3인이 말하는 ‘나만의 숨겨진 공간’

입구를 찾아 계단을 내려가면 지하 1층에 상영관과 라운지가 나타난다.


지인의 소개로 이곳에 드나든 지 1년. 그동안 ‘수면의 과학’ ‘쓰리 타임즈’ ‘허니와 클로버’ 등 일반 극장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10여 편의 영화를 이곳에서 관람했다. 평일 낮 아담한 상영관에는 고작 두세 명의 관객이 든다. 그럴 땐 눈물을 흘려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어디엔가 숨고 싶을 때, 이곳은 언제나 편안한 안식처가 돼줬다.
영화는 작품을 쓰는 데 직접적 모티프가 되진 않지만, 삶과 시대를 조망하는 데는 간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지난해 이곳에서 관람한 저예산 옴니버스 영화 ‘허스(Hers)’는 특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미국 땅에 사는 한국계 창녀 세 사람의 고단한 삶을 보여주면서 여성의 나이에 대해 말하던 영화. 아이스크림 몇 개에 대책 없이 몸을 파는 20대, 여전히 로맨스를 꿈꾸는 30대, 생의 마지막 자리를 찾아 떠도는 40대…. 여성이 나이를 먹는 일에 대한 감독의 섬세한 통찰에 무릎을 쳤다. 스폰지하우스가 아니라면, 과연 이 몽환적이고 독특한 영화의 감동을 제대로 전달받을 수 있을까. 극장 한 켠에 마련된 카페는 혼자 머무는 것이 자연스러운 공간이다. 벽을 보고 앉아 좋아하는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오래된 친구와 작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커피를 마셔도 좋다. 그러므로 낮은 목소리는 필수다. 서로 무관심하되, 상대방을 배려하는 이곳의 암묵적 룰은 나를 한없이 자유롭게 한다. 언제든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열린 공간은 나를 한 뼘씩 성장시킨다. 나이와 경험, 생각이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세상을 배울 수 있어서다.

정이현은… 현대 도시 여성의 삶과 사랑을 발랄한 문체와 쿨한 감각으로 그려내는 30대 여성 작가.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 장편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 소설집 ‘오늘의 거짓말’, 산문집 ‘풍선’ ‘작별’을 펴냈다.



유명인 3인이 말하는 ‘나만의 숨겨진 공간’

공원 안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좌) 여의도공원에서 종종 농구를 즐긴다는 오상진 아나운서.(우)


Space 3 아나운서 오상진의 여의도공원
금융·증권업체와 방송사 등이 밀집한 여의도의 고층빌딩 숲. 그 한복판에 ‘여의도의 허파’ 구실을 하는 여의도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빌딩이 빽빽한 도심에서 벗어나 잔디마당과 연못, 우거진 숲과 산책로가 어우러진 공원을 걷노라면 몸과 맘이 절로 편안해진다. 삭막한 도심에서 수십 종이 넘는 나무들과 만개한 꽃들을 만끽할 수 있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미국 뉴욕 맨하튼에 ‘센트럴파크’가 있다면, 서울에는 여의도공원이 있다.
여의도공원은 내 일상의 궤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방송사 근처에 살다 보니 출퇴근 할 때 늘 걸어서 이곳을 지난다. 여유가 있을 때, 연못 근처의 정자에 앉아 신문을 보며 그날의 이슈를 파악하기도 한다. 인터뷰 스케줄이 생기면, 보통 사진촬영장소로 정하는 곳도 바로 여의도공원이다. 그 뿐인가. 일주일에 서너 번은 가벼운 옷차림으로 공원의 산책로를 따라 달린다. 상쾌한 맞바람을 가르며 달리다 보면 어느새 잡념이 사라진다. 굵은 땀방울을 흘리면서 머리를 식히는, 그야말로 진정한 ‘정신의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요즘 같이 따스한 봄날엔 공원의 한적한 벤치에 앉아 책을 읽어도 좋다. 집이나 사무실처럼 닫힌 공간에 비해, 탁 트인 공원은 상상력의 폭을 더욱 넓혀주는 듯하다. 일본 미스터리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의 추리 소설은 단숨에 읽어 내려갈 정도로 열광하는 작품. 작가 공지영, 정이현의 최신작이나 박완서 선생의 ‘친절한 복희씨’도 흥미롭게 읽었다. 독서만큼 강력한 충전제가 또 있을까.
유명인 3인이 말하는 ‘나만의 숨겨진 공간’

여의도 도심 빌딩 숲 속에 자리잡은 여의도공원에서 인라인스케이트, 자전거 등 다양한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좌)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공원에서 농구를 즐기는 학생들.(우)


여의도공원에선,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는다. 가족들끼리 공원을 산책하거나 운동을 즐기는 등 저마다의 관심사에 집중하고 있어서다. 서로에게 무관심하되, 타인의 영역을 존중하는 이곳의 분위기는 깊은 안식을 준다. 혼자 시간을 보내도 전혀 어색하지 않기에 더 자유로운 곳이다.
여의도공원은, 내게 넓은 세상을 보여준 아나운서 생활과도 참 많이 닮았다. 노숙자부터 유명 기업인까지 누구나 마음대로 드나드는 이곳에서, 다양한 삶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대, 아나운서가 되기 전까지 나는 새장 속 새에 불과했다. 비슷한 목표를 지닌 친구들과 어울려 울산에서 초·중·고교를 다녔고, 대학 시절에는 남학생들만 우글거리는 단과대 동아리에서 주로 활동했으니 말이다. 한때 좁은 공간에서 ‘내가 옳다’는 아집에 빠졌던 나는 아나운서 일을 통해 비로소 타인을 이해하는 법을 깨우치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과 인터뷰하면서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대법관 올리버 웬델홈스는 “법이 보장해야 할 사상의 자유는 우리가 동의하는 사상의 자유가 아니라 우리가 증오하는 사상의 자유를 말한다”고 했던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여의도공원은 이 격언의 의미를 항상 되새기게 한다.
나는 혼자 튀지 않고 프로그램의 재미를 살리는 진행자가 되고 싶다. 마치 도심의 빌딩 숲과 조화를 이루며 사람들에게 신선한 공기를 공급하는 여의도공원처럼. 이곳이 휴식과 즐거움의 공간으로 내게 기억되듯, 나도 삶의 활력소가 되는 아나운서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길 바란다.

오상진은… 뛰어난 말솜씨와 순발력으로 각종 오락, 교양 프로그램을 종횡무진하는 MBC 아나운서. 현재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 경제야 놀자’ ‘환상의 짝궁’ ‘불만제로’ ‘찾아라 맛있는 TV’ ‘네버엔딩 스토리’ 등 다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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