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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앞서가는 CEO

쇼핑몰 운영 혁신 일으킨 (주)현대아이파크몰 대표 최동주

기획·김명희 기자 / 글·오진영‘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2008. 01. 23

지난 2005년 서울 용산 현대아이파크몰 사장으로 취임해 쇼핑과 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한 문화공간을 창조, 쇼핑몰 운영에 새 바람을 일으킨 최동주 대표. 그를 만나 사업에 대한 열정과 철학, 그리고 성공 스토리를 들었다.

쇼핑몰 운영 혁신 일으킨 (주)현대아이파크몰 대표 최동주

지리적으로 서울의 중심이자 서울시가 추진 중인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심장부에 위치한 용산의 (주)현대아이파크몰은 최근 3년간 환골탈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5년 개점 당시 입점률이 낮을 뿐 아니라 심지어 문을 연 가게들도 파리만 날려 ‘여기가 장사하겠다는 곳 맞나’ 싶을 정도였던 곳이 고급 브랜드와 명품 매장이 속속 입점하고 가족 단위로 즐길 수 있는 문화 콘텐츠가 풍부한 공간으로 거듭난 것. 아이파크몰을 찾는 고객들은 각자 원하는 공간에서 쇼핑을 하고 영화를 보고, 공연을 관람하는 등 필요에 따라 ‘따로 또 같이’ 움직인다. 가족 단위 방문의 경우, 남편은 전자상가에서 디지털기기를 구경하고, 아내는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며 아이는 서점에서 책을 읽은 후 각자 일이 끝나면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영화를 보거나 공연을 관람하며 함께 즐기는 식이다. 이러한 변화 뒤에는 최동주 현대아이파크몰 대표(57)의 노력이 숨어 있다.
“2005년 사장으로 취임해서 왔는데 상가를 분양받은 업자들이 장사 못 하겠다고 데모를 하고 난리가 아니었어요. 불어나는 적자를 감당할 길 없는 입주자들의 원성으로 분위기가 몹시 흉흉했죠.”

적자만 쌓이던 텅 빈 쇼핑센터, 선진국형 쇼핑몰로 변신시켜
그가 대표로 취임할 당시 아이파크몰의 3천여 개 점포 가운데 자영업자는 20% 미만이었고 나머지 80%는 투자자들이 분양을 받아 입점률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상태였다. 28만㎡나 되는 쇼핑센터 안에 가게는 썰렁할 만큼 적었고 점포 주인들은 곧 문을 닫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 얼굴이 굳어 있었다. 때문에 서비스도 엉망이었다고.
“그동안 회사를 경영하면서 가장 풀기 어려웠던 문제가 노사갈등이었어요. 그런데 여기 와서 노사갈등보다 더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죠. 회사와 노조는 어쨌든 수익을 내야 한다는 점에서 이해관계가 일치하잖아요. 하지만 자영업 계약자들은 삼천 명이면 삼천 명이 다 이해관계가 달라 조절이 쉽지 않더군요.”
부임하자마자 상인들과의 갈등으로 골머리를 앓던 어느 날이었다. 상인들 중에서도 앞장서서 데모를 주동하며 회사를 공격해오던 한 업주가 그를 만나고 싶다며 면담을 신청해왔다. 밤 10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었다. “만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 업주는 “사장님께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물러서지 않았다고. 그렇게 해서 사장실에 들어온 그 업주는 최 대표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인생 역정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경상도 어느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온 젊은 부부는 초등학생 딸 둘을 데리고 봉천동의 한 건물 지하에 세를 들어 작은 중국집을 운영했다고 했다. 부부는 어느 해 딸 생일에 친구들을 데려오면 중국 음식을 대접하겠다고 했는데 아이가 친구들은 다 아파트에 산다면서 우리 집에는 부끄러워서 데려올 수 없다고 말했다는 것. 그날 저녁 네 식구가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고 아버지는 딸들에게 중학교 갈 때까지는 꼭 아파트로 이사하마고 굳게 약속했다. 부부는 열심히 일해서 아파트에 입주하겠다는 꿈을 갖고, 그동안 모은 돈에 대출받은 돈을 보태 1억5천만원짜리 점포를 프리미엄까지 주고 분양받았다고 했다.

쇼핑몰 운영 혁신 일으킨 (주)현대아이파크몰 대표 최동주

입주 상인들의 갈등을 조정하고 선진화된 쇼핑몰 운영 기법을 도입, 아이파크몰을 쇼핑과 엔터테인먼트가 결합된 복합 문화공간으로 창조해 낸 최동주 대표.


“중국집을 내놓고 돈을 끌어모아 여기 상가 계약을 했다는 거예요. 자기 인생을 걸었고 가족들의 밥줄이 달려 있는데 지금 수익이 나기는커녕 빚에 이자가 늘어나고 보증금만 까먹고 있으니 어떡하면 좋냐고 묻더군요. 그 이야기를 듣는데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최 대표는 그 자리에서 “나를 믿어달라. 반드시 쇼핑센터를 살려내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쇼핑센터를 살려내기 위해 그가 생각한 방법은 부동산 기획에서부터 운영까지 대기업이 관리하는 미국식 쇼핑몰 모델을 전격 도입하는 것이었다. 이는 어느 날 갑자기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 20여 년 전 현대백화점에서 근무하던 시절부터 그가 꾸준히 연구, 검토해왔던 일이었다고 한다.
최 대표는 자신의 생각을 납득시키기 위해 상인 대표들과 토론을 했다고 한다. 결국 상인들은 상생협약서를 체결하고 최 대표에게 모든 것을 맡겨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협의를 바탕으로 현대산업개발이 대규모 자금을 추가로 투입하면서 현재의 ‘아이파크몰’이 탄생하게 됐다고.
이후 현대아이파크몰은 브랜드를 유치할 능력이 없는 계약자들을 대신해 전문 노하우를 갖춘 직원들을 영입, 직접 브랜드를 유치하고 통합마케팅과 판촉 등 운영관리 전반을 책임지게 됐다. 동시에 광고·홍보·이벤트·프로모션 등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면서 상인들과의 신뢰를 쌓았다. 선진국형 위임경영 방식을 도입해 영세 자영업자들과의 상생모델을 이룩한 아이파크몰의 성과는 2007년 11월 제33회 국가품질경영대회 품질경영상 수상을 통해 인정받았다. 그러나 거창한 상보다도 최 대표를 기쁘게 한 것은 기사회생한 쇼핑몰에서 다시 희망을 찾은 자영업자들의 밝아진 표정이다. 한밤중에 사장실 문을 두드리고 면담을 청했던 그 업주 부부는 요즘 그를 만나면 먼저 달려와 반갑게 인사한다고. 계약자들 중에는 “사장님 아프면 안 된다”며 녹용을 보내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
“어려웠던 갈등을 조정하고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도 마침내 합의를 이룰 수 있었던 열쇠는 진심이었다고 생각해요. 진심을 갖고 최선을 다한다는 신뢰를 얻었을 때 아무리 어려운 일도 해결할 수 있는 상생의 프로그램이 가능하다는 것을 배웠어요.”

“국가와 사회에 대한 사명감 잊지 말라는 고 정주영 회장의 가르침 늘 마음에 담고 있어요”
최 대표는 지난 78년 경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현대건설에 입사해 지금까지 현대 계열사에서 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왔다. 학창시절 공부보다 사회현실 참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졸업 후 현대건설에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언젠가 현대건설의 사장이 되겠다는 야심을 품었다고.
“직장생활 초년병 시절 정주영 회장이 매달 월례조회에서 말씀하셨던 게 지금껏 잊히지 않는데 그분이 가장 강조하셨던 게 ‘머리를 짧게 자르라’는 것이었어요(웃음). 그 당시는 장발이 유행이었는데 정 회장은 항상 ‘바쁘게 일하는 사람은 머리를 기를 틈이 없다’며 ‘머리가 단정해야 정신도 맑아진다’고 강조하셨어요.”
그러고 보니 정말 그의 헤어스타일은 방금 이발소에 다녀온 것처럼 짧고 단정했다.
또한 고 정주영 회장은 또 국가와 민족을 대표하는 일꾼이라는 자부심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질 것, 부지런할 것 등을 당부했다고 한다. 당시는 국내 건설사들이 해외사업에 한창 박차를 가하던 시절이었다. 최 사장도 6년을 동남아의 인력시장과 중동의 건설 현장의 모래바람 속에서 보냈다. 동남아시아 16개국의 오지를 샅샅이 누비며 양질의 노동 인력을 찾아 중동 건설현장에 투입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태국 치앙마이 같은 곳은 국경지대의 반군 세력들이 마약 유통을 장악하고 있던 험한 시절이었다. 그런 곳에서 밀림을 누비며 필요한 인력을 확보해 현장에 데려가기까지의 절차란 상상할 수 없는 고비와 위기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쇼핑몰 운영 혁신 일으킨 (주)현대아이파크몰 대표 최동주

“저는 지금도 술을 마셔도 여간해선 취하지 않아요. 폭탄주 20잔을 마셔도 끄떡없죠(웃음). 그게 다 해외 건설현장에서 연마한 실력이에요. 같이 술 마시다 다른 나라에서 온 건설회사 직원이 술김에 어디 어디를 가서 인력을 구해왔다고 털어놓으면 얼른 화장실에 가서 메모해놓고 다음 날 쫓아가는 식이었죠. 해외에서 근무하는 동안 거짓말 조금 보태서 하루 세 시간 이상 잠을 잔 날이 없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 그런 일을 견딜 수 있을까요? 그걸 가능하게 했던 열정의 바탕에는 국가와 민족에 대한 사명감을 잊지 말라는 정 회장님의 가르침이 있었죠.”
83년 그는 울산 현대미포조선으로 근무처를 옮겼다. 당시 조선사업은 주로 수리공사로 흑자를 내고 있던 상황. 울산에는 세계 각지에서 수리를 받기 위해 온 배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최 사장은 미포조선에서 각종 하도급 업체와 얽힌 비리를 없애고 구조조정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켰으며 처음으로 우리사주제를 도입했다. 이렇게 1년 동안 경영혁신을 이룩한 그는 84년 현대백화점으로 근무지를 옮겨 압구정점·무역센터점 등 전국에 13개 현대백화점을 오픈하며 유통사업의 노하우를 쌓았고 3년 전 현대아이파크몰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이웃이 잘 살고 행복해야 쇼핑 사업에도 발전 있다고 생각, 나눔 실천하려 노력해요”
최 대표는 신입사원 시절부터 새로 시장을 개척하는 역할을 주로 맡아왔기 때문에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현재 대학생인 아들, 딸 남매가 태어날 때조차 병원에 가보지 못했다는 것. 대신 일요일 오전엔 항상 온 가족이 함께 교회에 가고, 쇼핑은 반드시 자신이 근무하는 곳에서 하게끔 한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레 쇼핑몰을 중심으로 가족 간 대화가 수월하게 이루어진다는 것.
“아이파크몰은 가족들이 함께 와서 쇼핑과 엔터테인먼트, 문화,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한 장소에서 해결할 수 있는 곳입니다. 저희 가족은 주로 한방병원과 패션 백화점, 리빙 백화점을 애용해요. 친구들과의 약속도 주로 이곳에서 잡는데 영화를 볼 수도 있고 식사를 할 수도 있어 편해요. 여기는 남편과 아내와 자녀들이 각자 원하는 공간에서 물건을 사고 공연을 관람하고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다시 만나 식사를 함께 하고 나가는 길에 할인마트에서 장을 보고 갈 수 있는, ‘스토리가 있는’ 공간이죠. 고객들에게도 아이파크몰에서 쇼핑만 할 게 아니라 쇼핑과 함께 다양한 문화활동을 하며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누리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지난 12월, 아이파크몰에서는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공연이 펼쳐져 쇼핑몰을 방문한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최 대표가 87년부터 인연을 맺어온 장애우 복지시설인 거제도 애광원의 증축공사에 필요한 기금마련을 위해 공연을 연 것. 쇼핑몰 영업의 혁신을 일으킨 경영인답게 그는 기업의 기부 문화에 대해서도 새로운 구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 증축되는 숙소의 24개 방과 시설에 기부금 낸 회사 이름을 붙이는 ‘네이밍 라이츠(Naming Rights)’를 추진하려고 해요. 자기 회사 이름을 붙인 방에 들러보기도 하고 때가 되면 도배도 하러 가면서 자연스럽게 나눔의 물꼬를 트자는 거죠. 사람들이 모두 잘 살고 행복해야 쇼핑도 하고 문화를 누릴 여유도 생기는 게 아니겠어요. 그런 면에서 기업이 사회사업이나 기부 문화에 관심을 갖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현대아이파크몰은 장애시설 후원사업 외에도 용산지역 부녀회와 함께하는 자선바자회, 사랑의 김장담그기, 거리 청소 등의 지역사회 공헌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어려운 이웃, 그리고 지역사회와의 ‘아름다운 동행’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자세야말로 최 대표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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