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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 ‘가짜 학위’ 파문 전말 & 지인 조영남의 회고

기획·송화선 기자 / 글·김순희‘자유기고가’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7. 08. 22

30대 나이로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에 선임돼 화제를 모았던 신정아 전 동국대 교양교육원 교수가 그동안 학력을 속여온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학부 및 석·박사 학위를 모조리 거짓으로 꾸미고도 대학교수 및 국내 유명 화랑 큐레이터로 활동할 수 있었던 배경과 미술계 인사로 만나 신씨와 친분을 쌓았던 가수 조영남의 회고를 소개한다.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 ‘가짜 학위’ 파문 전말 & 지인 조영남의 회고

미술계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졌던 큐레이터 신정아 전 동국대 교양교육원 교수(35)가 그동안 학력을 속여온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지금까지 신씨는 서울대 동양화과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캔자스주립대에서 서양화와 판화 복수 전공으로 학사학위, 경영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예일대 미술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왔다. 그러나 이러한 학력이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것. 신씨는 자신의 학력에 대한 본격 검증이 시작된 직후인 지난 7월16일 “내 학위를 증명할 서류를 갖고 오겠다”며 미국으로 출국한 뒤 잠적한 상태다.
현재 확인된 신씨의 학력은 90년대 중반 미국 캔자스주립대에서 서양화와 판화를 공부하다 중퇴했다는 것이 전부. 하지만 그는 미술계에서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경력을 쌓으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지난 97년 금호미술관 큐레이터로 미술계에 첫발을 디뎠고, 이후 성곡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겨 기획한 ‘뉴욕의 디자이너들’ 전으로 2003 월간미술대상 전시기획부문을 수상하며 명성을 쌓았다. 유력 일간지에 미술 칼럼을 쓰고 동국대 교수로 임용되는 등 30대 나이에 ‘미술계 신데렐라’로 떠오른 그는 지난 7월 초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가장 큰 미술 관련 국제행사인 광주비엔날레 공동예술감독으로 선임돼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과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이에 대해 미술계 인사들은 “우리나라의 취약한 학력 검증 시스템과 신씨의 처세술이 결합된 결과”라고 말한다. 신씨가 미술계에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97년 9월. 20대 중반의 앳된 아가씨였던 신씨는 서울 종로구 금호미술관에 나타나 “미국 캔자스주립대에서 서양화와 판화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았다”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수석 큐레이터는 일단 이력서를 받아뒀다가 한 달 뒤 전시장 영어 안내 아르바이트생으로 신씨를 채용했다고. 그러나 그해 말 당시 근무하던 큐레이터 두 사람이 관장과 마찰을 빚은 끝에 일을 그만두면서 신씨는 후임 큐레이터가 됐다. 유학파 출신으로 언어 능력이 뛰어날 것이라고 짐작된데다 미술관장, 기업인, 기자 등과 친분을 쌓는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뛰어난 학벌과 친화력으로 빠른 시간에 미술계 영향력 넓혀
미술계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신씨가 금호미술관에서 빠른 시간에 경영진의 환심을 사는 데 성공했다고 전했다. 한 전시를 기획하면서 3백 쪽 분량의 보고서를 작성해 고(故)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에게 제출하고 “이걸 토대로 문화부의 지원금을 타겠다”고 밝혀 칭찬을 받았다고. 그런 신씨를 보고 박 명예회장은 “배포가 크다”며 만족스러워했다고 한다.
그러나 신씨는 2001년 금호미술관에서 예일대 박사과정에 다닌다고 말했다가 당시 예일대 한국동문회 회장이던 박 명예회장에게 사실이 아닌 게 밝혀져 사표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박 명예회장은 박강자 금호미술관장으로부터 “신씨가 인터넷을 통해 예일대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예일대에 그런 과정은 없다. 당장 사표를 받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금호미술관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후 신씨가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 놀랐지만 개인적인 도덕 문제라고 생각해 적극적으로 알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 ‘가짜 학위’ 파문 전말 & 지인 조영남의 회고

미국에서 잠적 중인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가 지난 7월17일 뉴욕 JFK 공항에 입국한 모습.


이후 신씨는 더욱 광범위하게 미술계에서 영역을 넓혀갔다. 지난 2005년 한 신문에는 신씨가 “국내 큐레이터 가운데 미술 관련 외국 박사 1호이며, 한국인으로는 최초의 예일대 서양미술사 박사”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 신문과 직접 인터뷰를 한 신씨는 기자에게 “미국을 왔다갔다하는 항공료는 논외로 치더라도 논문작성과 전시기획이 겹치는 때는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렇게 힘들게 박사학위를 따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감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며 “미술관 근무경력을 인정받아 일부 과목을 면제받기도 했지만 현지 수업에 빠지지 않고 참가했고 논문은 1년간 밤잠을 자지 않고 이메일을 통해 첨삭을 받는 방식으로 썼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에 따르면 이 구체적인 묘사가 모두 사실이 아닌 셈이다.
이 외에도 신씨는 금호미술관의 유일한 큐레이터였는데도 ‘수석큐레이터’라는 직함을 쓰고,“열심히 일하는 미술계의 잔다르크가 되겠다”며 ‘신다르크(shindarc)’를 이메일 아이디로 쓰는 등 적극적으로 자신을 과시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삼풍백화점에서 사고를 당했으나 겨우 구조됐다. 지금은 덤으로 사는 인생이나 마찬가지니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얘기를 듣고 호감을 느꼈다고 밝힌 미술계 인사도 있다.
한 대형 사설 미술관 관장은 “신씨가 뛰어난 실적을 쌓을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그가 매우 공손했기 때문”이라며 “신씨는 원로 화가들을 대단히 잘 챙기면서 그들의 마음을 빼앗았고, 그들의 지지와 후원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실적을 쌓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유명 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도 미술사학회에 논문을 발표하거나 자신이 기획한 전시회에 대해 평론을 쓴 적이 없을 정도로 전문적인 능력을 보인 적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까지 신씨와 친분을 유지했던 가수 겸 화가 조영남씨는 “몇 년 전 한 기자가 ‘우리나라 미술계에 실력 있는 여성이 혜성처럼 나타났다’며 신씨를 소개해줬다”고 회고하며 “직접 만나보니 우아하고 조용조용 얘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신씨와 몇 차례 더 만나 대화를 나눴다는 조씨는 “금호미술관 큐레이터라고 해서 그의 이력에 대해 추호도 의심해본 적이 없다. 다만 2005년엔가, 그를 소개해준 기자가 ‘신씨가 미국 예일대에 박사학위를 받으러 출국했다’고 하기에 ‘아니 미국에 가면 그냥 간다고 하지 뭘 굳이 예일대 박사학위를 받으러 간다고 할까, 좀 과시욕이 있는 사람인가보다’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신씨의 학력 위조 논란은 지난 7월 초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에 선임된 뒤 그의 이력에 의심을 품은 한 언론사가 미국 대학 쪽에 입학 여부를 조회함으로써 확산됐다. 이와 함께 10년에 걸쳐 이어진 그의 화려한 생활도 막을 내렸다. 광주비엔날레 조직위는 그의 예술감독 선임을 취소했고, 동국대도 신씨를 파면한 뒤 검찰에 고소고발하기로 결정했다.
이제 얽히고 설킨 이 문제를 푸는 건 신씨 본인의 몫이다. 그가 자신의 호언대로 예일대 학위를 증명할 서류를 들고 귀국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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